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41화 (41/241)

41화. S증권 실업팀.

S증권 실업팀 훈련장.

코트에서는 두 명의 선수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발소리와 무거운 임팩트 소리만이 들렸다.

“하앗!”

쿵!!

[게임 권동현.]

접전 끝에 첫 서비스게임을 지켜낸 동현.

그는 처음으로 게임을 따낸 것이 기분이 좋은 건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작년부터 전략을 준비했던 게 헛되지 않았다는 게 실시간으로 증명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탑스핀 스트로크를 제대로 공략했어. 그런데 동현이 실력이 이렇게 좋았나? 상대가 이지혁인데 별로 밀리지 않는 것 같은데?”

“아직 초반이라 탐색전을 하는 거겠죠. 랭킹이 몇 위인데 400위대 선수한테 고전하겠어요?”

“그건 최 코치 말이 맞지만······. 그래도 타구 속도랑 움직임을 보면 크게 봐주는 것 같지 않단 말이야.”

예상 했던 것과 다르게 동현이 경기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자 구경하고 있던 코치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그들은 지혁이 어렵지 않게 동현을 제압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 S증권 실업팀에서 두 명의 선수를 선발해서 데리고 왔지만 진짜 메인은 랭킹이 높은 이대희였다.

동현은 그저 경험을 쌓게 해주려고 데려온 들러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팽팽하게 흘러가는 경기 상황을 보면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승패가 간단하게 결정되지 않을 것 같았다.

쾅!!

[피프틴 러브.]

플랫 서브로 에이스를 얻은 지혁.

눈으로 쫓기 힘든 고속 서브에 동현은 빠르게 라켓을 길게 뻗었지만 야속하게도 공은 이미 뒤로 빠져나간 뒤였다.

‘흠···. 완벽하지는 않구나.’

기술적인 분석을 아무리 많이 해도 이렇게 순수한 힘으로 밀어붙이면 달리 방법이 없나보다.

하긴 리턴 실력은 머리가 아닌 실전으로 늘어나는 게 보통이다.

동현은 이때까지 대부분의 경기를 국내에서 치렀다.

프로가 되고나서 가끔 퓨처스 원정을 나가기도 했지만, 그건 전부 아시아 근방이었다.

지금까지 서브가 주무기인 서양 선수들을 많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그런 동현의 입장에서 어지간한 탑랭커보다 더 강력한 지혁의 서브는 거의 사기에 가깝다.

“휘유···. 역시 이름값을 하는구만.”

“방금 속도 봤어요? 200km는 가볍게 넘기겠던데요?”

“그래. 동현이도 서브가 빠른 편인데 상대가 안 되는 걸.”

“저 정도면 한국에서 박용규를 제외하고 비교할 선수가 없겠어요. 대희야, 너는 누구 서브가 더 나은 것 같냐? 작년에 용규랑 직접 붙어봤잖아?”

대희는 코치의 질문에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대답했다.

눈을 부릅뜬 채로 집중하고 있는 것이 다음 경기에서 지혁을 어떻게 상대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직접 공을 받아봐야 정확하겠지만 제 느낌으로는 비슷한 것 같아요.”

“비슷하다고? 그러면 국내 한정으로는 최고 아닌가? 아직 나이도 어린데 정말 사기적인 재능이구만.”

“호주 오픈에서 얻은 성과를 생각하면 별로 놀랍지도 않은 일이죠. 애초에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선수잖아요.”

“하긴, 평범한 선수였으면 그런 대기록을 달성하지도 못했겠지. 이지혁은 규격 외라고 생각해야겠어.”

쾅!!

[게임 이지혁]

지혁은 강력한 서브를 무기로 전 게임에서 패배한 것을 그대로 복수해줬다.

그러자 주변에서 그러면 그렇지 하는 시선을 보냈다.

세트 초반에 동현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역시 지혁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음 서비스게임부터는 힘을 좀 빼야겠네.’

지혁은 서비스게임을 너무 쉽게 승리하자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방금 전의 서브도 전력을 다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동현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론 시간이 흘러 경기 후반이 되면 그도 재능 있는 선수인 만큼 어느 정도 대응을 할 수 있을 거다.

고속 서브도 계속 받다보면 익숙해지니 말이다.

그래도 지금 추세라면 어렵게 성사 된 친선 경기가 너무 빨리 끝난다.

‘벌써 기가 죽은 건 아니겠지?’

지혁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코트 반대편을 확인했다.

아마 방금 전의 서비스게임으로 동현은 커다란 실력 차이를 느꼈을 것이다.

‘웬만하면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지금 국내에서 이만한 상대를 찾기는 쉽지 않다.

국내 랭킹 2위라고 해봤자 고작 ATP랭킹 200위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 2위를 차지하고 있던 선수는 100위였지만 지금은 랭킹이 확 떨어졌다.

작년 하반기에 한국 테니스 레전드인 이형석이 은퇴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음······. 걱정할 필요 없겠네.’

지혁은 이를 악물고 있는 동현을 발견하고 자신의 걱정이 쓸데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모습을 보면 승부욕이 죽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할 정도로 의욕이 넘치는 것 같았다.

***

지혁은 최대한 균형을 맞추면서 경기를 진행했다.

동현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서브와 스트로크의 위력을 적정수준으로 조절한 것이다.

