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우린 친구가 적다 (3)
* * *
하나가 가고 30분가량이 더 지나 점장이 왔는데, 매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두어 번 킁킁거렸다. 바로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십니까, 점장님.”
“응. 근데 이게 웬 오징어 굽는 냄새야? 폐문은 왜 열려 있구?”
“그… 바로 설명드릴게요.”
애가 잠깐 매장에 와서 브레스를 쏘고 갔다. 브레스를 쏘게 된 경위까지 마저 말하자, 점장이 내가 시킨 일에 열중인 유리를 바라보고는 수긍했다.
“아하. 그래서 저렇게 빗자루 휘두르고 있는 거였구나.”
냄새 먼저 빼고 남는 시간 동안 POS기 다루는 걸 좀 알려줄 생각이었는데, 15분을 내리 빗자루를 휘둘러 대도 딱히 달라지는 걸 못 느끼겠더란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때려치웠는데, 자기가 해보겠다며 빗자루를 받아들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추질 않고 있다. 내가 못 맡아서 체감을 못 할 뿐, 매연 냄새가 확실히 독하긴 했나 보다.
“죄송합니다. 개인기라길래 전 그냥 그, 엄지손가락 뽑고 마는 정도일 줄 알았거든요?”
“아냐, 괜찮… 엥? 엄지손가락을 어떻게 뽑아?”
“이렇게요.”
옛날에 키즈카페에서 알바하던 시절, 우는 애들 달래보겠다고 익혀둔 마술이 하나 있다. 점장한테 보여줬더니 바로 눈이 휘둥그레지더라고.
“우와. 어떻게 한 거야?”
“그냥 눈속임이죠, 뭐. 이 동네는 이런 거 따로 없나 봅니다.”
“따로 없구, 뽑더라도 마법으로 뽑지. 나두 보여줄까?”
“아뇨.”
딱히 궁금하진 않았다. 이후엔 유리가 파초선마냥 빗자루를 위아래로 휘적이는 걸 가만히 바라보던 점장이 날 올려다보고는 말해온다.
“슬슬 창고에 선풍기 있는 거 꺼낼까? 찬아?”
“그거 좋… 아니. 매장에 선풍기도 있었어요?”
“큰 거 있지. 구석에 에어컨이랑 같이 틀어놓으면 엄청 시원해.”
난 본 기억이 없다. 선풍기가 있는 줄 알았으면 빗자루 휘두를 게 아니라 그것부터 꺼냈을 텐데 말야….
냄새 때문이 아니더라도 먼저 얘기했을 것도 같고. 6월에 접어들어서인지 날씨가 하루가 다르게 더워지고 있다. 바깥에 돌아다니는 행인들 옷차림도 긴팔이 약간, 대부분이 반팔이다.
“제가 내려가서 꺼내 오겠습니다, 점장님. 어디 있어요?”
“나도 있다는 것만 기억나서 좀 찾아봐야 될 것 같아. 유리랑 같이 찾아볼 테니까, 집에 들어가서 자. 졸릴 텐데.”
선풍기만 꺼내 오고 돌아가겠다, 버텨보려 했는데 점장이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어왔다. 유리 녀석한테 지하창고에 대해 아직 교육을 못 시켰단다.
나 하는 것처럼 정리까지 시킬 생각은 없고, 딱 손님이 원하는 물건 꺼내서 줄 수 있을 정도로만 알려줄 거라고. 듣고 나서 물었다.
“창고에 있는 것들을요?”
“응. 학원지구 앞이라, 교보재나 실습용 재료 같은 거 찾으시는 분들 자주 오실 것 같거든. 어쩌면 찬이 근무할 때 찾아오실지도 모르구.”
당분간은 매장 물건들 외에 다른 걸 팔게 될지도 모른단다. 이번 주는 게이트 건이 터졌던 탓에 창고 점검을 못 했으니 다음 주부터.
다음 주 언제쯤 점검할 생각인지를 물어볼까 하다, 삼키고 인수인계나 했다. 점장 말대로 졸리기도 했고, 때 되면 어련히 설명해 주겠지.
마칠 즈음 빗자루 휘젓던 소리가 멎었고, 유리가 우리 옆으로 다가와서는 빗자루를 내밀어 왔다. 그만하라고 말하는 걸 까먹고 있었다.
“교대해요, 오빠. 저 힘들어요.”
“야. 점장님께서 선풍기 꺼내신대. 이제 안 해도 된다.”
내 말에 대답 없이 눈을 두어 번 껌벅이다가, 빗자루를 내던지듯 밑으로 툭 떨궈버렸다. 얼른 퇴근이나 하련다.
* * *
퇴근길에 잠깐 딴 곳에 들렀다. 생활용품 매장.
