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76화 (76/241)

76화. 마이애미 오픈

2세트 5게임이 끝나고 주어진 90초의 휴식 시간.

웅성웅성

관중석은 경기를 완벽하게 지배한 지혁의 퍼포먼스에 깜짝 놀란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나달에게 유리하던 상황이 이렇게 쉽게 원점으로 돌아갈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하다.

“골든 보이의 기세가 꺾였다고 생각했는데······.”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나달이 압도당하다니 내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지 않네.”

“전문가들에게 지적받았던 체력 문제도 괜찮은 것 같아. 역시 헛소문이었구나.”

“이런 선수가 아직 탑10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이 정도면 델 포트로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나이 때문에 과소평가를 받은 탓이겠지. 다른 탑랭커에 비해 경력도 짧은 편이잖아.”

“어차피 오늘 경기에서 승리하게 된다면 골든 보이에 대한 평가가 수직 상승하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실력에 맞는 대우를 받게 되겠지.”

관중들은 약점을 찾기 힘든 지혁의 실력에 감탄하며 한동안 찬사를 쏟아냈다.

그 소리가 코트까지 전해져 올 정도였지만 정작 그 당사자는 관중석의 대화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계속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너무 무리한 건가? 부담이 장난이 아닌데.’

서서히 몸에서 나타나는 이상징후를 주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달의 서비스게임을 브레이크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심장이 뛰는 속도가 마치 전력질주를 한 것처럼 빠르다.

그나마 기술의 사용을 세 번 이하로 줄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만약 상황이 꼬여서 횟수가 지금보다 더 늘어났다면 어제처럼 겉으로 표시가 확실하게 났을 테니 말이다.

“후우······후우······.”

거친 숨소리를 눈치 챈 것인지 볼 키즈가 힐끗 시선을 준다.

나름대로 열심히 감춘다고 했는데 거리가 가까워서 몸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들킨 모양이다.

지혁은 비밀로 해달라는 듯 살짝 제스쳐를 보내자 용케 신호를 알아챈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는 반응이 돌아온다.

물론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대회 규칙상 진행 요원들이 선수들에게 말을 거는 게 금지되어 있어서 크게 영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의식적인 태도로 인해 티가 날 수도 있으니 조심해서 손해 볼 건 없다.

[플레이어 레디. 서브 리.]

‘이번에 서비스게임을 지키면 다시 스코어가 동점이 되는구나. 3-2이라 아직 한참 멀었네.’

고작 4게임이지만 상대가 나달이라서 그런지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지혁의 사정을 자세하게 모르는 사람들은 쉽게 플레이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흐읍!!”

쾅!!

[SERVE SPEED 134MPH]

겉모습은 위장할 수 있어도 힘이 빠진 상태를 숨기는 건 역시 불가능한 모양이다.

서브 속도이 8km가 넘게 하락하다니.

이 정도 차이면 눈치 빠른 사람들은 벌써 의심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서티 피프틴.]

‘그래도 포인트가 밀리지는 않는 걸 보니 기량이 크게 하락한 건 아닌가 보네.’

지혁은 포핸드 위닝샷이 들어가자 미소를 지으며 베이스라인으로 돌아갔다.

순조롭게 경기가 진행되니까 피로가 조금씩 해소되는 기분이다.

물론 실제로 휴식을 한 효과는 조금도 없었다.

포인트마다 최소한 10구 이상 스트로크를 주고받았는데 상식적으로 체력이 회복될 리가 있겠는가.

턱!

[네트! 포티 서티.]

타점이 괴상한 나달의 탑스핀 스트로크 때문에 라켓 컨트롤이 흔들려 네트에 스트로크를 처박는 실책을 범한 지혁.

그러자 얼마 전 서비스게임을 브레이크 당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여기서 실점하면 듀스인가······. 또 당할 수는 없지.’

분명 이전이었다면 몸을 사렸을 것이다.

하지만 소극적인 플레이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미 겪어 봤다.

괜히 작은 걸 지키려고 하다가 더 많은 걸 잃을 수도 있다.

