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66화 (66/139)

66화

제이스가 찾아낸 여관은 꽤 괜찮았다.

그가 안내한 ‘맥주홀’ 여관은 5층짜리 석조 건물이었는데, 외관의 디자인부터 퍽 고풍스러웠다. 한눈에 봐도 용병 따위가 드나들 법한 곳처럼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겉모습과는 다르게 여관의 손님 대부분은 용병이었다. 이런 여관에 어울리는 기사나 상인으로 보이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아마 처음 만들 무렵에는 고급 여관을 컨셉으로 지어진 곳 같은데…….’

아무래도 몬스터 사냥으로 주머니에 돈이 두둑해진 용병들이 나름대로 사치를 부리겠다고 여관에 드나드는 바람에 다른 고객들에게 외면받은 모양이다.

여관 최상층에는 운 좋게도 고급 객실이 있었다.

여행이나 휴가를 온 귀족을 대상으로 만들어 둔 곳인지 생각보다 넓고 객실 퀄리티도 괜찮았다.

사실 이런 고급 객실은 언제나 예약으로 꽉 차 있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어제까지 객실에 묵던 귀족이 개인 사정으로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퇴실한 덕분에 우리는 그 방을 빌릴 수 있었다.

물론, 당연하지만 고급 객실 값은 꽤 비쌌다.

귀족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객실답게, 여관 주인은 객실 값으로 어마어마한 가격을 불렀다. 일반 객실 열 개를 빌릴 돈의 세 배가 넘는 값이었다.

“하하, 대략 이 정도 값인데……. 그,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관 주인인 털보 사내가 손바닥을 비비며 웃었다.

나는 객실을 둘러보았다.

거실을 제외하고도 방이 무려 4개. 거기에 더불어 객실 내부에 씻을 수 있는 목욕탕까지 존재했다.

‘이 정도면 10명 모두 충분히 쉴 수 있겠어.’

물론 침대가 좀 부족하긴 하지만, 그거야 돈 좀 쥐여주면 해결 가능한 일 아닌가?

“좋아. 이 방을 7일간 빌리도록 하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관 주인이 활짝 웃으며 가볍게 손뼉을 마주쳤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저희 여관의 퀄리티는 아주 평가가 높습죠. 저얼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요.”

“우리 열명분의 식사도 같이 포함해서 계산하지. 식사는 언제 나오는가?”

“아침은 일단 기본적으로 제공해드리고요. 점심, 저녁은 원래는 어느 정도 돈을 받지만…… 그냥 드리도록 하겠습니다요.”

점심이나 저녁을 여관 안에서 해결할 일이 그다지 많을 것 같진 않지만, 제공해준다면 나쁠 건 없다.

나는 대금을 결제했다. 이번 훈련의 공금으로 주어진 돈이 아니라, 내 사비로.

돈을 받자마자 여관 주인이 손짓하며 외쳤다.

“폴!”

“네, 사장님!”

곧 멀리서 젊은 직원 한 명이 달려왔다. 여관 주인은 그 직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내게 말했다.

“혹시 더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여기, 이 친구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요. 제 사업장에서 오랜 시간 일하던 친구인데, 아주 똘똘한 녀석입니다. 간단한 서비스에서부터 좀……. 하하! 하여튼 원하시는 게 있다면 이 녀석에게 요구하시면 됩니다. 어지간한 것은 다 처리해 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여관 주인. 아무래도 우리가 방탕하게 즐기러 온 귀족 가문의 망나니 무리라고 오해하는 모양이다.

‘뭐, 알아서 생각하라지.’

굳이 그 착각을 교정해 줄 필요는 없어 보였다.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관 주인은 굽실거리며 떠나갔다.

나는 폴에게 부족한 침대를 인원수만큼 더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알겠습니다. 얼른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고객님!”

마침내 직원까지 사라지자, 지금까지 안절부절못하던 안톤이 내게 황급히 다가왔다.

“도련님.”

“왜?”

“송구하지만 그, 너무 과한 것 아닙니까?”

“과하다고?”

무슨 소리지? 나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눈으로 안톤을 쳐다보았다.

“예, 굳이 저희가 이번 훈련에서 이런 고급 객실을 써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싸구려 여관에서 묵어도 충분합니다. 하물며 공금도 아니고 도련님의 사비로 방 값을 지불하시다니…….”

그렇게 중얼거리며 녀석은 불안한 눈으로 객실의 인테리어를 둘러보았다.

무언가 자리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모습.

아무래도 이 정도의 사치를 하는 게 처음이라서 그런지, 되려 겁에 질린 모양이다.

