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00화 (100/241)

100화. 롤랑 가로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몸으로 맞으면서 경기를 진행하는 선수들.

안 그래도 슬라이딩을 하기 좋았던 클레이 코트는 비로 인해서 더욱 미끄러워졌다.

더욱 과감하게 플레이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덕분에 선수들의 코트 커버력이 상승했지만 그만큼 랠리 시간도 길어지고 있었다.

탕!! 탕!! 탕!! 탕!!

지혁은 스트로크를 주고받으면서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능숙하게 플레이하는 것 같았지만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감각이 상당히 달랐기 때문이다.

온전히 집중할 수 없어서 따로 신경 써야할 것도 많아졌다.

‘테니스공이 물을 머금어서 그런지 엄청 묵직하네. 체감상 2배는 스윙이 무거워진 것 같아.’

게다가 느려진 바운드 속도 때문에 위닝샷도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경기를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었기에 결국 과감한 선택이 필요했다.

페더러의 백핸드가 바운드되자마자 한 템포 빠르게 라이징샷으로 받아치는 지혁.

곧이어 분주한 발소리와 함께 네트 앞에서 커다란 임팩트 소리가 들렸다.

지혁이 연계 플레이로 포핸드 발리를 반대편 코트에 떨어트린 것이다.

실수가 나올법한 고난이도의 플레이였지만 부족한 부분은 찰나를 사용해서 보충했다.

그 결과, 충분히 만족할 만한 위닝샷이 나왔고 말이다.

[세트 리 3-4.]

계획했던 대로 작전이 성공하자 지혁은 열세에 처했던 경기를 1게임 차이로 바짝 따라잡을 수 있었다.

모두 돌발상황으로 인해 1시간이 넘는 휴식을 취한 덕분이었다.

마지막 세트에 들어서며 엄두도 내지 못했던 첫 브레이크가 성공하자 관중석에선 뜨거운 환호성이 쏟아졌다.

만 명이 넘는 팬들은 비를 맞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응원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들의 반응을 보면 적어도 시간을 낭비했다고 후회하진 않을 듯했다.

[아! 페더러가 서비스게임을 브레이크당합니다! 환상적인 셋업 플레이였습니다! 사이드라인을 공략하는 공격에 반응을 하지 못했어요!]

[이건 상당히 의미가 큰데요. 서브권을 가진 유리한 상황에서 게임을 내줬다는 건 얼마든지 패배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나저나 피트, 비로 인해서 중단되었던 경기가 다시 재개되고 나서 하브 발리같은 높은 숙련도가 요구되는 샷이 유독 많이 나오네요. 정말 골든 보이의 기량이 많이 회복된 것 같습니다. 이대로만 해주면 결승에 진출할 수도 있겠어요.]

[아마 장시간 랠리를 피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겁니다. 클레이 코트가 젖어서 바운드 속도가 눈에 띄게 감소했거든요.]

[그러면 남아있는 게임도 비슷한 양상이 될 거라는 말씀인가요?][갑자기 코트가 마를 리 없으니 그렇겠죠. 매 포인트에 소요되는 시간은 줄어들진 않을 겁니다.]

이후의 경기는 샘프라스가 장담한 것처럼 선수들의 체력과 인내심 대결로 흘러갔다.

그나마 하이라이트 장면에 쓰일 만한 샷들이 드문드문 나와서 포인트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만약 이것마저 없었더라면 5세트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세트 리 6-5. 어드벤티지 리.]

와아아아아!

듀스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마침내 역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데 성공한 지혁.

페더러는 이번 실점이 치명적이라 생각했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본능적으로 불길한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워낙 많은 대회를 경험해봤기에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의 예측은 틀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제 서비스게임만 막아내면 오늘 경기는 골든 보이에게 돌아갑니다!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모든 선수들이 평생의 목표로 하는 정상의 자리에 도전할 수 있어요!]

