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2일 차의 편돌이 (2)
편의점 POS기의 구석에는 따로 빨간색 신고 버튼이 있어, 3초간 꾹 누르고 있으면 112에 자동으로 신고가 된다.
더해서 왜 신고 버튼이 POS기에 달려 있는지도 추측이긴 한데, 아마 알바생이 진상 상대로 보일 수 있는 제일 덜 수상한 짓이 포스기 만지는 거라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작정하고 진상 부리러 온 놈이 알바생 슬쩍 봤는데 손이 계산대 밑에 있으면 당연히 의심할 거 아냐.
난 신고 버튼이 쓰이는 걸 본 게 이번이 처음이라, 일단 확인차 점장한테 물어봤다.
“진짜 경찰 부르셨어요?”
“오지. 버튼 눌렀으니까. 장난으로 신고하면 경찰분들께 민폐야.”
“아뇨, 전에는 진상들 귀여워서 그냥 적당히 하고 돌려보낸다― 하고 마셨던 기억이 나서 말입니다. 저 면접 볼 때.”
“그랬나?”
점장은 가물가물하다는 듯 입을 우물거리다, 대머리 엘프의 표정을 슬쩍 바라보고는 답했다.
“이건 농담으로라도 귀엽다곤 말 못 하겠다.”
나도 마찬가지다. 경찰 불렀다는 소리를 들은 엘프의 얼굴이, 이젠 엘프인지 귀 큰 홍익인간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시뻘게진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뭐어? 경찰? 니미, 내가 뭘 잘못했다고 짭새를 불러?!”
“그렇게 됐네요. 아, 혹시라도 지금 나가실 생각은 마시구요. CCTV에 삿대질하고 욕하신 거 다 녹화되어 있으니까, 자리 벗어나셨다간 일이 더 커질걸요?”
점장이 능글맞게 건네는 말을 들은 엘프는, 하려던 말을 까먹은 듯 버벅대기만 했다.
나는 나대로 옆에서 감탄했다.
자리를 벗어난다 해서 일이 더 커지진 않는다. 어지간해선 깽판 치다 도망간 진상을 경찰이 잡아줄 리가 없을뿐더러,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작정하고 잡는다 하면 이 앞 사거리 CCTV를 다 뒤져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몽타주 그려서 뿌리거나 해야 할 텐데, 그런 여유가 있는 경찰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관할이 도심지 사거리면 신고 전화도 하루 몇십 통씩 올 텐데.
그래서 점장이 일부러 말을 꺼낸 것이다. 당장 여기 증거 있으니 도망가지 말라고.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게 증거가 될 수 없단 걸 빤히 알겠지만, 그 조금을 생각할 수 있었으면 아예 여기서 깽판 칠 생각을 안 했겠지.
“너… 너이, 씨….”
“그리고 종족차별 발언도 처벌 대상인 거 아시죠? 하신 말씀도 다 녹음했으니, 경찰분 오시면 들려드릴게요.”
“내가 언제 그런 소릴 했어! 그리고 차별한 건 늬들이야, 늬들!”
“그건 경찰분께서 듣고 판단하시겠죠. 아, 혹시 모르겠네요. 더 화 안 내시고 얌전히 계신다면, 제가 마음이 좀 약해질지도…?”
누가 봐도 약을 올리겠다는 의도가 빤히 보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엘프는 뒤쪽 커피머신이라도 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으나, 실천하지는 않았다.
얌전히 씩씩대는 엘프 몰래 점장에게 물어봤다.
“언제 녹음까지 하셨대요?”
“안 했는데?”
허어.
“전 뭐 마법 같은 걸로 녹음하신 줄 알았습니다. 특별히 뭘 건드리신 것 같지도 않아서.”
“마법은 부렸지.”
“언제요?”
“버튼 하나 눌러서 주정뱅이를 얌전하게 만들었는데, 이게 마법이 아니면 뭐겠니.”
그건 그래. 공권력 세 글자에 신묘한 힘이 깃든 건 이 동네도 마찬가지인가보다.
“그리고 저 엘프, 찬이 너한테 욕했잖아.”
“하긴 했죠.”
“웬만하면 넘어갔을 텐데, 그거 들으니까 갑자기 열받더라구. 찬이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는데.”
잠깐 생각하다 답했다.
“뭐… 쓰레기통에 쓰레기 버려지는 게 쓰레기통이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잖습니까.”
나는, 아니. 편돌이는 취객들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편돌이도 욕할 줄 몰라서, 받아칠 줄 몰라서 맞서서 욕 안 하는 게 아니다. 얼굴 맞대고 욕해봐야 상황이 좋아질 리가 없을뿐더러, 진상 부리는 거 빨리 보내고 다른 손님도 받아야 해서 그렇다.
이해해 주는 게 아니라 참는 것일 뿐인데, 이걸 보고 우월감을 느끼려는 양반들이 꼭 있어. 야, 내가 손님이고 내가 왕이다! 나는 편돌이의 감정을 지배할 수 있다! 여기다 쓰레기 버려야지!
