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6화 (6/306)

06. 혹시 서브남주? (1)

결국 내비친 결론은 이 녀석이 범죄만 저지르지 않게 하자, 였다. 나는 그날 녀석을 붙들고 한참을 설득했다.

“너 절대 범죄는 안 된다. 어? 납치, 감금, 협박 등등 뭐 이런 거.”

“그걸 내가 왜 해?”

“쓰읍. 벌써부터 술 처먹고 담배 피우는 놈이…? 당장 약속해라?”

“아, 알았어. 안 할게.”

“너 나랑 약속했다? 어? 만약, 어기면….”

어기면? 서이수가 제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해사하게 웃으며 손으로 목을 그었다.

“넌 나한테 뒤지는 거야.”

꿀꺽. 진심 어린 살의를 녀석도 느꼈는지 서이수는 침을 삼키며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화해를 마치고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

그리고 2년 후.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허탈함과 초조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경찰서 앞에 서 있었다.

사건의 경위는 약 30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일반고인 도방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부모님은 울면서 기뻐했다. 내가 운동 쪽으로 가지 않은 걸 아빠는 좀, 아니 많이 아쉬워했지만 자식이 공부를 한다는 게 더 기뻤는지 우리 집안에 학자가 나왔다며 굉장히 좋아했다. 그리고 학원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만두었다. 아무래도 학원비가 너무 비쌌고, 이젠 얼추 공부 방법도 터득했다. 여전히 공부는 어려웠지만 밝은 미래를 생각하며 이전 생에서도 하지 않았던 처음으로 하는 야자에 적응하기 위해 졸린 눈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런 중에 선생님이 황급히 저를 불렀다.

“이나야. 잠시 나와 볼래?”

“아, 네.”

뭐지? 너무 뜬금없이 불러져 괜스레 긴장되었다. 선생님께서 대체 무슨 일이 있으시기에 야자 중에 부르시나 기다리는데, 들려오는 말은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는데… 네 동생이 거기 있다고….”

콰광!! 이 무슨 날벼락인가. 나는 떡 벌어지는 충격에 말을 잃으니 선생님이 부모님의 소재를 물어 왔다.

“어머님이랑 아버님은? 집에 안 계시니?”

“어…, 두 분 여행가셨어요.”

실은 집에 계셨지만 차마 그 두 분께 이 사실을 알려 드리고 싶진 않아 대충 지어 냈다. 선생님은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어서 하교하는 게 좋겠다며 나를 내보내셨다.

그렇게 나는 정신없이 택시를 타고 그 문제의 경찰서 앞에 당도했다.

나는 문을 열기도 전에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 게 느껴졌다.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서이수, 이 새끼! 범죄는 안 저지른다고 나랑 약속했으면서! 아, 아니, 침착하자. 아직 진실은 모르잖아. 혹시 다른 이유로, 이곳에 온 걸지도 모르는 거니까! 그러니깐 침착하자. 나는 녀석의 보호자로 이곳에 온 거다. 과연 미성년자인 내가 왔다고 내보내 줄까 싶었지만 우선 들어가야만 했다.

하지만, 경찰서라 그런가 여간 긴장된 게 아니었다. 병원은 많이 갔어도 경찰서는 처음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내쉬곤 힘차게! 가 아니라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시, 실례합니다아….”

“아! 제가 안 그랬다고요!”

“저 새끼가!”

“아, 조용! 조용!!”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 북새통이었다. 아, 나 이거 본 적 있어. 조폭물이나 형사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거지? 근데, 복장이 전부 다 교복이란 게 정말 넌센스였다. 나는 멍하니 그 참혹한 광경을 지켜보다 주위를 멍하니 둘러봤다. 그러다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이수야!”

“누, 누나…!”

내가 부르자 서이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녀석은 꽤나 불안했던 모양인지 나를 보자마자 굳어 있던 안색을 찌푸리며 얼굴을 살짝 글썽였다.

“너, 너 이 시키…!”

나는 거기에 동정심이 일려 했지만 그보단 혼내는 게 먼저다 보니 한 대 쥐어박으려 했다. 그러나 나는 손을 들다 말고 안색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너, 너 얼굴이 그게 뭐야!”

“누나아….”

나는 서이수의 처참한 몰골에 경악하며 녀석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붙들었다.

“누가 너 때렸어! 어?!”

서이수는 붙잡힌 제 얼굴이 쓰라렸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아차 싶어 서둘러 손을 놓고 주위를 둘러봤다.

“어….”

그런데, 어느샌가 주위는 저희들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몰린 시선에 뻘쭘해하는데 그런 저를 구원해 주는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 학생이 이 학생 보호자야?”

경찰이었다. 나는 질문에 퍼뜩 정신을 차리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부모님이 지금 집에 안 계셔서… 근데 이게 무슨 일인 거죠?”

경찰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상황을 설명했다.

“학생 동생, 패싸움 나서 잡혀 온 거야.”

“예?”

“패싸움 났다고. 이번엔 양쪽 측에서 합의한 것 같아서 봐주는데 다음번엔 그러지 마.”

“아, 네. 죄송합니다.”

꾸벅, 고개 숙여 사과하자 경찰은 가 보란 듯이 손을 내저었다. 나는 다시 한번 인사하고 서이수의 손을 붙잡았다.

“가자.”

“아, 저기… 누나.”

“뭐.”

