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77화 (277/306)

277. 히로인, 대위기! (1)

***

“~~, ~~요!!”

“~~만, ~~다.”

시끄럽다. 잠겨 있던 의식이 소음에 의해 서서히 깨어났다. 서이수는 무거운 눈꺼풀을 끔뻑하고 작게 열렸다가 닫혔다.

“으….”

의식이 각성하자마자 신음을 작게 흘렀다. 몸이 욱신거렸다. 특히나 뒷목이 얻어맞은 것처럼 당겼고 턱이 쓰렸다.

“이게 뭔…, 어?”

머리까지 지끈거려 와 인상을 찌푸리며 짚으려는데 손이 꿈쩍도 하질 않았다. 아니, 손뿐만이 아니라 다리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뒤늦게 저릿한 감각에 얼굴을 구기며 눈을 뜨고 있자 그런 제게 반색하며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 이수야! 정신이 들어?!”

흐릿한 눈을 비비지 못해 몇 번 더 깜빡이자 어둑한 내부가 보였고 제 곁에서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주연희가 있었다.

“어, 네가 여기 왜….”

아니, 그보다 여긴 대체 어디… 헛. 서이수는 멍한 눈으로 생각하다가 뒤늦게 자신이 기절했다 깨어났음을 인지했다. 또한 그제야 자신이 누워 있던 곳이 딱딱하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정체 모를 널찍한 공간 안에 있다는 것도 말이다. 마치 버려진 창고 같은 곳이라 서이수는 당황스러움에 몸을 벌떡 일으켜 고개를 흔들어 제대로 정신을 차리려 하는데, 그런 그에게 중성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정신 좀 드나.”

“!!!”

화들짝 놀라며 목소리의 진원지를 바라보자 그곳엔 버려진 자재 더미 위에 앉아 있는 인물 한 명과 그 곁에 선 키 큰 장정 한 명이 있었다.

“넌….”

“확, 마. 퍼떡 안 인나서 설설 걷어차 깨울까 고민했다 안 카나.”

자재 더미에 앉았던 이가 털썩 내려와 그에게 다가왔다. 말투는 친근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와 별개로 그 정체를 알아본 서이수는 굳은 낯을 풀 수가 없었다.

“……정태우.”

서이수의 나직한 속삭임을 들었는지 정태우가 눈썹을 휘더니 눈을 굴려 김율이 있는 쪽을 보았다.

“흠. 율이 저 자슥을 안다더니 역시 내도 알아보네.”

그럼 뭐, 얘기는 쉽겠네. 정태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돌연 서이수의 앞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곤 손을 뻗어 그의 턱을 덥석 붙잡더니 이리저리 돌려 보기 시작했다.

“?! 뭐, 뭐야.”

“흐음-.”

갑작스러운 행동에 경계를 가득 담아 몸을 뒤로 물리며 턱을 황급히 빼자 정태우는 그것을 쉬이 놔주었다. 그러곤 서이수를 신기한 생물 바라보듯 보았다.

“니, 누나랑 쪼매도 안 닮았네?”

“뭣.”

서이수는 그 말에 울컥 얼굴을 구겼다. 생판 처음 보는 사이에 저게 무슨 말인가. 자신이 누나랑 안 닮았다니.

“…조, 조금이지만 닮았거든?!”

안 그래도 밖에선 말하지 않으면 남 취급하는 게 은근히 불쾌했던 그였다. 평소라면 서이나가 곁에 있어서 부끄러움에 티를 내진 않았지만 현재 그녀가 없는 지금, 서이수는 참지 않고 바로 쏘아붙였다.

“안 닮았는데.”

“닮았다니까!”

“아니, 진짜 요만~큼도 안 닮았다니까.”

“좀 더 자세히 봐 봐. 조금은 닮았다니까? 눈매라든가, 눈매라든가…!”

두 사람의 유치한 실랑이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됐다. 서이수는 처음엔 무서운 마음을 극복하려 대드는 거였으나 점점 진심이 되기 시작했다. 아니, 안 닮긴 어디가 안 닮아! 아주 빼다 박았구만! 점점 고집이 생기기 시작한 그는 자신과 누나가 닮은 점을 하나둘 나열하기 시작했다.

