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쾅!
엄창난 충격이 몸을 덮친다.
마치 제대로 된 정권에 전신을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대로 뒤로 날아가며 바닥을 굴렀다.
“커헉!”
땅바닥에 엎어진 채, 나는 피를 토해냈다.
귓전으로 데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목숨까지는 잃을 일은 없으니,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 덤비거라. 그래야 얻어가는 게 있을 게다.]
“젠장, 대체 뭘 불러온 겁니까…….”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키며 시야를 전방으로 돌렸다. 여전히 아가레스는 제자리에 서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아가레스의 진지한 시선이 너무나도 무겁게 다가온다.
그런 내게 데우스가 조언했다.
[지금 내가 불러온 아가레스는 아직 다 여물지 못한 시절의 것이다.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게지.]
“아직, 완벽하지 않다고요?”
저게?
방금, 고작 손가락 튕기는 거로 죽을 뻔 했는데?
[지금 무렵이면 8성 수준이도다. 그래도 네 할애비 녀석과 비교하면 그래도 그나마 나은 수준 아니더냐?]
“거 참. 너무 덜 완벽하네요, 그거.”
나는 입안에 고인 피가래를 퉤 뱉어냈다.
그리고는 자세를 바로하며 미스틸테인을 뽑아들었다.
내가 계속해서 싸울 기세를 보이자, 아가레스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다음 순간, 그가 손을 튕겼다.
곧바로 충격파가 날아들었다.
“피했……!”
-쾅!
피했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충격에 얻어맞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나름 대비할 수 있었기에, 곧바로 낙법을 취하며 몸을 가누었다.
하나, 육체에 쌓인 충격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절로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시야가 좁아진다.
전신의 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지금 이 녀석도 이기지 못한다면, 너는 이 기억 속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게 없다. 아니, 최소한 버티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니더냐!]
귓전으로 데우스의 음성이 들려온다.
나는 악을 썼다.
“그게, 말, 처럼 쉽습니까!”
다음 순간.
아가레스가 슬쩍 자세를 낮추었다.
그가 손에 쥔 창을 내게 겨눈다.
그리고.
쇄도한다.
“……!!”
눈 깜짝할 사이에 아가레스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서로의 시선이 맞닿고, 나는 황급히 미스틸테인을 끌어당겼다.
과격한 움직임에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하나, 막아내려면 어쩔 수 없다.
다행히도 내 육체는 반응해 주었다.
가까스로 제 시간에 검을 휘둘렀고.
-카강!
동시에, 창을 막아낸 검신을 타고 묵직한 창의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미스틸테인의 검신을 창이 훑는다.
-콰가가각!
그런데, 놀랍게도 섬뜩한 소리를 내며 검신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부러질 듯 휘어지는 미스틸테인.
“이런, 미친!”
나는 황급히 손끝을 놀려 창날을 뒤틀었다.
하나, 아가레스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마치 뱀의 머리처럼 창날이 휘어진다.
내 가슴팍을 노리고 쑤셔지는 창.
창끝에 맺힌 섬광이 다가오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건 피할 수 없다.
그리고.
-푸욱!
아가레스의 창날이 내 심장을 꿰뚫었다.
불타는 듯한 감각이 심장을 넘어 폐부를 찌른다.
“커허어억!”
눈앞이 아찔해지는 고통.
자연스레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대로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내 가슴팍을 찌른 창대도, 나를 무심히 내려다보는 아가레스도, 주변의 콜로세움도 전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곧바로 저 멀리서 데우스가 허겁지겁 뛰어오는 게 보였다.
내 곁으로 달려온 데우스가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살폈다.
[거, 괜찮더냐?]
나는 바닥에 엎어진 채, 숨을 토해냈다.
“커헉! 으흑! 제, 젠장. 괜찮을 리가 있습니까?”
죽음의 공포는 익숙해지기 힘들다.
이미 한 번 죽어본 몸으로서는 더욱 더.
방금 나는, 한 번 죽었다.
“빌어먹을…….”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고작 이 정도라니.’
한 합도 제대로 겨루지 못했다.
아무리 시대의 영웅을 상대한 것이라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패배하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나는 잠시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이내 충격이 가시자마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곧장 데우스를 지그시 노려보아 주었다.
