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우린 친구가 적다 (4)
* * *
들은 뒤엔 그놈이 어째서 수천만 원치 분양가가 책정되었는가를 나름대로 추론해 봤다. 추론하던 도중 든 생각이,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것.
가치를 느낄 수가 없어서였다. 투명해서 눈에 뵈지도 않는 놈을 관상용, SNS 자랑질용으로 써먹을 수도 없을뿐더러, 이 녀석 산책도 무서워서 못 보낸다. 목줄 풀리면 그날 하늘이 유난히 노랗게 보일 거 아냐?
동영상을 촬영해 수십만 구독자를 확보하는 것도 당연히 불가능할 테고 말이다. 당장 내가 그 녀석을 촬영해 ‘투명고양이의 놀라운 일상’이라며 동영상을 게시한다고 쳐도, 그걸 누가 믿어주겠냐고….
물론 하루 날 잡고 촬영하면 고양이 화장실 모래가 제멋대로 움직이거나, 종이백이 허공에서 찢어지는 것 정도는 찍을 수 있겠지. 그걸 보이지도 않는 고양이가 저질렀단 걸 증명하려면 중간 과정이 더 필요하겠지만….
이런 의문들 탓에 나로서는 일반 가정집에서 그 녀석을 분양받을 메리트가 있냐는 입장이었는데, 내 말을 다 들은 점장이 이 의문들을 한마디로 정리해 줬다.
“일반 가정집에서는 분양 못 받구, 마당 있는 집. 아니면 연구용이야.”
“그럴 것 같았, 예? 무슨 용이라고요?”
“찬이, 영물 말구 ‘일반적인 동물들도 마법을 가르치면 쓸 수 있을까?’ 같은 거 궁금해해 본 적 없어?”
없고,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당연히 못 쓰는 거 아닌가? 날아다니던 고래 녀석이나 멍멍이야 영물이니까 그런갑다― 하는 거지.
“그치만, 모든 생명체들 몸엔 전부 마력이 있다구 했었잖아. 찬아.”
“예. 그건 저도 아는데요….”
“동물들도 교육 잘 시키면 배고플 때 음성 버튼 누를 수 있구 말야. 그치?”
이건 나도 연관 동영상으로 뜬 걸 몇 번 본 적이 있다. 강아지가 ‘밥 줘’ ‘벅벅’ 버튼을 연달아 누르면, 관찰하던 집사가 사료통을 들고 와서는 버튼 누르느라 고생했다며 밥그릇 채워주고 그러더라.
하지만 기세라는 것도 정도가 있고, 웰시코기가 ‘공중부양 마법’ ‘벅벅’ 버튼을 누르고 에어 워킹을 하는 광경까지 자연스레 상상하긴 힘들더라. 연산식도 배워야 할 거고, 동물별로 차이점도 있을 거니까….
“그래서 수요가 있는 거지. 규격화할 수 있는 마법을 쓰는 영물들.”
규격화되지 않은 마법을 예시로 든다면, 온갖 동물 언어는 다 할 줄 아는데 정작 당사견이 그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외에는 숨구멍으로 꽃가루를 빨아들이는 고래라든가.
이런 것들은 독자 규격 마법에 가까워 마법사들이 분석하기도 힘들단다. 분석이 안 돼서 지들도 방법을 모르는 걸 동물들한테 어떻게 가르치겠어.
대신 내 집 고양이가 보여줬던 염동력 비스무리한 짓들. 이것들은 염동력에 관해 쓰인 논문이 수백 종류가 넘고, 어떻게 썼는지 어느 정도는 분석이 가능하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말야. 사람이랑 신체 기관부터가 다르니까, 체내 마력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부터 파악해야 하구.”
“그나마 동물들 중에 분석이 된 게 고양이다― 라는 말로 들립니다, 점장님.”
“그치. 그도 그럴 게, 고양이는 마녀의 친구잖아?”
이건 농담으로 한 말 같아서 알아서 이해했다. 고양이가 길에서 볼 수 있는 빈도로는 최상위권을 다투는 동물이니, 그만큼 분석용으로 구하기도 쉽단 얘기겠지.
그만큼 연구도 많이 됐을 거고. 연구가 얼마나 활발한지를 물어볼까 하다가, 소감만 말하고 말았다.
“걔는 동물원은 못 가겠네요.”
“그렇지. 알려지면 편하게는 못 지낼 거야.”
내 소감에 똑같이 소감으로 답해오는 점장. 특별한 재주를 가진 영물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점에 대해 이젠 나도 아는 게 세 가지 있다.
전에 봤던 고래. 그 녀석은 일할 때만 잠깐 나올 뿐 수족관(물 없음)에 갇혀 지내고 있다. 멍멍이는 그 갇혀 지내는 게 무서워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물이란 걸 감춘 채 살고 있고.