그 교훈을 얻고 나서도 똑같은 실수를 하는 건 솔직히 지능의 문제다.

탕!!

서비스코트에 떨어지자마자 역방향으로 빠르게 튀어 오르는 지혁의 트위스트 서브.

오랜만에 사용한 무기가 제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지만 나달의 리턴 자세는 조금도 무너지지 않았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감각과 노련한 눈썰미가 서브의 종류를 정확하게 간파했기 때문이다.

탕!! 탕!! 탕!! 탕!!

3구. 5구. 10구. 15구.

점점 늘어가는 스트로크 횟수.

타구의 숫자가 막 20구를 넘어갔을 때.

마침내 승부를 결정짓는 위닝샷이 나왔다.

쿵!!

[게임 리 3-3.]

지혁의 백핸드 라이징샷이 베이스라인 깊숙이 떨어졌던 것이다.

빠른 템포로 상대의 역동작을 유도해서 성공한 포인트였다.

리! 리! 리! 리!

렛츠 고 리! 렛츠 고 리!

이지혁! 이지혁!

게임 스코어가 동점이 되자 기대감이 가득 담긴 얼굴로 응원을 하는 관중들.

지혁은 익숙한 한국어를 듣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러자 한국인으로 보이는 20대 여자 두 명이 열정적으로 응원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제 16강 경기에서 봤던 팬들이잖아?’

만약 이번 대회의 개최지가 아시아였다면 그녀들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드 록 스타디움의 좌석수는 무려 14,000이 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이애미 오픈에서 동양인, 그것도 젊은 여성의 비율은 상당히 적어서 두 여자의 얼굴은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어 주는 지혁.

거리가 제법 멀어서 반가운 마음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모르겠다.

***

8강이 시작하고 1시간 56분.

치열한 대결 끝에 경기는 세트 스코어 2-0으로 종료되었다.

[인! 게임 세트. 매치 리 6-3, 6-4.]

지혁이 빅3를 꺾는 기적을 프로 선수로 데뷔하고 나서 처음으로 달성한 것이다.

전, 현생을 모두 합쳐서 처음으로 이룬 업적이었다.

이제 5전 1승 4패로 승률이 20%가 되었다.

10년이 넘는 경력에 비해 나달과 경기한 숫자가 적은 건 탑랭커였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그렇다.

와아아아아!

경기장이 흔들릴 정도로 쏟아지는 관중들의 함성.

지혁은 짜릿한 성취감에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나달에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정말로 그게 실현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마이애미 오픈 4강 진출 확정! 골든 보이가 나달을 2-0으로 꺾고 승리를 차지했습니다! 인디언 웰스 오픈처럼 빅3가 전부 탈락하는 커다란 이변이 일어났어요!]

[이런 상황은 웬만해서 잘 일어나지 않는데 작년 US 오픈에서 델 포트로가 페더러를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도 그렇고 슬슬 새로운 세대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네요.]

[마이클, 이제 시대가 변하고 있는 걸까요. 조만간 ATP랭킹에 큰 변화가 생길 것 같은 느낌입니다.]

[네. 골든 보이의 실력이라면 빠르게 5위까지 빠르게 안착할 것 같네요.]

[오. 평가가 정말 후하군요. 이주 전 만해도 앤드리가 10위 초반이라고 말했는데요.]

[그때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으니까요. 오늘 경기를 봤다면 그도 생각이 달라졌을 겁니다.]

마이클 창은 지혁의 실력에 크게 감명을 받은 듯 후한 평가를 내렸다.

현재 ATP랭킹 5위는 델 포트로가 차지하고 있었으니 그의 말은 지혁의 실력이 유망주 중에 최강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체력에 대한 논란은 결국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1시간 56분에 달하는 제법 긴 경기를 했지만 리의 상태는 멀쩡하네요. 16강은 그저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음······. 아직 더 지켜봐야겠죠. 겉으로 멀쩡해도 서브 속도가 꽤 많이 떨어졌잖습니까.]

[그건 체력을 아끼려고 완급 조절을 한 게 아니었을까요? 어차피 나달에게 에이스를 얻기 힘드니 차선책을 선택한 거죠.]

