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00화 (100/139)

100화

“허, 허허.”

순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뭔 소리야.’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머리가 아팠다.

투자 제안이라니? 그게 지금 자기를 노예로 구매하고, 또 목숨을 구해준 자에게 할 말인가?

나는 오른손으로 미간을 주물렀다. 그 행동이 부정적인 제스처라고 생각했는지, 델리우스가 바닥에 쿵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박았다.

“정말입니다. 사기나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로 수익이 나올 수 있는 사업입니다!”

“아니, 수익이고 나발이고 그쪽은 일단 내 노예라고.”

“하지만 며칠 전까지는 자유민이었지요.”

델리우스 게인이 당당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태생부터 노예였던 자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투.

자신감이 가득 넘치다 못해 뿜어져 나오는 그 시선이 부담스럽다.

그 순간, 문을 열고 아멜리아가 실내로 들어왔다. 그녀는 내부를 힐끔 살피더니, 이내 총총 내 곁으로 다가와 내가 앉아 있던 의자에 툭 엉덩이를 붙였다.

그 자연스러운 모습에 정신이 어지러웠다.

난 이마를 붙잡으며 델리우스에게 물었다.

“그리고 내가 뭘 믿고 너한테 금화를 투자해? 그것도 1만 5천개나 되는 금화를?”

“그야 제가 천재니까요.”

“어머, 진짜?”

“네. 그것도 세기에 없을 천재입니다.”

“…….”

스스로 천재라고 주장하면서도 자신의 말에 한 점 부끄럼 없다는 듯한 태도. 거기에 재미있다는 듯 말을 거는 아멜리아에게도 자연스레 대답하는 뻔뻔함까지.

‘이 녀석, 진짜다.’

절로 입이 헤 벌려졌다.

‘이거 완전히 데우스 과인데.’

[뭬야? 꼬맹아, 너 지금 뭐라 했느냐? 내가 왜 저 머저리랑 같은 과라는 게냐!]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저 녀석을 한 대 때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살기가 흘러나왔는지, 델리우스 게인이 흠칫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

잠시 후, 마음이 진정되자마자 나는 입을 열었다.

“첫 번째 제안을 하지.”

“제안입니까?”

델리우스가 눈을 찌푸렸다.

제안의 탈을 쓴 강요가 아니냐는 시선.

나는 그 괘씸한 시선을 무시한 채, 제안을 건냈다.

“지금부터 내 가신이 되어라.”

“가…… 신?”

내 제안에 델리우스는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훑었다. 그리고는 곧 그의 눈이 조금 커졌다. 아직 젖살이 다 빠지지 않은 내 얼굴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델리우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대체 나이가……?”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열두 살이다. 몸은 이렇지만 말이지.”

내 대답에 델리우스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야, 아무리 생각해도 성인 정도의 몸뚱이니까.’

정확히는 15~16살 정도의 육체. 하나, 그 정도면 대충 성인과 육체적으로는 엇비슷한 상태가 된다.

“거, 참. 귀족가는 다르긴 다르네요.”

“뭐라는 거야, 너도 나랑 비슷한 나잇대 아닌가?”

“저는 그래도 최소한 제 나이에 맞는 키를 지니고 있잖습니까?”

그 말대로, 델리우스는 아직 앳된 티가 퍽 나는 상태였다. 잘 쳐봐야 열셋 정도일까? 언뜻 보면 성인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 나와는 확실히 어려 보였다.

“그래서, 제안은 받을 건가?”

“가신…….”

델리우스 게인은 입을 다문 채 고민에 빠졌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이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죄송합니다. 제 처지가 어떤지도 알고, 강제로 시키신다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저는 자유를 버린다는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럼 두 번째 제안을 해야겠군.”

나는 허리춤에서 미스틸테인을 뽑아들었다.

“어, 어어? 어? 자, 잠시만.”

“두 번째 제안. 내 손에 죽는다.”

“아, 아니. 잠시만요잠시만요잠시만. 미, 미치셨습니까? 왜 금화를 3000개나 주고 산 노예를 죽여요?”

