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56화 (56/468)

56화. 신경 교란 시술법 (1)

꼬리.

웨어울프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꼬리. 그렇기에 평생 벗어날 수 없고, 떼어낼 수도 없던 꼬리표. 슬프면 축 늘어지고, 기쁘거나 설레면 너무 요란하게 움직였다. 마치 산책 나가자거나 간식 준다는 말을 들은 강아지의 꼬리 같았다.

그래서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인간 사회에서 그것은 크나큰 약점이었다. 교활한 사기꾼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기 일쑤였다.

그런 손해가 대대로 누적되었다. 일족을 향한 고정관념도 생겨났다. 웨어울프는 속여먹기 쉬워. 웨어울프는 속내를 숨기질 못하니까. 저만큼 다루기 만만한 종족이 또 있을까.

‘하아.’

아니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만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꼬리 덕분에 좋은 친구도 사귀었다. 하지만 그런 약점을 이용하려 드는 인간이 수십 배는 많았다.

용병 시절에는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아니, 일족 중에는 인간에게 속고 이용당해 죽임이나 해코지를 당한 이가 드물지 않았다.

‘한데 이 꼬리를 멈출 수 있을까.’

지긋지긋한 꼬리. 저주처럼 느껴지는 꼬리. 이걸 멈추는 게 가능할 것인가. 소문의 황태자가 해낼 수 있을 것인가.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기대가 크지는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묶어도 보았다. 잘라도 보았다. 하지만 어떤 수단으로도 꼬리를 멈출 수가 없었다.

아무리 단단하게 몇 겹으로 묶어도 꼬리가 스스로 움직여 매듭을 풀었다. 밑동까지 잘라도 보았지만 한 달도 안 되어 재생해 버렸다. 꼬리가 없는 동안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걸을 수 없었던 끔찍했던 경험은 덤이었다.

‘한데 황태자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지.’

분명 그랬다. 여기서 머무르며 기다려 보라고. 하여 기다렸다.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방법을 찾았단다. 지금 당장, 진료실로 오란다.

“…….”

아니스는 말없이 복도를 걸었다. 한데 이쪽을 안내하며 나란히 걷던 미중년 사내가 묘한 소리를 했다.

“많이 긴장되시나 봅니다.”

“…….”

“아, 표정이 그래 보여서 말입니다.”

“꼬리 쪽을 살펴본 건 아니고요?”

“어, 그건…….”

“역시.”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익숙하니까. 그러고 보니 정식으로 통성명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우리.”

“가르딘, 피에로 가르딘입니다. 황태자 전하의 주치의입니다.”

“아니스예요. 로보의 후계자이자 하신토의 딸로서 달겨울 일족을 책임지고 있지요.”

“그렇군요. 한데 아니스 양? 죄송한데 감히 한 말씀만 조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아니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언이라니.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 걸까.

“하세요.”

들어나 보자 싶었다.

가르딘 경이 사람 좋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감히 조언을 드리자면, 이제부터 황태자 전하가 어떤 치료법을 제시하셔도 너무 많이 놀라지 마시기를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놀라지 말라니…… 어째서죠?”

눈살을 찌푸렸다. 그냥 덮어놓고 믿으라는 소리일까. 한데 가르딘 경이란 사내는 뜻밖의 대답을 꺼냈다.

“치료법을 듣는 순간, 아니스 양이 굉장히 높은 확률로 황태자 전하를 미쳤다고 여기게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

저, 발언, 위험한 거 아닐까. 하지만 가르딘 경은 상관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전부터 그랬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거든요. 우리 별궁의 시녀, 시종들도, 심지어 근위대원들이나 특근대원들도 처음엔 그렇게 여겼으니까 말입니다.”

“황태자 전하를…… 미친 사람 보듯이 했다고요?”

“예.”

“…….”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로 그랬습니다.”

“그럼, 지금은요?”

“보시다시피 제가 아니스 양을 안내하고 있지요. 황태자 전하께. 치료를 받게 하려고 말입니다.”

“…….”

아니스는 입을 다물었다. 황태자라는 사람, 대체 어떤 괴랄한 치료법을 쓰기에 주치의라는 인간이 이런 소리를 할까 싶었다.

물론 그런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는 곧 황태자의 진료실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황태자의 치료법을 들을 수 있었다.

“이 가시바늘로 그쪽의 꼬리 주위를 좀 많이 찌를 거야. 그리고 바늘을 통해 독약을 주입할 거고.”

“…….”

“멋지지?”

……멋지기는 개뿔.

‘미친 거 아냐?’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안 들 수가 없었다.

‘바늘로 엉덩이를 찌르는 걸로 꼬리를 마비시킨다고? 그것도, 독약을 주입해서?’

들어본 적도 없는 치료법이다. 영 미덥지가 않았다. 조금의 신뢰도 샘솟지 않았다. 여기 황도까지 찾아온 고생이 헛된 거였나 싶은 생각마저 잠깐 들었을 정도였다.

그래서였다. 저도 모르게 눈동자를 스윽 움직였다. 자신을 진료실까지 안내해준 가르딘 경을 힐끔 보았다.

