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 : 그 아이들의 모험(1)-
“데네브! 엄마가 놀랄만한 깜짝 선물을 준비하자!”
데네브라고 불린 은발의 소년은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자신의 누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분홍색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을 보니 말리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고 그냥 동의할 경우 더욱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이미 준비한 선물은 어쩌고?”
데네브는 저번 주, 샤르테 왕국 수도에서 특별히 주문해서 포장까지 마친 선물을 떠올리며 물었다. 연보라색 머리카락을 검지로 배배 꼬며 고민하던 그녀는 상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너무 식상하잖아! 아빠도 구하지 못하는 굉장한 걸 우리가 구해오면 엄마가 좋아하지 않을까?”
“누나는 이 세상에서 아빠가 못 구하는 게 있다고 생각해?”
“아니.”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 그녀를 보며 데네브는 나이에 맞지 않게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소년과 소녀는 세르니아와 시리우스의 자식이었다. 첫째 리겔은 연보라색 머리카락에 분홍색 눈동자를 가지고 태어났고, 리겔보다 한 살 어린 데네브는 은발에 은회색 눈동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세르니아와 시리우스를 더해서 적절하게 둘로 나눈 느낌! 그러나 둘의 성격은 세르니아도 시리우스도 닮지 않았다.
“답은 나왔네. 없는 걸 구할 순 없으니 포기해.”
데네브가 시니컬한 얼굴로 말했으나 리겔은 물러서지 않았다. 웃음기를 지우지 않은 그녀는 습관처럼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상념에 잠겼다.
“음, 그럼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건 어때?”
“누나 준비한 선물은 마음에 안 들어? 갑자기 왜 새로운 선물 타령이야?”
그들이 준비한 선물도 나름 특별한 물건이었다.
리겔과 데네브의 마력의 결정을 보석처럼 세공해서 귀걸이를 만들었다. 한쪽은 라일락을 닮은 연보라색 결정이었고, 한쪽은 오팔처럼 빛을 받을 때마다 미묘하게 색이 바뀌는 우윳빛 결정이었다. 곧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리겔이 떨어져 있을 동안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는 뜻에서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새로운 선물이라니. 평소에도 리겔은 예상치 못한 행동을 자주 했으나 오늘따라 유독 이해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고 있었다.
“사실 어제…….”
리겔은 고운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데네브에게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어제 우연히 호수를 산책하고 있는 세르니아와 시리우스의 대화를 들었다. 올해 결혼기념일에는 세르니아를 위해 엄청 특별한 것을 준비했으니 기대하라는 시리우스의 이야기를.
“준비한 귀걸이도 특별하잖아. 우리의 마력을 보석으로 만든 거니까 세상에 단 하나뿐인걸.”
“하지만 임팩트가 부족하지 않아? 이미 아빠의 마력으로 만든 목걸이가 있으니까. 거기다 여러 복합 마법이 잔뜩 달린 걸로.”
시리우스가 예전에 세르니아의 생일 선물로 선물한 목걸이는 텔레포트에 텔레파시. 실드, 파이어 에로우 등 편의 기능과 호신 기능을 동시에 넣은 마법 아티팩트였다. 웬만한 왕국의 보물보다 귀할 정도!
그에 비해 리겔과 데네브가 준비한 선물은 평범한 장신구였다. 성인도 되지 않은 나이에 마력을 결정으로 변환시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으나 상식의 범위를 아득히 넘어선 시리우스의 능력 앞에서는 보잘것없어 보였다. 시리우스는 같은 마법 경지를 목표로 하고 있는 리겔에겐 넘어야 할 산이었으니 더욱 지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데네브는 그런 마음을 이해했다.
“그래서 뭘 선물하려고.”
“음, 라칸 할아버지에게 물어볼까?”
마법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리겔은 어릴 적부터 시리우스를 따라 마탑에 자주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라칸과 친해졌다. 그는 여전히 일 안 하는 상사 때문에 고통받고 있으나 그것과 별개로 자식도 제자도 없었기에 리겔을 손녀처럼 예뻐했고 리겔도 그를 잘 따랐다.
“그래.”
그래서 데네브는 라칸이 리겔을 말려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탑으로 향했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저택에는 마탑으로 바로 갈 수 있는 텔레포트가 설치되어 있어서 이동이 어렵지 않았다. 한순간에 저택에서 마탑의 입구로 이동한 남매는 입구를 지키고 있는 마법사에게 인사를 했다.
“실라! 좋은 아침이야.”
“좋은 아침입니다. 오, 데네브 도련님은 오랜만에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실라는 오랜만에 방문한 데네브를 반갑게 맞이했다. 심심하면 마탑에 놀러 가는 리겔과 달리 정령에 관심이 많은 데네브는 일 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 가끔씩 마탑에 왔다. 오늘처럼 용건이 있을 경우에만.
“실라 라칸 할아버지는 어디 계셔?”
“부마탑주님은 집무실에서 서류작업을 하고 있을 거예요.”
“고마워!”
실라에게 인사를 건넨 남매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집무실로 향했다.
원래 마탑주인 시리우스가 사용하는 집무실이었으나 대부분 비어있는 관계로 라칸이 사용하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리겔은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할아버지!”
“리겔!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제가 언제 연락하고 왔나요?”
“그건 그렇지. 데네브는 정말 오랜만이군.”
리겔의 대답에 수긍한 라칸은 오랜만에 보는 데네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확실히 작년 블레닌의 밤 이후 못 만났기에 데네브도 라칸이 내심 반가웠다. 그러나 훈훈한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할아버지 세상에서 제일 희귀한 것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다짜고짜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진 리겔 때문에.
