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84화 (184/241)

184화. 성장

경기가 클라이막스로 들어가자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은 아주 뚜렷하게 변했다.

화려하고 공격적인 샷에 집중하는 지혁과 리트리버처럼 엄청난 활동량으로 수비를 하는 니시코리가 극명하게 대비된 것이다.

마치 생명을 깎아가며 필사적으로 버티는 그 모습에 정민들은 꽤나 감동한 눈치였다.

비록 실력은 지혁에게 미치지 못하더라도 베이스라이너인 그들이 추구할 방향은 니시코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혁의 플레이는 어마어마한 천재성이 뒷받침돼야 했기에 흉내 낼 엄두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 탓에 유망주들이 지혁에게 공감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저게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플레이야···.”

“풋워크랑 스트로크의 밸런스가 미쳤는데? 저건 절대 봐주는 게 아니야. 지혁이형이랑 대등한 경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니시코리도 이렇게 잘하는데 더 높은 랭킹의 선수들은 얼마나 대단하다는 거지? 랭킹 11위면 저것보다 더 잘하는 선수가 적어도 10명은 된다는 뜻이잖아.”

“나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은근히 오빠가 얄밉네. 솔직히 니시코리가 한 세트라도 이겼으면 좋겠어.”

“···저도요. 저 불합리한 천재형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거든요.”

“어려울 거야. 버티는 것만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잖아.”

만약 상대가 어중간한 탑랭커였다면 알아서 자멸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기가 탄탄하기로 유명한 지혁에게 그런 실수를 기대하긴 힘들었다.

브레이크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페더러의 포핸드나 조코비치처럼 백핸드처럼 위닝샷을 넣을 결정적인 무기가 필수적이었다.

쿵!!

장시간 랠리 끝에 또다시 실점을 허용하는 니시코리.

잘 막아내다가 갑자기 파국이 난 건 우연하게 생긴 실수가 아니었다.

“아···. 힘에서 밀리네. 피지컬 차이가 스트로크에서도 발목을 잡을 줄이야.”

“그것도 그렇지만 타점에서 불리하니 어쩔 수 없지. 심지어 테크닉까지 미세하게 밀리고 있잖아.”

“완성된 베이스라이너도 저 형한테는 안 되는구나.”

“저러니까 ATP 랭킹 1위인 거겠지. 역전할 방법이 없어. 만약 장기전이 된다고 가정해도 활동량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먼저 말라죽을 걸.”

“마스터즈라면 몰라도 그랜드슬램에서 만나면 절대 못 이기겠네. 상성이 안 맞아. 지혁이형은 니시코리의 천적이야.”

아직 경기가 끝난 것도 아니었지만 훈련장은 이미 승부가 난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추측을 하는 게 현역 선수들과 코치들인 만큼 이후의 결과가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변수가 하나도 생기지 않고 무난하게 지혁이 이겨버린 것이다.

니시코리는 특별히 경기력이 나쁘거나 실수를 하지 않았음에도 패배하자 충격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도저히 이길 방법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뭔가 개선할 부분이 있으면 다시 노력이라도 해보겠는데 그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니시코리가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정민과 니시오카는 비슷한 기분을 느꼈는지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저건 그냥 타고난 재능 차이야. 그것도 절대 극복하지 못할.”

“···내가 프로에 데뷔하면 비슷할 꼴을 당하겠지?”

“어차피 랭킹 100위를 달성해서 그랜드슬램 참가 자격부터 얻는 게 먼저야.”

“글쎄. 지혁이형이 아니더라도 천재는 널렸잖아.”

“그래도 노력으로 극복하지 못할 수준은 아닐 거야. 솔직히 저런 선수가 많을 리 있겠어?”

저벅저벅.

잔뜩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훈련장 한쪽으로 걸어가는 니시코리.

사람들은 그의 복잡한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건드리지 않기로 무언의 합의를 했다.

패배한 사람의 상처를 자극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

지혁은 연습 경기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유망주들의 코칭을 시작했다.

애초에 1세트만 한 것도 지도에 필요한 체력을 넉넉하게 남기기 위해서였다.

이미 며칠 동안 있었던 일이라 들뜬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지만 니시코리와의 대결이 엄청난 자극이 된 건지 정민들은 첫날과 비슷한 반응을 보여줬다.

“형은 분명 올라운더인데 어떻게 베이스라이너보다 수비가 단단한 거예요?”

“예전에는 베이스라이너였거든. 그래서 공격적인 플레이만큼 방어를 하는 게 익숙해.”

“정말요? 그동안 형 대회들을 전부 챙겨봤지만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아마 엄청 오래전이라 너는 모를 거야.”

‘거의 10년도 넘은 과거니까.’

과거로 돌아오기 전 지혁은 다른 탑랭커들에 비해 열악한 피지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베이스라이너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에게 공격이 먹히지 않으니 개처럼 뛰어다니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상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활동량이 많은 선수들이 가지는 치명적인 딜레마였다.

하지만 그 약점을 완벽하게 보완하고 다양한 공격 옵션이 생긴 지금은 굳이 자신의 무기를 봉인하며 수비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

부상의 위험도 다른 플레이 스타일에 비해 월등히 높은데 멍청하게 그럴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정상급 베이스라이너인 나달과 조코비치도 장시간 경기로 인해 고질적인 부상을 달고 살았다.

“이제 와서 자세를 바꾸는 건 말이 안 되지만 형의 리버스 포핸드는 진짜 배우고 싶네요. 솔직히 제가 본 스트로크들 중에 가장 강력한 거 같아요.”

“맞아요! 니시코리의 우주 방어도 뚫어낼 정도였으니까요. 아마 다른 탑랭커들이었다면 그렇게 위닝샷을 따내지 못했을 걸요?”