“닮았다니까! 표정도 닮았다는 말 많이 듣고, 분위기도 비슷하댔다고! 그리고 또 성격도 비슷하다는 말 많이 들어서 볼수록 닮았다 했단 말이야!”

“호오~ 그래?”

“그래!”

“근데 내는 잘 모르겠는데.”

“아오!!”

아무리 설명해도 비웃음을 지으며 무시하자 서이수의 낯은 점점 험악해졌다. 평소 그를 아는 이들이 이 표정을 봤다면 오, 누나랑 엄청 닮았어. 하며 인정하고 넘어갈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정 따위 정태이에겐 알 바가 아니었다. 그녀는 히죽거리며 그에게 딴죽을 거는 걸 멈추지 않았다.

‘놀리고 계시는군.’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김율은 정태이가 서이수를 놀리고 있단 사실을 일찍이 눈치챘다. 저 개구쟁이처럼 짓궂은 미소를 달고 있단 게 그 증거였다. 아무래도 저렇게 결박이 된 것도 모자라 그녀의 정체를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기죽지 않은 채 바락바락 대드는 게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녀가 즐거워하는 건 기쁜 일이긴 하나 슬슬 시간이 다가왔다. 김율은 아직까지도 서이수를 놀리고 있는 정태이에게 말을 걸었다.

“도련님.”

“아니, 니 진짜 쪼~매도, …아?”

“시간입니다.”

그 말에 정태이가 움찔, 몸을 경직시켰다. 그러곤 올렸던 입꼬리를 스륵 내리곤 언제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뿜어냈냐는 것처럼 일변했다.

“……벌써 그르케 됐나.”

정태이는 성가시다는 것처럼 머리를 벅벅 긁더니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급변한 그의 분위기에 서이수는 몸을 움찔 떨며 본능적으로 살짝 뒤로 물리었다.

“어이.”

잠시 숨을 내쉬더니 서이수를 보지 않은 채 시큰둥하게 그를 불렀다. 그러곤,

“이 악물어라.”

“뭐…, !”

서이수는 무슨 소리냐고 말하려는 동시에 제 얼굴 옆으로 쐐기처럼 날아오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고 강하게 물자 곧 그의 얼굴이 옆으로 날아갔고 그의 몸은 속절없이 바닥을 굴렀다.

“이수야-!!!”

“……!!, !!!”

난데없는 폭력에 주연희가 서이수를 비명을 지르듯 불렀다. 하나 서이수는 머리가 울리는 강한 통증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쉬이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에요-!!”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이곳에 도착하고서 그는 단 한 번도 제게도 서이수에게도 손을 대지 않았다. 오히려 해코지를 하려는 분위기는 김율이란 사람과 함께 온 이들이 하려 했으나 정태우란 사람은 그들을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 쫓아냈었다. 이 녀석들은 자신이 가지고 놀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곧 불만스러워 보이던 깡패들이 나갔고 그의 말에 한껏 경계했던 제게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거. 그케 노려보지 마라. 그보다 내 심심하니까 잠깐 수다나 좀 할까.’

그는 픽, 웃으며 자재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껏 긴장했던 것이 무색해지는 그 무해한 태도에 주연희는 눈을 홉뜨며 굳어 버렸다.

‘그, 그럼 왜 저희를 이렇게… 납치한 거죠? 그, 그리고 아무 짓도 안 하고 수다만 떨 이유는 없잖아요.’

그가 자신들을 도와줬단 걸 알게 되자 주연희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떨었던가. 기절해 있는 서이수와 영문도 끌려가는 자신. 그녀는 시시각각 최악의 가정을 떠올리며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들은 저희들에게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짓을 벌인 건가. 그의 뒤에 서 있는 김율이란 사람도 저희들을 해코지할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묻자 정태우가 한쪽 눈썹을 구부리더니, 씩 웃었다.

‘기야 금마 뜻대로 움직이는 것도 영~ 맘에 안 들어서 말이다.’

