22화
안톤, 루시엘, 그리고 갈롯.
셋 다 전도유망한 재능의 소유자들이다.
그들 모두 전생에 랭커스터 성을 하사받았으며, 황금 사자 기사단에 들어갔었다. 그것도 소드마스터로!
즉, 세 명 전부 미래의 소드마스터가 될 자질이 있는 셈이다. 아마 지금도 하급반 수련생 중에서는 최상위권의 실력자들이겠지.
‘진짜 운이 좋아.’
절로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우연히 이 셋이 내가 탄 마차에 함께 타고 있었고, 우연히 내게 생명의 은혜(?)를 입다니!
어린이용 동화책도 이따위로 써 놓으면 개연성 떨어진다고 욕을 배부르게 먹을 거다.
용의 심장을 만들 때 데우스의 도움을 받은 것부터 시작해서, 드레커로 살아가는 두 번째 인생은 진짜로 매번 행운의 여신이 날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진짜 살아가는 맛이 달랐다.
‘달다. 너무 달아.’
아주 꿀맛이 따로 없다는 거다.
전생은 씁쓸하다 못해 떫은 감 같은 삶이었는데, 이번 생은 달콤하기가 초콜릿 저리 가라 할 정도다.
[너, 자꾸 단 것만 찾으면 나이 들어서 소갈병 걸린다. 젊을 때 몸 관리 안 하면 나이 들어서 고생해.]
‘……소갈병? 아니, 누가 요즘 그런 말을 씁니까?’
[뭐, 뭐야?]
‘소갈병이 아니라 당뇨병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와, 소갈병은 역사책에서밖에 못 봤는데. 대체 언제적에 쓰던 단어야, 그게? 그리고 제가 운 좋은 거랑 건강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이, 이놈이 또 말대꾸를 해?]
쓸데없이 초를 치는 데우스의 투정을 무시하며, 나는 다시금 미래의 황금 사자들을 바라보았다.
동경과 선망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세 사람.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맑다 못해 순수해 보였다.
물론 이들도 엄연히 리텐슈노프의 수련생이다.
그들의 눈빛에 깔려있는 독기가 보였다. 어떻게든 지금보다 강해지고 싶다는, 이번 종합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겠다는 열망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하긴, 지금까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가 없었겠지.’
리텐슈노프가 거둔 고아 출신 수련생의 99%가 쇠매 기사단이 되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뒷배도 없는 천애고아가 가신단의 자제나 봉신 가문 출신의 순혈들과 올바른 경쟁이 될 리가 없잖는가?
그들은 혈통부터가 차원이 다른 놈들이다.
‘그 녀석들과 경쟁하는 게 쉬울 리가 있나.’
가문이 지원하는 포션이나 영약, 대대로 내려오는 비전 검식, 마나 하트 구축법까지. 순혈들이 받는 지원은 상상 그 이상이다.
같은 하급반이지만 애초에 출발선부터가 다른 거다.
‘뭐, 그만큼 이 녀석들이 천재라는 소리도 되지만.’
그런 극악의 경쟁을 뚫고 황금 사자 기사단의 일원이 되었다는 건, 이 세 사람의 재능과 노력이 진짜 상상을 초월한다는 걸 의미했다.
‘검증된 최상급 인재라는 거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이번 하급반 종합 평가는, 이런 검증된 인재들을 포섭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안톤, 루시엘, 그리고 가롯. 세 명 전부 다 이름 기억했다.”
“……!!”
“종합 평가, 다들 열심히 해보자.”
악수의 의미로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지, 세 사람이 감격한 눈으로 덜덜 떨며 내 손을 쥐고 흔들었다.
‘좋아, 팀원 세 명은 일단 채웠다.’
이제 한 명만 더 낚아오면 되겠는데?
[……음흉한 놈.]
내 속마음을 읽은 건지, 데우스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물론 난 콧노래를 불렀지만 말이다.
* * * * *
“집합! 당장 내 앞으로 집합해라!”
수련동 교관의 고함 소리가 새하얀 눈밭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곧바로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꽉 조여졌다. 사방에 퍼져서 웅성거리던 수련생들이 재빨리 달려와 교관 앞으로 집합했다.
“줄 딱딱 못 맞추나! 여기 놀러 왔어!”
“나이 순으로 서! 여덟 살이 앞으로 나오란 말야!”
감독 역을 맡은 기사들도 한 팔 거들었다. 그들의 서슬퍼런 목소리에 수련생들은 순식간에 줄을 맞췄다.
“자, 이제부터 하급반 종합 평가를 시작하겠다!”
붉은 깃발을 든 교관이 선언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수련생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리숙해 보이던 눈빛에는 독기가 차고, 긴장감과 열망, 그리고 흥분이 수련생들을 사로잡았다.
“지금부터 이번 종합 평가의 규칙을 설명하겠다. 중요하니까 다들 집중해서 듣도록!”
“네!”
“하급반 종합 평가의 목적은 언제나 수련생들이 실전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다.”
실전 경험을 축적해, 진짜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절대 망설이지 않고 움직이는 훈련을 하는 것.
“실전을 겪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는 이제까지 수십 번 입아프게 설명을 해왔으니 더 말하지는 않겠다. 이번 종합 평가의 목표는 사냥이다. 그리고…….”
교관은 잠시 말을 끊고 천천히 수련생들의 안색을 살폈다. 잠시 후,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평가는 조 단위로 치러질 것이다.”
조 단위라는 말에 수련생들이 웅성거렸다.
“조? 조 단위로 평가를 한다고?”
“무슨 소리야?”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누가 벌써부터 입을 여나!”