단벌신사로 버티는 것도 이젠 한계다. 집에 갈 때마다 호스 끊어진 샤워기 보는 것도 지겹고 말야. 이불 없이 장판에서 자는 것도 마찬가지고….
하여 오늘 하루 날을 잡고 이것저것을 가능한 한 저렴하게 사 볼 계획이었는데, 생각해둔 것들 중 첫 물건을 확인하자마자 계획이 터져 버렸다.
[ 무선 매직 샤워기, 수온 자동조절 기능 탑재 ]
이게 왜 진짜 있냐?
입구 안내판에 1층에 욕실용품이 있다고 적혀있길래 찾아왔는데, 욕실용품 코너 입구에 이게 메인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블루투스 샤워기가 말이다.
대체 무슨 원리인가 싶어 박스 앞뒷면 설명을 읽어봤는데,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최신 공법으로 가공된 마석이 샤워헤드 내부에 박혀있어 샤워기의 버튼을 누르는 즉시 마법 연산을 시행한다.
수온 자동조절 기능 외에 포함된 기능이 벽면 어디든 고정시켜 쓸 수 있는 고정 마법과 확장 마법. 이건 신장에 따라 생길 수 있는 불편함을 없앨 수 있다고 광고해놨다.
더해서 둘을 콜라보하면 샤워기 하나만으로 샤워부스에서 샤워를 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는데, 문제가….
[ ₩ 398,000 ]
가격이 40만 원이다. 딱 2천 원 깎고 30만 원 대인 것처럼 속이면 내가 당할 것 같아?
욕실 샤워부스 시공비가 50만 원쯤 한다. 박스를 면밀히 살펴보니, 마석은 신공법을 쓴 거라 제조업체에서 교체품을 따로 주문해야 한다고 4pt 폰트로 적혀있고.
이래서 신공법이니 뭐니 하는 것에 혹하면 안 된다는 거다. 줄 달린 것들 중 적당히 싼 놈 골라서 산 뒤, 건물 2층의 의류 코너에 가서 필요할 만한 것들은 죄다 집어 들었다.
따로 고르진 않았고.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했다. 말인즉, 난 남은 평생 내 패션을 완성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생각에 그냥 되는대로 샀다.
마지막으로는 3층 침구류 코너에서 이불을 좀 사 보려 했는데,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가 진열된 걸 보자마자 숨이 턱 막혀왔다.
“이건… 씨….”
침구류랍시고 새 둥지를 팔고 있다. 인간이 저기서 잠을 어떻게 자라는 건가 싶었는데, 나 말고도 다른 손님 두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피 두 명.
“이건 어때? 나뭇가지로 만든 게, 날개깃 가려울 때 긁을 수도 있고.”
“진짜 나무로 만든 것들은 별로야. 창문 열어놓고 자면 나중에 벌레 들어와서 갉아먹는다고.”
듣고 있다가 얌전히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 탔다. 이불은 여기서 살 게 아니라, 나중에 점장한테 추천을 받든지 해야겠다.
이렇게 옷 몇 벌과 샤워기, 기타 생필용품을 다 구매하고 나니 영수증에 ₩284,000이 찍혔다. 이번 달은 돈을 아껴 써야 해요. 아껴 써야 한다고….
한 달 30만 원으로 몇 년을 살다가 돈을 이렇게 써버리니 정신을 못 차리겠다. 한 손엔 영수증, 한 손엔 종이백 다발을 든 채로 집으로 돌아와, 현관 앞에 내려놓았다.
“웅냥?”
동시에 고양이 울음소리. 이어서는 타다닥 집 안을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이지도 않는 놈을 행여나 걷어찰까 봐 가만히 서 있었는데, 이놈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게 했다.
― 벅벅벅벅….
“야이 씨.”
종이가방에 실시간으로 스크래치가 나는 게, 저게 굉장히 미운가 보다. 내용물을 현관 앞에 전부 쏟아 가방을 던지자마자 퍽 소리가 나더라고.
종이가방 안에 쏙 들어가 버린 모양이다. 이후로는 한참 동안 부스럭대는 소리만 내길래, 이때다 싶어 얼른 내 할 일을 했다. 씻고, 갈아입은 옷들은 죄다 세탁기에 집어넣은 뒤 침실 바닥에 누워 말해 봤다.
“야. 나 잘 테니까, 얌전히 쇼핑백만 갖고 놀아라. 알았냐.”
― 부스럭, 부스럭.
“아니면 안 얌전하게 놀든가. 니 마음대로 해라….”
종이 찢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고, 눈 떠 보니 오후 9시 반.
씻고 잔 덕에 기분은 개운했는데 배 언저리가 묘하게 묵직하다. 상반신만 일으켜 확인해 보려 했더니, 배 위에 있던 무언가가 허리께로 굴러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고는 바지 쪽이 묵직해졌다. 멍하니 내려다보길 수 초, 짤막한 울음소리.
