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59화 (59/139)

59화

교류전 수석.

그 성과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아무리 교류전이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치르는 친목 도모용 행사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류전에서 우승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우승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교류전이 실질적으로 명가의 후계자가 모여 우열을 가리는 일종의 시험인 만큼, 어마어마한 각축장과 더불어 끔찍하기 짝이 없는 난이도를 자랑한 탓이다.

그렇기에 교류전에서 우승만 한다면, 가문의 막내도 순식간에 주요 후계자 중 한 명으로 주목받을 수 있었다.

수석 우승이 가진 무게는 그 정도였다.

하물며.

내 교류전 우승은 훨씬 더 가진 의미가 컸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가문 외부의 시선으로 볼 때, 아직까지 내 위치는 그저 끈 떨어진 연 신세에 불과했으니까.’

너무나도 뜬금없으니까.

단순히 말해, 이런 거다.

회귀 이후, 리텐슈노프 내부에서 내 입지는 계속해서 높아지기만 했다. 란체스를 두들겨 팬 것부터 시작해서, 역대 최고 점수로 하급반을 조기 졸업한 일, 아홉 살의 나이에 4급 몬스터를 사냥한 일 등등.

계속해서 능력을 키우고 성과를 보여준 덕분에, 이제 리텐슈노프 내부에서 나는 뒷배도 없는 막내가 아니라 가주가 주목하는 후계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하나, 그 이야기는 오직 가문 내부에만 퍼져 있다.

외부로, 그러니까 다른 명가 쪽으로 빠져나간 적 없는 정보라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명가 출신들이 보기에, 내 우승은 그야말로 뜬금없는 일이겠지.’

지금까지 두각을 드러낸 적도, 딱히 이름을 날린 적도 없다.

오히려 끈 떨어진 연 신세라는 소문만 무성했다.

한데, 그랬던 녀석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 우승?

의심받는 게 당연하다.

‘……지금까지와 비교하면 차원이 다른 관심이 내게 집중될 거다. 그것도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관심이.’

아니, 솔직히 의심만 하면 다행이다.

뒷조사에 감시는 물론이고, 최악에는 암살까지도 들어올지 모른다.

물론 어쭙잖은 암살 따위로는 앞으로의 내 계획이 틀어질 리 없지만, 귀찮아진다는 게 문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아이스본의 성장 촉진제는 그런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할 만큼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그걸 얻지 못한다면 꼼짝없이 15살까지 중급반에 갇혀 있어야 한다.

중급반 졸업생들이 보통 4성을 달성한다는 걸 감안하면, 솔직히 나는 이미 졸업 요건을 달성한 셈인데도 규칙 때문에 6년이라는 시간을 더 잡아먹힌다는 거다.

‘그딴 시간 낭비를 할 수는 없어.’

현재, 내 목표는 간단하다.

15살이 되기 전에 전생의 경지, 그러니까 7성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급반 따위에 발목을 잡힐 수 없었다. 6년이라는 아까운 시간을 내 발끝에도 못 미치는 놈들과 부대끼고 있을 수는 없다.

물론, 15살에 7성에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건 정말로 역사책에서나 나올 법한 신화적인 업적이니까.

하지만 난 확신했다.

“할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한 목표라고.

이미 분에 넘칠 정도로 많은 것을 손에 넣었다.

리텐슈노프 직계만이 배울 수 있는 구축법에 용의 심장, 렐릭의 반지와 미스틸테인, 마르스의 완갑과 도플갱어의 브로치까지.

넘치다 못해 남아도는 포션과 영약은 기본이고, 비천한 고아 출신이 겪을 수 없었던 경험은 덤이다.

멜 랭커스터를 스승으로 두었고, 리텐슈노프의 수호룡 데우스 또한 나와 함께한다.

이만큼의 보물들을 손에 쥐고도, 고작 그 정도의 성과조차 내지 못한다?

손에 쥔 도플갱어의 브로치를 꾹 움켜쥐며, 난 중얼거렸다.

“만약, 혹시라도 실패한다면…….”

솔직히 가주고 뭐고 다 때려치우는 게 맞다.

고작 그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면, 난 자격이 없다.

그리고.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나는 굳은 얼굴로 눈을 빛냈다.

그렇게.

순식간에 삼 일이 지나고, 마침내 교류전이 끝났다.

이제, 정당한 보상을 챙길 시간이다.

* * * * *

아이스본 직할령, 부유섬.

