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47화 (47/241)

47화. 인디언 웰스 오픈

경기가 시작하고 30여분.

아직 1세트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대부분의 관중들은 벌써부터 64강의 승자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경기를 하는 두 선수의 실력 차이가 너무 뚜렷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보가 아닌 이상 경기의 승패가 어떻게 될지 모를 수 없었다.

쿵!

코트 위로 흐릿한 대각선 궤적을 만들어낸 지혁의 백핸드 크로스샷.

그 날카로운 각도에 세라는 공을 쫓아가는 걸 깔끔하게 포기했다.

만약 경기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포인트였다면 허슬 플레이라도 했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게임 리. 5-0.]

짝짝짝짝짝.

관중들은 지혁이 서비스게임을 지켜내자 박수를 쳤다.

하지만 세트 초반처럼 좌석에서 일어나거나 환호를 지르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기가 원사이드하게 흘러가다 보니 긴장감이 떨어진 것이다.

‘벌써 포기한 건가?’

지혁은 볼키즈가 건네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옆에 있는 벤치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잠깐 사이에 몇 년은 더 늙은 세라의 얼굴이 보였다.

분위기가 침침한 게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은 모양이다.

볼키즈도 불편한 기색으로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경기 초반보다 움직임이 느려졌어.’

비록 관중들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지혁은 직접 샷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세라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뭔가 몸을 사리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체력을 아끼려고 하는 건가?’

곰곰이 생각하던 지혁은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아무래도 세라는 패배할 경기에 전력을 다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어차피 이번 인디언 웰스 오픈에서 탈락하더라도 참가할 대회는 널렸기 때문이다.

3, 4월에 열리는 ATP250 이상의 대회만 7개가 넘었으니.

그런 상황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낮은 경기를 손절하는 건 분명 현명한 일이다.

‘베테랑다운 선택인 걸.’

관중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분명 괘씸한 행동이다.

비싼 돈을 주고 경기장에 왔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다니.

하지만 이런 꼼수를 부리지 않으면 일 년에 20개가 넘는 대회를 모두 소화할 수 없다.

초인이 아닌 이상 선수들에게는 체력의 한계가 있었으니 말이다.

지혁은 과거에 똑같은 입장에 처해본 경험이 있어서 세라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 빨리 끝내줘야겠네.’

이제 상대의 진의를 알았으니 경기를 질질 끌 필요가 없다.

세라도 이기려는 생각이 없어 보이니 이제 속전속결로 끝내버리면 될 것이다.

[플레이어 레디.]

90초의 휴식 시간이 모두 흐르자 경기를 재개하는 체어 엠파이어.

지혁은 코트를 체인지하기 위해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

[아! 이지혁 선수의 패싱샷! 결국 1세트가 베이글 세트로 종료되었습니다!]

[압도적인 경기력입니다. 상대 선수가 반항할 여지를 전혀 주지 않아요. 정말 무자비한 실력입니다.]

[이제 승리까지 1세트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러다 한 시간 만에 경기가 끝나겠어요.]

[마스터즈는 3세트 매치로 진행되니까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가능하면 이지혁 선수의 플레이를 오래 보고 싶은데 상황이 도와주지 않네요.]

[다음 라운드가 있으니 그렇게 실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지금 기세면 4강까지 큰 위기 없이 진출할 거예요.]

[4강이라······. 그러면 라파엘 나달과 대결할 수도 있겠습니다.]

해설들은 나달이라는 이름에 벌써부터 흥분이 되는 듯 얼굴을 상기시켰다.

한국 최고의 천재가 빅3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시청자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ㅡ 해설자들 말대로 이러다가 진짜 나달이랑 붙는 거 아님??

ㅡ 방금 대진표 보고 왔는데 잘하면 가능할 것 같다. ㄷㄷㄷㄷ 32강부터 8강까지 못 이길만한 선수 없음.

ㅡ 지혁좌 운도 좋네. 어떻게 3쿼터에 들어가서 빅3를 절묘하게 피해가냐? 1, 2쿼터에 들어갔으면 16강에서 바로 광탈이었을 텐데 ㅋㅋㅋㅋ

ㅡ 그런데 둘이 붙으면 누가 이기냐?? 이번에 기량 상승했으니까 이지혁한테도 가능성 있는 거 아님?

ㅡ ???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지?

ㅡ 당연히 나달이지. 요즘 폼 좋다고 어디 빅3한테 비비려고 함.

[이 해설님은 이지혁 선수가 나달을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흠. 이번 인디언 웰스 오픈을 한정으로 하면 아마 30%는 될 겁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데요?]

[당연히 그럴 겁니다. 나달의 부상을 고려해서 말한 승률이거든요.]

[아, 확실히 지난 호주 오픈에서 나달이 무릎 부상 때문에 허무하게 탈락하기는 했죠.]

[그렇습니다. 두 달 만에 전부 회복하지는 못했을 테니 이번 기회를 노리면 이지혁 선수에게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해설자들은 2세트가 시작하기 전까지 지혁이 나달을 이길 수 있을지 얘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직 64강이 끝나지 않았지만 세라의 상태를 보면 이미 승부는 결정된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지금 상황에서 반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

쾅!!

[이지혁 선수의 퍼스트 서브로 2세트가 시작했습니다.]