그렇게 80% 정도의 힘으로 게임을 이어갔지만, 주변에서는 감탄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타구의 위력이 낮아지자 반대급부로 라켓 컨트롤과 풋워크가 갑자기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대체 못하는 게 뭐야? 어떻게 저 나이에 저런 기본기를 가질 수 있는 거지?”

“어렸을 때부터 피나는 노력을 했겠지. 아무리 천재라도 기본기를 쌓는 건 시간이 없으면 불가능하잖아.”

“유년기 때 훈련을 담당한 사람이 누구인지 한 번 만나보고 싶네요. 아카데미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아버지가 전직 테니스 프로라고 언론에 보도 됐었잖아. 이성민 아들이야.”

“아, 그 선배요? 역시 유전자부터 다르네요.”

최 코치는 이성민이라는 이름을 듣고 그제서야 지혁의 기본기가 탄탄한 이유를 납득했다.

지금은 비록 은퇴했지만 과거에 성민은 한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대단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교육했다면 지금 같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물론 그랜드슬램 4강이라는 성과는 아직도 불가사의했지만 말이다.

[세트 이지혁.]

그렇게 지혁의 승리로 끝난 1세트.

지혁은 짧은 휴식 시간이 주어지자 옆 자리에 앉은 동현에게 친근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경기를 하다 보니 기분이 들뜬 것이다.

“몰라 볼 정도로 실력이 늘었네요. 1년 만에 랭킹이 300위나 상승한 게 이해가 돼요.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랜드슬램에서 만날 수도 있겠어요.”

한동안 실력을 칭찬하는 말이 이어졌지만 동현은 그다지 기쁘지 않은 듯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몇 개월 동안 준비한 전략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통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경기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상당한 효과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지혁이 약점을 보완하고 있는 건지 전략의 효용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너하고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넌 작년에도 대단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잖아.”

동현이 생각하기에 지혁은 아직도 모든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았다.

호주 오픈을 보면서 분석했던 것에 의하면 지금보다 샷이 더 위력적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의 기운이 짙어지자 그는 좌절감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상대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작년에 패배하고 난 후에 느낀 감정이랑 동일하다.

그때의 트라우마가 떠오르는 것 같자 갑자기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퍼스트 서브 권동현.]

얼마 후, 다시 시작한 경기.

동현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붙잡고 서브를 준비했다.

탕!!

커다란 임팩트 소리와 함께 게임이 시작되었지만, 그 이후로 동현이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는 일은 없었다.

이미 전략을 모두 간파한 지혁이 경기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기량 차이가 확실했던 만큼 2세트는 댐이 무너지는 것처럼 빠르게 기울었다.

쿵!!

[게임 세트. 매치 이지혁. 6-4, 6-2.]

짝짝짝짝짝.

그렇게 두 사람의 경기는 2-0이라는 일방적인 스코어로 끝나게 되었다.

그 결과에 코치들은 크게 박수를 쳤다.

이미 시작하기 전부터 승패를 예상하고 있었지만 눈을 땔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지혁의 플레이에 진심으로 감탄했던 것이다.

경기는 1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진행되었지만, 그 사이에 자리를 비운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오늘같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몸값이 어마어마한 지혁의 경기를 가까운 거리에서 볼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ATP랭킹 24위라는 높은 순위 때문에 앞으로 한국 대회를 출전하지 못하게 될 테니 그들의 생각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다.

앞으로 부상이나 기량 저하로 인해 지혁이 바닥까지 추락하지 않는 이상 그랜드슬램에서나 공식적인 경기를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좋은 경기였어요. 다음에는 ATP투어에서 만나요.”

“······나한테도 좋은 경험이었어. 그리고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네?”

“금방 그랜드슬램까지 올라갈 거라고. 200위만 더 올리면 되니까 그때까지 잘 버티고 있어.”

동현은 비록 경기에서 패배했지만 작년처럼 아무 말도 없이 코트를 떠나지 않았다.

고작 몇 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멘탈이 조금은 강해진 것이다.

당시에는 싸움이 나는 게 걱정돼서 코치가 개입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프로 경기를 뛰면서 어느 정도 담금질이 된 것 같았다.

하긴 챌린저 대회만 출전해도 동현보다 실력이 좋은 선수가 적어도 10명 이상은 된다.

그런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 고작 한 번의 패배로 무너졌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거다.

“하하하. 얼마든지 기다릴게요. 그런데 제 맞춤 전략은 언제부터 준비한 거예요?”

“작년 7월부터. 나름 열심히 분석했는데 별로 효과가 없었네.”

“아뇨.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잭 나이프는 저도 예상하지 못했는걸요?”

어플로 실력이 급상승해서 그렇지 만약 작년에 붙었더라면 이렇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혼자 준비한 것 치고 전략의 완성도가 상당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한참동안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코트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코치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아무래도 용건이 있는 모양이다.

“이지혁 선수, 다음 경기는 언제 시작하면 좋을까요?”

“너무 오래 쉬면 몸이 퍼질 수도 있으니까 20분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럼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지혁의 대답을 듣자 코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괜히 지치고 피곤한 사람을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배려한 것이다.

그들도 마음 같아서는 궁금했던 점을 질문하거나 친분을 쌓고 싶었다.

하지만 괜히 그런 행동을 했다가 클레임이 들어오면 윗선에서 한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그렇게 지혁은 20분 동안 경기에서 쌓인 피로를 풀었다.

분명 이 정도 휴식으로 체력이 완벽하게 회복되지는 않을 테지만, 상대가 까다롭지 않은 만큼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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