가라앉은 어조로 대답하자 내 기분이 상당히 언짢아졌음을 느꼈는지 서이수는 내 눈치를 보며 슬쩍 말했다.

“…쟤도 데려가면 안 돼?”

서이수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 새끼, 자기 처지가 어떤지는 알고는 있는 거야? 내가 점점 표정을 굳히자 서이수는 움찔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래도 뜻을 굽히지 못하겠던지 다시 한번 내 옷자락을 잡고 살살 흔들었다.

“누나아….”

이 새끼가…? 지금 상황도 모르고 되지도 않는 애교를 부려? 그것도 쥐어 터진 얼굴로? 갈수록 화병만 돋우는 상황에 내가 살벌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자 서이수의 얼굴도 같이 창백해졌지만 녀석은 끝내 말을 돌릴 생각을 없어 보였다.

으득, 나는 녀석의 그런 고집에 이를 갈았다. 너 나중에 두고 봐. 차마 경찰서 안에서 사고를 더 벌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성질을 죽이며 서이수가 가리킨 방향을 노려보듯 바라보았다.

“대체 누구길…….”

대체 누구길래 간이 튀어나온 소릴 하나 보자며 으름장을 놓으려던 난 말을 하다 말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눈 가까이 길러진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깊은 눈두덩이. 나이에 맞지 않게 퇴폐미가 곁들여진 색기. 멀리서 봐도 조각같이 섬세한 콧날과 턱선까지! 그곳엔 웬 치명적이게 잘생긴 미소년이! 방금까진 보이지 않았던 게 이상할 정도로 시선을 잡아끄는 절세의 미인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그걸 목도하자 파바박! 하고 스치는 하나의 생각.

‘남주다! 아니면 적어도 남주와 대립하는 서브남주가 틀림없어!’

오랫동안 일하지 않던 경고등이 쉴 틈 없이 울렸다. 세상에, 엑스트라로만 알고 있던 내 동생 놈이 메인 스토리에서 볼 법한 미남과 아는 사이라고? 이거 진짜 실화야?

요 몇 년간 여러 사건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그 평범하다면 평범할 일상에 익숙해져 그동안 이곳이 인소 속 세계관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나는 그동안 서이수 자식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며 그 멱살을 잡아서 끌고 와야 했고, 익숙지 않은 공부에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이곳이 무슨 세계이고 스토리고 나발이고 주변을 살펴볼 여유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정신없는 삶을 사는 와중에도 이렇게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인물의 등장은 이제껏 한 번도 없었다. 이건 주변을 살피고 말고로 따질 게 아니었다. 보는 순간 내 본능이 자꾸 외쳤다. 저 녀석은 중요한 인물이라고! 남주 또는 서브남주가 틀림없다고!!

“쟨 누구냐.”

나는 자꾸만 외치는 본능에 표정을 굳히며 서이수에게 물었다.

“어…, 누나, 몰라?”

그런데 서이수의 반응이 이상했다. 마치 이상한 걸 들은 것처럼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나름 소란스럽던 주위도 조용해졌다. 슬쩍 둘러보니 마치 별종을 보는 것 같은 시선들이 나를 발견했다. 아, 그래. 나만 모르는 거지? …아니, 나라고 해서 추측이 안 가는 건 아니거든? 어? 그냥, 어? 확인차. 어? 확인차 묻는 거라고! …아, 알아! 안다고! 쟤 미모가 말해 주잖아! 일짱! 일짱! 어? 맞지?! 그렇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걸 직접 입으로 꺼내 확인할 용기는 내게 없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에 눈만 굴리는데 서이수의 떨떠름한 음색이 들려왔다.

“…누나 이런 데 관심 없는 건 알았는데… 진짜 관심 없구나.”

서이수는 한숨을 잠시 내쉬더니 미소년을 흘긋 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쟤 우리 학교 일짱이야. …혹시나 싶어서 말하는데 동쪽에선 우리 학교가 가장 강한 건… 알고 있지?”

앗. 아앗! 역시 일짱이구나?! 그래…, 저 얼굴로 일짱이 아니면 범죄다 범죄. 역시 인소라 그런지 서열이 높을수록 얼굴과 비례하는 건 사실인가 보다…. 아니, 근데 날 너무 우습게 아네? 내가 일짱은 자세히 몰라도 내가 졸업한 도방중이 가장 이름 날리는 건 알고 있다고! …다만, 일짱이네 이짱이네 할 때마다 너무 오글거려서 자리를 피하거나 귀를 틀어막던 것이 이렇게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을 뿐이었다.

나는 미심쩍게 저를 노려보는 서이수의 시선을 피하며 슬쩍 그 미소년을 다시 보았다. 처음 본 일짱의 얼굴은 정말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엄청난 미인이었다. 저런 미모가 진짜 있긴 하구나…. 나는 속으로 연신 감탄만 했다. 아, 아차. 정신 차려! 서이나! 미모에 정신 팔려서 얼굴 풀리면 안 되지! 나는 저절로 풀어지려는 얼굴을 황급히 붙잡았다. 그러나 너무 붙잡은 탓인지 지나치게 굳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남들 보기엔 제 얼굴이 화가 난 얼굴이란 걸 인식하질 못했다. 그리고 서이수는 그런 내 표정을 보곤 흠칫, 굳었다가 몰래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을 감추지 못한 조심스러운 어조로 내게 속삭였다.

“어, 어쨌든, 쟤네 부모님이 여기 올 상황이 못 돼서… 쟤도 데려가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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