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이세계 드래곤 [23] 3.극기훈련 중...
"백성님!!"
바람의 정령의 기운이 사라지자마자 불현듯 아리아가 카이란을 부르면서 뛰어왔다.
아리아는 그다지 카이란과 멀리 떨어져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아이들로 인해서 인
파가 많은 것도 아니니 조금만 세심하게 주위를 기울여서 찾아도 될 것인데.. 아리
아는 굳이 정령을 사용해서 카이란을 찾은 이유는 정령과 친화력을 높이기 위한 거
였다.
"헤헷.. 찾았다.."
붉게 물들인 얼굴로 수줍은 미소를 띠며 아리아는 말을 했다. 무척 기분이 좋은 것
같은 그녀의 표정을 보자 카이란은 왜 그런지 눈치를 챘고 새삼 아리아가 엘프라는
것을 실감나게 만들자 웃음이 나왔다.
"왜 그렇게 얼굴이 붉어졌어요? 꼭 기뻐서 들뜬 표정 같이 무슨 남학생에게 고백이
라도 받은 얼굴 같아요. 후훗.. 그렇군요. 남학생에게 고백 받았군요."
물론 사미는 아리아의 정체를 모르고 있으니.. 왜 그녀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몰라서 지레짐작으로 어느 남학생에게 고백을 받은 것만 같은 그런 생각이 들어 능
글스런 미소를 그렸다.
아리아는 당황한 모습으로 황급히 양팔을 저었다.
"아, 아니에요.. 그럴 리가 있겠어요. 누가 저 같은 것에게 고백하겠어요."
"어머나.. 왠지 모르게 심히 불쾌한 말이네요. 이런 아름다운 멋진 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저 같은 것이라뇨. 다른 사람이 들으면 상당히 모욕적인 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깜짝 놀란 말투로 말을 내뱉었지만 얼굴은 능글능글 웃고 있는 사미였다.
사미의 말 맡다나 아리아의 미모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다른 인간들은 무엇이란 말
인가? 수치심에 고개도 들고 다니지 말고 모두 죽으라는 말인가?
"에? 서, 설마요.. 제가 뭐가 예쁘다고.. 물론 조금.... 아주 조금은 예쁘지만..
그렇다고 사미양에 비해 아직 멀었는걸요.
그래도 자신의 미모를 인정하긴 인정하는가 보다.
"후훗.. 겸손한 말씀을..."
사미도 자신의 미모를 인정.. 결론은 둘 다 지 잘났다고 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저를 기다리고 있던 거였나요?"
아리아는 사미와 카이란을 번갈아 보면서 질문했다. 카이란은 고개를 끄덕였고, 대
답은 사미가 했다.
"물론.. 그렇지요. 그런데 왜 늦었나요? 남학생에게 고백 받은 것도 아니라고 했는
데.... 설마 레크리에이션(Recreation) 할 때.. 같이 놀자고 하는 인간들이 있어서
.. 그것 거절하려고 하려고 늦은 거였나요?"
"아니에요.. 아쉽지만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에요.."
뭐가 아쉽다는 것인지... 아리아는 또다시 양팔을 저으며 부정했다.
"흐음.. 아닌가요? 그럼 뭔가요? 늦게 우리를 찾았다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고, 또한 기쁨이 묻어난 얼굴은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인데.. 대체 뭔가요? 이 사미는 궁금하답니다."
사미는 웃으면서 얼굴이 붉어진 이유를 듣기를 위해 계속 추궁했다. 아리아는 어색
하게 웃으면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엘프인 관계로 '이곳에 정기가 풍만
한 숲을 보니 너무 기쁘고 기분이 좋아, 너무 들뜬 나머지 숲들과 많은 얘기를 하
고 온 바람에 늦었어요' 라고 말하기에는 엄청나게 무리였다. 그런 말을 하다가는
무슨 이상한 취급을 받거나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줄 몰라했
다.
"왜 아무 말 못해요? 가르쳐 줘요? 사실 제 말이 맞지요? 남학생에게 고백 받은 거
죠? 그래서 기쁜 거였고, 지금 백성님 앞에서 그런 말하면 너무 미안할 것 같아서
못 말하고 있는 실정이죠? 맞죠?"
아리아는 침묵으로 일관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 말에 부정을 하고 싶었지만 그
러면 그럴수록 자신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 것만 같았다. 아무 말이라도 해서 어떻
게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은 그다지 내키지 않았고, 무엇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아리아는 곤란한 얼굴로 카이란의 표정을 확인했다. 사미의 말에 의해서 혹시나 그
것을 진짜로 믿어서 미운 털 박힐까봐 조바심이 났기 때문이다.
다행히 카이란은 그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자신과 사미를 보고 있자 아리아는 내
심 안심했다.
'흐음... 도와줄까나...'