끄덕.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르딘 경.

“…….”

이래서 아까 그런 조언을 했던 거였구나. 아니스는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별로 믿음은 안 가지만, 해보자.’

성공할 거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는다. 다만, 희박한 확률일지언정 시도해보는 자체로도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에 하나 정말로 성공하면 우리 일족은 꼬리 때문에 손해 보며 살지 않아도 되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라면 조금 터무니없는 시도라도…… 내가 먼저 위험을 겪어보는 게 낫겠지.’

일족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믿는 이들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과 고통도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는 그녀였다.

“알겠습니다. 하죠.”

아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자가 지시하는 대로 움직였다. 가르딘 경이 밖으로 나가고, 대신 시녀 세 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황태자가 벽을 보고 돌아선 사이, 겉옷을 탈의했다. 침상에 엎드렸다. 시녀들이 하얀 천을 가져왔다. 꼬리 구멍을 낸 커다란 천이었다. 천으로 꼬리만 내놓고 나머지를 모두 덮었다. 비로소 황태자가 이쪽으로 돌아섰다.

“자, 그럼 시작하지.”

“…….”

막상 시술을 받으려니 확 불안한 걸까. 아니스의 전신이 눈에 띄게 굳었다. 하지만 라키엘은 개의치 않았다. 환자가 긴장할수록 이쪽은 태연해야 하니까.

‘내가 차분해야 환자도 침착해져.’

라키엘은 심호흡을 하며 아스라한 심법을 발동했다.

키이이잉-!

심장을 둘러싼 마나써클이 힘차게 회전했다. 체내의 마나를 증폭했다. 동시에 주위의 마나를 민감하게 감지하기 시작했다. 라키엘은 그 감지력의 대부분을 손끝으로 집중시켰다. 맥을 짚듯 아니스의 허리를 짚었다.

아스라한 정밀 진단법이었다.

그러자 비로소 느껴졌다.

‘보인다.’

손을 댄 허리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는 마나의 동심원. 확장되는 그 동심원의 범위를 따라 아니스의 신체를 흐르는 마나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보였다. 감지되었다. 마치, 스캐닝을 하는 기분이었다.

‘인체의 경혈이라는 거, 이렇듯 실제로 존재하는 거였어. 엄연히 기능을 하는 거였고.’

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니스의 신체 경혈을 살폈다.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신비로웠다.

한의대에서부터 배워왔던 경혈. 달달 외우고, 실습을 하며 익혔던 경혈의 배치와 조화. 하지만 실제 눈으로는 볼 수는 없었던 경혈이었다. X-레이나 CT, MRI 등의 장비로도 관찰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저 수백 수천 년간 이어져 온 경험적 지식에 기반하여 ‘있다고’ 추정되고 있을 뿐이었다.

‘솔직히…… 그게 제일 아쉬웠지.’

자신은 경혈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 공부를 했다. 하지만 볼 수가 없었다. 실험적으로도 관찰할 수가 없었다.

오직 수천 년의 경험적 축적으로만 정의되고 정립되어 있는 점이 아쉬웠다. 따라서 침술이 어떤 원리로, 어떤 기전을 통해 인체에 영향을 주는지가 아직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쉬웠다.

항상 궁금하기도 했다. 공부를 하던 시절에도, 환자들을 진료하던 시절에도 그랬다.

‘분명 효과가 있는 건 맞았어. 한데 원리나 이유는 속 시원히 밝혀진 게 없었지. 그저 결과가 좋고, 그 좋은 결과가 수천 년에 걸쳐 수많은 사례로 증명이 되어 왔으니 그 축적된 사례적 증거를 믿으며 시술을 한다는 개념이었으니까.’

확실히 좋은 결과는 나오는데, 그 기전이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은 상태. 마치, 현대 의학의 뇌전증 미주신경 자극 치료술과 비슷한 실정이었다.

하여 가끔씩은 회의감이 들기도 했더랬다. 과연 경혈의 존재가 진짜인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 답답했다.

한데 이제는?

달라졌다.

‘볼 수 있어. 느낄 수 있어.’

아스라한 심법을 활용한 정밀 진단법. 덕분에 이렇듯, 마나의 움직임을 통해 인체의 경혈들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작은 확신 또한 품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공부했던 게 틀리지 않았구나.’

그 지식이 옳았다. 그걸 위해 노력한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실시간으로 경혈의 반응을 살피며 시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지금처럼.

스윽.

꼬슴이표 하얀 가시바늘을 들었다. 첫 번째 경혈을 겨누었다. 독맥(督脈)의 중심 기둥이 되는 혈자리. 허리 부위 첫째 허리뼈(L1) 가시돌기 아래의 오목한 곳에 깃든 경혈.

현추혈(懸樞穴)이었다.

톳!

아니스가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을 정확히 캐치했다. 5푼 깊이로 가볍게 꽂아넣었다. 동시에 써클 슬롯을 활용했다.

키이이잉-!

[1번 슬롯의 방출 기능을 활성화합니다.]

[방출량을 설정해주십시오.]

‘0.01밀리리터.’