그러곤 그는 더 이상 그와 관련된 말을 하지 않았다. 주연희는 더 캐물었지만 정태우는 그녀의 말에 그와 관련해 더 대답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놀리는 것처럼 말꼬리를 잡아 그녀의 속을 애태우게 만들었다. 하지만 주연희는 그 한마디로 그의 배후에 또 다른 인물이 있음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는 그 인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일단 그녀는 그거 하나만 믿고 용기를 내어 요구해 보았다.

‘그, 그럼 마음에 안 든다면, 풀어 주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긴장했음을 눈치챘지만 정태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질 않았다.

‘아, 그건 안 돼.’

그는 이제껏 두루뭉술하고 뱅뱅 돌렸던 대답과 달리 이번만은 단호하기 짝이 없었다.

‘그, 그럼 이것만 풀어 주세요!!’

‘그것도 안 된다.’

그렇게 풀어 달라, 안 된다 하며 한창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서이수가 깨어났다. 그런 후, 바통 터치를 한 것처럼 두 사람의 만담이 시작됐고 주연희는 그 광경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돌변했다. 주연희는 울먹거리며 서이수를 재차 불렀다. 하나 서이수는 고개를 털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뭐-, 구색은 맞춰 놔야 내도 면이 서지 않겠나.”

그런데 이 인간, 여전히 영문 모를 소리만 하고 있었다. 주연희는 표독스럽게 그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잠시나마 그를 좋게 여긴 제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는 그저 자신들을 가지고 논 것에 불과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정태우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히죽 웃으며 그녀 앞으로 허리를 숙이며 속삭였다.

“그 표정, 좋네.”

빡-!!!!

그리고 그녀의 얼굴이 돌아간 건 한순간이었다. 불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다는 기분이 이런 걸까. 시야가 하얗게 점멸하면서 그녀의 몸뚱어리는 곧장 바닥을 뒹굴었다.

“아, 으, 억….”

말이 되지 못한 신음이 그녀의 입에서 새어 나왔고, 코에선 주르륵 코피가 흘러나왔다. 강한 충격에 안쪽 혈관이 터져 버린 탓이었다. 주연희는 코 안쪽이고 입 안쪽이고 할 것 없이 비릿하게 느껴지는 피의 맛을 느꼈다. 겨우 정신을 차리자 그녀의 눈에선 난생처음 맛보는 고통으로 인해 생리적인 눈물이 흘러내렸다.

무, 무서워.

잊고 있던 공포가 되살아났다. 어째서 자신은 매번 이런 무서운 상황에 처해야 하는 걸까.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러는 걸까. 정말 잘못을 했다면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박아서라도 사죄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용서를 빌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잘못이 없었다. 그런 잘못을 저지른 기억이 한사코 없었다. 억울함에 그녀의 이가 다시 강하게 악물렸다. 그러곤 고개를 들며 다시 정태우를 노려봤다.

“나는, 나는, 잘못 없어. 당신들이 나쁜 거야. 난, 잘못 없어.”

입 안쪽이 터져 발음이 새어 나왔지만 상관없었다. 자신은 정말 잘못이 없었으니까. 그녀는 그 사실만큼은 꺾을 수 없었다. 이것마저 꺾인다면, 그녀는 더 이상… 더 이상….

“안다.”

“……뭐?”

“안다고. 니 잘못 없는 거.”

그런데 이 남자가 그 사실을 바로 인정했다. 그녀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그, 그럼 왜…”

왜 이런 짓을?

“그건… 그래. 운이 나빴다 생각해라.”

운이 나빴다.

“니 잘못이 있다면 그거 아니겠나.”

그것이 자신의 잘못.

그녀는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숨이… 막혔다.

정태우가 다시 손을 들었다. 하나 주연희는 그것을 피할 생각도 못 하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강압적인 환경 속 무력한 자신. 아, 자신의 삶은 언제나 이러했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각본 속에서만 살아가는 것 같은 무력함. 그것이 그녀의 발끝부터 차츰차츰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의 손이 다시 그녀의 머리에 닿을 찰나,

“뭔 개소리야…!!”

돌연 정신을 일깨우는 고함이 그녀의 귀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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