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40화 (40/306)

40. 우리 대화 좀 하자 (1)

“이나야, 어디 가?”

“어. 금방 다녀올게.”

“그래. 밤길 조심하고. 혹시 휘혈이랑 연락되면 알려 주고.”

“응.”

그때, 나가려던 나를 발견한 엄마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래서 난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문밖을 나서고 또 한숨을 푹 내쉬며 핸드폰을 들었다. 나는 조용한 액정을 잠시 동안 툭툭 두드리다가 곧 결심하고 전화 통화를 연결했다.

뚜르르- 뚜르르-.

반휘혈 성격처럼 단조로운 통화음이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고객이 전화를 받질 않아….]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통화음의 끝은 음성 사서함을 안내하는 문구였다. 나는 한숨을 다시 내쉬고 머리를 긁적이며 발을 움직였다.

우선, 발이 닿는 데로 가 볼까.

***

“여기도, 없네….”

편의점 안쪽 골목을 살피자 그곳은 텅 비어 어떤 인기척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여기로 몇 번째 허탕이지?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또 걜 어디서 봤더라…?”

공원도 가 봤고, 지난번에 마주친 길도 가 보고, 또….

“아, 폐공장. 거기도… 아니, 지금 이 시간엔 거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무서워서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으, 낮에도 거기 들어가기 무섭던데…. 밤은 오죽할까 싶어 나는 바로 그곳은 머리에서 지워 버렸다.

“…그 부잣집 도련님이 설마 그 먼지 많은 공장에서 죽치고 앉아 있겠어.”

나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결론을 지으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그날 나는 반휘혈의 일체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녀석은 대체 어디로 간 건지 걱정이 들 정도였다. 연락은 여전히 닿지 않았고 녀석의 행방을 알 만한 한도훈과 그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해 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이 순간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지만 눈에 닿지 않는 곳에 있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중이었다. 그리 친하지는 않았지만 나 좋다고 붙어 오던 애가 갑자기 이렇게 연락이 끊기다 못해 사람 불안할 정도로 소식이 닿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한도훈의 말에 의하면 요즘 들어 출석만은 제대로 하던 녀석이 학교에 오지도 않고 있다고 한다.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그때 너무 매정하게 말한 게 문제였던 걸까? 하지만, 지금도 그때 내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면, 그 녀석의 어떤 스위치를 눌러 버린 건가? 아니, 얼굴을 봐야 대화를 하든 말든 할 거 아냐… 내 동생 되고 싶단 놈이 겨우 그 정도로 물러나는 거야, 지금? 그 정도 각오밖에 안 됐던 거야? 어? 혹시 내가 만만했어? 어?

“…그래도 연락은 좀 받아라. 이 망할 놈아.”

점점 갈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듯 나는 초조함에 휩싸이고 있었다. 평소에도 그다지 집중이 되지 않던 공부였지만 요즘은 나날이 더욱 글자가 눈에 안 보일 지경이었다. 결국 나는 오늘도 10분도 채 가지 못하는 집중력에 두 손으로 머리를 긁으며 책상에 엎어졌다.

아, 망할. 오늘 공부도 글렀네, 글렀어.

시험이 당장 다음 주였으나 나는 잡히지 않는 공부에 오만상을 다 찌푸렸다. 그러다가 책상 속에 담임 몰래 숨겨 둔 핸드폰을 흘끔 보았다.

여전히 잠잠한, 아니, 반휘혈에게서만 조용한 메시지 내역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급격히 피로가 몰려오는 두 눈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때였다.

“음?”

배경 화면이 통화 화면으로 갑자기 바뀌었다. 발신인은 한도훈이었다. 한참 야자 중이다 보니 당장 받을 수는 없어 나는 주위의 눈치를 슥 본 후, 통화를 거절하고 곧장 메시지를 보냈다.

[무슨 일이야? 나 야자중인데.]

혹시 반휘혈을 발견한 건가? 싶어 아직 오지 않은 메시지 창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한도훈 (으)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몇 초쯤 지났을까, 한도훈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바로 확인 버튼을 눌러 내용을 확인했다.

[누나! 반휘혈 찾았어요!! 근데 얘 또 혼자 서열싸움에 휘말렸나 봐요!!! 저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거든요?! 올 수 있다면 와주세요!! 누나네 학교랑 가까운 다리 아시죠! 거기 밑이래요!!]

나는 그 말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반에 남아 있던 모든 아이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하지만, 나는 그걸 신경 쓰지 않고 서둘러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나야? 무슨 일이야?”

그러자 근처에 앉아 있던 반 친구가 걱정되었는지 제 안부를 물어 왔다.

“나 가 볼게. 혹시 선생님이 물어보면 나 아파서 조퇴했다고 해 줘. 부탁할게. 그럼 나 간다!”

그런 반 친구에게 볼일만을 전한 나는 정신없이 가방을 챙겼다.

“어? 잠깐…!”

“이나야?”

분주하게 벗어나는 반에서 반 친구와 이혜인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지만 그걸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나는 신발을 챙기고 가방 안에 넣어 뒀던 모자와 마스크를 꺼냈다.

반휘혈, 너 지금 거기서 딱 기다려라. 진짜!

나는 두 눈을 불태우며 전속력으로 반휘혈이 있을 장소로 내달렸다.

