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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06화 (106/241)

106화. 롤랑 가로스

지혁은 결국 어플을 사용해 체력을 당겨쓰는 선택을 했다.

지금이 그랜드슬램 결승인 걸 생각했을 때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일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타이밍에 이런 선택지를 주는데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10만 포인트를 사용하셨습니다.]

[체력이 일시적으로 회복됩니다.]

“음······.”

어플의 효과는 언제나 그랬듯이 시간을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즉시 나타났다.

무거웠던 몸이 수십키로의 짐을 벗어던진 것처럼 가벼워진 것이다.

신기하게도 욱신거리던 신체 부위들과 손목의 고통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이 정도면 최상의 컨디션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최대치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아.’

주먹을 강하게 쥐거나 스윙 동작을 해봐도 거슬리는 부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

근처에서 선수를 서포트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볼 키즈는 고작 몇 초 만에 훤해진 지혁의 안색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탈진하기 직전의 사람이 갑자기 멀쩡해진 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플레이어 레디.]

그렇게 지혁이 몰래 스트레칭을 하며 신체의 미세한 부분을 확인하고 있을 때.

시간을 지켜보고 있던 체어 엠파이어가 4세트의 시작을 알렸다.

만약 이전이었다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이었겠지만 지금은 너무나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었다.

만전의 상태로 돌아온 경기력을 빨리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서비스게임도 내 차례라서 상황도 적절해.’

라켓을 챙겨 코트로 안으로 들어가는 선수들.

나달은 이미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한 건지 여유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하긴 이미 긴장할만한 시기는 한참이나 지나서 초반과 같은 경계 태세가 불필요 하긴 했다.

4세트가 3-0까지 오면서 몇 번이나 승부의 추가 넘어갔음을 재확인했으니 말이다.

‘방심하고 있어 주면 나야 고맙지. 과연 그 모습이 얼마나 이어질지 볼까.’

쾅!!

[피프틴 러브.]

[SERVE SPEED 227km/h]

T존 위로 번개처럼 떨어진 플랫 서브.

나달은 설마 230km에 가까운 타구가 날아올 거라 생각하지 못한 건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에이스를 허용했다.

통. 통. 통.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바운드 소리가 자그맣게 들리길 잠시, 곧 경기장의 모든 시선이 지혁에게 집중되었다.

관중들은 갑작스러운 반전에 볼 키즈와 비슷한 반응을 보여줬다.

입이 살짝 벌어지고 눈이 휘둥그레진, 화들짝 놀란 표정 말이다.

쾅!!

[서틴 러브.]

지혁은 나달이 혼란스러워할 때 최대한 포인트를 얻어 놓기 위해 서브 간격을 좁게 잡았다.

준비 시간을 10초 미만으로 잡고 경기를 진행한 것이다.

급변한 상황을 이용한 플레이에 크게 뒤쳐져 있던 지혁의 스코어는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게임 리. 2-3.]

결국 연속으로 두 게임이나 넘어간 경기.

10여분 정도 시간이 흐르자 나달도 정신을 차렸는지 쉽게 포인트를 빼앗기지 않았다.

‘많이 궁금한가 보네.’

코트 주변에서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진다.

관중들은 경기를 뒤집을 수 있었던 비결을 알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시끄러운 대화 속에서 여러 가지 추측이 나돌아다녔지만 지혁의 정확한 속내를 알지 못하니 정답을 찾는 게 가능할 리 없었다.

[제···제가 지금 이지혁 선수의 경기를 보고 있는 게 맞나요?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진했었는데 갑자기 절정의 경기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손목 부상은 어떻게 된 걸까요? 제 기억이 맞다면 분명 경기에 지장이 갈 만큼 심각했는데요.]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라 저도 바로 답을 드리기 힘드네요. 경기가 끝나고 분석을 해봐야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일단 230km에 근접하는 서브를 마음껏 사용하는 걸 보면 힘은 넘치는 것 같습니다. 혹시 지친 척 연기를 하면서 시간을 벌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죠?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서요.]

[설마요. 그런 행동을 해서 얻는 이득이 뭐가 있다고요. 내준 게임의 숫자를 고려했을 때 터무니없는 가정입니다.]

해설자들은 지혁의 활약에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 한동안 횡설수설했다.

지금 상황은 전문가가 보기에 전혀 사리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할 뿐이었다.

ㅡ 제엔장 믿고 있었다고!!!! 역시 이대로 끝날 녀석이 아니었어!!

ㅡ 사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음. 애초에 천재가 쉽게 무너질 리가 없지 ㅋㅋ

ㅡ 와 태세 전환 엄청 빠르네 ㅋㅋㅋㅋ 10, 20분 전 만해도 초상집 분위기였는데. 뭐, 결과만 좋으면 상관없지만 ㅋㅋㅋ

ㅡ 뭐지?? 이지혁이 봐주고 있던 건가? 상황이 너무 자주 바뀌어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

ㅡ 그냥 우리 편이 이기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됨.

ㅡ ㄴㄴ 아직 세트 스코어 2-1이라 추격하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이지. 뭐, 방금 서비스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보여준 경기력이면 역전하는 것도 시간문제겠지만.

ㅡ 그런데 4세트에서 러브 게임이 나온다고? 갑자기 스팀팩이라도 맞았나. 저게 상식적으로 가능해?

ㅡ 그게 뭐가 중요하냐. 어차피 이지혁이 롤랑 가로스에서 우승하기만 하면 되잖아. 지금은 열심히 응원하는데 집중이나 해라.

