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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48화 (48/172)

#48화. 나츠키 언냐야

이번 시험은, 말하자면 조별 과제 MK 2 같은 느낌. 다만 저번과는 달리 미리 팀을 짜 준 상태였다. 두 반이 합동으로 치르는 시험이니만큼, 팀원을 구하기가 힘들 거라는 계산인 것 같았다.

본래 이 시험이 원작에서 어떻게 그려졌더라. 나는 잠시간 생각했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시험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았던 이유를.

“븝미쟝 때문이엇서여…….”

원작에서는 애초에 3반에, 신하연 나츠키 장선우 J 일리아가 몰리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

각자 장선우와 나츠키, 일리아가 같은 반. 신하연과 J, 그리고 플레이어가 같은 반에 배정된다.

2학년에 올라가면 성적에 따라 반을 1-30위, 30-60위 따위로 가르기에 다들 같은 반에 모이긴 하지만, 원래는 지금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배정이 되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내 존재 때문에 모든 게 꼬였다. 그 행운을 빙자한, 이상한 일만 꼬이는 내 능력 때문에. 적어도 아카데미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꽤나 상당수의 미래가 바뀌었을 것이다.

애초에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점점 실감이 되었다.

그래도 교관들이 내는 시험 같은 건 바뀌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하하하하! 미녀분들과 함께 하니 너무 좋네요.”

……아니, 다행이 아닌 것 같다. 상황이 안 바뀌었다면, 얘 주접을 보지 않았어도 됐겠지.

나는 김찬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츠키 또한 같은 심정인지 한 발 뒤로 스윽 물러섰다.

하지만 눈치가 없는 건지, 없는 척하는 건지. 그는 여전히 활기찬 목소리로 뭐라고 떠들었다. 현실의 나도, 다나에 빙의한 나랑도 영 안 맞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얘랑 짝꿍이 맞을 만한 사람이 있을까? 해 봤자 김수혁 정도?

“아흥, 아파여…… 왜 그러는 고애오?”

그때, 순간 허리께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뭔가 싶어서 옆을 쳐다보니, 나츠키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건 조금 화가 난 듯도 하고, 무언가 급해 보이기도 했다.

다만 그 감정이 온전히 나를 향한 것은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던지라 안심이 되었다.

“야, 너…… 뭐 좀 물어봐도 되냐?”

“븝미쟝, 이래 보여도 척척박사람니다~ 아무거나 물어보는 고시애오~ 대답이 자판기처럼 뿅뿅 나오는 고애오~”

무슨 일이길래. 웬만한 거라면 다 답해 줄 수 있으니까 물어봐.

나는 최대한 호감을 사기 위해 유하게 말했다. 최근에 깨달은 건데,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븝미어로 나가는 것은 막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같은 의도의 말을 하려 했다면, 같은 말로 나올까?

정답은 ‘아니다’였다.

내가 말하려고 했던 어투에 따라서, 븝미어도 다르게 나갔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내가 유하게 말을 했기에 번역된 말 또한 부드럽게 나간 것이었다.

물론 그냥 부드럽다는 말로 퉁치기에는 과한 면이 있지만…… 어쨌건 내가 그녀를 적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하나는 전달이 되었을 것이다.

그동안 계속 시비를 걸어 댔음에도, 나츠키는 별로 싫지가 않았다. 애초에 내가 원작에서도 좋아했던 캐릭터라 그런가. 그 더러운 성격 때문에, 특이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음에도 인기가 별로 없었다.

게임 내에서 나츠키도 매력이 있지 않냐, 같은 말을 했다가는 순식간에 M성향으로 몰릴 공산이 컸다.

하지만 나는 나츠키라는 캐릭터를 굉장히 좋아했다. 분명 성격이 더러운 것도 맞고, 그와 반대되게 속이 여리다든가 하는, 그런 매력도 없지만…… 적어도 존나 솔직하니까. 그리고 나름 뻔뻔하지도 않아서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쯤은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제 딴에는 지금 염치가 없어서, 우물쭈물거리고 있다. 나한테 뭔가 원하는 게 있는 모양인데…….

“저기, 그러니까.”

“4조, 2번 입구로 진입하세요.”