천공 도서관의 중앙 서고 최심부, 도서관장실.

사시사철 책내음으로 가득 찬 관장실 테이블 앞에는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특이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여러 가닥으로 두껍게 땋아 늘어뜨렸고, 멋지게 다듬은 풍성한 수염은 노년의 남성미를 물씬 풍겼다.

머리부터 수염까지 죄다 새하얗다보니, 노인의 흑단 같이 검은 피부는 역으로 대비되어 몹시 돋보였다.

언뜻 보면 인자한 시골 할아버지 같은 인상이었지만, 냉혹하고 계산적인 대마법사의 성정은 온화한 눈빛으로도 차마 전부 감출 수 없었다.

노인의 이름은 라이너스 아이스본.

그는 현 아이스본의 가주였고, 핌불베트르 셉터Scepter의 정당한 주인이며, ‘지고의 아크메이지’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으로 불리우는 자였다.

“으음…….”

그런 위대한 마법사가 신음했다.

주름이 가득한 미간은 힘주어 찌푸린 탓에 더 쭈글쭈글했고, 보랏빛 눈동자에는 고민이 가득 맺혀 있다.

-톡, 토톡!

라이너스의 손가락 끝이 규칙적으로 테이블을 두들겼다. 지니고 있는 의미라고는 하등 없는 단순한 습관일 뿐인데도, 라이너스는 손짓을 멈추지 않았다.

“드레커 리텐슈노프, 라…….”

라이너스는 방금 전에 보고되었던 이번 교류전 수석 우승자의 이름을 곱씹었다.

드레커 리텐슈노프.

분명, 과거에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발레르, 고 녀석의 아들이라고 했었나.’

이제는 먼지가 가득 쌓여버린 기억 속 이름을 라이너스는 다시금 떠올렸다.

발레르 리텐슈노프.

그는 그야말로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사내였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제 형제들에게 뒤쳐진 적 없는 발레르는 누구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는 자질의 소유자였다.

오대 명가의 동년배 후계자 중에서도 언제나 선두를 달렸고, 단 한 번도 실패를 겪어본 적 없었다.

그야말로 재능의 총집합체.

범재와 수재의 악몽.

하늘이 내린 자.

‘물론…….’

지금에 와서는 그 모든 것은 빛바랜 명성이 되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슬픔 때문에, 손에 쥐고 있던 모든 것을 내던진 채 세상과 연을 끊어버렸으니.’

대외적으로는 그저 이유 모를 가출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라이너스는 그 사건에 얽힌 속사정과 비밀을 전부 알고 있었다.

그가 직접 무거운 몸을 움직여 처리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당시, 라이너스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여겼다.

‘고 녀석의 재능은, 균형을 뒤틀 수도 있었으니까.’

발레르의 재능은 그만큼 위험했다.

무려 수백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유지되어 온 명가 간의 균형이, 고작 한 사람 때문에 깨질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한데, 그 녀석의 아들이 재능을 뽐냈다, 라…….’

기록 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아이스본의 마법사들 수십 명이 머리를 맞대고 예상했던 공략 시간보다 고작 하루 더 빨랐을 뿐이다.

고작 하루.

겨우 24시간.

하지만 그것이 ‘고작’일까?

그 위험한 재능의 편린이, 혹시라도 한 세대를 거쳐 다시금 두각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순간적으로 라이너스의 보랏빛 눈이 새카맣게 물들었다.

동시에 라이너스의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높낮이 없는 섬뜩한 목소리로 중얼중얼 속삭인다.

[위험하다? 위험한가? 위험할지도?]

그 순간, 라이너스의 등 뒤에 떠다니던 새하얀 셉터가 잘게 진동했다.

눈 깜짝할 사이 혹한의 냉기가 몰아쳤다. 순식간에 널찍한 도서관장실 전체가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치우자. 배제하자. 삭제하자. 처리하자.]

속삭임이 이어진다.

라이너스의 눈빛이 더욱 더 어두워진다.

마치 심연과 같이 시커멓게 물든 눈동자가 공허한 시선을 흩뿌린다.

하지만.

“흐음.”

곧, 라이너스의 눈이 다시금 본래의 빛깔을 되찾았다.

동시에 흔들리던 셉터가 정지하며 혹한도 멈추었다.

-톡, 토톡

라이너스는 여전히 테이블을 두들겼다.

곧, 그가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며 중얼거렸다.

“아직까지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정도려나.”

경계할 필요가 있다.

