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41화 (41/306)

41. 우리 대화 좀 하자 (2)

“…넌 또 뭐야?!”

누구긴 누구야. 너 때려눕혔던 놈이지.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순 없었다. 주위의 시선은 너무나 많았고, 또 지금 자신은 정체를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 이렇게 모자와 마스크까지 구비한 상태니까! …근데, 시선이 너무 많다. 너무 눈에 띄는 건 싫은데… 에라이! 모르겠다! 그냥 뻔뻔하게 가자!

“…….”

하지만, 이미 한 명은 확실히 눈치챈 것 같았다. …어차피 저 녀석은 처음부터 예외였다. 그래도 이제껏 반응 없던 놈이 저를 보자마자 눈이 커져서 입을 벌리는 건 꽤나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래, 아직 나한테 마음은 있다 이거지?

나는 마스크 안에서 미소 지으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반휘혈은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당황했는지 입을 잠깐 달싹였다. 그러나 곧 상황 판단이 된 모양인지 얼굴을 굳히며 내게서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 반응이 썩 마음에 차진 않았지만 그래도 반응이 아주 없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에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반휘혈이 있는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야, 내 말이 꼽냐? 어? 이게 한 놈도 아니고 두 놈이나 날 무시하네? 하!”

내가 아무 말도 않고 멋대로 그쪽으로 향하자 그 덩치 큰 개자식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아, 이런. 무시해서 기분 나빴구나? 근데 이걸 어쩌지? 전혀 미안하지가 않네?”

나는 그 모습에 티는 나지 않겠지만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이 양심 없는 새끼가 뭐라는 거야? 하하. 없는 취급 해 주는 것만으로 다행인 판국인데. 나는 옆에서 자꾸 시끄럽게 떠드는 걸 귓등으로 흘리며 반휘혈에게 말을 건넸다.

“반휘혈, 가자.”

“…….”

하지만, 반휘혈은 내가 말을 건넸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꾹 다문 채로 묵묵부답을 고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잔뜩 상처받아 고집을 부리고 있는 아이같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아니, 절대 기분 탓이 아닐 거다. 이걸 어떻게 풀고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나 고민하는데 옆에서 불청객이 자꾸만 끼어들었다.

“이 미친 새끼들이…! 감히 날 무시해?!”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왔는지 덩치 놈이 씨익씨익 콧김을 날렸다. 그리고 나를 향해 대뜸 주먹을 휘둘렀다.

“어이쿠.”

나는 휘둘러진 그 주먹을 재빨리 피하며, 미간을 모았다. 역시 몸이 커서 그런가, 너무 느리네. 쯧쯧. 딱 봐도 제 몸뚱어리 믿고 나서는 부류임이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그래, 몸 스펙 좋으면 정말 좋지. 얼마나 좋아. 힘도 좋고, 덩치도 크고, 그 누구도 함부로 개기기 힘들잖아, 그치? 나는 덩치 놈의 뻗은 팔 안쪽으로 몸을 비틀어 그대로 회전해 재빨리 밀어 넣었다.

“…그런데 말이지.”

녀석의 품에 내가 갑자기 파고들자, 덩치 놈이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녀석과 눈을 똑바로 마주한 채 주먹을 강하게 쥐며 이를 아득 깨물었다.

“고딩이 중딩을 괴롭히는 건, 너무 선 넘지 않았냐?! 이 개자식아!!!”

빡-!!

강력한 타격음이 녀석의 얼굴에서 강하게 울렸다. 정확히 옆얼굴을 가격한 공격이 정면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동시에 녀석의 눈이 까뒤집히면서 커다란 덩치가 흔들리더니, 곧 쿵 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너 이빨 안 나가게 한 것만으로 다행히 여겨라. 어?”

이 순간 소설 내용에 간섭? 개나 주라지! 어어디 고딩이 나이 어린 중딩을 괴롭혀?! 이 새끼 전부터 참 거슬려? 어?! 나는 더 강렬한 한 방을 녀석의 면상에 박아 주고 싶었지만 있는 인내심 없는 인내심 모두 긁어모아 겨우 참았다. 아, 딱히 치아 비용 대 줘야 할까 봐 두려웠던 건… 아니, 사실은 무서웠다. 글쎄, 치아 비용이 얼마나 살 떨리는 일인데…! 어휴, 상상도 하기 싫었다. 이 순간마저 현실적인 금전 문제를 떠올리는 나 자신에 염증을 느꼈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궁색한 변명을 중얼거리며 툭툭, 기절한 듯 누워 있는 녀석을 쳤다.

“야, 일어나. 너 깨어 있는 거 다 알아.”

이 정도로 맞아서 기절해 봤자 어차피 오래 기절하지 않는다. 길어 봤자 몇 초 정도일까, 실은 노래방에서도 그리 오래 기절해 있던 게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이 자식 나한테 더 맞기 싫어서 누워 있던 게 아닐까 뒤늦게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크, 크윽… 너, 너 이 자식…!”

그리고 덩치 놈은 제 발에 움찔거리더니 주춤주춤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위협하듯 몸을 부풀리며 인상을 험악하게 찌푸렸다.

“치사하게 빈틈을 노리다니…!!!”

아니, 빈틈은 네가 노렸거든? 허, 참.

나는 덩치 놈의 어이없는 말에 헛웃음을 흘리며 황당한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이잇…!! 야!! 니네들 뭐 하고 있어!! 이 새끼 손에 연장 둘렀다!! 빨리 족쳐!!”