[어험.]
데우스가 그런 내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이거, 진짜로 이길 수 있습니까?”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할 때였다.
방금 겨루어 본 결과,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그를 이길 수 없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고작 5성. 그에 비해 내 상대가 될 기억 속 아가레스는 현재 8성이라고 했다.
상식적으로도 상대가 안 된다.
하나.
[노력하면 이길 수는 있을 게다.]
데우스는 그러한 내 결론을 부정했다.
“5성이, 8성을 이긴다고요?”
[그래. 그럼 너는 마스터라서 요정왕을 잡았더냐?]
“그건 아니죠. 그때는 멜이 저를 도왔잖습니까.”
소드마스터와 함께 했던 협공이었다.
그런 제한된 상황에서, 운 좋게 이긴 거란 말이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그래. 그런 거다.]
“네?”
하나, 데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제한된 상황. 바로 지금 같은 상황을 말하는 게 아니더냐? 너는 무한히 도전할 수 있고, 상대는 성장하지 않는다. 반대로 너는 계속 성장할 수 있지. 이것보다 제한된 상황이 대체 세상에 어디있더냐?]
“……음.”
확실히.
그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제한된 환경을 논한다면, 이 심상 세계 또한 그 안에 포함되리라.
“그럼 계속 도전해보라는 겁니까?”
[그러는 게 낫지 않겠더냐? 네 말대로, 빠르게 강해질 방법은 지금 이 방식이 최선이 아닐까 싶도다.]
“…….”
맞는 말이다.
계속 죽을 지도 모른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에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습니다. 계속 하시죠.”
[그러자꾸나.]
그렇게.
끝없는 대련이 시작되었다.
* * * * *
와삭!
오르피스 특제 와플을 한 입 베어물며, 멜 랭커스터는 가만히 고민했다.
‘과연, 어떤 게 진실일까.’
멜 랭커스터는 생각에 잠겼다.
‘꼬맹이가, 진짜로 아이스본에 매수당했을까?’
스스로가 판단할 때, 가능성은 충분했다.
‘드레커 리텐슈노프가 요정왕의 정보를 얻은 곳은…… 분명하다. 아이스본이 틀림없어.’
드레커 리텐슈노프가, 아이스본과 모종의 거래 비슷한 것을 했으리라는 사실은 확신하고 있었다.
아이스본의 차기 후계자 중, 유력 후보라고 할 수 있는 소녀가 아멜리아 아이스본이다.
그녀와 이렇게 자주, 그것도 깊게 어울리고 있다는 것은 그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었다.
하나. 과연 어떻게, 인가.
‘꼬맹이, 그놈이 아이스본과 접점이 있었던 건 교류전이 최초. 그 이전에는 내가 파악한 바 딱히 연관될 만한 구석이 없다.’
아니, 그보다는.
‘누가 먼저 접근했는가, 이겠군.’
이것이 중요한 부분이었다.
만일, 드레커가 먼저 아이스본을 끌어들인 것이라면 그나마 참작의 여지가 있다.
하나, 만일 매수당한 것이라면.
아이스본이 먼저 가문에서 소외당하는 처지인 드레커에게 후원을 제안했을 수도 있었다.
리텐슈노프를 팔아넘기라고 말이다.
“…….”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멜 랭커스터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의 시선이 드레커와 아멜리아가 함께 있을 유곽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대체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은밀한 만남인 만큼.
분명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리라.
멜은 더욱 더 정확한 조사를 위해 유곽 안에 침입할까 고민했으나, 아직까지는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내 개인적인 조사니까.’
가문의 후계자를 뒷조사하라는 허가는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의 행동은 사실상의 일탈. 그렇기에 주의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당할 수도 있었다.
“쯧.”
물론 이 모든 게 자신의 신경과민일 수도 있었다.
혹시 누가 아는가?
마그너스의 말마따나, 진짜로 아멜리아 아이스본이 드레커에게 연심을 느끼고 있고, 그렇기에 드레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털어주었을지 말이다.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까.
“……귀찮은 제자 놈이로구만. 진짜.”
멜은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의 와플을 입에 털어 넣고는 다시금 감각을 집중시켰다.
아직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 * * * *
-쾅! 콰광!
엄청난 마나의 압력이 내 주변에서 터져나간다.
