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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의 사촌으로 살아남기-55화 (5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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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우스의 질문은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였다. 누명을 씌운 동기와 연결된 세력.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기에 나는 그나마 가능성 있는 추측을 제시했다.

“우선 혼자 독단적으로 벌인 것은 아니야. 망토도 그렇고 드란 선생님과 연결된 세력이 있을 거야. 그 세력이 루카리온 선생님에게 누명을 씌워서 발을 묶은 거라면?”

“발을 묶는 다고요?”

헬리오스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내가 너무 두루뭉술하게 말했나? 나는 머릿속에서 정리한 내용을 자세하게 풀어서 말했다.

“응. 어떤 세력이 활동하는데 루카리온 선생님이 거슬리는 거야. 드란 선생님이 나를 죽이려고 했던 것처럼 소드마스터라는 존재를 치우기 위해서 누명을 씌운 거지. 일반적인 암살자로는 루카리온 선생님을 죽이지 못하니까 죄를 뒤집어씌우고 감옥에 수감한다거나 국외로 추방하는 방법으로 세력이 활동하는 범위에서 치우려는 목적일 수도.”

설명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헬리오스는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선생님의 말은 확실히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설을 증명할 방법이 있나요?”

그의 의심은 변하지 않았다. 한결같은 모습이 보기 좋네.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가설이고 추측인데 증거가 있을 리가. 있었다면 당장 잡아서 원장님에게 넘겼겠지. ‘이 사람이 범인입니다’ 하고.

“루카리온 선생님에게 단검을 보여 달라고 하는 건 어때?”

가장 간단한 방법!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기. 증거를 조작하려고 한 것이라면 검성의 것을 훔쳐 왔거나 복제품을 만들었을 것이니.

“황실의 문양은 조작할 수 없습니다.”

“훔쳐 왔을 수도 있잖아. 은신망토도 있고.”

“제국에서 위대한 업적을 세운 영웅들만 받을 수 있는 단검이라 늘 품에 지니고 다녀야 합니다. 아무리 은신망토를 착용하고 있더라도 루카리온 선생님이 지니고 있는 단검을 훔칠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만.”

그런 법이 있었어?

난생 처음 듣는 생소한 법에 시리우스를 보자 그도 헬리오스의 말에 동의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몰랐네. 훔치는 게 불가능하다면 정말 검성이 떨어트렸거나.

‘황실의 사람이 뒤에 있다거나.’

황실의 문양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황족밖에 없다. 그리고 황후.

‘황후가 멋대로 단검을 빼돌릴 수 있을까?’

헬리오스의 말에 따르면 저 단검은 황제가 내려주는 하사품들 사이에서 제일 특별했다. 업적을 세워야 받을 수 있고, 늘 지니고 다녀야 한다니 이건 어떻게 하더라도 검성을 가리키는 증거였다.

‘그래서 더 함정 같아.’

잠깐 황궁이라고?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렸다. 드란의 뒤에 정확히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황족과 연관됐다는 것은 확실했다.

황궁 소속이었으나 이번에 아카데미로 내려온 후작가의 차남과 그의 무리들. 건물이 부서질 정도로 큰 폭발이었으나 사상자가 없고, 복수의 대상인 후작가의 차남이 경상 정도로 그친 점까지! 정말 딱딱 들어맞았다.

“세르니아 선생님.”

“어?”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깊은 상념에 잠겨있었는데 시리우스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다가온 시리우스는 내 눈높이에 맞춰 허리를 굽히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봤다.

“응! 괜찮아!”

아휴, 저 얼굴은 심장에 해롭다.

나는 당황한 마음을 갈무리하고 밝은 척하며 뒤로 물러섰다. 평소 갔으면 쫓아왔을 텐데 헬리오스가 있어서인지 괜찮으면 다행이라며 그저 웃었다.

“누가 보면 바람만 불어도 날아가는 줄 알겠군.”

그런 우리를 지켜보던 헬리오스가 삐뚜름하게 웃으며 빈정거렸다. 그의 비꼼은 이제 타격감도 없어서 나는 웃으며 받아쳤다.

“우리 쌍둥이에게 가서 좀 말해줄래? 그 애들이 그렇게 알고 있더라고.”

웃으면서 장난을 치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한 추측을 말할 경우 시리우스는 어떤 반응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헬리오스는 절대 안 믿을 것이다. 황실이 검성을 노린다는 것을.

‘황제일까. 여태까지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황후 같은데.’

어쩌면 둘 다 한패일수도.

헬리오스는 아니겠지? 원작의 데이지가 헬리오스에게 이용당한 거라면? 아니야. 헬리오스도 한패였다면 드란이 나타나기 전에 나를 죽였을 것이다. 그리고 드란을 묶은 것도 그였고. 헬리오스랑 있다 보니 의심이 옮았나 보다. 헬리오스를 믿어도 되는 걸까.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절했던 드란이 꿈틀거렸다.

“으…….”

우리는 동시에 소리가 들린 방향을 봤다.

드란이 깨어났다. 그는 상황파악이 안 되는지 눈을 느리게 껌벅이며 묶여있는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자신이 결박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를 번갈아 보더니 갑자기 자결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딱!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나에게는 익숙한 시리우스의 마법이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자결을 하려던 드란의 행동이 멈췄다.

“마법인가?”

“네. 세르니아 님 앞에서 시체를 치우고 싶지 않아서요.”

시리우스의 말에 예전에 봤던 붉은 웅덩이가 생각나 버렸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선생님이라 부르라고 핀잔을 주며 주제를 돌렸다. 헬리오스는 시리우스의 마법이 신기한지 딱딱하게 굳어서 꼼짝 못 하는 드란의 몸을 쿡쿡 찔렀다.

딱.