[조급한 마음을 먹지 말고 침착하게 플레이해야 합니다. 롤랑 가로스의 마지막 세트는 타이브레이크가 적용되지 않아서 자칫 잘못했다간 늪에 빠질 수도 있어요.]

[일단 듀스가 시작하면 규칙상 선수들 중 한 명이 2세트 차이를 벌려야 경기가 종료됩니다. 경기 도중에 해가 저물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선수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상황이 생기면 안 되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경기가 내일로 미뤄질 확률이 높습니다. 아시다시피 필립 샤트리에 스타디움은 야간 경기를 하기엔 조명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니까요.]

지혁은 해설자들의 우려 섞인 시선을 받으며 서브를 시작했다.

이번 게임의 결과에 따라 많은 것이 결정되는 터라 긴장감은 이미 정점을 찍은 상태였다.

“하앗!”

쾅!!

[SERVE SPEED 216km/h]

이미 한계점을 한참이나 초과한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서비스 코트로 떨어지는 고속 서브.

리턴이 돌아오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센터 마크로 달려가는 지혁의 손에는 이전 게임과 다른 라켓이 들려 있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라켓으로 페더러에게 먹힐 만한 속도를 뽑아낼 자신이 없어서 봉인해두었던 수를 다시 꺼내 든 것이다.

팔에 부하가 걸리는 부작용 탓에 욱신거리는 통증이 다시 재발했지만 여기서 경기를 끝낼 수만 있다면 이 정도 손해는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12-12 같은 정신 나간 세트 스코어를 직접 재연하는 것보다 몸이 보내는 경고를 잠깐 무시하는 게 여러모로 훨씬 나을 테니 말이다.

[피프틴 러브.]

[서티 피프틴.]

[포티 피프틴. 매치 포인트 리.]

자칫하면 선수 생명이 깎일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며 경기에 임했기 때문일까.

지혁은 길었던 고생 끝에 매치 포인트를 남겨둔 상황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 위닝샷만 따내면 마이클 창이 가지고 있던 최연소 그랜드슬램 우승 기록도 깨진다.

“후우······.”

긴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길게 호흡을 내뱉으며 공을 토스하는 지혁.

쾅!!

페더러가 순순히 에이스를 당해준다면 정말 좋겠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행운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선수들이 랠리를 주고받은 횟수가 20회를 초과했을 때쯤.

지혁은 자신의 전매특허인 리버스 포핸드로 매치 포인트를 따낼 수 있었다.

오늘 경기를 하는 동안 큰 도움이 되었던 탑스핀 스트로크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게임 세트. 매치 리. 6-4, 6-7(14-16), 2-6, 6-4, 7-5.]

잠시 후, 체어에서 판정이 내려지자 마침내 롤랑 가로스의 준결승전은 3-2의 스코어로 종료되었다.

지혁은 그 소식을 옆에서 듣자마자 간신히 버티고 있던 다리가 풀려서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에 젖은 흙이 옷을 주황색으로 더럽혔지만 밀려오는 피로감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쓸 여유가 전혀 없었다.

‘······페더러도 멀쩡하진 않구나.’

힘이 쭉 빠진 채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 그다지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다.

경기를 하던 도중에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지만 역시 그도 피로를 느끼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지혁이 완전히 탈진한 것과 다르게 움직이는 게 가능한 것을 보면 한국 기준으로 서른 살의 나이치고 믿기지 않는 체력이긴 하다.

근력, 민첩, 체력, 반사신경 등 복합적인 신체 능력이 정점을 찍는 20대 중반의 선수들도 그랜드슬램에서 퍼져버리는 일이 비일비재 했으니 말이다.

하긴 6시간이 넘는 진흙탕 경기에서 일정한 실력을 유지했던 걸 보면 평소 피지컬 훈련을 얼마나 부지런하게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타고난 재능으로 상대를 압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이런 철저한 자기관리가 밑바탕이 되어서 정상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리, 결승에 진출하게 된 걸 축하해. 다음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얻길 바랄게.”

코트 바닥에 앉아있는 지혁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고 쿨하게 퇴장하는 페더러.