빠르게 마나가 집중되는 곳을 회피하며.
나는 콜로세움을 내달렸다.
마흔 번이 넘는 죽음 끝에, 나는 마침내 실마리로나마 아가레스의 체술을 피해내는 법을 터득했다.
아가레스가 손을 튕기는 순간 마나가 집중되는 곳이 있었는데, 그 지역에서 벗어나면 충격파를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하나, 그래봤자 도망치는 게 한계일 뿐.
아직까지 나는 아가레스를 이길 수 없었다.
그가 부리는 체술은 그저 가진 능력 중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올마스터All Master.
그것이 아가레스 암즈의 이명이었다.
무가武家를 세운 종주답게, 아가레스는 이 세상 모든 무기를 자유자제로 다룰 수 있었다.
검, 창, 도끼, 망치 등등.
나는 그가 다루는 수많은 무기를 겪었고.
그리고 그 무기에 죽음을 맞이했다.
‘젠장.’
입술을 짓씹었다.
고작 마흔 번의 죽음만으로 아가레스의 극악무도한 체술의 파훼법을 찾아낸 건 자랑할 만한 일이었다.
하나 내 목표는 그게 아니었다.
‘저 체술을, 내가 익혀야 하는데.’
아가레스의, 암즈의 잊혀진 체술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목표로 삼은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절대로 불가능할 게다. 이번에 파훼법을 찾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이야. 그것만으로도 꽤 큰 실마리가 되지 않았더냐?]
“그야, 그건 그렇지만…… 이크!”
목젖을 노리고 휘둘러진 대검.
즉시 허리를 당겨 회피한다.
동시에 검끝이 빛무리가 되어 흩어진다.
그 신비로운 광경에 눈을 둘 새도 없이, 아가레스의 손끝에 기다란 창이 생겨났다.
창끝이 번쩍이며 쇄도한다.
나는 미스틸테인을 휘둘러 그 창을 튕겨냈다.
하나, 튕겨냄과 동시에 창 또한 빛무리가 되어 사라진다.
다음 순간 거대한 망치가 내 정수리를 노리고 떨어진다.
“쯧!”
재빨리 땅을 박차고 뒤로 피하며 생각했다.
‘진짜, 완전히 사기적인 아티팩트잖아.’
병기창兵器廠
그것은 아가레스의 머리 뒤에 마치 헤일로처럼 뻗쳐나간 빛의 수레바퀴를 말했다. 가진 바 힘은 이름과 같이 무구를 보관하고 만들어내는 능력.
그 덕분에 아가레스는 수많은 무기를 거의 동시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저게 암즈의 제 1 가보 중 하나라고 했던가.’
오로지 가주만이 소유할 수 있고, 가문을 물려받을 직계 후계자조차도 가주가 되기 전까지는 그저 레플리카만을 쓸 수 있다고 들었다.
‘저런 걸 어떻게 이…….’
잡생각이 원인이었을까.
나는 다시금 쇄도한 창끝을 피해내지 못했다.
푹 하고 목이 꿰뚫리고, 다시금 세상이 모래먼지로 화한다. 극한의 고통이 정수리를 타고 흘렀지만, 나는 가까스로 참아냈다.
구역질이 치솟는다.
쓴 물이 올라오는 걸 삼키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젠장할.”
그런 내 곁으로 데우스가 다가와 등을 토닥였다.
[죽음의 공포는 익숙해질 수 있는 게 아니지. 이해한다.]
“그런 게 익숙해질 만한 상황에 몰아넣으신 주제에 하실 말씀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뭐라는 게냐? 이건 네가 원한 것이었도다.]
“그만 두드리세요. 진짜로 토할 것 같으니까.”
날카로운 반응에 데우스가 찔끔 놀라며 팔을 거두었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래도 이번 죽음으로 실마리는 찾은 것 같네요.”
[그러하더냐?]
“네. 앞으로 한, 100번은 더 죽으면 알 것 같네요.”
[거 참…….]
데우스가 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허공에 손을 휙 튕기며 웃을 뿐이었다.
조금, 아주 조금 더 노력하면.
그 힘이, 손에 잡힐 듯했으니까.
“자, 다음 번 대련. 시작하시죠.”
주저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