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의 사촌으로 살아남기-66화 (66/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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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황급히 그의 이마를 짚었다.

뜨거웠다. 술에 취해 평소보다 체온이 높은 내가 단번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뜨거웠다.

“시리우스 대체 무슨 일인지 말해봐!”

“……싶어요.”

“뭐?”

시리우스는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느릿하게 몸을 숙인 그는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얇은 잠옷 너머로 그의 열기가 닿은 부분이 화끈거렸다. 뜨거운 체온에 놀라 살짝 몸을 떨었으나 시리우스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나는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다독이듯 부드럽게 말했다.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몸 전체가 불덩이라 눕혀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시리우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죽고 싶지 않습니다.”

죽고 싶지 않다니?

누가 시리우스를 죽이려고 했나. 그렇다고 죽을 만큼 시리우스는 약한 녀석이 아닌데. 잠깐 사이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는 가쁜 숨을 색색 몰아쉴 뿐이었다.

‘일단 눕혀야겠다.’

열이 너무 심했기에 나는 시리우스를 눕히려고 했으나 그는 거부했다. 내 손목을 잡은 그는 물기를 머금은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세르니아 님,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엔 애절함이 묻어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러는 거지. 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자세히 이야기하라고 그를 달랬다.

“성인이 될 때까지 저주를 풀지 못하면 저는 죽습니다.”

“뭐?”

뜬금없이?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는 시리우스를 밀어내자 망설이던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에게 걸린 저주는 강력해서 영혼을 좀먹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영혼의 생명력은 길지 않습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대체 언제부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시리우스는 처연한 얼굴로 고해성사 하듯 내게 고했다.

“제가 저주에 걸렸다는 것을 인지했던 순간부터요.”

“…….”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원작에서 데이지를 위해 미련 없이 죽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까. 나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시리우스를 끌어안았다.

나보다 키도 골격도 훨씬 큰데 웅크리고 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약해 보였다.

“왜 말 안 했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다.

그게 시리우스였다. 내가 아는, 소설에 서술된 시리우스는 그런 캐릭터였다. 지금 내 앞에서 죽고 싶지 않다고 울먹이는 그와 다르게.

“세르니아 님이 싫어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죽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시계탑에 갇혀 있던 시리우스를 떠올렸다.

그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주를 풀지 않고 스스로를 감금시켰다.

내가 안 된다고 했기 때문에.

“그런데, 세르니아 님을 놔두고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제 욕심임을 아는데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시리우스는 필사적으로 내게 매달렸다.

물에 빠진 사람이 구원의 동아줄을 잡는 것처럼.

‘저주를 풀려면 스킨십을 해야 하는 건가.’

원작에서도 데이지와 키스를 하고 눈 색이 돌아왔었다.

그리고 내게도 끊임없이 스킨십을 하려고 했었지. 내가 거부해서 지금까지 억누르고 있었던 것뿐.

“제가 죽고 세르니아 님 옆에 다른 남자가 있을 걸 상상했더니 피가 거꾸로 솟았습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 옆에 있을 수 없다면 행복하도록 지켜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의 행복을 빌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절절한 고백이었다.

누군가가 내 존재를 이토록이나 갈망할 거라 생각한 적 없었다.

오직 단 한 사람만 바라보며 영원한 사랑을 속삭이는 것은 드라마 속에나 있을 거라 믿었기에.

‘왜 나를.’

시리우스를 처음 봤을 때부터 든 생각이었다.

대체 왜? 적어도 원작에서는 정령의 힘 때문에 데이지에게 끌렸다고 서술됐었다. 그러나 나는 정령의 힘도 없었고, 그와 운명 같은 일도 없었다. 첫눈에 반했다고 할 만큼 내가 매력적이지도 않았고.

‘중요한 건 이게 아니야.’

사실 계속 이유를 찾는 것은 핑계였다.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 날 좋아할 리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의 감정을 부정했다.

그럼에도 시리우스는 자신의 세상에 내가 전부라는 듯이, 올곧게 나만을 바라보며 다가왔다. 선을 긋고 밀어내고 외면해도 그는 나를 원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에 대한 복잡한 감정과 별개로 시리우스가 죽지 않길 바랐다.

단순한 오지랖인지 아니면 연민인지 모르겠다.

다만, 나를 붙잡는 시리우스를 거부할 수 없었다.

‘아직 약혼자도 없고 결혼 생각도 없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거기다 남아 있던 술기운이 쓸데없이 용기를 줬다.

따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첫 경험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섹스는 그저 섹스일 뿐. 이걸로 사람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망설임은 사라졌다.

“시리우스.”

“……네.”

시리우스가 나를 애처롭게 올려다봤다.

누가 보면 버림받은 강아지인 줄 알겠네. 내가 이 얼굴에 약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깊은숨을 뱉었다.

“하자.”

“네?”

주어와 목적어를 생략한 말은 시리우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그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너의 저주를 풀어보자고.”

“정말……이십니까?”

그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내가 수락할 거라고는 그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시리우스는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이냐고.