“그야, 너는 위험하니까.”

죽이는 수밖에 없다.

델리우스 게인을 복종시키지 못했을 때 내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오로지 그거 하나뿐이었다.

물론 그는 지금 내 노예다. 내가 명령하면 당분간은 내 뜻을 따르기는 할 거다.

하나 언제나 반감을 가지고 있을 거고, 기회만 생기면 도망치려 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델리우스 게인이 내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건, 오히려 남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만일 아덴이 이 녀석을 다시 손에 얻는다면…….’

그때는 지금 죽이지 않은 걸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게 될 터였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부산스럽게 도망치려는 델리우스의 목에 검끝을 겨누었다.

그 첨단의 날카로움에 델리우스가 침을 찔끔 삼키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자, 골라. 어서.”

“이게…… 제안입니까? 협박이지?”

죽기 직전이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델리우스가 말했다. 나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렸다.

“협박도 제안이야. 거절할 수 없는 제안 몰라? 얼른 선택해. 가신이냐, 아니면 무덤이냐.”

“허, 참. 그래도 무덤에는 묻어준다니 다행이네요.”

흡사 여유가 넘치는 것처럼 말하지만, 델리우스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곧, 그가 한숨을 푹 쉬더니, 이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굳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도 거절합니다. 저는 고작 푸른 피의 가신이나 될 재능을 가진 게 아니니까요.”

“고작 푸른 피?”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말에 델리우스가 허탈한 듯 웃었다.

“설마 상인입니까? 그렇다기에는 너무 강하시던데. 역시 세상은 넓고 재능 있는 자는 넘치는군요.”

아, 설마 그건가?

나는 입가에 웃음기를 머금은 채, 넌지시 물었다.

“고작 푸른 피의 가신 따위가 될 생각이 없다면, 대체 어느 정도가 되어야 신하 노릇을 하겠다는 거야? 뭐, 황제 즈음은 되어야 하나?”

“황실이 오대명가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이 제국에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최소치는…… 최소한 오대 명가 즈음은 되어야겠군요.”

그 말에 나는 아멜리아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리더니, 이내 델리우스에게 말했다.

“그럼 잘 찾아왔네.”

“네? 무슨 뜻…….”

“이 친구 이름이 ‘드레커 리텐슈노프’거든.”

“……!!”

그 말에 델리우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내 얼굴을 황급히 살피더니, 이내 결심한 듯 바닥에 머리를 쿵 박았다.

이번에는 핏물이 툭 튀길 정도였다.

‘어지간히 아파 보이는데.’

그는 내가 혹시라도 변심할까 두려운 건지, 재빨리 목청껏 고함을 내질렀다.

“이 못난 자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견마지로을 다하겠습니다. 주군이시어!”

“…….”

나는 녀석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허허.”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이 녀석, 생각보다 진짜로 웃긴 놈이었다,

* * * * *

다친 이마를 치료한 뒤, 델리우스는 응접실 소파에서 내 제안을 들었다.

“자유민 신분으로 복구는 당연하고, 네 신분은 앞으로 내 직속이야. 그리고 앞으로 살 곳은 내 저택이 될 거다.”

“저택이요? 주군께서는 지금 열두 살이잖습니까. 유아동이 아니고요?”

“푸훗!”

그 순간, 아멜리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델리우스가 붕대를 머리에 칭칭 감은 꼴이 웃긴 탓에, 내 곁에 앉아 있던 아멜리아는 줄곧 입가에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하나, 이번에 웃은 건 그거 때문이 아닌 게 분명했다.

“유아동이 웃겨?”

“아니, 그 꼴을 하고 거기 있다는 게 웃기지.”

나는 그녀를 잠시 노려봐 주고는, 다시 설명했다.

“내가 말한 저택은 영지에 있는 저택이다. 아마 바르헴 영지 쪽이 될 거야.”

“아, 영지도 지니고 계십니까?”

내 말에 델리우스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나는 안색이 밝아진 델리우스를 노려보며 경고했다.

