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57화 (57/468)

57화. 신경 교란 시술법 (2)

……꼼질꼼질.

이 기분은 뭘까. 마치, 꼬리가 새끼발가락으로 대체된 듯한 기분은.

……꼼지르르꼼찔!

이 감각은 진짜로 뭘까. 대체 어째서, 양말 안에서 꼬리가 느껴지는 걸까.

“…….”

아니스는 엎드린 채 인상을 찡그렸다.

이상했다.

괴상했다.

왜 갑자기 발에 꼬리가 달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지. 이런 괴랄한 감각이 생겨난 이유가 대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의혹투성이인 것은 황태자의 치료 과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 인간, 방금 내 뒤통수에 바늘을 꽂은 거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등과 허리에 서너 방. 그리고 마지막엔 뒤통수에 한 방. 아까 봤던 커다란 가시바늘을 꽂은 것 같았다.

황당했다.

‘난 꼬리를 멈춰달라고 한 건데, 왜 뒤통수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장 일어나서 항의하고 싶었다. 잘도 친절한 척을 해대더니 결국엔 이런 거냐고. 사람을 놀리고 농락하는 것도 유분수지, 이렇게 가지고 놀 수 있는 거냐고.

아무리 내가 웨어울프라지만. 아무리 당신이 황태자라지만. 이렇게 사람을 실험재료 취급할 수 있는 거냐고. 남 절박한 처지를 이용해서 이래도 되는 거냐고. 진심으로 따져 묻고 싶었다.

마침 그때였다.

“후우. 이제 거의 끝났으니 긴장 풀어도 돼.”

황태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뭔가(?)를 해냈다는 듯 뿌듯한 말투였다.

“다 끝났다니요?”

“시술. 성공했거든.”

“…….”

성공?

벌써?

아니스는 잠깐 고민했다. 저 성공이라는 게 과연 말 그대로의 뜻일까. 하지만 그녀에겐 고민할 시간이 오래 주어지지 않았다. 황태자가 가시바늘을 금방 숑숑 다 뽑았기 때문이었다.

“자, 천천히 돌아누워서 일어나 봐.”

“…….”

돌아누워 보니 황태자가 등을 보이고 있었다.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겉옷을 걸쳤다. 일어났다.

한데…….

“꼬리, 이상하지 않아?”

이쪽을 돌아보며 빙긋 웃는 황태자. 그제야 아니스는 자신의 상태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

뒤를 돌아보았다.

꼬리가 축 늘어져 있었다.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한데 그걸 왜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까.

“꼬리는 마비시켰고, 대신 몸의 신경을 속였거든.”

“네?”

“왼쪽 새끼발가락. 그쪽으로 꼬리 신경을 돌렸다고.”

“…….”

무슨 말이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쪽을 향한 황태자의 미소가 의미심장해졌다.

“꼬리 대신 왼쪽 새끼발가락이 움직일 거야. 슬퍼서 꼬리가 축 늘어질 때도 꼬리 대신 새끼발가락이, 기뻐서 마구 흔들릴 때도 꼬리 대신 새끼발가락이 움직일 거고.”

“…….”

다 이해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거 같은데. 아니스는 긴장감으로 꼬리에 힘이 꽉 들어가는 걸 느꼈다. 한데 정작 힘은 새끼발가락에 들어갔다. 진짜 꼬리는 미동도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황태자가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새끼발가락이 이상했지?”

“…….”

“그러니까, 성공이야. 이제 꼬리 때문에 속마음이나 기분을 내보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거야.”

“…….”

“아, 물론 약간의 부작용은 있겠지. 꼬리 대신 새끼발가락이 제멋대로 움직일 거니까. 감정에 따라 반응할 거니까. 처음엔 거슬리는 감각 때문에 한두 달은 적응이 필요할지도 몰라.”

“…….”

“뭐, 그래도 걷고 뛰는 데에 지장이 갈 정도는 절대로 아니고.”

“…….”

“아, 그 외엔 발톱 깎을 때 조금 불편하겠네. 발가락이 감정에 따라 제멋대로 움직일 거라서.”

“…….”