ㅡ ㅇㅈ 윗 댓이 하는 말이 무조건 맞지. 이번 경기에 한국 최초, 아시아 최초, 세계 최초 기록 전부 달려있는데 괜히 초치지 마라.

***

[게임 리 3-3.]

지혁은 여세를 몰아 백핸드 위너로 서비스게임까지 무사히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크게 불리했던 세트가 마침내 동점이 되자 경기장은 관중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어?”

그렇게 쌩쌩한 모습으로 다음 게임을 진행하기 정해진 위치로 이동하던 도중, 지혁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었다.

어플의 효과가 끝난 건지 실시간으로 기력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효과가 일시적이라고 하더니. 이런 뜻이었나? 고작 3게임을 했을 뿐인데······.’

욱신욱신.

최상의 상태에서 빌빌거리던 몸으로 돌아오게 되자 역체감이 더 뚜렷하게 들었다.

잊고 있었던 손목 통증과 점점 가빠지는 호흡 탓에 전신은 식은땀으로 빠르게 젖어가고 있었다.

‘체력을 당겨 쓴다는 게 이런 의미였구나. 역시 공짜로 생기는 게 아니었어.’

선택을 내리기 전에 어느 정도 각오를 했지만 장난이 아니다.

고작 한 번 사용한 걸로 이 정도 부작용이라면 경기가 끝날 때까지 반복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짐작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봐도 경기장을 멀쩡한 모습으로 나가기만 해도 다행일 것 같았으니 말이다.

[체력이 일시적으로 회복됩니다.]

다시 한 번 10만 포인트를 사용하는 지혁.

그러자 종합병원처럼 위험 신호를 보내던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멀쩡해졌다.

지혁이 망설일 법한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지 않고 어플을 사용한 것은 솔직히 기권할 마음이 단 1%도 없어서였다.

이미 결론이 나와있는 상황에서 시간을 끄는 것보다 이렇게 저질러 놓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괜히 마음이 흔들릴 빌미를 만들지 말아야지. 나달을 상대하는데 모든 전력을 쏟아도 부족하니까.’

[서브 나달.]

그렇게 베이스라인 끝에서 서브를 기다리고 있자 잠시 후 경기가 다시 재개되었다.

워낙 짧은 시간 동안 변화가 일어나서 다행히 지혁의 이상증세를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는 모양이다.

탕!!

서비스코트 외각을 공략하는 나달의 플랫 서브.

랭킹 1위의 공격 치고 너무나 평범한 위력에 지혁은 가뿐하게 리턴을 해냈다.

탈진하기 직전에야 이런 타구에 대응하지 못하고 에이스를 허용했지 지금처럼 몸 상태가 멀쩡하면 포인트를 빼앗길 수준이 절대 아니었다.

서브를 막아내자 경기는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스트로크 대결로 이어졌다.

리턴 에이스라도 성공해서 힘을 빼지 않고 스코어를 늘리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포인트가 이렇게 진행되었기에 굳이 실망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별다른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달은 4세트인데도 변한 게 거의 없구나. 이제 지칠 때도 된 것 같은데.’

경기를 시작할 때와 달라진 점이 거의 없는 일정한 경기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도대체 사람이 기계도 아닌데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괴물을 상대했으니 하단 쿼터의 탑랭커들이 결승에 올라올 엄두를 내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롤랑을 포기하게 만든 건 오로지 나달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서티 러브.]

코트를 넓게 사용하는 전략으로 다시 승세를 되찾은 나달.

그는 게임을 세 차례나 내주고 나서야 마침내 어떻게 경기를 풀어나갈지 감을 잡은 듯하다.

[이지혁 선수에게 우세하던 경기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네요. 나달이 잠깐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제 그런 걸 기대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도 동점까지 추격하는 데 성공한 것만으로 크게 이득을 봤습니다. 아마 남은 세트는 선수들의 순수한 기량 싸움이 될 겁니다. 경기 감각이 물오른 후반에서 변칙적인 전략을 사용하긴 힘들 테니 말이에요.]

[그나저나 이지혁 선수의 지구력이 정말 놀랍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는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직도 경기력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제가 완전히 잘못 판단한 것 같습니다.]

[아마 정확한 사정은 당사자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부디 승자 인터뷰로 그 비밀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경기는 선수들 중 누구도 주도하는 일 없이 팽팽한 균형을 이룬 채 진행되었다.

“하앗!”

탕!!

이전 세트에서 그랬듯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장시간 랠리.

나달은 우주방어를 펼치며 지혁의 발목을 거머리처럼 붙잡았다.

그 노골적인 플레이에 관중들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똑같은 상황이 같은 코트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소모전이라······. 내가 겉모습과 다르게 한계에 달했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지혁이 탈진하기 직전까지 갔으니 사실 그의 판단은 전적으로 옳았다.

하지만 체력을 회복할 수단을 가지고 있는 지금 그 전략이 먹혀들 확률은 매우 낮았다.

‘후······. 부작용이 더 커지겠네.’

이런 상황이 싫다면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는 방법이 있긴 했다.

그러면 누가 됐던지 에러를 저지를 확률이 급격하게 높아져 경기 시간이 무조건 짧아질 테니 말이다.

지혁은 좌우 사이드라인을 번갈아가며 떨어지는 스트로크를 받아치며 대응 방법을 한동안 고민했다.

‘그래. 굳이 승률이 더 낮은 방법을 감수할 이유가 없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했을 때 내린 결정은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미 경기가 끝나고 닥칠 후폭풍을 각오한 만큼 최선의 방법으로 부딪치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괜히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한도 내에서 모든 걸 해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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