한 번 더 손가락을 튕겼다. 이번엔 무슨 마법인가 싶어서 얌전히 구경하고 있자 고개만 움직이도록 마법을 걸었다며 설명했다.

“음, 아직 뭘 물어볼지 못 정했는데. 선생님은 물어볼 거 있나요?”

나는 헬리오스의 눈치를 봤다. 헬리오스가 없었더라면 황후의 명령이었냐고 물어볼 텐데. 성급하게 말하면 괜히 헬리오스나 드란을 자극할까 봐 참았다.

“음, 그럼 이것부터 확인하죠. 세르니아 선생님을 죽이려고 했나?”

헬리오스의 질문에 드란은 가로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나와 헬리오스가 시리우스를 보자 그는 느릿하게 웃으며 드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드란 선생님, 강제로 진실을 말하게 하는 마법이 있다는 거 알고 계십니까? 다만 이게 부작용이 심해서 저도 쓰고 싶지 않거든요.”

“으…… 으…….”

입은 못 움직였으나 성대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두려운 감정에 떨렸다. 드란은 시리우스의 손길을 피하고 싶어서 고개를 휘저었지만 그럴수록 시리우스의 웃음은 더욱 진해졌다. 악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세르니아 선생님을 죽이려고 했습니까?”

시리우스의 질문에 드란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도 깜빡하지 못하는데 눈물만 줄줄 흐르니, 아 콧물도 같이 흐르는구나. 어쨌든 보기 흉해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럼 드란 선생님이 일부러 제가 발견하도록 단검을 놔둔 겁니까?”

옆에 있던 헬리오스는 드란 선생님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두 번째 질문도 시리우스의 말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말 한결같이 의심한다는 생각하고 있는데 눈물을 흘리던 드란의 눈이 뒤집어졌다. 동시에 코와 입에서도 피가 흘렀다. 깜짝 놀라서 다가가려는데 헬리오스가 내 손목을 잡았고, 나보다 빠르게 시리우스가 드란의 머리를 잡았다.

“이런.”

시리우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언뜻 봐도 드란의 상태는 심각했다. 눈은 흰자를 드러내며 뒤집혔고 코와 입, 귀에선 피가 흘렀다.

시리우스는 처음으로 나지막이 주문을 읊었다. 보통 마법은 시동어가 있어야 발현되지만 시리우스는 천재였기에 시동어나 마법진 대신 손가락만으로 마법을 사용했었다. 그런 그가 시동어를 말할 정도면 엄청 고난이도 마법이라는 뜻이었다.

“무슨 일이지?”

“금제가 걸려있었습니다.”

“금제?”

생소한 단어였다. 헬리오스도 처음 듣는지 시리우스에게 되물었다. 그는 간략하게 금지마법이라고 말했다. 금지된 마법이 아니라 행동이나 말을 제한하는 마법이었다. 암거래에서 정보를 주고받을 때나 거금이 걸려있는 계약을 할 때 종종 쓰인다고 한다.

“죽었나?”

“살아있습니다만 의식을 찾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머릿속이 반이나 날아갔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아니 그 정도면 살아있는 게 기적인데요. 드란의 온몸은 경련을 일어나 미세하게 떨렸다.

‘금제어는 단검이겠지.’

나를 죽이려고 했냐는 질문에는 반응이 없었으니.

“고위 마법사가 연관되어 있습니다. 금지마법은 대부분 육체에 새기는데 드란 선생님에게 걸려있던 마법은 영혼에 금제를 걸어놨습니다.”

영혼이라는 단어를 듣자 머릿속에서 한 명의 인물이 떠올랐다.

황후. 영혼을 대가로 한 저주를 아는 사람.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더욱 확고해졌다.

“드란 선생님을 어떻게 하죠?”

“음.”

헬리오스의 질문에 침음을 삼켰다.

원작 내용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 마당에 드란은 짐이었다. 정신이라도 멀쩡했으면 정보라도 캘 텐데, 그것도 아니고 괜히 검성에게 말했다가 도리어 우리가 의심받을 수 도 있었다.

‘거기다 아직 정체를 숨기고 있는 사람이 더 있을 거야.’

황후의 사람이.

제일 의심스러운 사람은 당연히 트룩 후작가의 차남. 드란처럼 정체를 숨긴 채 활동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쉽사리 움직이기 힘들었다.

“시리우스, 사제에게 치료를 받아도 못 깨어날까?”

“장담할 수는 없으나 아주 희박한 확률로 회복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시리우스는 드란의 머리를 꼼꼼히 집어보고 대답했다. 차라리 죽었다면 고민을 덜 했을 텐데. 나는 남색 망토로 드란의 몸을 감쌌다.

“뭐 하시는 거죠?”

“일단 살아있으니까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잖아.”

헬리오스는 내 행동을 이해 못 하겠다는 듯이 봤다.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냐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의 시선을 무시하며 시리우스에게 부탁해 드란을 옮겼다.

‘목적은 단검이었지만 이상하게 꼬였네.’

시리우스와 같이 건물을 나가려고 하니 헬리오스가 나를 잡았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원장실.”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 중 그나마 믿을만한 사람은 원장님이었기에.

“드란 선생님을 치료하려고요? 선생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테러와 관련된 사람인데 왜 살리려고 하는 거죠?”

“테러와 관련됐기 때문이지.”

설마 내가 ‘죽어가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내버려 둘 수 없어!’ 뭐 이래서 살리려고 했을까 봐. 나는 오지랖은 넓지만 대인배는 아니었다. 내 대답에 헬리오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가장 큰 단서는 단검이 아니라 드란 선생님이야. 죽었다면 모를까 회복될 가능성도 있다니 시도는 해봐야지.”

그가 못 알아들은 것 같아서 손목을 빼내며 설명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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