“발톱은 최대한 차분하고 고요한 기분일 때를 골라서 깎아. 깎기 전에 명상이라도 좀 하든가. 안 그럼 피 볼 수도 있으니까.”

“…….”

“시술에 따른 부작용은 여기까지. 어때, 이 정도면?”

“…….”

아니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가 없었다. 대신 그녀의 몸이, 정확하게는 꼬리 신경이 연결된 새끼발가락이 대답을 했기 때문이었다.

……꼼질꼼질!

신발 속에서 새끼발가락이 트위스트를 추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마구잡이로 꼼질거렸다. 믿기지 않는 시술 결과. 그 결과가 선사해줄 새로운 삶. 그걸 어렴풋이 직감한 순간부터였다.

“하, 하하?”

아니스는 웃어 버렸다. 그러자 새끼발가락이 화답하듯 더욱 힘차게 꼼질댔다. 낯설고 신기했다. 황태자가 싱긋 웃으며 당부하듯 말했다.

“아, 또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어. 중요한 회의 때나 감정을 숨기고 싶은 사람 앞에선 두꺼운 양말을 신든가, 신발을 벗지 말아야겠네. 뭐, 그건 별로 어렵진 않을 거니까.”

“…….”

“그리고 또 하나. 늑대인간으로 변신했을 때는 꼬리의 마비가 풀릴 거야. 그건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변신하면서 경혈의 흐름이 제법 바뀌는데 그것까진 건드릴 엄두가 나질 않아서.”

“…….”

“뭐, 그래도 변신 상태에선 달라지는 구강 구조 때문에 말을 못 하니까. 오히려 꼬리가 움직여지는 게 의사소통에 도움이 되겠지?”

“…….”

“어쨌건 결론은, 그쪽의 꼬리, 발가락으로 대체되었습니다.”

“…….”

“따란?”

“……하. 하하.”

여전히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저도 모르게 웃음만 잔뜩 머금었다. 연신 꼼질거리는 자신의 발가락을 내려다보는 눈동자. 그런 그녀의 눈가는 어느새 젖어 있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황당한 시술. 그 성공적인 결과가 놀라운 선물처럼 품에 안겨졌다. 그걸 깨달은 순간부터였다.

“흐, 흐흑……!”

느닷없이 울음이 터져 버렸다.

어린 시절부터 쌓였던 갖가지 설움. 웨어울프를 향한 편견의 시선과 괄시. 일족이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그런 설움을 겪지 않아도 되리라. 새로운 삶을 향한 희망과 기쁨이 멈출 수 없는 흐느낌이 되었다.

“흐, 흐흑! 흑!”

눈물이 계속해서 흘렀다.

하지만 그녀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황태자가 항간에 떠도는 풍문처럼 마냥 인자하게 타인을 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저기, 기쁜 건 알겠는데. 시술 끝났으면 우리, 계약해야지?”

“……아?”

아니스는 멈칫했다.

펑펑 흘리던 눈물, 그 흐릿한 시야 사이로 뭔가 새하얀 종이가 불쑥 내밀어져 있었다. 황급히 눈물을 닦았다. 다시 보니 별궁 한의원 간호사 고용계약서였다.

“기억나지? 그쪽이 요청해서 특약사항 걸었잖아?”

“…….”

“내가 그쪽 꼬리 문제를 해결해주면, 계약서에 서명하고 간호사가 되어주는 걸로.”

“…….”

“게다가 보너스로 일족들을 전부 데려온다고 했지?”

“…….”

“그럼 일단 서명부터 하자.”

“…….”

이 황태자,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구나.

순간 아니스는 절감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깨달을 수도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황태자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타인을 이타적으로 치료해주는 사람은 더더욱 아닐 거란 사실을.

‘소문이랑 너무 다른데?’

공짜로 퍼주는 거? 이 황태자에겐 절대로 없을 일 같았다. 하지만 어쨌거나 계약은 계약이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아니스는 고용계약서에 서명하는 것도 모자라 지장까지 찍어야 했다.

“흐흐. 흐흐흐.”

“…….”

“후후후. 후흐흐흐.”

“…….”

“후후흐흐흐후후.”

“……그렇게 좋은가요?”