라이너스는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물론 ‘아직까지는’ 이다.

실제로 조사가 끝나면 결론이 바뀔 수도 있다.

그저 단순한 경계에서.

‘목소리들’이 속삭이는 방식으로.

“하지만, 지금은 살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겠군.”

물론, 그저 단순히 감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라이너스 아이스본이 자신의 눈으로 누군가를 직접 ‘살펴본다’는 것은.

고작 그 정도의 무게만을 지닌 것이 아니기에.

* * * * *

“말도 안 되는 일이로다! 이번 행사가 공정하게 진행이 되었더라면 이것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란 말이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찢어지는 고함 소리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목소리만 들어보면 억울하기 그지 없는 외침이었으나, 특유의 말투부터 시작해서 토로하는 내용까지 웃기지도 않는 개소리였기에 그냥 어이가 없었다.

“이것은 필히 어떠한 음모로 인해 벌어진 일이 틀림없도다! 저딴 버러지가 수석이라니! 불가능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말이도다! 어찌 아이스본은 진상을 조사하지 아니하는 것인가! 이 비열한 종자들! 그러고도 그대들이 오대 명가라고 할 수 있는가아아악!”

돼지 멱 따는 것 같은 마르스의 울음소리는 곧 달려온 호엔슈타펠 사람들의 만류로 인해 점차 작아졌다.

나는 헛웃음을 삼키며 힐끔 주변을 살폈다.

나를 향하는, 수없이 많은 시선들.

예상했던 대로, 나는 미친 듯이 괴성을 지르며 연회장에서 난장을 피운 마르스만큼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솔직히 저 병신보다 더 주목받는 거 같은데.’

그 사실에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아무리 그래도, 저 난리를 피우고 있는데 내가 저놈보다 어그로가 더 끌린다니.

세상에 맙소사,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에휴.”

한숨을 쉬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저 멀리 아멜리아 아이스본의 얼굴이 보였다.

유적 안에서 겪은 고생은 언제 다 털어버린 걸까,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더욱 생기 넘치는 모습.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아멜리아가 활짝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난 떨떠름한 눈으로 입맛을 다셨다.

“……거참.”

서로 얼굴 본 지 고작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계속해서 가까워지려는 그녀의 행동이 몹시 부담스럽다.

그래도 서로 친분을 가지고 있으면 나쁠 건 없겠지.

‘아이스본의 최연소 차기 가주님이 되실 몸이니까.’

오히려 친하게 지내면 도움받을 게 많았다.

마법적인 부분에서는 아이스본 만한 곳이 없으니까.

하여튼.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번 교류전에서 나는 많은 수확을 거두었다.

미래 아이스본의 가주와 교분을 나누었고, 드레커 리텐슈노프라는 신성의 이름을 오대 명가에 똑똑히 알렸으며, 덤으로 도플갱어의 브로치도 획득했다.

그뿐인가?

본래 목표로 삼은 것도 달성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연회장 단상을 바라보았다.

단상 위에는 현 아이스본의 가주, 아크메이지 라이너스 아이스본이 서 있었다. 인자하게 생긴 털복숭이 노인은 짧게 헛기침을 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교류전 수석 우승자. 드레커 리텐슈노프.”

라이너스 아이스본의 호명에 나는 천천히 단상 위로 올라섰다. 라이너스는 다가온 내게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인 뒤, 천천히 느긋한 목소리로 축사를 시작했다.

“귀하는 금년 68회 오대 명가 교류전에서…….”

“…….”

“빼어난 재능으로……. 1위를 달성하여…….”

“…….”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라이너스의 지루한 이야기가 드디어 끝을 맺었다.

그는 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웃음을 지었다.

“드레커 군. 수석 축하하네. 전통에 따라 그대는 이번 교류전을 주최한 가문에게 한 가지 상품을 요구할 수 있다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 하긴, 모를 리가 없지! 다들 아닌 척 하면서도 상품을 노리고 있으니까 말이야.”

라이너스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입꼬리를 따라 풍성한 흰 수염이 흔들거린다.

곧, 웃음을 멈춘 라이너스가 느긋하게 물었다.

“그래, 무엇을 원하는가? 마도구? 포션? 영약?”

“성장 촉진제, 그 시제품을 원합니다.”

내 대답에, 순간적으로 라이너스 아이스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의 눈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

동시에, 나는 일순간 그의 눈동자가 심연처럼 어둡게 빛나는 걸 볼 수 있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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