그 때, 딱 알맞게 건 교관이 진입하라는 신호를 내었다. 나츠키는 짜증 난다는 듯이 그를 쳐다봤지만, 뭐 어쩌겠는가. 저 사람은 교관이고 나츠키는 생도 신분이었다.

“어휴…….”

그냥 속으로 삭일 뿐이었다.

*    *    *

이번 던전 공략, 다른 팀들은 모두 4명이었다. 하지만 우리 팀은 세 명. 그 이유는 7반에 1명의 결원이 있기 때문이었다.

뭐라던가, 무슨 마력 역류증인가 뭔가로 아파서 빠졌다고 했나.

그 때문에 한 팀은 한 명이 부족한 채로 시험을 치러야 했는데, 그게 바로 우리 팀이었다.

자기네들 계산상으로는 이 정도면 밸런스가 맞다고 느낀 거겠지. 실제로 김찬호는 현재 전교 37등, 나츠키는 3등, 나는 1등이었으니까.

그래, 이론상 밸런스가 맞기는 하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그건 뭔가 조금 덜떨어져 보이는 검방전사 김찬호도 아니고, 힘 민첩 체력 총합이 15인 나도 아닌, 도리어 지금까지 모든 시험에서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나츠키였다.

이전에도 몇 번 생각을 떠올렸던 적이 있는데, 나츠키는 매달 초마다 주기적으로 약을 먹는다. 뭐 불법 항정신성 의약품 같은 게 아니라, 약재를 섞어 만든, 나도 최근에 섭취한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이번에 비교적 효과가 강하지 않은 것을 먹었다. 일부러 그렇게 조정을 한 것이었다. 흡수가 빨리 되고 효율이 좋아지는 특성도 가지고 있지만, 내 몸 자체가 너무 약하기에 약성을 받아들이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하지만 나츠키는 비싸고 좋은 약재들을, 왕창 때려 넣은 약을 계속해서 먹어 왔다.

그것은 각성 이전부터 지속되었는데, 이게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돈 좀 있다 하는 히어로들 자제는 모두 같았으니까.

그러나 그 약성이 특히 강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나츠키의 몸이 생각보다 그리 강건하지 않았는지. 그녀는 만성적인 질병을 각성 후 대략 6개월 동안 겪어야만 했다.

정해진 약을 주기적으로 먹어야만 하고, 그 약을 섭취한 후 며칠간은 무리하지 말아야 하는. 물론 가진 바 힘의 일정량은 낼 수 있는 데다, 그 정도만 해도 웬만한 생도보단 강했지만…… 적어도 펜타곤 3위 수준의 실력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생각보다 이 조가 다른 조들에 비해 꽤나 불리했다. 아마 아까 나츠키가 말하려던 것도 이 내용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이 되는 것이었다.

“야, 아까. 얘기를 제대로 못 했는데. 다시 말할게.”

때마침 나츠키가 내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 나는 이미 대답을 머리에 생각해 놓은 상태였기에, 물 흐르듯이 답할 수 있었다.

“호에에, 언제든지여! 나츠키 언냐야.”

“그러니까,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내가 몸에 좀 문제가 있거든?”

역시나 그 이야기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김찬호에게 들리지 않게 하고 싶은 듯, 아직도 혼자 떠들고 있는 녀석의 뒤로 빠져 소근거렸다.

“그래서 이게, 지금 당장의 문제도 있기도 한데.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건…….”

“걱정 마라여 언냐야! 븝미쟝이 나쁜 몬스터들 다 뚜샤뚜샤 해 버리는 고시애오!”

나는, 어설프게 정권을 내지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에 나츠키는 멀뚱하게 내 모습을 바라봤다.

“뭔 소리야? 난 그런 얘기가 아니고…….”

나츠키의 얼굴이 와락 찡그러지고, 불만스러운 어투가 입에서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녀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왜냐면 던전 밖에서의 방해자였던 건 교관보다, 더 눈치가 없는 녀석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캬오오옥!

그건, 개를 닮은 외형의 몬스터인 코볼트. 언뜻 라이칸과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외형이 워낙에 볼품없었기에, 진짜 라이칸을 이미지로라도 한 번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착각할 수가 없을 것이었다.

“이런 개새끼.”

나츠키는, 녀석을 보고 욕설을 내뱉었다. 그래, 코볼트가 개 새끼이긴 하지. 물론 나츠키는 그런 직관적인 의미로 한 말이 아니겠지만.

