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순수하기 그지 없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 소녀.
전생의 기억에 비하면 조금 낫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읽기 힘든 얼굴이다.
그보다 무슨 뜻일까? 교류전 우승을 포기한다니?
내 시선에 담긴 의심을 눈치챘는지, 아멜리아가 살짝 눈을 흘겼다.
“뭐야, 내 호의를 못 믿겠다는 거야?”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어느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더라도 믿기 힘들 거라고 보는데.”
“뭐어? 정말 너무하네.”
아멜리아는 입술을 살짝 삐죽거리며 과장된 제스쳐로 불만을 표했다. 그 행동이 너무 과할 정도의 연기풍인지라, 무심코 풉 실소를 터트렸다.
“웃어?”
내 웃음이 기분 나쁜지, 아멜리아가 곱게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입가의 미소를 지우며 그녀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절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의도를 말해.”
“정말, 사람을 너무 못 믿는 거 아냐?”
“교류전을 포기하겠다는 말. 너라면 믿을 수 있겠나? 처음부터 나와 협력하자고 제안했던 네가?”
내 물음에 아멜리아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잖아?”
“상황이 다르다, 라…….”
확실히, 상황이 달라지긴 했지.
“내가 미적거린 덕분에 닿을 리 없던 우승이 네 눈앞까지 다가왔으니 상황이 달라진 건 맞지. 근데 그렇다면 오히려 더욱 이기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머, 능력 자랑하는 거야? 너 생각보다 뻔뻔한 면이 있구나?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아둔 것 같아.”
아멜리아가 소매로 입술을 가리며 킥킥 웃었다.
마치 비웃는 것 같아,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쓸데없이 시간 낭비 하지 말고, 의도를 말해.”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미스틸테인을 겨누었다.
서늘하게 빛나는 칼 끝이 그녀의 목 가까이 닿았다.
그제야 아멜리아는 웃음을 그쳤다.
“네 말대로, 상황은 달라졌어.”
그녀의 푸른 눈이 서늘하게 빛난다.
칼날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에도 그녀는 나긋나긋했다. 오히려 그녀는 한 걸음 내게 다가섰다.
칼끝이 그녀의 새하얀 피부를 살짝 찔렀다. 붉은 핏방울이 살짝 맺히는 모습에 내가 흠칫 놀라는 순간, 그녀가 나직히 말했다.
“드레커 리텐슈노프. 네가 모든 미로를 뚫고 1위를 한 시점부터 말이지. 그것도 고작 하루 만에.”
“…….”
“솔직히, 진짜로 기대 이상이었단 말이야? 이번 교류전의 정보를 미리 알고 있던 것도 그렇지만, 환영 미로를 가장 먼저 뚫을 사람은 나라고 예상했거든.”
일순, 그렇게 중얼거리는 아멜리아의 눈빛에 미약한 씁쓸함이 감돌았다.
하나, 곧 그 기색은 사라졌다. 분위기를 바꾼 아멜리아는 진지한 눈으로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그런데, 네가 나보다 먼저 미로를 통과했어. 물론 네가 나보다 먼저 들어오긴 했지만, 솔직히 나도 7일 넘게 걸린 미로거든? 그걸 하루 만에 뚫는다는 거,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
“그래서?”
“그래서 포기하는 거야. 알겠어?”
아니, 모르겠다.
왜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거지?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는 내 눈빛이 의뭉스러웠던 모양인지, 아멜리아는 이내 짧게 한숨을 푹 쉬었다.
“눈치가 없는 건 아닌데, 어떨 때는 바보 같네.”
마치 한심하게 보는 시선.
묘하게 기분 나쁘다.
아멜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잘 들어. 그냥 나는 가치 판단을 한 거야.”
“가치 판단?”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멜리아는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눈 옆을 툭툭 쳤다.
“내가 다른 사람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건 알지? 그 능력을 오래 사용하다보니까, 굳이 직접 읽지 않아도 행동이나 눈빛으로 어느 정도 타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파악할 수 있게 됐거든?”
“그런데?”
“너, 방금 전에 날 쓰러트리고 먼저 다음 미로로 들어가려고 했지? 솔직히 좀 양심 없는 거 아니니? 어찌되었든 내가 다친 널 치료까지 해줬는데 말이야.”