재미있어서 계속 지켜볼까 생각한 카이란이었지만 아리아가 자신을 흘끔 자신의 쳐
다보는 것을 봤기 때문에 슬슬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저기 말야..."
카이란의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그녀들은 일제히 시선을 그에게 두었다. 카이란은
좀 머쓱한 표정으로 오른쪽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까 레크리에이션이라는 것이 뭐지? 처음 듣는 말이라서 말야..."
카이란은 아까 사미가 말했던 레크리에이션이라는 그 말이 뭔 말인지는 몰라서 물
어보려고 했었지만.. 그 상황에 말을 하기에는 조금 뭐해서 타이밍을 기다렸었다.
마침 곤란해하고 있는 아리아를 구해줄 겸 카이란은 궁금했던 것을 지금 물어본 것
이었다. 왠지 바보취급을 당할 것 같았지만.. 모든 원흉인 민지가 없는 이 상황에
그녀들은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음.. 그것은 말이에요.. 가볍게 몸을 푼다는 뜻이에요. 쉽게 말해.. 피로를 풀고
새로운 힘을 북돋우기 위해서 운동이나 오락등을 즐긴다는 뜻이에요. 아마도 몇 시
간동안 버스타고 온 피로 때문에 지금부터 취침시간까지 계속 자유시간이라 슬슬
아이들은 준비할걸요. 지금이 4시니까.. 적어도 저녁 6시부터 이곳 앞마당에서 슬
슬 준비할걸요."
사미는 아무런 질책을 달지 않고 순순히 가르쳐 주었다. 역시 민지가 없으니 그녀
들은 고분고분했다. 그런 것이었나? 카이란은 알아듣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
다.
"백성님도 장끼자랑 같은 것 하실 건가요?"
아리아가 그렇게 물어보자 카이란은 피식 웃었다.
"글세..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겠지? 그러는 너희는...?"
반문을 하는 카이란의 말에 사미와 아리아는 서로 빙긋 바라보며 웃었고, 다시금
카이란을 쳐다보며 각각 입을 열었다.
"당연하죠. 이미 우리는 얘기가 끝낸 상태랍니다."
"네! 이미 사미양과 얘기해서 둘이서 같이 나가기로 했어요. 후훗..."
이 둘이 동시에 나간다면 모든 시선을 끌 정도로 정말 잘 어울렸다.
"언제 그런 얘기가 오간거야?"
"아.. 이미 우리는 학교에서 얘기를 끝낸 상태였어요. 수학여행 때도 이런 것이 있
었는데.. 극기훈련 때도 당연히 있겠죠. 그러니.. 얘기를 이미 해 둔 상태라서..
우리는 참가만 하면 된답니다."
"그렇군.. 그런데.. 뭘 할건데?"
레크리에이션의 뜻을 살펴본다면 오락을 즐긴다고 하니.. 분명 그 오락이란 오락실
에 뿅뿅하는 것이 아닌 장끼자랑, 놀이, 기타등등 몸으로 즐기는 게임이라는 것으
로 내포된다. 그러니 그냥 생각 없이 나가서 폼만 실컷 재고 나오는 것은 분명 아
닐터! 분명 뭐를 할 것이 분명했다.
"노래이지요."
"그것도 듀엣으로요."
서로 호흡을 맞추며 사미와 아리아는 부드럽게 입 꼬리를 올려 서로 등을 맞댄 채
브이 사인을 취했다. 예전에 노래방에서 부르던 노래를 생각한다면.. 가수 못지 않
은 실력이기에 정말 괜찮은 선택이라 절로 고개를 끄떡였다.
"괜찮네.. 열심히 해봐."
"넷! 후훗.. 기대해 주세요.."
"꼭 봐주세요."
"자.. 그럼.. 우리도 여기에 계속 있기는 뭐하니.. 슬슬 각자 방으로 돌아가서 짐
을 풀자고."
"네... 그럼 백성님 나중에 봐야. 저희는 저쪽 건물이라서요."
사미는 정면에 있는 건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좌측에 지어져 있는 건물쪽으로 걸
음을 옮겼다. 카이란은 그녀들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자신도 땅에 놓여져 있는 큰
가방을 어깨에 들쳐 메며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하고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보니 방이 어디인지 모르잖아?"
생각해보니 사미에 의해서 어디 방인지 듣지를 못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인데 지금
어디를 가겠는가? 카이란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대부분 모르는 아이들의 모습밖
에 보이질 않았지만 40명이 넘는 아이들 중 한사람이 없겠는가!? 카이란은 세심하
게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노력하는(?) 자에게 복이 있듯이 고난(?) 끝에 드디어 카
이란은 같은 반 아이를 찾았다.
카이란은 몸을 옮겨 같은 반 아이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친한 척 그의 어깨를 걸쳤
다. 느닷없이 자신의 어깨를 걸치는 이가 있자 그놈은 귀찮다는 얼굴로 고개를 옆
으로 돌렸고, 시야에는 빙긋 웃는 표정으로 카이란의 얼굴이 보였다.