“오옷! 저기 코볼트가 나타났군요! 하지만 걱정 마십쇼, 제가 금방 해치워 드리겠습니다!”

주접을 떨며, 앞으로 나서는 김찬호.

붕쯔붕쯔.

어쩐지 소리까지 나는 것 같다.

나츠키의 지랄, 염병 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는 힘차게 앞으로 치고 나갔다. 사실 코볼트이니만큼 그다지 긴장할 상대가 못 된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역시나 그는 단칼에 코볼트를 갈라내었다. 녀석은 마나로 만들어 낸 허상인지라, 그저 연기를 발하며 쓰러질 뿐이었다.

“하하하하! 어떻습니까!”

김찬호는 뻐기듯이 가슴을 내밀며, 소리쳤다. 나도 나츠키도 그 꼴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쟤 실력을 평가하자면, 지금 본신 전력을 못 쓰는 나츠키조차 못 이기는 수준의 실력이었다. 그런데 누구 앞에서 저러고 있는 건지.

“음……?”

한 치의 부끄럼 없이, 그렇게 추태를 부리고 있던 김찬호는 뜬금없이 의문스러운 소리를 내었다. 그것은 그가 바라본 방향에 있는 한 사람 때문이었다.

길게 기른 연갈색 머리에, 최근에 눈이 높아져서인지 예쁘다곤 못 하겠으나, 적어도 못생기지는 않은 이목구비. 차림새로 보니…… 궁수인가?

“야이, 너? 몸 아파서 쉰다고 하지 않았냐?”

아무래도 김찬호의 반응을 보자하니 7반의, 그 아파서 빠진다고 했던 생도 같았다. 우리가 이렇게 3인 팀을 꾸리게 된 원흉.

“야, 왜 무섭게 그러고 있어. 그러고 보니 너 시험장에는 어떻게 들어왔냐?”

김찬호는 그녀를 반갑게 불렀으나, 그녀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목각 인형처럼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여자.

나는 머릿속에 경고음이 마구 울리는 듯했다. 즉시 마력을 통해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파악했는데…… 역시나였다.

“야, 야. 오지 마. 거기 서 있어! 어어, 너 더 다가오면!”

부산스럽게 소리치는 김찬호. 아마 그도 눈치챈 것 같았다. 눈앞의 여자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저 모습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완전히 초점을 잃은 눈동자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기(死氣). 살아 있는 인간의 몸에, 흑마력을 심어 의지를 불어넣었을 때 발생하는 현상.

내가 알기로 이 세계관에서 이딴 개짓거리를 할 놈들은 몇 없다.

빌런 집단, 그중에서도 여기 있는 세 사람 중에 한 명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집단일 것이다. 김찬호는 가능성이 없었고, 나는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지만…… 역시나 아닐 것이었다.

하필 나츠키가 전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지금 공격을 가해 온 것을 보아 그녀에게 볼일이 있는 놈들이겠지.

“옵바야! 븝미쟝 지켜 주는 고애오! 아가 소중하게 다뤄 주는 고애오!”

“어, 어어……?”

그는 아직까지도 그 궁수 생도 상대로 싸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그는, 잠시간 당황하다가 콧김을 뿜으며 외쳤다. 이미 검과 방패까지 빼 든 상태로.

“저만 믿으십쇼! 전력으로 지켜 드립죠!”

……영, 믿음은 안 가지만 일단 사기가 올랐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었다.

나는 옆에 있는 나츠키를 바라봤다. 어쨌든 저기 있는 궁사의 수준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으니, 그녀가 함께 합세해 준다면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 있을 것이었다.

“언냐야……?”

하지만 영 그녀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는데, 온몸은 창백했고 입술은 새파랗게 변색되어 있었다.

안 돼! 쓰러지지 마!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외쳤으나, 그녀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와, 나 씨벌.

“자! 와라! 뭘 잘못 먹어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 차리게 해 줄 테니까!”

내게, 남은 것은 이제 저기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김찬호뿐이었다.

등에 식은땀 한 줄기가 흘렀다. 이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호에에에…….”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된 거, 일단 싸워는 봐야지.

나는 손에 마나 스폿을 띄웠다. 그리고 곧바로 외쳤다.

“븝미 라이트닝!”

지지직하고 일순 뿜어져 나간 전격. 그것이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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