그게 그놈들이 수십 년 살며 일궈낸 사고관일 텐데, 한낱 편돌이인 내가 그 생각을 어떻게 바꾸겠는가. 그러려니 해야지.
그래서 쓰레기통으로 비유를 들었던 건데, 점장은 영 못마땅하다는 얼굴이었다.
“그런 생각 하지 마, 찬아. 쓰레기통이라니….”
“진상 부리는 양반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요.”
“만약에 또 그런 손님 오면, 음… 그냥 말로 받아쳐 버려. 내 얘기 꺼내거든 매장 영업방침이라 하고.”
“진짜요?”
“그럼 안 할 거야? 점장이 시키는 건데?”
이것도 그렇네. 점장이 까라면 알바생이 까야지 뭘 어쩌겠는가?
“그래도 물리적으로는 말고. 빨간 줄 그이니까.”
“저도 떡대 치와와나 엘프 상대로 주먹질할 생각은 안 드네요. 매출에 영향 안 가는 선에서 적당히 받아치는 정도면 괜찮겠습니까?”
“응.”
3분 정도 이러고 있자니 경찰이 왔다.
“신고접수 받고 왔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온 듯 헬멧을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은 볼 수 없었으나, 목소리를 들어보니 여성인 것 같았다. 더해서 허리춤에 음주측정기가 매달려 있다. 음주단속 하다 왔나 보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중년 엘프였다. 한껏 키운 목청으로 울분을 토하듯 주절대기 시작했다.
“이보쇼, 경찰 양반! 이놈들이 먼저 잘못했어! 술 한 병 사 가려고 했을 뿐인데 저 인간 놈들이 당최 팔지를 않어, 내가 귀쟁이라서 그렇대!”
“제가 언제 귀쟁이라는 말을 했….”
“발뺌하지 말고!”
이 귀쟁이 참, 얼굴에 철판 까는 게 예술이네.
녹음됐을 리가 없단 건 스스로 깨달은 듯하다. 외에도 중년 엘프는 자기가 엘프이기에 받는 차별이 얼마나 심한가에 대해 늘어놓았는데….
자기가 취직이 안 된단다. 엘프라서.
어딜 가든 일이 터졌다 하면 일단 자신을 의심한단다. 엘프라서.
그래서 사는 게 힘들단다. 엘프라서.
“그러니, 어! 저놈들이 잘못한 겁니다, 이게 제 잘못이라 하면, 경찰 양반도 종족차별 하는 거예요!”
내 상상 속의 엘프는 이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저 엘프 입에서 대체 왜 저런 소리가 나오냐고 점장에게 물어보려 했으나, 점장은 흥미롭다는 듯이 경찰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서 나도 바라봤다.
여경은 막 헬멧을 벗은 참이었는데, 무척 아름다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확신을 못 하겠는 건, 아름답다는 느낌에 더해 섞인 피폐함 때문이었다.
피부는 새하얬으나 눈 밑에 다크서클이 두 겹 깔려있었고, 눈동자는 녹색. 외에 머리 색도 특이했는데, 금발과 흑발이 반반 섞여 있어 어떤 색이 원래 머리 색이었을지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더해서 가장 큰 특징. 이 경찰도 귀가 뾰족했다.
“죄송하지만….”
엘프 경관이 조용히 읊조렸다.
“역차별 발언도 종족차별 발언에 해당됩니다. 그러니 조용히 하시길.”
이 말 한마디에, 중년 엘프가 바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엘프 경관이 계산대 앞으로 터벅터벅 가까이 다가와서는 나지막이 물었다.
“순경 이루엘입니다. CCTV 잠깐 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조작 도와드릴까요?”
점장이 답했으나, 엘프 경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치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저쪽 사무실 안이에요.”
“감사합니다. 어르신은 따라오시고.”
“나, 난 왜….”
“인도에 응하지 않으신다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입건하겠습니다.”
이건 명목이고, 우리와 중년 엘프를 계속 가까이 둘 수 없다는 의도에서일 것이다.
중년 엘프는 보이지 않는 포승줄에라도 묶인 마냥 고개를 푹 숙인 채 경관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고, 계산대 앞엔 점장이랑 나 단둘만 남았다. 저 대머리가 소리를 빽빽 질러댄 탓에 손님들이 죄다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이제야 좀 물어볼 수 있겠네.
“점장님. 저 사는 동네는 엘프가 고귀하고 아름답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여긴 아닌 것 같습니다.”
“엄청 긍정적인 이미지인가 보네?”
“꼭 그렇진 않구요. 오만하거나 성격 더럽다는 이미지도 있긴 해서.”
반반이다. 어떤 매체에서는 싸가지 없고, 어떤 매체에서는 착하고 그래.
“음… 고귀하고 아름답긴 했지. 옛날에는.”
“뭔가 계기가 있었나 봐요.”
“이 세상에 사람이 좀 적다고 했었던 것 기억나?”
“네. 기억나요.”
전쟁이 일어나서 수십 수백 이종족들이 박 터지게 싸웠고, 그 과정에서 사람이 무진장 죽어 나간 탓에 사람이 적어졌다고 했었다.
“그 전쟁을 일으킨 게 엘프들이거든.”
“어….”