[물론 그런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직 대회가 남아있으니 그건 다음 경기에서 선수들이 증명해줄 겁니다.]

[4강에서 만나게 될 선수는······앤디 로딕이네요. 두 선수는 세 달 전 호주 오픈 8강에서 경기를 한 적이 있었죠?]

[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골든 보이가 3-0으로 승리했을 겁니다. 그의 그랜드슬램 데뷔전이라 꽤 주목받았던 매치였어요. 아쉽게도 앤디의 컨디션 난조로 싱겁게 끝났지만 말이에요.]

앤디 로딕이 미국의 스포츠 스타라서 그런지 브래드의 표정이 좋지 않다.

당연하게도 10년 이상 꾸준히 활약한 자국의 선수에게 마음이 더 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요즘은 6~10위에서 머무르고 있지만 로딕은 한 때 249k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서브를 무기로 랭킹 1위까지 찍었던 선수다.

비록 빅3의 왕조 시대가 오면서 그 위상이 빠르게 떨어졌지만 말이다.

[솔직히 저는 앤디의 열렬한 팬이라 그가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힘들겠죠?]

[리가 오늘 같은 경기력을 유지한다면 그렇겠죠. 아마 4강이 아니라 결승도 싱거울 확률이 높습니다. 방금 확인해봤는데 1, 2 쿼터에 남아있는 선수가 페르난도 베르다스코와 토마스 베르디흐였거든요.]

[아······. 단순히 전력만으로 따졌을 때 골든 보이의 실력이 가장 뛰어나네요.]

[물론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머레이가 전부 탈락한 것처럼 변수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위 라운드도 아니고 우승 트로피가 걸려있는 중요한 경기에서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네요.]

브래드와 마이클 창은 전력분석을 하면서 남은 방송 시간을 채웠다.

ESPN이 미국 채널인 탓일까.

항상 호의적이었던 테니스 팬들의 반응이 그렇게 좋지 못했다.

굴러들어온 돌인 지혁보다 로딕이 그들에게 훨씬 더 중요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마 경기장의 분위기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국에서 열리는 윔블던, 프랑스에서 열리는 롤랑 가로스, 호주 오픈, US 오픈 등 어느 나라를 가도 이런 현상은 빈번하게 일어나니 말이다.

***

같은 시간 서울의 어느 원룸.

“아아악!”

주영은 체어 엠파이어에 의해 나달의 패배가 확정되자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이번 경기로 그의 소중한 200만 원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지혁 개자식아!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그 돈은 퓨처스 원정에 쓸 돈이라고.”

3개월 동안 아껴가며 간신히 모은 출장비인데.

고작 하루 만에 그 거금이 전부 날아갔다.

만약 기업에게 후원을 받는 선수라면 해외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할 수 있어서 한 경기 쯤 놓쳐도 크게 상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영은 외부에서 주목할 만큼 특별한 선수가 아니라서 한국에서 열리는 퓨처스 밖에 답이 없었다.

가장 가까운 아시아라도 원정을 나가면 비행기와 숙소 비용으로 한 번에 300~500은 가볍게 깨지니 말이다.

“······이렇게 된 이상 역배로 회복하는 수밖에 없어.”

정상적인 방법으로 1~2주 만에 몇 백만 원을 다시 마련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럴 바엔 오늘처럼 기적이 일어나는 걸 바라는 게 더 합리적일 것이다.

“이지혁의 배당이 6.32였지. 거기 걸었으면 지금 쯤 1200이 넘었을 텐데······. 다음 경기의 배당은 얼마지.”

이지혁 1.35 앤디 로딕 3.14

“이거야! 로딕한테 걸어서 300%가 넘는 배당이라니 이건 무조건 승산이 있어.”

본전을 찾을 생각에 남은 돈을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거금 93만 원이 만들어졌다.

아마 이 정도면 본전치기는 충분히 될 것이다.

주영은 그게 지옥으로 떨어지는 선택인지도 모르고 충혈된 눈으로 돈을 송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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