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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82화 (82/148)

악녀의 이혼은 쉬울 줄 알았다 83화.

“잭 윌슨.”

“예, 공작 부인.”

“당신네 길드에 의뢰를 넣겠어.

지금 당장.”

생글거리고 있는 길드장에게 앤시아는 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영지에 들어오는 용병의 관리와 영지의 치안을 강화하는데 협조를 부탁해.”

“물론 협조해야지요. 단지, 축제참여 의사를 밝힌 용병의 수가 많기에 비용이 다소 올라갈 수 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정말로 이 길드장이 도움을 주러 온 게 맞는 걸까.

의심의 눈초리로 길드장을 바라보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날짜가 촉박하기는 해도 마수토벌 축제는 문제없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단지 원작에선 시녀장이 상당한 역할을 했을 터. 앤시아가 그만큼의 몫을 해내야만 했다.

그래도 지금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용병이 늘면 축제 전 몸 풀겠다며 마수가 있는 산에 오르는 이들도 생길 것이다. 통제하기보다는 적당히 구슬려 한곳으로 모으면 축제 전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으리라.

좀 이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도움은 될 것이다.

“엘리, 잭을 집무실로…… 아니다, 내가 직접 가 볼게.”

엘리를 잭과 함께 보내려던 앤시아는 생각을 바꿨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리샤르의 빈자리가 서운했기에 얼굴을 보고 싶었다.

이런 결정을 혼자 해 버려서 손발이 어긋나느니 리샤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나았다.

“공작 부인께서 이토록 영민하신 줄 미처 알아보지 못한 저 자신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릅니다. 외부인의 출입이 뜸해진 그 윈티드 영지에서 축제라니,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할 일이지요. 그걸 또 거침없이 추진하시다니 이 잭 윌슨의 심장이 오랜만에 뜨거워졌습니다.”

길드장의 심장이 뜨겁는 차갑든 앤시아의 관심 밖이었다. 적당히 대꾸하며 빠른 걸음으로 집무실로 향하는 내내 길드장은 끊임없이 아첨을 해 왔다. 앤시아가 길드에 찾아갔을 때와 180도 달라진 태도였다.

집무실에 도착하자 마침 아서가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마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평소와 달리 어딘지 모르게 딱딱한 아서의 반응에 앤시아는 속으로 당황하면서 겉으로는 웃음을 보였다. 이에 아서의 굳었던 얼굴도 미미하게 풀렸다.

반응을 보니 앤시아에게 문제가 있어 딱딱하게 구는 건 아니었나보다.

“공작님께서는 잠시 영지를 살피러 가셨습니다. 전하실 말이 있으신가요?”

“아, 그래? 그럼……. 아서 경, 이쪽은 바람 길드장이고 잭 윌슨이라고 해.”

“그윈티드 영지에서 가장 크고 빠른 길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기사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래서 네가 왜 여길 왔느냐 묻는 듯 아서의 딱딱한 시선이 길드장에게 박혔다.

앤시아를 대할 때와 달리 딱딱한 반응에 조금 전의 경계심이길드장을 향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쪽 길드장이 통신구를 사용해서 축제 소식을 전파했다고 해. 다른 길드의 용병들이 금방 도착할 거라고 해서 알리려고 왔어.”

앤시아의 말 중 ‘통신구’라는 단어에 잭을 보던 아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실실 쪼개며 무해한 척 굴던 길드장이 단번에 긴장할 만큼 매서웠다.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지만 일단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기에 앤시아는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

“아무래도 아직 준비 단계라 준비가 미흡한데 외부인이 늘어나면 경비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길드에 의뢰를 넣을까하는데 괜찮을까?”

“그건 좋을 것 같습니다. 바람 길드는 그간 믿을 만한 행보를 보여 줬으니까요. 단지 오늘 일은 따로 면담을 좀 해야겠습니다.”

아서의 커다란 손이 길드장의 어깨를 움켜쥐는데 앤시아가 다 움찔할 만큼 아파 보였다. 어깨를 잡힌 길드장은 신음도 내지 않고 웃었지만, 얼굴이 벌게지고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앤시아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서는 잠시 망설이다. 어차피 리샤르를 통해 알게 되리라 여겼는지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통신구를 이용하면 황궁이 개입하게 된다는 걸 이자가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니 깊은 대화가 필요한 겁니다.”

그건 앤시아뿐 아니라 귀족이라면 기본적으로 아는 이야기였다.

아서가 길드장을 어디론가 데려가기에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고 뒤돌아섰다.

나라의 주요 기관이나 충신 가문들에게는 황제가 직접 통신구를 하사하기도 했다. 공공연하게 있는 일이라 딱히 비밀도 아니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았다.

레슬리 백작가도 나름 충실히 황가를 따르고 있건만 아직 받지 못했다. 만약 통신구가 있다면 영상 통화하듯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겠지만, 황가에서 제재를 가해 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까지 감시한다고? 한다.

그래서 더럽고 치사해서 사사로 이 통신구를 이용할 때는 황가 관련 칭찬에 슬쩍 자신들의 안부를 섞는 수준이었다.

북부는 자체적으로 통신구를 만들어 낼 마석과 기술이 충분하지만 황가에서 대놓고 감시를 하는 통에 눈치만 봤다.

통신구란 게 그런 거란 건 모두가 알고 있다.