라칸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질문의 의도를 가늠했다. 언제나 말썽을 일으키는 리겔의 전적을 생각했을 때 단순히 궁금해서 한 질문은 아닐 거라 판단했기에. 반면 데네브는 금방 눈치챘다. 전후 사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묻는다면 라칸은 정말 희귀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구할 수 있는 것 중에서 희귀한 것을 알려 줄 것이므로.
“알면 직접 구하러 갈 거냐?”
“에이, 뭔지도 모르는데 왜 구하러 가겠어요. 사실 데네브와 내기를 했거든요.”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으나 리겔은 흔들림 없이 뻔뻔하게 웃으며 넘겼다. 라칸의 시선을 받은 데네브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누나랑 할아버지를 찾아왔어요.”
“그래서 각자 뭐라고 생각하는데?”
꽤나 타당성 있는 변명이었으나 라칸은 순순히 믿지 않았다. 의심을 지우지 않은 채 되묻자 잠시 머뭇거리는 데네브를 감싸며 리겔이 대답했다.
“저는 알로에르 나무라고 했어요! 르헨 왕국에서 신목으로 섬기는 특별한 나무잖아요! 르헨 왕국에 딱 한그루 있으니까 그 나무가 제일 희귀하지 않을까요?”
그녀는 일부러 장황하게 말을 이어가며 데네브가 생각할 시간을 벌어줬다. 데네브는 리겔의 순발력과 능청스러움만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흠, 일리 있는 의견이구나. 데네브는?”
“저는 역사에 딱 한 번 등장했던 드래곤의 심장으로 만든 전설의 에고소드라고 생각합니다. 기록 수정이 불가능한 신성 왕국의 기록이 에고소드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으며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기록에는 한 자루라고 적혔지만 실제로 아닐 수도 있잖아!”
데네브가 적당한 대상을 대자 리겔이 빠르게 반발했다. 라칸의 의심을 지우기 위해서 자신의 주장을 우기는 것처럼 행동했다. 데네브는 속으로 그녀의 연기력을 감탄했다. 라칸도 리겔의 연기에 속아 넘어갔다.
“확실히 둘 다 희귀하긴 하지. 세상에 단 한그루밖에 없는 신목과 한 자루밖에 없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검이니.”
남매의 말을 믿은 라칸은 턱을 쓰다듬으며 상념에 잠겼다. 아이들의 호기심에 걸맞은 대답을 내놓기 위해.
“하지만 꼭 이 세상에서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희귀하다고 할 수는 없지. 나는 대마법사가 우연히 빛이 닿지 않는 숲에서 발견한 빛을 삼키는 꽃이라고 생각한단다.”
빛을 삼키는 꽃은 마탑을 세운 초대 마탑주인 대마법사가 여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꽃이었다. 대마법사의 기록에 하얀 줄기를 가지고 있었고 반투명한 꽃잎에서는 달빛처럼 은은한 빛을 낸다고 적혀있었다. 빛이 닿지 않은 숲에서 유일하게 빛을 내는 존재! 문제는 그 꽃은 마력이 닿으면 시드는 성질 때문에 인간은 만질 수 없는 특이한 꽃이라는 점이었다.
“에고소드나 신목은 발견한다면 인간이 잡을 수 있으나 빛을 삼키는 꽃은 발견하더라도 인간이 만질 수 없지. 그래서 나는 빛을 삼키는 꽃이 희귀하다고 생각해. 다만 이건 내 생각일 뿐,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 다른 것처럼 희귀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 다르단다. 그러니 아쉽지만 너희들의 내기는 무승부로 끝내는 게 어떠니?”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오늘 또 한 가지 배워가는군요.”
남매는 라칸의 연설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척했으나 원하던 대답을 들어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리겔과 데네브는 인사를 하며 빠르게 집무실에서 빠져나왔다. 순순히 돌아가는 남매를 보며 라칸은 작은 불안이 싹텄다. 리겔이 이리도 얌전히 돌아갈 리 없었기에.
***
남매는 곧장 빛이 닿지 않는 숲으로 이동했다.
빛이 닿지 않는 숲은 지명 그대로 울창한 잎에 가려져 빛이 들어오지 않아 낮에도 밤처럼 어두웠다. 그나마 태양이 떠 있는 동안은 이동이 가능했으나 밤이 되면 깜깜한 동굴에 들어간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곳이었다. 인적이 드물고 빛이 없다는 특성 때문인지 숲에 사는 몬스터들은 일반 몬스터들보다 2배는 강하고 개체 수도 많았다. 이동이 어려운 지형과 들끓는 몬스터들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의 발길이 끊겼고, 그 숲을 기준으로 샤르테 왕국과 브릴리언 왕국은 국경을 그었다.
“괜찮을까.”
“괜찮아. 누나만 믿어. 몬스터들이 떼로 몰려와도 한 방에 죽여줄게!”
물론 데네브가 걱정한 것은 몬스터가 아니었다.
샤르테 왕국과 브릴리언 왕국의 국경인 숲은 금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숲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누나, 괜히 마력 고갈될 때까지 공격하지 말고 여차하면 텔레포트 할 수 있는 마력은 남겨놔.”
어쨌든 미지의 장소.
남매가 웬만한 기사단보다 강할지라도 방심해선 안 될 장소였다. 데네브는 혹시나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대응할 수 있도록 대비하려 했다. 일단 부딪치고 보는 누나의 성격을 너무 잘 알았기에 자신이라도 방심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