그나마 동물원에 지낸다던 불사조가 조생을 날로 먹고 있다곤 하지만, 이건 운도 인식도 좋은 케이스겠지. 생각하던 도중 떠오르는 게 있어 입에 담았다.
“이놈도 엄마고양이가 있었겠죠? 허공에서 뚝 떨어지진 않았을 테니까.”
고래 녀석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하늘을 나는 재주를 익힌 대가로 물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됐고, 엄마고래랑도 생이별을 하게 됐다고 했었다.
“있었겠지. 왜, 신경 쓰여?”
“아뇨. 뭐….”
우리 집의 그놈 일대기를 머릿속으로 잠깐 역행해 봤다. 생후 1~2개월 즈음에 투명해지는 재주를 깨달았다 치고, 투명해진 자기 새끼를 엄마고양이가 어떤 눈으로 바라봤겠는가.
못 봤겠지. 안 보이니까.
냄새는 맡을 수 있다 쳐도 보이질 않았을 테니, 자연스레 다른 새끼들에 비해 관심을 덜 주게 됐을 것이다. 그러다 터를 옮길 때 자연스럽게 버려졌을 테고.
버려진 놈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은 거며 어떻게 우리 집으로 흘러들어왔는지야 그놈 말고는 모르겠지만,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을 터다. 내가 밥 주기 전만 해도 몸에 쓰레기통 냄새가 진동하던 놈이었으니….
“…그놈이 수천만 원짜리라고 하셨죠.”
확인차 물었는데, 점장이 대답은 안 하고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살포시 찔러왔다. 날 올려다보는 게 어째 짓궂은 표정이다.
“신경 쓰이냐니깐.”
“아니, 수천만 원짜리란 얘길 듣고 어떻게 신경을 안 씁니까. 점장님께서는 신경 안 쓰이세요?”
“별루? 반려동물이 값을 매길 수 있는 존재는 아니잖아. 친구나 다름없는데.”
이건 나랑 견해 차이가 있다. 당장 내가 일이 없어서 굶어 죽을 상황이 된다면, 친하게 지내던 놈이 수천만 원짜리 장물로 보이는 상황이 분명 찾아오긴 할 거다.
돈이 제1 가치인 세상이니 말이다. 다들 비판은 할지언정 비난은 못 하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개 고양이를 집에 들여놓은 게 지금이 처음이어서 이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건가….
…처음. 그 녀석이 오늘 내 배 위에서 잔 것도 처음이긴 했지. 나도 다른 무언가랑 같이 잠든 건 초등학교 졸업하고 처음이었다.
“찬이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일단 집에 있는 사료부터 다 먹이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버리기도 아깝고.”
“다 떨어지기 전에 사료 새로 사구, 매번 똑같은 사료만 먹이면 안 돼. 쉽게 질리니까. 알았지?”
“지금 손님 와요. 점장님.”
멀리서 손님 둘이 동시에 다가오고 있다. 덕분에 우리 둘 대화도 자연스레 끝이 났고, 보내고 나니 교대 3분 전이었다. 이제 일이나 할란다.
“인수인계 사항 있습니까? 점장님?”
“오늘은 특별한 건 없구, 고양이는 턱 밑이 그루밍이 안 되는 곳이라 쓰다듬어주면 엄청 좋아하구―”
“집 돌아가서 공부할 테니까, 굳이 안 알려주셔도 됩니다. 점장님.”
“응. 지인이 고양이를 엄청 아껴서 그런가, 나두 자꾸 신경이 쓰인단 말이지.”
점장 말하는 투가, 그놈을 안 팔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나 역시도 나중이면 몰라도 지금은 팔 생각 없다.
공부하겠단 말로 돌려서 대답하자, 점장이 기분이 두 단계 정도 좋아졌는지 밝은 톤으로 말해왔다. 들은 내 기분은 반 단계 정도 안 좋아졌다.
“그리구, 내일부터 유리도 근무 나올 거야. 낮에 손님 받게 한 다음에 지켜봤는데 잘하더라구.”
“예….”
“너무 걱정 안 해두 돼. 내가 보기엔 꽤 괜찮아 보였거든.”
오후 근무는 괜찮다 쳐도, 아침이면 꼬맹이들 죄다 몰려온다. 그걸 얘가 감당이 되긴 한가? 애한테 말을 못 하겠다고 아예 말을 안 하는 녀석이?
“내일은 밤 11시 즈음에 잠깐 나와서 도와줄 거구 말야.”
“경관님 일 돕는 거 때문인 거죠?”
“응.”
매장 걱정이 되긴 해도, 그 녀석이 대신 뛰어주지 않으면 점장과 같이 밖에 나갈 방법이 없다. 다른 건 안 바라니 손님 복장이나 안 터트렸으면 좋겠는데….
인수인계를 마친 점장이 유니폼을 걸어두고 와서는 해맑은 얼굴로 마저 말을 이었다.