“웅냥?”
이놈이 내 배 위에서 자고 있었나 보다. 붙잡아 내려놓으려고 손을 뻗자마자 바로 묵직한 느낌이 사라졌고, 또다시 타다닥 발걸음 소리가 들려 멀어졌다.
침실 구석 쪽으로 말이다. 이놈이 있을 걸로 추정되는 곳을 바라보다, 나름대로 결론을 도출해 말해 봤다.
“잠자리로는 쓸 만하지만, 아직 손을 허락할 수는 없다?”
“…….”
“그래. 나도 바라지도 않으니까 사고나 치지 마라, 이놈아.”
뭐든 간에 얌전히만 있어 주면 된다. 생각하며 거실로 나왔는데, 얌전히 있던 것도 아니었다.
저놈이 가지고 놀라고 던져준 종이백을 찢는 걸로는 모자랐는지, 아예 축제용 종이 가루로 만들어서는 사방에 죄다 흩뿌려놨다. 이걸 출근 전에 다 치울 수 있나…?
폰에 찍힌 시간을 내려다보다, 답이 없어 보여서 물그릇에 물만 채워준 뒤 씻고 일단 출근했다. 매장에 도착한 시간이 9시 40분 즈음.
오늘이 금요일 밤이어서인지 매장에 손님이 제법 많다. 대체로 목에 학교 관계자 자격증을 걸고 있거나, 늦게까지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나온 듯한 행색을 하고 있다.
후자는 자신 없긴 하지만, 이 시간까지 가방 메고 있을 이유가 몇 개 없으니 대충은 맞겠지. 점장도 손님을 받느라 바빠 보이길래 인사 없이 유니폼 갈아입고 나왔다.
슬그머니 계산대 앞으로 가자, 막 손님 계산을 마친 점장이 날 확인하고는 방긋 웃음을 지어왔다.
“아. 찬이 언제 왔어?”
“방금요. 저 여쭤볼 게 있어서 그런데 안에 들어가 있어도 될까요?”
“어… 그런 이유면 상관없지.”
냉큼 들어가서 나란히 선 뒤, 계산대 위에 올려지는 물건들을 봉투에 담아 손님에게 건네줬다. 두어 명을 보낼 동안 말을 안 했더니 점장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물어볼 거 있다며?”
“사실 그런 거 없어요.”
“…우이, 씨.”
점장이 자기 근무 시간 때 자기 도와주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나랑 마찬가지로. 마땅히 떠오르는 핑계가 없어서 물어볼 거 있다고 대충 둘러댔다.
입을 삐죽 내밀기는 했으나, 이미 돕기 시작한 마당에 물리기도 뭣한지 다시 계산을 시작하는 점장. 카운터 앞에 줄을 서있던 손님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갔고, 조용해졌다.
“찬이, 이렇게 도와준다구 내가 월급 올려 줄 것 같아?”
“대신 라면 한 개쯤은 사 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정도야 할 수 있지. 라면 뭐 먹을래?”
“그냥 해 본 말이에요. 그리고, 진짜 궁금한 거 하나 있긴 해요.”
라면 먹을 생각 하니 식탁도 없는 집안 꼴이 떠올랐고, 집안 꼴 떠올리고 보니 쓰레기를 어떻게 치워야 할지가 떠오르더라. 청소기, 청소기가 필요하다.
“점장님. 혹시 청소기 싸게 살 만한 방법 아십니까?”
“청소기? 성능 좋은 걸루?”
“예. 신공법 마석 들어가서 겁나게 비싼 그런 거 말고, 적당한 걸로.”
“적당한 거면 우리 집에 안 쓰는 거 하나 있는데. 로봇청소기로 바꿨거든. 줄까?”
주는 건 됐고 빌리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이런 개꿀같은 소식이 있나.
“그런데 청소기는 갑자기 왜?”
“지금 거실이 개판인데 그냥 나왔습니다. 그… 집에 그 녀석 때문에요.”
점장이 고양이 얘기는 다른 사람 앞에서 가능한 안 꺼내는 게 좋다고 했었다. 그 이유를 아직까지도 못 듣긴 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내 말에 바로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점장.
“맞다. 전에 그거 얘기하려다가 말았었지.”
“그럼 지금 말씀해 주십쇼. 이유가 뭐예요?”
마침 물건 고르느라 손님도 없다. 진열대 쪽을 힐끗 확인하고는, 일자무식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간단명료하게 설명해 왔다.
“비싸거든. 분양가가 수천만 원 정도 해.”
“…얼마요?”
“들은 그대루야. 이것도 십수 년 전에 지인한테 들은 거라, 지금은 훨씬 비싸졌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