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5화 (5/306)

05. 원수가 코앞에 있었다 (3)

나는, 나는 동생이 없었다. 이렇게 저와 달리 엄마를 닮아 오밀조밀하게 생김새에 그와는 별개로 발랑 까진 쓰레기 같은 동생 따윈 없었다.

그런데, 방금 자신은 이 녀석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도 과거와 비교하면서. 며칠 전에 느꼈던 토기가 올라오듯 울렁거리는 기분 나쁜 감각이 다시 찾아왔다.

“…아니야.”

여긴, 여긴 내 삶이 아니야. 나는 저도 모르게 말을 속삭이듯 흘렸다. 그에 서이수가 이상한 눈초리를 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내용은 못 들었는지 관련된 의문을 담지는 않았다. …만일 물었어도 지금의 나는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나는 받은 충격을 해소하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으며 몸을 돌렸다.

“…서이나? 야, 왜 그래?”

“…….”

“야, 야!”

어깨가 붙잡혔다.

짝-!!

나는 그 손을 강하게 쳐 냈다. 서이수는 쳐 내진 손을 황망히 바라보고 있었다.

“난….”

“…누나?”

“난 너 같은 동생 없어….”

“…뭐?”

“난 너 같은 동생 없다고!!”

그래. 나는 동생이 없었다. 나는 이 세계 사람이 아니야. 내 원래 세계에선 너 같은 동생은 없었어. 난, 난 내 세계를 잊고 싶은 게 아니야. 내가 살던 세상의 엄마, 아빠가 있었고…, 얼마 없지만 친구도 있는 데다 또 회사도 다녔고 직장 동료들이 있었다. 그 안에 동생은 없었다.

나는 다시 몸을 돌려 길을 걸었다. 그 뒤에서 서이수가 무슨 얼굴로 저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 채.

***

“뭐야….”

서이수는 황망히 손을 내렸다.

이게 뭐야. 겨우, 겨우 술 좀 먹고 담배 좀 폈다고…. 그리고 말 좀 안 들었다고 저런 말을 할 것까진 없잖아. 그렇게 밀어낼 것까진, 없잖아.

자신이 충분히 문제가 있음을 안다. 자신이 잘못했음을 안다. 하지만, 왠지 자꾸만 엇나가게 움직이고 싶었다. 자꾸만 반항심이 일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서 멋대로 굴었는데, 결과가 이거다.

그래도, 그래도….

‘이수야. 누나랑 놀까?’

자신을 따뜻하게 내려다보며 말한 눈동자를 알고 있다.

‘난 너 같은 동생 없다고!!!’

방금처럼 그런 모진 눈을 가진 눈동자는 저는 모른다. 아무리 자신이 엇나가더라도 누나만큼은, 누나만큼은 제 편이라고 생각했다.

울컥, 올라오는 감정에 서이수는 멀어지는 등을 향해 소리쳤다.

“나도 너 같은 누나 없어!!!”

하지만, 그 등은 자신의 외침에도 매정히 돌아보질 않았다. 그것은 마치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만 같았다.

서이수는 그에 가슴이 도려내질 것만 같은 상처를 받았다. 눈가에 뜨거운 무언가가 샘솟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자리를 박차 뛰어갔다.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무시했다.

그보다는,

“무시하지 마!!!”

“크헉!!”

서이수는 팔꿈치를 들어 그 등을 내리찍었다. 서이나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신음을 내질렀다.

“무시하지 마!! 내가!! 내가 네 동생 아니면 뭔데!!!”

“너… 크윽…, 너도 방금 누나 없다고…!!”

이 누나 새끼, 들었으면서도 무시했어! 서이수는 더 울컥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다. 서이나가 땅바닥에 엎드려 등을 문지르며 항변하는 소리에 서이수도 지지 않고 말했다.

“네가 이상한 소릴 해서 그렇잖아! 저번에도 그래! 내가 이상한 소리 하면 죽여 버린댔지!!”

그 말에 서이나는 뭐라 한마디 하려고 뒤를 돌아봤다가 표정이 묘해졌다. 그는 벙긋거리던 입을 다물고 서이수를 바라보다 주변을 살피곤 동생의 손목을 붙잡았다.

“놔.”

“다른 데서 얘기하자.”

“놓으라고.”

“이따가 놔줄게.”

서이나는 서이수의 팔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마치 절대 놓치지 않을 것처럼. 그게 자신을 붙잡고 저를 이끌고 가던 어린 날의 저희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서이수는 모진 말과는 달리 마음속으로 설핏 안도감이 들었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 그 뒤를 따랐다.

***

“자.”

나는 가방 깊숙이 파묻어 놨던 길거리 티슈를 꺼내 서이수에게 건넸다. 서이수는 휴지를 강탈해 가듯 가져가더니 코를 강하게 풀었다.

“사내새끼가… 그거 가지고 우냐?”

나는 그 모습을 멋쩍게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그에 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이번엔 제 잘못도 있어 입을 다물었다.

‘그래.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말이 좀 심하긴 했지, 내가….’

왠지 미안함에 가방 안에 있던 음료수를 꺼내 주자 녀석은 이번에도 말없이 강탈하듯 가져갔다.

“아, 미안해. 내가 미안해. 말이 심했어.”

결국 새침하게 삐져 있는 녀석의 등쌀에 못 이겨 나는 두 손 들며 항복을 외쳤다. 서이수는 그런 나를 흘낏 보더니 고개를 팩 돌려 버렸다.

“야. 서이수.”

“…….”

“이, 이수야아~.”

이름만 부르기 좀 낯간지럽긴 했지만 이 삐진 녀석을 달래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서이수는 파드득 몸을 떨며 거리를 벌렸다.

“징그럽게 뭐야!”