“…….”
“하여튼……. 네가 그 정도의 감사함도 못 느끼는 철면피라고는 생각되지 않거든? 그런데도 그렇게 행동하려고 했다는 건, 그만큼 이번 교류전 우승이 네게 중요하다는 거 아니겠어?”
맞다.
이번 교류전에서 우승해 아이스본의 성장 촉진제를 얻지 못하면 앞으로의 계획이 많이 꼬인다.
보조 계획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조는 보조일 뿐.
‘원본 계획에 비하면 부족하기 짝이 없다.’
그렇기에 더욱 더 이해할 수 없었다.
교류전 우승은 단지 상품만 얻는 게 아니다.
자신과 비슷한 세대의 오대 명가 후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명성 또한 뒤따라온다.
아멜리아 아이스본이 현재 처한 처지를 생각하면, 당연히 욕심이 날 수 밖에 없는 자리다.
그런데 그걸 포기한다고?
“뭐, 어쨌든……. 이 상황에서 나한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 셈이야.”
아멜리아는 오른손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그녀가 손가락 하나를 접으며 말했다.
“하나,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을 너와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싸움을 한다. 솔직히, 완전 너덜너덜해진 상태인데도 싸우면 내가 질 것 같으니, 승패를 장담하기 힘들다고 하는 건 무리지만.”
나머지 하나의 손가락을 접는다.
“둘, 그 정도의 능력을 가진 너에게 마음 편하게 우승을 양보하고 나름대로 마음의 빚을 지운다. 나는 차석으로, 너는 수석으로 교류전을 마치는 거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겸사겸사 너랑 친분도 쌓아두고 말이지. 어디보자, 친구 정도면 충분하려나?”
히죽.
다시 청초한 미소를 짓는 아멜리아.
머리카락은 피로로 푸석푸석했고, 눈가의 다크서클은 이전보다 더욱 깊었지만, 그런데도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릴 정도의 아름다움이 그곳에 있었다.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꽤 머리 잘 돌아가네.”
“칭찬 고마워! 평소에도 그런 소리 많이 들어서 좀 빛이 바랜 감이 있는 칭찬이긴 한데, 화자의 얼굴이 잘생기니까 조금 색다른 맛이 있네?”
아멜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킥킥 웃었다.
그 미소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이 몸에 빙의한 이후, 검제 마그너스를 처음 마주했던 날과 비슷한 느낌이다. 과거에는, 전생에는 차마 눈 한 번 마주치지 못한 사람과 대등해진 기분.
‘뭔가, 가슴 속이 간질거리는 것 같네.’
사냥개에 불과했던 내가, 아이스본의 가주였던 아멜리아 아이스본과 이런 방식으로 대화를 하다니…….
그렇게 생각하자, 웃음이 나왔다.
“뭐야, 왜 갑자기 웃는 거야?”
심통이라도 난 듯, 아멜리아가 볼을 부풀렸다.
분명 작위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이었으나, 그제서야 내 눈에는 그녀가 제 나잇대 소녀로 보였다.
“아니, 됐다.”
나는 겨눈 검끝을 내렸다. 그러자 방울진 핏물이 그녀의 목젖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이내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하지만 내 손수건은 이전에 토해냈던 핏물로 인해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핏방울을 닦는 데 쓸 수는 있겠지만, 솔직히 이런 걸 주기에는…….
내가 곤란한 표정으로 손수건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아멜리아가 폭소를 터트렸다.
“아하하! 정말 무드라곤 없는 애구나, 너?”
그 웃음에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수건을 휙 던졌다.
“아앗, 너무하잖아! 이런 걸 주다니. 실례라고.”
“조용히 해.”
투덜거리면서도 그녀는 내가 준 손수건으로 핏자국을 닦았다. 나는 아멜리아를 흘낏 살피고는, 다시금 심호흡을 했다. 바닥에 내려 둔 와치버드의 새장을 손에 쥔 채, 나는 성큼성큼 통로를 나아갔다.
곧 경계선에 도착했다.
세 번째 환영 미로.