“거기 돈 빼돌려서 사업이니 나발이니 굴려대면 진짜 죽는다.”

“……서, 설마요. 근데, 따서 채워 넣으면 되지 않겠…… 습니까?”

“목 잘리고 싶으면 해보든가.”

“하, 하하.”

어색하게 웃던 델리우스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모습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재무 관리 하는 놈들 정신 교육을 똑바로 해야겠군.’

이 새끼, 잠시 내가 한 눈 팔면 사업 한답시고 영지 돈을 끌어다가 날려버릴 놈이다. 재무와 회계 쪽 애들을 똑바로 관리 안 하면 언제 장부에 구멍이 숭숭 뚫릴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업에 미친 놈.’

이번 생에는 아직 실패를 제대로 안 겪어서 그런가? 델리우스는 계속 사업이라는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

‘전생에는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뭐, 전생에는 열일곱 번이나 실패를 해 봤으니 깨져 있던 두개골이 봉합된 게 아닐까. 이번 생에는 아직 대가리가 깨진 상태로 유지되는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래도 그 정도로 끝나는 게 어디냐.’

델리우스 게인 같은 희대의 천재 책사를 내 수하로 부리는 대가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만큼 이 녀석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하늘이 내린 천재. 녀석의 표현대로, 세기에 한 명 나올 법한 재능의 소유자.

그게 바로 델리우스 게인이었다.

“하, 하하.”

지금 저기서 얼빵하게 웃는 저 알비노 꼬맹이가 말이다.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고는, 이내 델리우스를 불렀다.

“일단 임무를 하나 주마.”

“임무입니까?”

“내가 지금 가문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수련동 상급반, 알지?”

그 말에 델리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등급은 어느 정도입니까?”

“중급.”

그 말에 잠시 눈을 깜빡이던 델리우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동료 분은 저 아가씨입니까?”

“어머, 레이디라고 불러줄래?”

“네?”

아멜리아의 화법에 말린 델리우스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 혼자다. 이번 중급 임무는 일인 임무야.”

“……대체 주군은 지금 실력이 어느 정도입니까? 어느 정도이길래 중급 임무를 혼자서…….”

“그걸 혼자 할 수 있으면 너한테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겠지. 하여튼 중급 임무 탓에 내가 지금 좀 곤란해졌어. 그래서 고기방패를 좀 끌어와야 하는데…….”

그렇게 말하며 나는 델리우스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무언가 깨달은 듯, 델리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씨익, 음흉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었다.

“제게 주어질 임무는 주군과 시비가 붙은 그 돼지의 가문을 뜯어오면 되는 것이군요?”

“그렇지. 얻어맞았으면 보상을 받아야지.”

“그럼요.”

나와 델리우스는 서로 사악하게 웃음 지었다.

그 모습에 아멜리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한참 동안 짓던 웃음을 그치고는 진지한 눈으로 델리우스에게 말했다.

“필수는 기사들. 2성에서 3성 기사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 와. 정 없으면 1성도. 그게 최우선 목표다.”

“그 외에는 제 재량입니까?”

델리우스가 음흉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얻어맞은 건 너도 마찬가지니까. 깽값은 받아야지.”

뭐, 그 깽값은 내 명의로 들어오겠지만.

그렇다고 델리우스가 얻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다. 복수는 최고의 보상이라는 말도 있잖는가? 델리우스라면 집안 밑천을 탈탈 털어서 올 테니, 그거야말로 최고의 복수요, 그도 만족하리라.

“알겠습니다! 최대한 이익을 봐 오겠습니다.”

델리우스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제 되었다.’

이것으로 나는 사상 최강의 책사를 손에 넣었다.

아니.

아덴의 손에서 빼앗았다.

‘이거면 충분하지.’

그렇기에 나는 이것으로 모든 이득을 다 보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더 볼 이득이 어딨단 말인가? 끽해봤자 백작에게 보상금 조로 푼돈이나 더 받으리라.

그렇게 생각했었다.

찾아온 백작과 협상하라고 보낸 델리우스가 아시스 백작령을 절반 이상 뜯어오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