"에, 엑? 배, 백성아.. 왜?"
그는 목소리가 떨렸다. 재수 없어도 오늘처럼 단단히 재수 없는 날은 없을 거라고
그놈은 생각했다. 하필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 카이란을 만나게 됐는지 오늘 운
수는 완전 옴 붙은 날이었다.
"얌마...."
목소리를 조금 깔며 카이란이 입을 열자 그놈은 올 것이 왔구나는 생각에 그는 두
눈을 꾹 감았다. 그가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은 딱 한가지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
다. 그래서 그는 갑자기 울먹이는 목소리로 허리를 숙이며 두 손을 꼭 모아서 퇴계
이황이 그려져 있는 종이 2장을 카이란에게 내밀었다.
"우엥.. 나 돈 없어. 그러니.. 좀 봐죠."
불쌍하게 우는 목소리로 돈이 없다고 사정을 한 놈이었지만 뒤통수 뒤에 숨겨진 그
놈의 얼굴에는 식은땀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거짓말하는 것이 들통날까봐 조바심이
난 반응이었다. 사실은 돈은 조금 많이 소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것도 자그마치
세종대왕님이 무려 20장! 그것을 자신의 짐 속에 넣어져 있었다면 이런 마음 졸이
는 일이 없을 것을... 소심하게시리.. 가방 안에 넣고 다니면.. 잊어버릴까봐 가지
고 다녔던 것이다. 카이란도 양심이 있기 때문에 20장 다 달라는 말은 않겠지만 무
려 1장 이상을 달라고 할 가망성은 높았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행실을 보면 그
러고도 충분했다. 아무리 맞을 가망성이 높다하더라도 꼭 인간에게는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욕심이라는 것이 꼭 달라붙어 있다. 20장에서 1장! 아니면 2장! 무려 10%
가 날아가는 순간인데 그것을 쉽게 주겠는가!? 그는 맞고, 협박을 당하더라도 그것
을 내주지 않겠다고 묵묵히 다짐했다.
"............"
허리를 숙이고 있으니 카이란의 동공은 밑으로 내려가 있었고, 어이가 없어서인지
그는 황당함을 금치 못한 얼굴로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에라이!"
-뎅!!-
카이란은 직각 90도로 반원을 그리며 정확히 그놈의 뒤통수를 찍자 묵직 경쾌한 소
리가 퍼졌다. 그런데 왜 '뎅!!' 이라는 소리가 나는지 의문스러울 수 있다. 어떻게
인간의 머리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지 분석을 해 보자면.. 그놈의 머릿속은 종과도
같아서 안에 아무것도 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으구구구.."
뒤통수를 감싸며 그놈은 아픈 듯이 심음을 내뱉었다. 역시 너무 적었나 라는 생각
으로 그는 조심스럽게 카이란을 올려다보았다. 카이란은 윽박질렀다.
"야! 이 C뎅아! 죽을래? 내가 깡패냐? 앙!! 내가 그렇게 나쁜 놈으로 보이냐! 돈을
왜 내밀어!? "
깡패보다 더한 놈이라고 불현듯 나오려고 했지만 본능은 아직까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싶지는 않았는지 사(死)가 아닌 생(生)을 선택하자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마
음은 불굴의 의지로 배때기에 칼이 들어와도 깡다구로 버티는 그런 강한 모습을 보
여주고 싶었지만 역시나 힘을 알면 모두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느꼈다.
"훗.. 알면 됐구나.."
카이란은 씩 만족한 웃음을 보였다.
"그러는 의미에서 네가 자진납세 한 돈 성의를 봐서 가져가마.. 후후.."
말 끝나기가 무섭게 카이란은 그놈의 손에 가지고 있는 천원짜리 2장을 쏙 빼가며
자신의 상의 위주머니 속으로 골인했다.
"아...!"
재빠르게 낚아챈 카이란의 솜씨에 그놈은 그만 놀라서 탄성을 짤막하게 내뱉었다.
'제길! 저 (삐리리)같은 새끼. 윽! 열 불난다!!'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다는 것이 한이 될 것 같았다. 그는 울화가 치밀었지만 그래
도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돼, 됐어.. 그, 그럼 나 가, 볼께.."
'젠장! 재수가 없으려니까..'
그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며 카이란과 1분 1초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아 재빠
르게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하지만 한 걸음도 옮기기 전에 그는 카이란에게 목
덜미를 잡혔다.
"얌마.. 뭘 그리 급해?"
"왜, 왜? 무, 무슨 할말 있니?"
그는 또다시 겁났다. 뭔가 불안한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가서 마음속으로 온갖
욕을 내뱉었지만...
"27번은 어느 방이냐?"
"에...?"
....말 그대로 생각만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