길드에 통신구가 지급되는 건의외였으나, 그들이 주고받는 정보를 떠올려 보면 황궁에서 그 내용만 죽 정리해도 전국적 유행이나 흐름 등은 쉽게 파악할 수 있으리라.

“축제 내용에 황가를 비방하는 내용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심각할까……?”

앤시아는 통신구에 대한 아서의 예민한 반응이 이해가 안 됐다. .

이 일의 후폭풍이 얼마나 클지는 상상도 못 한 앤시아의 궁금증이었다.

***

요 며칠 앤시아는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악녀가 되는 건 포기했다 쳐도 훌륭한 공작 부인 역할을 할 계획은 전혀 없었다.

예정보다 일찍 진행하게 된 마수 토벌 축제만 아니었어도 적당히 유능한 사람들에게 맡기고 편하게 지낼 생각이었다.

축제만 무사히 끝내면 푹 쉴 거다.

그 생각 하나만으로 잠을 줄여 가며 매일 날아드는 서류를 검토했다.

부부 침실은 근처에도 가지 못했고 앤시아의 방에는 침대를 제외한 모든 곳이 서류들로 넘쳐 났다.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 이어져 밤이 깊어서야 기절하듯 잠들 수 있었다.

“마, 마, 마님, 크, 큰일 났어요.”

“어? 왜? 뭔데?”

엘리는 목소리를 차마 크게 내지도 못할 만큼 잔뜩 긴장해 있었다.

얼마나 떨고 있는지 죽은 듯 잠들었던 앤시아가 놀라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

눈을 뜨자마자 다시 감길 만큼 쨍한 창밖을 보자 앤시아는 큰일이 나긴 났구나 직감했다.

“세상에, 얼마나 잔 거야? 뭐부터 처리해야 하지? 엘리, 깨워줘서 고마워.”

“마, 마님. 서류가 문제가 아니에요.”

“응? 왜? 혹시 또 폭탄이 터지 기라도 한 거야?”

앤시아의 다급한 질문에 엘리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다행히 줄리도 있어 앤시아가 바라보자 감정의 동요 없이 서 있던 그녀의 입이 기계적으로 열렸다.

“삼.십 년. 만에 방.문.하셨.습.니다.”

“줄리?”

엘리보다 더 심각해 보이는 줄리의 뒤에서 비앙카가 간식 바구니를 들고 헤실 거리며 나타났다.

두 사람과 달리 조금도 심각해 보이지 않는 비앙카 덕에 앤시아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비앙카, 혹시 무슨 일이 있는지 들은 게 있니?”

“네, 마님. 왕자님이 도착하셨대요. 저도 구경 가고 싶은데 다들 너무 심각해서 말도 못 꺼냈어요.”

“왕자님?”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앤시아가 고개를 기울이자 그제야 제 본분을 잊지 않은 줄리가 침착하지만,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정정해 주었다.

“제국의 태양이 되실 분, 황태자 전하께서 저희 영지에 방문하셨습니다.”

“누가 어딜 와?”

“제국의 태양이 되실…….”

“아, 응. 들었어. 들었는데. 황족이 연락도 없이 갑자기 방문했다고?”

귀족이 귀족을 방문할 때도 미리 서신이나 사람을 통해 알린 후 시일을 정하고 찾는 게 일반적이었다.

황태자의 기습적 방문은 말도 안 될 일이었다.

게다가 원작에선 언급조차 안될 만큼 존재감이 미미한 인물이었다.

“이상하네.”

북부의 공작은 황제의 부당한 대우에도 항상 따라왔다. 시험하듯 한두 번씩 과한 요구를 해 오지만, 그때마다 별다른 저항도 없는 그윈티드 공작이었다.

황제는 일방적으로 무력이 강한 공작가를 경계하며 압박했고 그때마다 공작가는 기사단의 숫자를 줄이거나 뛰어난 기사를 황궁으로 보내며 황제의 뜻에 따라왔다.

일방적으로 이득을 취하면서도 황제의 불안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공작가의 끊임없는 양보에도 서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황족들은 북부의 황량함 속에서도 꿋꿋이 영지를 키워 낸 그윈티드와 북부 그 자체를 불편해했다.

황족의 방문으로 위상을 높일빌미 따위 절대 주지 않을 터.

황태자가 북부에 올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황궁은 마차로 한 달이 걸릴 만큼 북부에서 먼 곳에 있었다. 레슬리 백작가가 황궁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아, 게이트로 왔겠구나.”

황가의 피를 이은 자만이 여닫을 수 있는 이동 게이트의 존재가 뒤늦게 떠올랐다.

원작에선 언급도 되지 않은 게이트의 존재를 백작가에서 동화책을 보다 알게 됐을 때 얼마나 황당했던지. 처음엔 그 게이트를 이용해 공작가와 백작가를 오갈 수 있을 줄 알고 좋아했었다. 황가의 피를 이은 자와 함께하지 않는 이상 탈 수 없다는 걸 알고 빠르게 포기했지만.

규모가 큰 영지에는 하나씩 존재했으나 북부라면 질색하는 황족이 이곳을 방문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북부인들 특유의 침착함은 오만 함으로 받아들이고, 존재만으로도 기사들의 환심을 사는 그윈티드 공작을 못마땅해했다.

마석의 납품량을 늘리거나 유통을 철저히 단속하고, 공작 부인의 자리까지 한미한 귀족 영애로 정해 줄 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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