내 뒤를 따라온 아멜리아가 물었다.
“다음 미로로 들어가려고?”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거래 성립인가?”
“거래?”
뜬금없는 이야기에 내가 힐끔 뒤돌아보자, 그녀가 화사한 표정으로 눈웃음을 지었다.
얇게 펴진 눈매 사이에서 푸른 눈동자가 빛났다.
“친구 말이야, 친구.”
아,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나는 고개를 돌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멜리아 아이스본.
이대로 큰 변화가 없이 시간이 지난다면 차기 아이스본의 가주가 될 소녀.
아이스본의 최연소 가주이자, 최연소 아크메이지.
그런 소녀와, 친구라…….
“협력자.”
“뭐?”
“협력자, 라고.”
내 대답에, 아멜리아의 눈이 순간 동그래졌다.
곧 그녀가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 협력자.”
“…….”
나는 곧바로 경계선을 넘었다.
곧바로 세상이 무너졌다.
눈앞이 점멸하며, 환영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마지막까지 보인 현실 속에서, 아멜리아 아이스본은 계속 나를 향해 작은 손을 흔들고 있었다.
* * * * *
고대 유적의 끝, 최심부.
최심부의 제단 앞에는 고대 유적과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고풍스러운 목제 책상과, 그 뒤에 놓인 두 개의 의자.
의자에는 두 사내가 앉아 있었다.
정갈한 흰색 제복 위에 로브를 걸친 사내들.
그 둘은 교류전의 감독을 맡은 아이스본의 마법사들이었다.
“오늘로 7일 차인가?”
두 사람 중 왼쪽에 앉은 푸른 로브의 사내가 중얼거렸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탁상시계를 힐끔 살폈다.
“뭐, 그것도 곧 있으면 끝나겠군.”
“예상 통과 시간이 어느 정도였더라?”
곁에 앉은 붉은 로브의 사내가 물었다.
푸른 로브의 사내는 턱을 긁적이더니, 이내 대답했다.
“8일? 9일? 아마도 그 정도였던 것 같은데.”
“확실히…… 순혈들이 다르기는 하네. 이 환영 미로 속에서 탈출하는 데 빠르면 8일, 늦어도 9일이라니.”
“다들 대단하신 핏줄이잖나.”
푸른 로브의 사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붉은 로브의 사내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내가 사전에 미로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나라면 한 달을 줘도 못 빠져 나올 것 같더라고. 특히 마지막 세 번째 미로는…….”
상상이라도 하는 지, 사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완전한 심연 속에서 아귀를 잡으라니. 어휴. 나 같으면 그냥 포기하고 만다.”
“뭐,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하지. 오대 명가의 혈통이라서 그걸 시도라도 해 볼 수 있는 거지, 평범한 수준의 아이들이라면 평생토록 갇혀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아니지, 오히려 이런 걸 겪어서 그치들이 더욱 뛰어난 건 아닐까?”
“글쎄…….”
푸른 로브의 사내가 말끝을 흐리는 순간.
저 멀리, 유적의 통로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내의 고개가 휙 입구로 돌아갔다.
이 유적 최심부로 들어오는 방법은 딱 두 가지 뿐.
하나는 이번 교류전을 위해 아이스본에서 따로 파낸 출구를 통하는 것이다. 물론 이곳은 교류전 참가자가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의미는 없다.
그리고 애초에 발소리가 들린 곳은 그곳이 아닌, 본래 이 최심부로 들어오는 유적의 통로였다.
그리고.
그쪽으로 들어오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뿐이었다.
모든 미로를 돌파하고, 교류전을 끝내는 것.
“……뭐야.”
“벌써……?”
분명 최소 8일, 최대 9일이 걸릴 거라고 했는데…….
두 사내는 통로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마침내.
어두컴컴한 통로 안쪽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첫 번째로 미로를 통과해, 교류전 수석이 된 상대방은 유적 최심부를 힐끔 살피더니, 이내 두 사내가 있는 책상으로 다가왔다.
“그, 어……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붉은 로브의 사내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러자, 책상 앞에 도착한 상대가 입을 열었다.
“드레커 리텐슈노프.”
드레커의 교류전 수석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