“어, 흠, 흠흠. 아, 미안하다고. 기분 좀 풀어라? 어?”

너무 대놓고 싫어해서 괜히 민망해졌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사과를 다시 하니 서이수는 심통 난 얼굴로 코를 훌쩍였다.

“…진짜 다신 그딴 말 하지 마.”

나는 그 말에 녀석을 쳐다봤다. 붉어진 눈가는 녀석이 방금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녀석, 누나 꽤 좋아했구나.’

죄책감이 느껴졌다. 소중한 누나의 자리를 자신이 차지해서. 추억 따위 하나도 공유하지 않은 저 때문에 상처를 받게 해서, 미안했다.

“…미안.”

네가 아는 그 누나는 여기 없어. 서이수. 이 몸을 차지한 건 다른 세계 사람이야. 너라는 사람을 전혀 모르는, 그런 서이나야.

“알면 됐어.”

서이수는 내 진심 어린 사과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고개를 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제가 아닌 본래의 서이나의 기억 속 서이수를 떠올렸다.

‘누나!’

‘누나, 같이 가!’

‘누나, 누나! 이거 짱 멋지지!’

저를 올려다보며 해맑게 미소 짓는 서이수가 있었다.

“…누나.”

그리고 눈앞엔 지금은 삐뚤어졌어도, 여전히 제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서이수가 있었다.

“…응.”

이번엔, 왠지 제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야, 근데 너 술이랑 담배 끊어라. 운동하는 새끼가 그게 뭐냐?”

하지만 울고 싶어도 진짜로 애 앞에서 울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다른 주제를 생각하다가 중요한 문제를 상기했다. 생각난 김에 바로 한 소리 하자 서이수가 고개를 팩 돌리며 툴툴거렸다.

“내, 내 맘이거든?!”

“끊어라? 어? 끊어야 된다?”

하지만, 나는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방금 만난 무리들을 보자니 딱 봐도 일진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호옥시나! 메인 스토리에 조금이라도 영향이 가는 엑스트라가 이놈이 될지도 몰랐다. 특히! 여주를 납치, 감금하든가 협박을 한다든가 기타 등등의 오합지졸 엑스트라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왜냐면, 얘가 엄마 닮아서 좀 생기긴 했어도 딱 봐도 메인급 얼굴은 아니니깐!

원래 남주나 서브남주는 인소에선 눈 돌아가는 미남들이 아니던가! 그러니 얜 대상 외였다. 그러니 진짜 누나는 아니더라도 어른으로서 하루라도 빨리 이놈을 그 일진 무리에서 빼돌릴 의무가 있었다.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내 동생이란 놈이 범죄를 저지르는 꼴은 못 본다! 그로 인해 상심하실 부모님도!

“…노력해 볼게.”

다행히도 서이수는 내 말에 선뜻 응했다. 좀 더 실랑이 피울까 봐 걱정했는데 말이다. 정 안 되면 손수 주먹을 들어 줄 생각이었던 나는 한껏 안도하며 웃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일을 하나 해치웠단 기분에 홀가분해진 나는 녀석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서이수는 얼굴을 찌푸리며 내 손길을 피했다. 짜식, 쑥스러워하긴?

나는 흐뭇이 웃으며 녀석이 저를 보고 치를 떨며 싫어하는 걸 지켜보다 문득, 정작 가장 중요한 확인을 안 했다는 걸 떠올렸다. …근데, 얘 내가 생각하는 그 일진… 맞겠지? 그렇지? 잠시 고민하다가 혹시나 싶어 물었다.

“야, 근데 너 일진 같은 거야?”

“같은 건 또 뭐야. 일진이 일진이지.”

“아, 그래…. 암튼 그거냐고.”

“응.”

담백한 긍정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조심스레 열었다.

“너 그거 탈퇴할 생각은 없냐?”

“그걸 왜 탈퇴해? 들어가면 얼마나 좋은데.”

아니. 그거 들어가 봤자 쓸모없어. 네 앞길만 막힐 뿐이라고!

“서열이 올라갈수록 인맥도 다지고 나중에 사회 진출 했을 때도 좋은걸?”

음? 잠깐, 뭐라고?

“나중에 취업하기도 좋고.”

얘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야! 일진놀이 하다가 네 신세 다 망칠 수 있다고!”

“뭔 소리야! 이게 다 인맥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인데!”

인맥? 이인매액?? 아니, 얘가 대체 언제부터 이딴 사회에 찌든 생각을… 아, 아니지. 그보다 이게 무슨 소린지 정확히 확인해야 했다.

“야. 왜 서열이 오르면 인맥을 다질 수 있는데?”

“그야 보통 서열 높을수록 나중에 기업 회장 아들이라든가, 사장이라든가 그런 사람들 되던데? 그런 사람들이랑은 지금부터 친해지면 좋잖아?”

억. 할 말 없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마저 드는 것 같았다. 화, 확실히 인소니깐 그럴 수… 있긴 하네…? 그래. 서열이 높을수록, 그, 사대천왕인지 뭔지 그런 애들은 기업 회장 아들이라든가 손주라든가 그런 소재 많았지? 그러니까 이런 생각을 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어쩌면 얘는 천잰가? 내가 아니라 얘가 공부해야 되는 거 아냐?’

진지하게 동생 놈을 바라보는데, 녀석은 어깨를 으쓱이며 당당히 말했다.

“그니깐 내가 일짱이 돼서 그 녀석들을 내 발아래에서… 악! 왜 때려!”

네가 그럼 그렇지. 너무나도 단순한 논리와 덜떨어진 생각에 저도 모르게 손이 가 버렸다.

‘이 한심한 놈을 어쩜 좋지.’

옆에서 왁왁거리는 놈을 무시하며 나는 이 모자란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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