그 수수한 모습에 절로 웃음이 터졌다.

“누구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는 거야?”

돈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썩어 넘쳐난다.

난 작긴 하지만 영지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쭙잖은 망나니 귀족들보다 넘치듯 뿌리고 다닐 수 있었다. 걔들은 부모가 돈이 많은 거지, 지가 돈이 많은 게 아니니까.

하물며 나는 리텐슈노프의 직계 혈통.

이 정도 사치는 당연한 거다.

“안톤. 네가 지금 모시는 사람이 누군지, 신분이 어떤지를 좀 고려해주었으면 하는데.”

내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자 안톤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하하, 그건 그렇지요.”

“그리고 이건 필요해서 구한 거야.”

“이 방이 필요하시다는 말씀이십니까?”

안톤의 곁에 서 있던 제이스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곧바로 거실로 향했다.

내 곁에 서 있던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수련생들은 모두 고급 객실을 구경하기 바빴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거실에 놓여있는 회의용 테이블에 걸터앉았다.

“모두 모여봐.”

가볍게 손뼉을 치며 외치자, 수련생들이 내가 앉은 테이블으로 모여들었다. 모든 수련생이 자리에 앉은 걸 확인한 뒤, 나는 입을 열었다.

“자, 일단 설명을 시작하지.”

“네.”

“이번 훈련을 통해 우리가 배우려는 것이 뭐지?”

그렇게 물으며 나는 수련생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들은 내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건지, 눈을 깜빡이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잠시 후, 눈치에 밀려 얼떨결에 손을 든 가롯이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그, 오우거 사냥법…… 아닙니까?”

“아니, 틀렸어.”

“네?”

내 대답에 가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테이블을 톡톡 두들기며 설명을 시작했다.

“오우거를 잡는다. 그게 훈련 목표는 맞지.”

“예.”

“근데 그건 ‘훈련의 목표’잖아.”

“……네?”

“훈련이라는 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야. 그런데 지금 이 훈련 과정이 고작 오우거를 사냥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나?”

그 말에 몇몇 수련생들이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들 대부분은 제이스와 함께 란체스 파벌에서 넘어왔던, 나이가 좀 찬 수련생들이었다.

“막말로 잘 생각해보라고. 고작 오우거 사냥법을 배우는 게 목적이라면 왜 굳이 외부 도시까지 나와야 하지? 그것도 며칠 동안 마차까지 타면서?”

“아…….”

“사냥 훈련을 하기 위해서라면, 솔직히 그냥 아성체 오우거를 잡아다가 우리 앞에 던져주면 충분해. 실제로 이번 훈련에서 쓰는 오우거도 그렇게 풀어놓은 놈들 일 테고. 자, 그렇다면, 왜 이런 귀찮은 과정을 거칠까?”

“…….”

“잘 들어. 이번 훈련의 목표는 ‘예습’이다.”

예습. 그 단어가 모두의 뇌리에 박혔다.

“다들 상급반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대충 알지?”

그 물음에 모든 수련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급반에서부터는 수련생들에게 임무를 주고, 그 성과를 평가하지. 지금처럼 어디 모아놓고 훈련을 시키는 게 아니라, 진짜 실습을 하게 돼.”

그런데.

“우리가 실전을 겪어본 적이 있나? 뭐, 전투라면 실전 같은 훈련을 했지. 근데 싸울 줄만 알면 끝인가?”

그렇지 않다.

전투는 종착점일 뿐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거기까지 나아가는 데 거쳐야 할 수많은 과정이 존재한다.

“당장 이번 훈련으로 예시를 들자면, 우리는 오우거를 잡아야 하지. 근데, 그게 어딨는지 아나?”

“……모르죠?”

“그럼 오우거를 찾아야겠지. 아마 숲에 풀어놓을 텐데, 그럼 숲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법도 배워야겠지? 숲에서 몬스터를 추적하는 법도 알아내야 하고, 사냥에 필요한 도구도 구해야 하고…….”

“아! 그래서…….”

안톤이 탄성을 내뱉었다. 다른 수련생들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들, 이제야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한 모양이었다.

“이번 훈련의 목표는, 미래에 상급반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방법을 익히는 거다.”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모든 부가 과정.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 처리해야 하는지를 익히는 것이 이번 훈련을 통해 수련생들이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정보 수집.

모든 건 거기서부터지.

* * * * *

간단히 설명을 끝마친 뒤, 나는 수련생들을 모두 이끌고 여관 1층으로 내려갔다.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여관 1층에는 ‘맥주홀’이라는 이름답게 술집을 겸하는 식당이 있었다.