***

“하아, 하아….”

나는 급하게 뛰다 보니 숨이 차 급히 호흡을 몰아쉬었다. 다리에 거의 도착하자 나는 숨을 한 번 돌리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들고 있던 마스크를 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난 심상치 않게 무리 지은 인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그 인원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저거….”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숫자였다. 딱 봐도 지난 폐공장보다도 많은 인원이었다. 게다가 반휘혈은 혼자… 아니, 옆에 웬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 그 근처를 배회하며 치근덕거리고 있었다.

“이야~, 반휘혈이~. 요즘 너무 겁도 없이 혼자 다니더라? 어? 도방중 일짱이라 이거야?”

“너 귀엽다~. 누나가 잘해 줄게. 누나랑 같이 다닐래?”

“큭큭, 아서라. 얘가 너 같은 애로 성이 차겠어?”

“죽을래? 네 빻은 면상보단 훨씬 낫거든?”

그 말에 킥킥거리며 비웃음과 야유가 무리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그 소름 돋는 울림에 인상을 찌푸리며 잠깐 들렸던 말을 생각했다.

‘누나… 누나라…….’

방금 그 말은 저 여자가 반휘혈보다 연상임을 알려 주는 증표였다. 여성은 교복을 입고 있었고, 주위에 있던 무리들도 교복을 입고 있었다. 간간이 사복을 입고 있는 사람도 보였지만, 같은 무리임은 틀림없는 걸로 보아 아마 같은 학교겠지. 나는 이 사실에 허, 하며 차가운 탄성을 내뱉었다.

지금 그러니까, 애 한 명 잡겠다고 저 지랄을 한다는 거지? 나는 차게 식어 오는 머리에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지난번에 못 다한 얘기를 해 볼까? 반휘혈.”

그때, 무리의 가운데서 덩치 큰 한 놈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나는 그 커다란 덩치를 반사적으로 노려보다 곧 그 인물이 이상하게 낯이 익다는 걸 깨달았다.

‘…어디서 봤지?’

잠깐 고민하는데 그 덩치 큰 놈이 반휘혈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 우리 서클로 들어와라. 나도 그 반반한 낯짝 덕 좀 보자고. 어?”

그놈은 징그럽게 웃어 대며 친한 척 반휘혈에게 팔을 걸려고 했다. 하지만, 반휘혈은 감흥이 없는 눈빛으로 차갑게 그 팔을 단호히 쳐 냈다.

“아, 하… 하하… 야, 반휘혈. 너 지금 주제 파악 안 돼?”

하지만, 냉정히 쳐 내진 제 팔에 그놈은 자존심이 퍽 상했나 본지 아까까지 능글맞게 웃던 면상을 버리더니 정색하며 위협하듯 몸을 부풀렸다. 그러나, 반휘혈은 그런 놈을 여전히 무생물 바라보듯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런 반휘혈의 태도에 그놈의 얼굴이 굳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주 신사적으로 대해 주려니깐… 야, 내가 만만해? 어? 만만하냐고.”

덩치 녀석은 손가락으로 툭툭, 반휘혈의 가슴을 찔러 대며 시비를 걸었다. 나는 그 모습에 당사자가 아님에도 느껴지는 불쾌함에 인상을 굳히고 있는데, 그동안 반응이 없던 반휘혈이 드디어 움직였다.

뚜둑.

“으, 으아악…!! 내! 내 손가락!! 놔!!! 놓으라고!!!!”

살벌하게 뼈가 꺾이려는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이 들 때, 덩치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고통스레 울부짖는 그 소리에도 반휘혈은 여전히 무심한 기색으로 그 손가락을 천천히 꺾었다.

“으아악!!!”

결국 애처로울 정도로 고통에 몸부림치던 녀석은 그 통증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모양인지 다른 손으로 반휘혈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주먹은 반휘혈의 간단한 몸짓에 빗나가고 말았다. 겨우 목을 잠깐 꺾는 걸로 공격을 피해 버린 반휘혈은 제가 잡은 손가락을 힐끗 바라보다 좀 더 꺾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악!!! 좀…!!! 놓으라고…!!!!”

덩치 녀석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지 이번엔 온몸으로 들이박으며 반휘혈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리고 이번엔 덩치 녀석의 시도는 성공했다. …하지만,

쿠당탕!!

“윽…!!”

들이박기 전, 반휘혈이 재빨리 그 손을 놓고 옆으로 자리를 이동해 버려 덩치 놈이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는 불상사만 일어난 것만 빼면 그 시도는 아주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이, 이익…!! 이 개새끼가 진짜!!!”

결국 봐줄 수 있던 허용 범위가 완전히 넘어선 녀석은 반휘혈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 나는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기억에 눈을 크게 떴다.

멱살이 잡힌 서이수. 그리고 주먹을 뻗고 있던….

“그 망할 새끼?!”

내 중얼거림이 주위에 울렸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아차 싶을 정도로 큰 중얼거림은 주위의 시선을 모으기엔 아주 충분했다. 덕분에 반휘혈을 공격하려던 놈도 주먹을 내지르려다 말고 나를 볼 정도였다. 게다가 방해를 받았던 탓일까 아주 험악하게 일그러진 낯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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