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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다른 생각이 있는 거겠지. 일단 진실의 맹세를 끝내도록 할까.”
헬리오스는 금방 넘어갔다. 그의 성격상 괜히 황후를 건드려서 경계심을 만드는 것보다 완벽하게 잡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자고 할 줄 알았는데. 말리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헬리오스의 마지막 질문을 기다렸다.
“조율에 대한 건 나중에 진실의 맹세 없이 나누기로 하고, 지금은 좀 개인적인 질문을 하지.”
의외였다. 내가 프레세스에 대해 물은 것처럼 그도 검성의 세력이나 공작은 이 계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황후와 관련된 질문을 할 거라 생각했었기에.
“그대는 수호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그의 입에서 나온 질문은 더 의외였다.
수호자라는 존재조차 헬리오스에게 들었는데 어째서 내게 수호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고 묻는 걸까. 사실 나도 변수를 최소로 줄이기 위해선 수호자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했었다. 그러나 시간도 없었고, 주어진 힌트가 너무 적어서 범위조차 잡을 수 없었다.
“수호자는 황태자님에게 들은 것이 전부입니다. 저도 수호자에 대해 여러 추측을 해봤으나 예상가는 인물도 없고,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질문의 의도를 읽으려고 했지만 내 머리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기에 그냥 솔직하게 대답했다. 헬리오스는 천천히 내 얼굴을 뜯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가끔 너를 볼 때 수호자와 비슷한 느낌이 나곤 해서 물어봤다. 내 착각이었나.”
수호자와 비슷한 느낌인가. 나는 헬리오스가 던진 힌트 조각을 머리에 집어넣으며 이야기를 마쳤다. 내 손등에 있는 문양이 사라지며 진실의 맹세가 끝났기 때문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헬리오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급작스러운 방문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유익한 시간이었다. 티타임은 오늘 물어봐 줄까?”
앉아서 인사를 받은 헬리오스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나는 밤이를 잠깐 내려다보고 거절했다. 시리우스가 마법을 하려면 궁에 가야 한다고 했으니 내일이나 모레가 낫겠지.
“아니요. 아직 준비가 덜 끝나서요. 내일이나 모레쯤 괜찮을까요?”
“알겠다. 이틀 동안 황궁으로 출근하도록.”
“네. 내일 뵙겠습니다.”
시리우스는 방음 마법을 해제하고 따라 나왔다. 일주일 내내 황궁 출근인가. 거리는 가깝지만 준비해서 나오는 게 귀찮다는 생각을 하며 집무실 문을 열고 나오자 난감한 얼굴을 하는 헬리오스의 집사와 익숙한 여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황후 폐하께서 세르니아 님을 초대하셨습니다.”
“뭐?”
황후의 측근, 수잔.
어째서 그녀가 여기 있는 거지? 일꾼들 사이에 세작을 심는 건 쉬울 테니 내 방문을 황후가 알고 있더라도 크게 문제 되진 않는다. 황궁에 황후의 눈이 깔렸을 건 이미 예상했으니. 그런데 그녀가 나를 찾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황후와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을 듯해서 헬리오스에 부탁한 거였는데.
“세르니아 님, 함정입니다. 가셔선 안 됩니다.”
시리우스가 내 왼쪽 귀에 작게 속삭였다. 그렇겠지. 아무리 봐도 함정이었다. 반대로 기회이기도 했다. 최악의 경우 블레닌의 밤 전까지 황후를 만나지 못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초대했으니.
“먼저 찾아올 줄은 전혀 예상 못 했지만 어차피 만나려고 했잖아. 시리우스 나는 괜찮으니까 지금부터 밤이가 보고 들은 것을 영상구에 저장할 수 있어?”
수잔이 듣지 못할 만큼 작은 소리로 시리우스에게 말했다. 분홍색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그는 내 손목을 꽉 잡았다.
“가능은 합니다. 다만 저도 세르니아 님과 같이 가겠습니다.”
“그럼 연결을 하고 와. 기다리고 있을게.”
“세르니아 님…….”
여기서 시리우스가 가겠다고 하더라도 수잔이 막을 것이다.
그렌드윈에게 했던 것처럼. 그럴 바엔 우선 혼자 가고 시리우스는 중간에 난입하는 편이 이득이었다. 밤이를 통해 위험한 상황을 바로 알 수 있을 테니. 시리우스도 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더 이상 억지는 부리지 않았다. 시리우스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가지.”
“안내하겠습니다.”
헬리오스의 궁을 나와 황후궁으로 가는 동안 대화는 없었다. 수잔도 나도 딱딱하게 얼굴을 굳힌 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짐승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황후궁에 도착하자 앞서가던 수잔이 멈추며 말했다.
“미리 말해줬다면 시리우스에게 맡겼을 텐데. 하지만 이 아인 보통 짐승이 아니라서 똑똑하거든. 얌전히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렴.”
“황후 폐하께서 털 달린 짐승을 싫어하십니다. 죄송하지만 여기에 놔두고 입장해주십시오.”
하나도 안 미안한 표정으로 말하는 수잔은 단호했다. 밤이가 없인 절대 들어갈 수 없지. 함정인 것을 알면서도 온 이유였기에.
“그럼 안타깝지만 황후 폐하에게 다음에 방문한다고 전해주겠어? 이 아이를 공작가에 나누고 내일이나 모레쯤 다시 찾아오겠다고.”
나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밤이가 안 되는 것을 알았으니 오늘은 물러나고, 다른 마법 아티팩트를 준비해서 다시 만날 수 있는 약속까지 잡았으니까. 그러나 수잔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명령을 기다리는 기계처럼 멈춰있던 그녀는 내 말이 끝나고 세 박자나 늦게 대답했다.
“그럼 들어가시지요.”
“뭐? 황후 폐하께서 짐승은 싫어하신다며? 무례를 끼칠 순 없으니 오늘은 돌아가겠어.”
나는 등을 돌려서 왔던 길을 가려고 했으나 수잔이 내 어깨를 잡고 휙 돌려세웠다. 아무리 황후의 전속 시녀라 할지라도 내게 해선 안 될 행동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