점심 무렵이었음에도 식당은 왁자지껄했다.

술에 취한 채 테이블에 걸터앉은 용병들이 득실거리는 게, 나름 식당으로서도 유명한 모양이었다.

“저어기 도시 외곽에 썩 물이 좋은 샬롱이 하나 있거든. 거기 마담을 내가…….”

“으흐흐, 여기 맥주 한 잔 더!”

식당은 시끌벅적했다.

술에 취한 용병들이 사방에서 고함을 지르고 소리 높여 웃는다. 지껄이는 말에는 허풍이 가득하고, 건전한 대화라고는 들리지 않는다.

“진짜 여기서…… 정보를 수집하신다는 겁니까?”

식당의 상황을 확인한 안톤이 당황스레 중얼거렸다.

‘솔직히 이 꼴을 보면 수집이고 뭐고 불가능할 것 같긴 하지.’

하지만.

“술집은 언제나 좋은 정보 수집처야.”

이전 삶에서 나는 가문에서 내려준 수많은 임무를 수행하느냐고 제국 전역을 싸돌아다녔었다.

그리고 내 지론에 따르면, 겉모습은 저래도 용병이라는 놈들은 꽤 쓸만한 정보나 소식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정보를 수집하는 건 내가 아냐.”

“……네?”

“가르쳐준다고 했잖아. 판은 깔아 줄 테니까, 필요한 건 너희들이 알아서 캐내야 해.”

그제야 안톤이 내 말뜻을 이해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난 일행을 뒤로한 채 식당을 가로질러 곧장 한 무리의 용병들에게 다가섰다.

“자, 내가 이겼군! 그러니 이 돈은 다 내 거야!”

“사기 치지 마, 이 닭대가리야!”

“자, 그럼 다음 기회에…… 응?”

그들은 테이블에 난잡하게 카드를 펼쳐둔 채, 도박에 열중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내가 다가오자 용병 몇 명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뭐냐? 웬 애새끼가 여기에 있어?”

“길이라도 잃었나? 엄마 젖을 찾아 나선 거라면 진짜로 길을 잘못 들었는데.”

킬킬거리며 나를 비웃는 놈들.

나는 반응하지 않은 채, 품속에서 황금 뱃지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로 던졌다.

“뭐야 이건 또…… 헉!”

“이, 이건!”

그러자 용병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던진 것은 리텐슈노프 가의 문양이 새겨진 뱃지였다. 뱃지를 알아볼 정도의 식견이 있는 몇몇 용병들이 다급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물건 볼 줄은 아는군.”

아무리 높게 잡아도 2성도 안 될 용병이, 내가 꺼내든 뱃지가 순혈 리텐슈노프를 증명하는 징표라는 걸 용케도 알아보다니.

다른 리텐슈노프랑 엮였다가 데인 적이라도 있나?

“어, 어어…….”

“꺼져.”

나는 손에 카드 뭉치를 쥔 채 의자에 엉거주춤하게 궁둥이를 붙이고 있던 용병 한 놈을 밀치고 의자를 뺏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테이블 앞에 걸터앉았다.

용병들은 여전히 굳어 있는 상태였다.

나는 가볍게 테이블을 두들겼다.

“계속 그렇게 서 있을 건가?”

“……그.”

“앉아.”

그제야 우두머리로 보이는 용병 한 명이 내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녀석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혹시 어, 어느 분이신지…….”

“입 열지 마. 묻는 말에만 대답해.”

“네, 넵!”

말이라도 붙여 보려던 녀석은 내 일갈에 황급히 입을 닫았다.

“이제부터 몇 가지 질문을 할 거다. 성실하게 답하면 상으로 이걸 주지.”

나는 공금 주머니에서 금화 몇 개를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주머니 안에 가득한 금화를 본 녀석의 눈에 순간적으로 탐욕이 머물렀다.

“이야, 눈빛 한번 살벌하네. 내가 리텐슈노프가 아니었다면 당장 칼 들이밀고 빼앗겼겠어.”

“죄, 죄송합니다!”

그제야 녀석이 황급히 고개를 테이블에 처박았다. 머리와 테이블이 부딪치며 쾅 소리가 날 정도였다.

나는 녀석의 정수리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생각 잘해라. 눈이 아니라 머리가 뽑힐 수도 있어.”

“아, 알겠, 알겠습니다.”

“자, 그럼…….”

나는 고개를 돌려 등 뒤로 시선을 던졌다.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안톤 일행.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먼저 질문할 사람?”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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