“음···. 이게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면만 있는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추천하기 힘드네.”

“그래도 형하고 나달, 조코비치가 사용하는 포핸드잖아요. 요즘 유망주들 사이에서는 대세라고요.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에서도 진지하게 연구를 하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정민은 이미 수준급의 스트로크 실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마 폭발적인 파워로 찍어 누르는 포핸드에 당했던 주니어 선수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겠지.

모든 것이 그렇듯이 관건은 자세가 아니라 선수의 개인 기량에 달려 있었다.

“너한테 가장 어울리는 자세가 있을 거야. 여러 가지 샷을 시험해보고 천천히 적용시켜가면 되지. 아직 프로에 데뷔한 것도 아니니까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잖아.”“그럼 내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연습해볼게요. 저한테 리버스 포핸드가 맞을 수도 있잖아요.”

결국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여지를 남기는 정민.

지혁은 어리석은 그 행동을 굳이 저지하지 않았다.

어차피 실전에서 쓴 맛을 한 번 보고 나면 알아서 정신을 차릴 것이다.

상식적으로 평생 연습했던 샷으로도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고작 몇 개월 연습한 기술이 먹히겠는가?

“이제 슬슬 훈련을 시작하자. 어제 했던 걸 이어서하면 돼.”

““네!””

지혁의 지시에 정민들은 차례에 맞춰 코트에 올라갔다.

가장 먼저 코칭을 받는 사람은 가장 연장자인 지연이었다.

이미 실업팀에 소속되어 프로 선수로 활동 중인 그녀는 동료 선수들과 같이 훈련을 하는 게 원래 일정이었지만 매니지먼트인 IMG의 센스 있는 일처리 덕분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애초에 상금이 낮은 국내 대회보다 ATP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해외 원정에 압도적인 비중을 두고 있었기에 이런 선택을 하는 게 당연했다.

언제까지 한국에서 머무를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퉁!

반대편 코트로 공을 약하게 치는 지혁.

지연은 포핸드를 치기 딱 좋은 타구를 시원하게 받아쳤다.

탕!! 탕!! 탕!!

대충 스트로크를 20번 정도 반복했을까.

지혁은 지연을 관찰하는 것을 멈추고 그녀의 고질적인 약점과 안 좋은 습관들을 지적해줬다.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지연을 시작으로 정민, 니시오카까지 무려 2시간에 걸쳐 훈련이 진행되었다.

세 사람은 현직 랭킹 1위에게 코칭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조금도 놓치지 않았다.

가르침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여준 것이다.

***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네. 이렇게 겨울 동안 열심히 하면 괜찮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거야.”

“제가 이기적인 건 알고 있지만 1월부터 시즌이 시작된다는 게 너무 아쉽네요.”

“맞아요. 실력이 고작 며칠 만에 급상승하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형은 정말 최고의 선생님이에요.”

정해진 훈련 시간이 끝나자 아쉬운 표정을 짓는 정민들.

아무래도 비시즌기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욱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12월이 지나면 최소 1년은 지나야 코칭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지혁의 위치를 생각하면 똑같은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번 일은 이득 관계나 계약이 아니라 온전히 선의로 이루어진 일이었으니 말이다.

“랭킹을 빨리 올려. 그러면 너희들이 원하지 않더라도 자주 만날 수 있을 거야.”

“···저희가 그랜드슬램 참가 자격을 얻으려면 꽤 오래 걸릴 거예요. 아직 퓨처스도 나간 적이 없으니까요.”

“나는 첫 메이저 대회까지 9개월밖에 안 걸렸는데?”

“그건 형이라서 가능한 거죠···. 솔직히 데뷔 1년 차가 전승행진을 하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지금은 80, 90년대 올드 테니스가 아니라고요.”

아무리 정민이 한창 자신감에 가득 차 있을 시기였지만 그는 지혁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지는 않았다.

지혁이 3년 전 파란을 일으키며 달성한 전대미문의 기록은 현실적으로 인간이 깨는 게 불가능했다.

향상된 스트로크의 기술과 새로운 전략의 등장, 라켓 성능의 향상으로 현대 테니스에서 선수들의 전성기가 20대 후반까지 밀렸는데 경험이 부족한 유망주 따위가 베테랑 선수를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어마어마한 재능이 받쳐주더라도 그게 가능한 사람은 지혁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전에 없었던 골든 보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다.

“3년, 이 기간 안에 무조건 탑100을 찍어.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내가 장담할게.”

지혁은 만약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자신의 안목을 믿으라고 말했다.

정민과 니시오카는 이미 지혁을 신처럼 받들고 있었기에 의심하는 기색은 단 1%도 보이지 않았다.

살아있는 테니스의 신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데 그의 말이 틀릴 리가 있겠는가.

“네. 3년 안에 그랜드슬램에서 만나죠. 공식 대회에서 형이 보여주는 실력도 궁금하니까요. 형이 랭킹이 떨어질 일이 일어날 리는 없으니까 저희가 올라가야죠.”

프로에 데뷔하려면 일단 고등부 선수들부터 꺾어야 했지만 정민은 이미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져서 또래 선수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사실 국내 전용인 전국종별대회는 아카데미에서 분기마다 자체적으로 개최하는 서열전보다 수준이 떨어졌기에 전적으로 옳은 판단이었다.

지금 정민의 실력은 아마추어들하고 어울릴 수준이 아니었다.

“기회가 생기면 주니어 그랜드슬램도 나가 봐. 네가 참가할 수 있는 대회들 중에 가장 이름을 알리기 좋은 대회거든.”

“아! 형도 주니어 윔블던으로 이름을 알렸었죠. 그 과정을 거치면 원정 비용을 지원해주는 스폰서를 얻는데 도움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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