[오! 전광판에 139마일이 찍혔네요 오늘 서브 중 최고 기록입니다.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223km가 넘는군요.]

[아직 힘이 남아도는 모양이네요. 하긴 그랜드슬램에서 5시간이 넘는 경기도 치렀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겁니다.]

2세트는 지혁이 예상했던 대로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두 선수 모두 체력을 낭비할 생각이 없어서 인지 스트로크가 길게 이어지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던 것이다.

그렇게 40분 정도 지났을 때.

[게임 세트. 매치 리. 6-0. 6-0.]

마침내 체어 엠파이어의 입에서 경기 종료 선언이 떨어졌다.

관중들은 퍼펙트 경기에 기립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지혁이 세라를 완벽하게 제압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진상은 그들의 생각과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따로 지적하는 사람이 없는 만큼 아무런 상관이 없다.

***

[두 달 만에 공식 대회에 출전한 이지혁, 인디언 웰스 오픈 2라운드 승리.]

[한국 최고의 테니스 천재, ATP랭킹 59위를 베이글 세트로 꺾다.]

[플로랑 세라, “높은 벽을 실감했다. 마치 빅3와 경기하는 느낌이었다.”]

[한국 테니스 레전드 이형석, “이지혁은 내가 현역 시절에 붙어도 이기기 힘든 선수. 멀지 않은 미래에 그랜드슬램 트로피를 반드시 들어 올릴 것.”]

[테니스 국가대표 감독, “선수가 원한다면 2010 아시안게임에 무조건 차출할 것이다. 생각 할 필요도 없이 무조건 1순위.”]

[인디언 웰스 오픈 중계 시청률 8% 달성.]

[다시 한 번 주목받는 한국 테니스, 이지혁 효과는 과연 어디까지 인가?]

[한국 사람들이 테니스 스타에게 열광하고 있는 이유.]

지혁이 인디언 웰스 오픈 64강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자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숫자의 기사를 쏟아냈다.

아직 상위 라운드에 진출한 건 아니었지만, 경기에서 워낙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220km가 넘는 고속 서브와 현격하게 상승한 피지컬을 가지고 대회에 참가했으니 지금 같은 상황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역시 대회에 출전해야한단 말이야.”

지혁은 오랜만에 벌어들인 포인트를 확인하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엄청나게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공백 기간을 생각하면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지혁]

근력: 75▲ 민첩: 75▲ 체력: 75▲ 신장: 187cm▲

서브(A), 포핸드(A+), 백핸드(A), 풋워크(A), 외모(A-), 트릭샷(A-)

[322,175포인트]

“A+등급까지 앞으로 170만 포인트라······.”

170만, 정말 천문학적인 수치다.

아마 그랜드슬램에서 우승하지 않는 이상 하나의 대회에서 이 정도의 포인트를 얻는 건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지금 추세라면 빠르면 윔블던, 늦으면 US오픈에서 기술의 등급을 상승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쓸만한 기술이 나오겠지?”

A등급을 달성할 때 특전이 있었으니 분명 A+등급에도 보상이 있을 확률이 높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주축을 이루는 기술들의 숙련도가 올라가는 만큼 등급은 필수적으로 올려야했다.

“그런데 어플의 제한은 언제 풀리려나.”

지혁은 75에서 변동이 없는 신체 능력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번에 피지컬이 크게 상승하면서 그 효과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부분이 개선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역시 가장 효율적으로 기량을 상승시킬 수 있는 방법은 신체 능력의 증가였다.

“후······. 방법도 모르는데 괜히 집착하지 말자. 계속 전진하다 보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거야.”

지금 성장하고 있는 속도도 엄청난 만큼 조급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제한은 자연스럽게 해제될 것이다.

“다음 경기나 준비하자.”

지혁은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32강 상대인 페르난도 베르다스코의 경기 영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푸른색 로딩이 끝나자 노트북 화면에 초록색 인터넷창이 나타났다.

어젯밤에 찾아봤던 포털사이트의 메인 기사들이다.

[테니스 국가대표 감독, “선수가 원한다면 2010 아시안게임에 무조건 차출할 것이다. 생각 할 필요도 없이 무조건 1순위.”]

“아, 올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있었지. 이번에는 2010년에 출전하겠구나.”

원래 지혁은 2015년 테니스 복식 부분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차지했었다.

한국의 테니스 국가대표는 다른 종목과 다르게 세계 랭킹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정민이라는 희대의 천재가 국내 랭킹 1위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지혁은 자연스레 2인자 자리로 밀려나서 복식으로 출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만큼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정민의 현재 나이는 15살밖에 안 돼서 아시안게임에 참가하지도 못한다.

“군대 문제는 이걸로 해결하면 되겠네. 안 그래도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 병역면제가 주어지니 이번 기회에 족쇄를 풀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투어 스케줄이 꼬여서 제법 고생을 하겠지만 2년이라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큰 대가는 아니다.

물론 우승을 하지 못하면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하지만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낮았다.

아시아에서 지혁을 상대할 만한 랭커는 일본 국적의 니시코리 케이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니시코리조차도 아직 전성기가 아닌 만큼 이번 아시안게임의 난이도는 챌린저와 ATP250 사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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