이후 점장의 설명은, 역시나 그랬듯 아리달쏭했다.
이 세상의 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게 수십 년 전. 그걸 주도한 건 인간들이었는데, 대부분의 종족들은 인간 종족들이 발달시키는 기술들을 별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왜냐면, 편했기 때문이다. 날개 달린 종족들도 먼 거리를 며칠씩 날아다니기보다는 비행기 타는 게 편했고, 드워프들도 구식 대장간보다는 신식 공방에서 대장일하는 게 훨씬 질이 좋았을 테니까.
그렇게 이종족들 모두가 시대의 흐름에 적응해 가는 중에도 딱 한 종족이 그걸 탐탁지 않아 했는데, 그게 엘프들. 공장 짓겠다고 숲 밀어버리고, 강에 쓰레기 버리고 그러는 게 자연친화적 종족인 엘프로서는 죽도록 싫은 일이었다나 뭐라나.
결국 참다 못한 엘프들이 선택한 것이 공장을 비롯해 환경에 해롭다 싶은 것들은 죄다 때려 부수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이 엘프들의 수가 더럽게 많았다는 것이다.
“엘프가 많았다구요?”
“응. 이건 추측이지만, 아마 세상에 심어진 나무 수만큼 있었을걸?”
둘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건가 싶었으나, 일단은 마저 들었다. 하여튼 엘프들이 머릿수로 싸움도 밀어붙이고, 종족들 간의 외교 관계도 머릿수에서 나오는 파워로 밀어붙이고….
이 상황이 몇 년 유지되며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지다가 기어코 전쟁이 터져버렸고, 수많은 이종족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고 한다. 엘프를 따라 현상 유지를 택하는가, 인간을 따라 발전을 택하는가.
그 결론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바깥의 사거리가 증명해 주고 있다. 솔직히 나도 연락방법으로 스마트폰이랑 전서구 중 택하라 고르라면 당연히 전자 고른다. 폰 없이 어떻게 살아?
“그래서 엘프분들이 전범민족인 동시에 소수민족이 되어버렸지. 전쟁 끝난 직후에는 엄청 탄압받았는데, 최근에는 그런 풍조가 좀 줄어들긴 했어. 엘프분들도 엄청 반성하고 있고.”
“방금 진상 부린 엘프는 반성하는 기미는 안 보이던데요.”
“뭐… 저런 분들도 간혹 있지. 오래 살았으니 적응하기도 힘든 게 아닐까?”
“이해는 가는데, 납득은 못 하겠습니다.”
반포자이 살다가 반지하로 쫓겨난 셈이니 삐뚤어지는 거야 당연하다. 근데, 편의점에서 술 못 먹게 했다는 이유로 꼬장 피우는 건 시절을 따지기 이전에 그냥 성격 문제 아냐?
“나도 모든 엘프분들이 저럴 거라고는 생각 안 해. 적응하고, 바뀌려고 노력하는 엘프분들이 훨씬 많으니까.”
“사무실 들어간 저 경관분처럼요?”
“응. 아마 노력 엄청 했을 거야.”
“확실히 피곤해 보이긴 하던데.”
“머리 색도 탈색 엄청 됐잖아, 검은색으로. 스트레스 엄청 받아서 그런 거야, 그거.”
아까 남았던 의문이 이제야 해소됐다. 디폴트가 금색, 스트레스 받으면 검정색. 여기서 더 심해지면 저 진상 엘프 놈처럼 탈모가 오는 거고.
“확인 끝났습니다.”
막 CCTV 검증이 끝난 듯 경관이 사무실 안에서 걸어 나왔다. 중년 엘프는 조금 더 죽을상이 되었는데, 안에 들어가서 꺼냈을 변명들이 통하지 않은 모양이다.
“일단 이분은 서로 데려갈 겁니다. 처벌 수위는 사정청취 후에 결정될 것 같고.”
“고생하시네요.”
“외에는… 접근금지 조치 취하겠습니다.”
이후 자기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슬쩍 꺼내 보고는 다시 닫는다. 작게 한숨을 한 번 쉰 뒤.
“협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수경례를 하고, 대머리 엘프 데리고는 나가버렸다. 슬쩍 시간을 확인한 뒤에 점장에게 물었다.
“점장님. 슬슬 퇴근하셔요.”
“어… 아, 벌써 10시 10분이네. 나 돈이랑 담배 못 셌는데, 그거만 세고 갈게.”
“제가 할게요. 졸리실 텐데.”
어차피 근무교대 하고 나면 나도 돈 세고 담배 검진해야 한다. 굳이 일 두 번 할 필요는 없잖은가.
“음… 그럼 일단 퇴근할게. 문제 생기면 연락 줘.”
“네.”
그러고는 점장도 퇴근. 이제 편의점에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이런 씨, 근무 시작도 전에 진상 받은 탓에 벌써부터 정신이 피곤했다. 진상이 안 오지야 않겠지만, 최소한 한두 시간은 좀 이상한 놈 안 왔으면 좋겠는데….
생각하고 있자니 첫 손님이 왔다. 아는 얼굴이었다.
“씨발, 치약 어디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