하지만, 덩치 놈은 뻔뻔스레 나를 계속 파렴치한으로 몰아갔다. 연장? 무슨 얼어 죽을 연장? 지금 맨손에 때려눕혀졌다고 사람을 저렇게 모함해? 하!

“야, 말은 똑바로 해라. 내가 무슨 연장을….”

“뭐? 완전 치사한 새끼네! 맨손인 우리 짱한테 연장을 휘둘러?”

“저 새끼 밟아!!”

“야, 우리도 연장 챙겨!”

“…….”

너무 어이가 없어 대꾸하려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느새 나를 둘러싼 모든 무리가 우수수 야구 배트며, 각목이며 여러 연장을 챙기는 걸 목도했다. 아니, 저건 대체 어디서 난 거야…? 나는 당황해서 눈을 껌뻑이다가 슬쩍 옆에 있는 반휘혈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을 줄 알았던 반휘혈과 딱 눈이 마주쳤다. 반휘혈은 언제부터 나를 보고 있었는지 몰라도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휙, 시선을 피해 버렸다.

‘야, 이 매정한 자식아…! 아무리 내가 모질게 굴었어도 그렇지, 시선 부딪히자마자 피하냐…!’

나는 그 무정한 모습에 입을 쭉 내밀며 녀석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야, 휘혈아. 우리 잠시 휴전하자.”

“…….”

“…아! 네 말 다 들어줄 테니까! 나 좀 도와줘라! 어? 내가 너 찾으려 다니려고 얼마나 싸돌아다녔는지 알기나 해? 그 고생을 봐서라도 좀 도와줘!”

나는 반휘혈의 팔을 붙잡고 매달리기를 시전했다. 반휘혈은 그런 내 빌붙음에 조금 말려들었는지 움찔하더니, 매달린 나를 흘끗 보곤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야?”

“어?”

나는 뜬금없는 반휘혈의 말에 매달리다 말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가, 라고 물으려던 찰나,

“이야앗!!”

“우왁!”

나는 휘둘러지는 각목에 반사적으로 반휘혈이 맞지 않게끔 밀어 녀석과 나 모두 피하게 만들었다.

“…….”

그리고 반휘혈은 갑작스러운 난입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인상을 설핏 찡그리더니 각목을 휘두른 녀석을 퍽-! 하고 발로 차 날려 버렸다.

“휘유~.”

그 시원스러운 타격과 함께 날아가는 난입객에 나는 휘파람을 불며 반휘혈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짜식, 역시 인소 남주로 추정되는 값은 하는구나. 그렇게 녀석에게 칭찬을 하는 중인데 반휘혈은 다시 내게 다가와 날 빤히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찾아,”

“아, 잠시만.”

반휘혈이 채 다 말하기도 전에 다른 놈이 또 공격해 왔다. 나는 그것을 재빨리 피하며 공격한 놈의 배를 주먹으로 가격해 쓰러트린 후, 연이어 공격하려는 다른 녀석의 발을 걸어 중심을 잃게 한 뒤에 얼굴을 강하게 가격했다.

“어, 그래. 뭐라고?”

나는 휙휙 손을 털며 저희를 둘러싸 긴장하고 있는 녀석들을 견제한 채 반휘혈에게 물었다.

“…나 찾,”

그때, 또 한 명이 반휘혈을 공격하려 하자 반휘혈은 말을 자르고 그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녀석은 한껏 치솟는 짜증을 억누르지 못하겠던지 그 평소 무덤덤한 얼굴을 팍 찌푸리며 이를 악물더니, 그대로 공격한 놈의 얼굴 정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빠아악!!!

“워오오….”

나는 그 아찔한 공격에 입을 가리며 탄성을 내뱉었다. 아, 방금 쟤 입에서 뭔가 나왔… 흠흠. 난 아무것도 못 봤어. 어허. 못 봤다니까? 저건 내 책임이 아니야. 응. 그렇고말고. 슬쩍 고개를 돌리며 방금 일어난 일을 외면하고 있는데, 주위가 확실히 방금 그 공격으로 위세가 줄어든 게 보였다. 나는 그 상황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반휘혈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이며 내게 다가와 불쑥 어깨를 붙잡았다.

“어? 뭐야. 갑자기…?”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라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는 모자와 마스크로 가려진 틈 사이로 튀어나온 내 눈에 자신의 얼굴과 시선이 마주칠 수 있게 고정시키더니, 한 단어 한 단어 똑바로 입에 담아 말했다.

“나 찾으러 다닌 거, 진짜냐고.”

“어? 어…. 진짠데…?”

그럼 거짓말로 했겠니? 내가 어처구니없이 대꾸하자 반휘혈은 그제야 만족한 듯 얼굴이 풀어지면서 살짝 미소 지으며 붙잡고 있던 어깨를 풀어 냈다.

“…그럼 됐어.”

삽시간에 변하는 감정 기복에 나는 황당해져 녀석을 바라봤다. 아니, 사춘기도 아니고… 아, 참. 얘 사춘기는 맞지. 나는 새삼스레 예민한 녀석의 행동 범위에 이해 못 할 시선으로 녀석을 바라보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우, 이래서 애들은 다루기 어렵다니까.

나는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금치 못하고 푹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 연애질 하는 거?”

그렇게 한창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목격하며 심란해하던 중 무리 가운데서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불쑥 들렸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대번에 눈을 부릅뜨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중얼거린 놈으로 추정되는 놈이 움찔하더니, 들고 있던 야구 배트를 더 강하게 쥐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무시하면서 그 친구를 정확히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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