교관의 일갈에 다시금 침묵이 찾아왔다.
교관은 찡그린 얼굴로 혀를 차며 수련생들을 한 번 훑어보았다. 곧 그가 다시금 설명을 시작했다.
“5인 1조, 다섯 명이 한 조가 된다. 각 조마다 한 명의 조장을 뽑고, 나머지는 조원이 된다. 조원은 조장의 지휘에 따라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점수를 매기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1급 몬스터, 1점. 2급 몬스터, 5점. 3급 몬스터 10점. 그 이상의 몬스터는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조장은 얼마나 올바르게 조원들을 지휘했는가, 조원은 조장의 명령에 얼마나 충실히 따랐는가에 따라 추가적으로 점수가 가감될 것이다.”
그것을 끝으로 교관은 입을 다물었지만, 수련생들은 여전히 그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 단위 평가.
그 특성을 생각하면, 아직 교관이 말하지 않은 추가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조를 쓰러트리면, 그들이 그때까지 보유하고 있던 점수를 전부 빼앗아 올 수 있다.”
그 말에 모든 수련생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강자존이 당연시되는 리텐슈노프 가문이다.
승자 독식은 당연한 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지금부터 조를 짜라!”
그것을 시작으로, 수련생들이 움직였다.
* * * * *
이번 종합 평가의 포인트는 간단했다.
‘조장, 그러니까 지도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해.’
이번 평가에서 조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다. 이 시험은 강한 놈들끼리 뭉친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실력만 좋은 놈들이 모이는 게 더 골치가 아프지.’
실력에 자신이 있는 만큼, 자존심도 세진다. 그 탓에 다섯 명 중 조장을 정하는 것부터 난제인데다가, 어떻게 겨우겨우 조장을 뽑더라도 조장이 내리는 명령에 절대 복종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실력이 어중간하더라도 조장 명령에 잘 따르는 녀석들로 조를 짜는 게 훨씬 수월해.’
그런 면에서 난 꽤 편한 셈이었다.
“안톤, 루시엘, 갈롯. 아직 제안받은 게 없다면, 너희 세 명을 내 조원으로 들이고 싶은데…….”
“바, 받들겠습니다!”
“꼭 도련님을 조장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일단 내가 무슨 명령을 내리든지, 목숨 바쳐 따를 조원을 세 명이나 뽑고 시작하니까 말이다.
그것도 어중간한 녀석들이 아니다. 미래의 황금 사자가 될, 이 기수 최고의 유망주들을 말이다.
“운이 좋네.”
저절로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굳이 힘자랑해서 찍어누를 필요도 없으니…… 전생이랑 비교하면 훨씬 수월하고 좋아.’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조를 짜기 시작한 수련생은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 조 자체가 성립하는 팀이 사실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았다.
서로가 조장이 되겠다고 싸우고 있으니, 조라는 게 성립할 수가 있나?
‘이럴 때는 결국 가문의 위세로 찍어누를 수밖에 없는데…….’
이번 평가 시험 기수에는 딱히 특출한 가문 출신의 자제가 없었다. 가문의 위세 따위로 간단히 서열 정리가 안 되니, 남은 방법은 결국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조장이 되고 싶다면 덤벼라!”
“결투다!”
싸워서 때려눕히는 것.
사방에서 평가를 위해 보급해 준 검을 뽑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곳에선 벌써 싸움을 끝내고 승부를 낸 녀석들도 있는 모양이다.
‘저것도 나쁜 방식은 아니지.’
리텐슈노프 가문에서 힘으로 조장 자리를 차지하는 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오히려 칭찬받을 일이다.
강한 녀석이 우두머리가 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문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거지만.’
교관들이 서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다들 이 사태가 불만스러운지, 팔짱을 낀 채 구겨진 얼굴로 시계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면…….’
가장 먼저 5인 1조를 완성한 조에게 추가 점수를 줄 확률이 높다. 일리 있는 소리 아닌가? 그만큼 조장과 조원이 일치단결했다고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럼 한 명만 더 모으면 되는데…….”
원래 조원으로 삼으려고 점찍어 둔 녀석들이 있으니, 그중에서 한 사람 뽑아오면 되겠지.
그 순간, 문득 안톤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할 말이라도 있어?”
“도련님, 혹시 마지막 조원으로 염두해 둔 수련생이 있으십니까? 만약 없으시다면 제가 한 사람 추천드려도 되겠습니까?”
“추천?”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곧 흥미가 생겼다.
대체 누굴 추천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친분 따위로 내 조에 사람을 꽂아넣을 속셈은 아닐 터. 안톤의 사람 보는 눈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뭐, 보잘 것 없는 녀석이면 거르면 되니까.’
어차피 다른 수련생들이 조를 완성할 때까지는 한참은 더 남았다. 우리 조가 1등을 놓칠 일은 없으니, 들어보는 것도 시간 낭비는 아니리라.
“실력도 괜찮고, 훈련도 잘 따라옵니다. 성격도 좋고요. 혹시라도…….”
중언부언 설명을 시작하는 안톤의 말을 끊었다.
“설명은 거기까지, 그래서 누군데?”
“이름은 카를 브라운이고, 저와 친한 친구입니다.”
“브라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성인데?
아니, 그보다 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 최소한 고아 출신은 아니라는 뜻인데……. 그런 녀석이 어떻게 안톤과 친구가 된 거지? 생각보다 성격이 좋나?
‘아니, 잠시만…….’
난 눈을 가볍게 찌푸렸다.
‘분명 마리 유모의 성이…… 브라운 아니었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톤을 쳐다보자, 녀석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을 보필하는 유모의 동생입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