[써클 슬롯에 저장된 근육마비독 0.01밀리리터를 방출합니다.]

찔끔!

메시지와 함께 쿠스만표 마비독이 개미 눈곱만큼 방출되었다. 써클 슬롯을 통해 빠져나왔다. 가슴과 어깨, 팔뚝의 혈맥으로 이동했다. 손가락에 쥐어진 가시바늘로 넘어갔다. 가시바늘을 통해 아니스의 현추혈에 스며들었다.

“으음…….”

아니스가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근육이 저절로 반응하는 모양이다. 라키엘은 긴장하며 현추혈과 주위의 경혈을 살폈다.

그러자 보였다. 적절한 양으로 주입된 독액이 현추혈을 지나가는 마나의 흐름에 영향을 주었다. 원래는 직진 일방통행으로 마나가 지나가던 자리였다. 한데 독약이 장벽처럼 놓였다. 마나의 흐름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마나가 스스로 우회로를 찾으려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라키엘은 그 물길을 터주기로 했다.

‘다음은 명문혈(命門穴)과 요양관혈(腰陽關穴).’

척추를 따라 현추혈 아래에 있는 두 경혈을 조준했다. 찔렀다.

톳! 토돗!

명문혈에 7푼 깊이로.

요양관혈에 8푼 깊이로.

호흡에 맞춘 정확한 보사법에 따라 시침을 했다. 동시에 써클 슬롯을 활용했다. 극소량의 적절한 독액을 주입했다. 그러자 다시금 경혈의 흐름이 변화하는 게 보였다.

츠스르릇……!

현추혈에서 우회하려 애쓰던 마나에 물길이 트였다. 척추 양쪽의 기립근을 따라 마나가 내려왔다. 그 과정에서 척추 신경 일부가 비활성화되었다. 바로, 꼬리의 움직임에 관여하는 신경이었다.

그 순간.

추욱…….

아니스의 꼬리에 변화가 일어났다. 긴장되어 꼿꼿하게 들려 있다가 힘이 빠졌다. 아래로 스르륵 가라앉았다. 그 뒤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성공적인 국소마비였다.

‘좋아. 의도대로 되고 있어.’

어느새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진땀. 라키엘은 땀을 훔쳐내며 정신을 집중했다. 일단 독약으로 꼬리를 마비시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아니,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지.’

사실 이번 시술의 관건은 꼬리를 마비시키는 것만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평생 마비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 그게 진짜 관건이었다.

‘그러니 이제부터가 중요해.’

인위적으로 조작해놓은 마나의 흐름. 이걸 이대로만 두면 점점 시술 효과가 사라질 것이다.

‘몸이 이상을 감지하고 조작된 신경망을 복구하려 들겠지. 신체의 자연스러운 회복 반응으로. 사람 몸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그러니 몸을 속여야 한다. 마비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도록. 그리하여 자연스러운 회복 반응이 시작되지 않도록 기만책을 써야 한다.

어떻게?

‘이렇게.’

라키엘은 마지막 가시바늘을 집었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부르르……!

돌연, 성공적으로 마비되었던 아니스의 꼬리가 경련하기 시작했다. 라키엘의 눈썹도 꿈틀했다.

‘회복 반응이? 벌써?’

뜻밖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빠른 반응이었다.

‘역시 웨어울프. 보통 사람과는 다르구나.’

회복력이 장난이 아니다. 벌써 몸이 신경계의 변화를 감지했다. 스스로 자가복구 프로세스를 발동하고 있었다. 그 마나의 흐름이 아스라한 정밀 진단을 통해 훤히 보였다.

하지만 라키엘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쯤은 이미 예상한 바였다. 침착하고도 신속하게 가시바늘을 들었다. 찔렀다.

토톳!

바늘이 허리의 제5요추돌기 양옆 1.5치 지점을 찔렀다. 척추를 둘러싼 좌측의 요수혈(腰兪穴)이었다. 그의 손이 계속 움직였다.

톳!

마지막 가시바늘이 아니스의 뒤통수에 헤드샷으로 꽂혔다. 뒤통수 중앙에서 우측의 뇌공혈(腦空穴). 그곳에 바늘이 3푼 깊이로 꽂히는 순간.

“아엇?”

아니스의 왼쪽 다리가 크게 움찔했다.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하던 꼬리가 경련했다. 복구되기 시작하던 꼬리의 신경이 잠잠해졌다. 원래는 꼬리로 흘러가야 할 신경에 새로운 길이 뚫렸다.

허리를 지나, 둔부를 통과하여, 왼쪽 대퇴근을 훑고, 더 아래로 내려갔다. 종아리를 따라 흘러가, 복숭아뼈와 왼발 옆날을 거쳐, 새끼발가락에 골인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꼼질꼼질.

멈춘 꼬리 대신 왼쪽 새끼발가락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발가락이 꼬리처럼 살랑살랑 꼼질꼼질 움직였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됐다!’

라키엘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척수 신경을 속이기. 그리하여 새끼발가락을 꼬리로 인식시키기. 교묘한 신경 교란 페이크 시술이 마술처럼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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