그는 강철같은 멘탈을 가지고 있는 걸로 유명한 선수인 만큼 그사이 패배의 여운을 털어버린 것 같았다.

어차피 테니스 선수로 활동하다 보면 오늘 겪은 수모를 되갚아 줄 기회가 반드시 다시 찾아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스터즈급 이상의 대회는 후반 라운드에 진출할 수록 상위 랭커들과 경기가 잡힐 확률이 높아지니 리벤지 매치가 성사되는 시점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대비를 단단히 하고 나올 테니 오늘보다 몇 배는 더 어려워지겠지.’

페더러 정도 되는 선수가 진심으로 경기를 준비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속이 쓰린 느낌이다.

‘······이번 대회가 끝나고 생각해보자. 어차피 이건 단시간에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야.’

아직 경기가 남아있으니 복잡한 생각은 결승전을 치르고 해도 괜찮다.

롤랑은 쓸데없이 정신을 분산시키면서 우승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대회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

[15,000명의 관중 앞에서 테니스의 황제를 쓰러트린 유망주.]

[롤랑 가로스 준결승에서 펼쳐진 수중전. 이지혁이 페더러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골든보이‘ 이지혁, 롤랑 가로스 결승전 진출 확정! 장장 7시간의 혈투 끝에 페더러에게 승리.]

[너무나 길었던 빅3의 왕조 시대가 드디어 저무는 것일까?]

[나달의 준결승 상대는 랭킹 25위의 위르겐 멜저, 결승전에서 이지혁과의 대결은 사실상 확정?]

[로저 페더러,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경기였지만 지금은 오직 리를 축하해주고 싶다. 기왕 결승까지 올라간 김에 롤랑에서 우승을 해주길 바란다.”]

[이지혁, ”온전히 실력으로 이긴 게 아니라 아쉽다. 만약 경기 도중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패배했을 것.“]

[샘프라스, “골든 보이는 다음 세대의 황제가 될 선수, 경기의 해설을 맡은 건 영광이다. 그는 페더러의 뒤를 이어서 테니스계를 주도할 자격이 충분하다.”]

ㅡ 이번에도 5시간 넘게 경기했네 ;; 머레이랑 붙을 때도 비슷하지 않음? 이 상태로 결승전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는 게 가능하려나.

ㅡ ㄴㄴ 많이 힘들 듯. 경기 후반에 기량 떨어지는 게 한 눈에 보였잖아. 게다가 나달은 끝판왕급 베이스라이너라 장기전이 기본으로 깔려있는데 이제 결승전에서 개털릴 일만 남았다

ㅡ 이미 마이애미에서 이긴 전적있는데? 이번에도 잘만하면 이길 수 있음.

ㅡ 거긴 하드 코트였고 롤랑 가로스는 클레이라고 ㅋㅋㅋ 제발 눈 있으면 지난 6년 동안 나달이 롤랑에서 세운 기록 좀 찾아 봐라 무려 39전 38승 1패다. 그것도 1패는 시즌 아웃까지 당하는 무릎 부상 때문에 생긴 거고. 괜히 테니스 선수들 중에 유일하게 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줄 아냐? 멀쩡한 나달은 이지혁이 아니라 페더러가 와도 절대 못 이긴다.

ㅡ ㅇㅈ 해외 테니스 채널들도 윗댓이랑 비슷한 의견이 대세임. ATP 탑랭커였던 전문가들 발언 찾아보면 이지혁이 이길 확률은 10% 이하라고 하더라 ;;

ㅡ 일단 내일 경기에서 위르겐 멜저 상대하는 거 보면 알겠지. 뭐 어차피 벽만 느낄테지만 ㅋㅋ

ㅡ 의외로 페더러처럼 준결승에서 떨어지는 거 아님? 그럼 어부지리인데 ㅋㅋㅋ

ㅡ 행복회로 겁나게 돌리네 ;; 나달이 탈락하는 것보다 프랑스에 지진나서 경기장 무너질 확률이 더 높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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