“그래!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하자. 근데 여기선 안 돼.”

공작가에선 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시리우스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딱!

무거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은 경쾌한 핑거 스냅 소리가 퍼졌고 순식간에 풍경이 변했다.

한 번 본 적 있는 공간이었다. 시리우스의 궁. 마법이 이렇게 편하다니.

“세르니아 님, 마지막입니다. 싫으시다면 지금이라도…….”

아니 왜 네가 무서워하는데.

그럴 거면 적어도 장소 이동하기 전에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목 끝까지 차오른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싫지 않아. 내 감정이 네 감정이랑 똑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싫은 건 아니야.”

달빛을 받아 요요히 빛나는 분홍색 눈동자를 마주 봤다.

그의 집착도 날 향한 광기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분홍색 눈동자를 보면 외면하려 해도 깨닫게 된다. 시리우스가 나를 얼마나 갈망하는지.

“…….”

내 대답에 이성의 끈이 끊어진 시리우스가 나를 번쩍 들어서 침대에 눕혔다.

출렁이는 침대에 등이 닿기도 전에 그의 입술이 먼저 겹쳐졌다. 가벼운 버드키스였다.

“이번엔 멈출 수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흔들리는 분홍색 눈동자에는 질척한 욕망이 일렁거렸다. 조금 무섭긴 했다. 그것은 시리우스와 관계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난생처음 겪을 미지의 행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래. 괜찮아.”

나는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의 하얀 손가락이 내 뺨을 쓸었다. 천천히 그의 얼굴이 다가왔다. 지하실에서처럼 거칠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을 만지듯 조심스럽게 내 허리를 감쌌다.

말랑한 입술이 닿고, 그의 혀가 내 입술을 핥았다. 키스하는 것은 여전히 어색했으나 저번처럼 도망가진 않았다. 자연스럽게 벌어진 입술 사이를 비집고 시리우스의 혀가 들어왔다. 부드럽게 입안을 휘젓는 시리우스의 혀를 살짝 건드렸다.

바짝 붙어있었기에 그의 떨림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는 내가 먼저 다가갈 거라 상상도 못 했는지 혀가 잠깐 멈췄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키스한 채로 옅은 웃음을 흘렸다. 눈을 뜨자 그도 나를 보고 있었다.

이내 시리우스의 눈빛이 탁해졌다. 괜히 자극했나.

부드럽던 움직임이 단숨에 격정적으로 변했다. 그는 내 혀를 깊이 빨아 당겼다. 서로의 혀가 얽히고 숨이 섞였다. 처음에는 코로 숨 쉬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젠 누구의 숨인지도 모를 정도로 서로의 호흡을 탐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쁜 장난을 치는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리고 아랫배에선 알 수 없는 간질거림이 느껴졌다. 혀에서 시작된 저릿한 감각은 온몸에 퍼져나갔다.

“하…….”

술기운은 가라앉았으나 열이 올랐다.

뜨거운 숨을 뱉으며 입술이 떨어지기 무섭게 시리우스는 내 목에 얼굴을 박았다. 내 목덜미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호흡을 고르고 있었는데 그의 손은 내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쇄골을 핥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더 아래로 내려갔다. 얇은 잠옷을 가볍게 벗기고 봉긋하게 드러난 가슴을 베어 물었다. 마치 다디단 과일을 먹는 것처럼. 유두를 깨물고 혀로 핥았다. 유륜 주위를 거칠게 빨아다가 쪽쪽 입을 맞추기도 했다. 간지러우면서도 아찔한 감각에 저절로 허리가 들렸다.

“흣. 너무…….”

빠르잖아.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느껴지는 감각 때문에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의 입술이 닿는 부분마다 전기가 퍼지는 것처럼 찌릿했다.

반대쪽 가슴을 커다란 손으로 움켜쥐었다. 한 손에 꽉 잡힌 가슴을 주물거리더니 갑자기 유두를 비틀었다.

“아!”

급작스럽게 퍼진 자극에 신음이 새어 나왔다. 급하게 입을 막았으나 분홍색 눈동자가 예쁘게 접혔다.

“여기가 좋은 겁니까?”

시리우스는 더욱 집요하게 유두를 건드렸다.

거칠게 움켜쥐었다가 살살 쓰다듬고, 쭉쭉 빨았다가 혀로 굴렸다. 쓸데없이 강약 조절을 잘하는 시리우스의 손길에 나는 입술을 깨물고 신음을 참아야 했다.

“그, 그만.”

내가 거친 숨을 헐떡거리며 밀어내자 그제야 그의 얼굴이 가슴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에는 만족하지 못한 기색이 감돌았다.

잠시 몸이 떨어지자 서늘한 공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열기가 조금 가라앉자 민망함이 몰려왔다.

“추우십니까?”

나른한 목소리로 묻는 시리우스의 눈동자에는 기이한 열기가 담겨 있었다.

기다란 손가락으로 느릿하게 내 복부를 쓰다듬더니 요염하게 웃었다.

“제가 따뜻하게 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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