“찬이랑 밖에 같이 나가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 그치?”
“…뭐, 술 한잔은 같이 못 할 것 같지만 말이죠.”
“시작이 반인 거야, 찬아. 수고하구.”
“예. 조심히 들어가십쇼, 점장님.”
이후에 점장은 퇴근했고, 난 내 할 일을 했다. 담배랑 현금시제 맞추고, 도중에 찾아오는 손님들 틈틈이 받아서 내보내고.
시제를 다 맞춘 후에는 가만히 손님만 받았는데, 찾아오는 손님들 머릿수에 비해 진상짓 빈도가 최근 며칠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져 있었다. 학원지구 관계자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받으면서는 느낀 게, 담배 태우는 민짜들도 생각이란 게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것. 교직원들도 사람이잖은가. 주말을 앞둔 밤이면 당연히 밖에서 나가 놀고 싶을 테고.
그중에 자기들 다니는 학교 교직원이 분명 포함되어 있을 테니, 행여나 마주칠까 아예 몸을 사리는 것 같다. 아니면 지들끼리 알음알음 공유하는 게 있을지도 모르고….
생각해 보니 후자 쪽이 맞는 것 같다. 생각이 있는 놈들이면 애초에 담배를 안 피울 거 아냐. 여하튼 나야 진탕 취한 철없는 민짜들 받을 일이 없어 편했다.
지금 눈앞의 이 손님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기야, 나 어제까지도 야근했잖아. 오늘 그냥 술 한 잔만 먹고―”
[ ~~~, ~~~~~ ]
“나쁜 친구들 아니고, 그냥 술 한 잔만 먹고 들어가려는 거야. 학교 일 힘들다는 거 자기도 알잖아.”
젊은 손님 한 명이 담배를 사러 와서는, 전화를 끊질 않고 있다.
전체적으로 순한 인상에 머리가 북슬북슬한 게 코볼트보다는 대형견 수인 쪽에 가까운 인상이었는데, 젊다는 건 앞에 서서 하는 얘길 듣고 알았다.
“아니, 자기도 전에는 이해한다고 해줬었잖아. 교생실습 하는 거 힘들 테니까, 힘든 일 있으면 말만 하라고….”
교생실습 얘길 하고 있으니 갓 교육대학 졸업한 거겠지. 나도 이걸 듣고 싶어서 듣는 게 아니라, 코앞에 서서 말을 해대는 탓에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손님도 없겠다, 어련히 카드 주겠지― 라는 생각에 담배를 내려놓고 기다렸는데, 대화가 끝나기는커녕 점점 더 심각해지더란다.
[ ~~~ ~~ ~~~~! ]
“그거랑 이건 다르다니. 자기야, 자기도 전에 만나봤었잖아. 다 좋은 애들―”
[ ~~~ ~~~, …니라!! ]
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커지다 못해 나한테까지 들릴 지경이 됐는데, 목소리가 눈앞의 수인과는 정반대로 무진장 날카로웠다. 여우, 아니면 그에 준하는 뭔가가 연상된다.
언성이 커질 거라곤 이 교생 양반도 생각 못 했는지, 도중에 내 눈치를 슬쩍 살피더라고. 이제야 이쪽을 보는구나?
“…그, 저. 죄송합니다. 잠시.”
잠시가 아니라, 담배 바코드 찍어놨으니까 계산하고 나가서 통화를 해….
허나 이 수인 교생이 지금 머리가 안 돌아가는지, 계산할 생각은 미처 못 하고 쇼윈도 테이블 쪽에 자리를 잡아서는 자세를 바로잡아 앉더라.
“들어봐, 자기야. 나 걔네들한테 5월에 약속했었단 말야. 다음 달에 만나서 꼭 술 한잔 같이 하자고.”
[ ……. ]
“물론 자기가 훨씬 더 중요하지. 그런데, 자기만큼은 아니어도 걔네들도―”
대충 들어보니, 오늘 11시까지는 저 교생 양반 전화 소리 들으며 지새울 것 같다. 바코드 찍은 걸 취소한 뒤, 의자에 앉아 폰을 슬쩍 꺼냈다.
경관한테 내일 일정을 좀 자세히 들어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밤 12시에 돈 나른다는 공원에 간다는 건 알았는데, 언제 출발할지를 알아야지.
하여 톡을 확인했는데, 최상단에 아까는 없었던 톡이 하나 도착해 있었다. 엘레나 양 거였다.
[ 찬이 씨, 잘 계세요? ]
지금은 아니다. 대답하려 했는데, 읽음 표시가 사라진 직후에 톡 몇 줄이 더 날아오더라.
[ 저, 일 얘기 때문도 있고 그런데…. ]
[ 혹시 놀러 가도 되나요? 어디로 이사 가셨는지 보고 싶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