“당연하지.”

방금 서명한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고용계약서. 그걸 재빨리 돌돌 말아서 챙기며 라키엘이 빙긋 웃었다.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좋아. 이로써 문제 하나는 확실하게 해결했다.’

기뻤다.

최근 성공적으로 오픈한 별궁 한의원이었다. 매일 찾아오는 환자들이 부쩍 늘어나는 판국이었다. 그런데 그걸 소화할 일손이 너무나 모자랐다. 특히나 전문 간호사의 도움이 절실했다.

‘한데 그걸 한 큐에 해결한 셈이니까.’

라키엘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눈앞의 아니스. 그리고 그녀가 데려올 50인의 웨어울프. 그들을 전부 전문 간호사로 육성하고 굴려먹을 생각을 하니 절로 마음이 풍족해졌다. 황금빛 들판을 바라보는 농부, 혹은 방금 배달된 치킨의 향기를 음미하며 포장을 여는 마음이 이럴까 싶었다.

“어쨌건, 그러면 이제 약속대로 일족을 불러와야지?”

“네. 그러겠습니다. 하면…….”

“당연히 오는 대로 꼬리 마비 시술, 해줘야지.”

“고맙습니다.”

“뭘. 그렇게 간호사가 돼서 열심히 일해주면 내가 좋은 건데. 어쨌건, 일족을 어떻게 부를 계획이지? 밤까지 기다려야 하나?”

“……네?”

“웨어울프니까. 자정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달이 중천에 떠오르면 변신하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며 위엄 넘치게 하울링을 울부짖고…… 뭐 그렇게 부르는 거 아닌가?”

“아닌데요.”

“그럼?”

“편지 쓸 건데요.”

“…….”

“왜요?”

“아니, 미안…….”

라키엘이 뻘쭘하게 웃었다. 아니스도 새끼발가락을 꼼질거리며 웃었다. 그날 오후, 가장 빠른 파발이 편지 한 장을 품고 별궁을 출발했다. 그리고 불과 닷새 후. 아니스의 편지를 받은 웨어울프 일족 50인이 별궁에 도착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시험을 치렀다. 기본적인 체력 테스트. 경쟁 속에서 이타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지를 보는 인성 테스트. 다행히도 전원이 합격했다. 그리고 합격 포상(?)으로 꼬리 마비 시술을 받았다.

그날부터였다.

정신없이 바쁜 시간이 라키엘을 맞이했다. 아침엔 여느 때처럼 별궁 한의원을 열었다. 찾아오는 일반 환자들을 진료했다. 그러는 틈틈이 입원 환자들도 살폈다.

그런 평범한 일과가 끝나고 나면? 전혀 쉬질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욱 바빠졌다. 아니스와 50인의 웨어울프 일족. 그들을 진정한 전문 간호사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교육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바쁘다 바빠.’

기본적인 환자 간호 방법과 응급처치. 약재 감별과 보관, 손질법. 탕약 달이기. 뜸봉 관리. 그밖에 입원 병동 운영을 위한 교육까지. 수많은 것들을 일일이 강의하며 가르쳐야 했다.

하지만 보람찼다. 교육과 육성의 순수한 기쁨? 물론 아니었다.

‘이 교육만 끝나면 나도 편해지겠지? 그럴 거야. 쟤들이 알아서 환자들 척척 돌보고. 탕약도 빠밤 달여오고. 난 그저 진맥과 진단만 하면 되는 거지. 가끔 시침 좀 하고. 생각해보면 그거 완전 게임 하면서 자동전투 돌리는 거잖아.’

그러니까 웨어울프 간호사만 완성되면? 별궁 한의원의 자동화(?)가 실현될 것이다. 자신은 편한 업무만 골라가며 환자를 치료하면 된다. 그러면 보너스 수명이 알아서 복사가 될 것이다.

‘이러니까 일을 할 때는 시스템이 중요한 거지!’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사회생활이 좀 그렇다.

괜히 여왕개미가 탱자탱자 알만 낳으며 배불리 먹는 게 아니다. 괜히 교수들이 대학원생을 키워서 자동전투를 돌리는 게 아니다. 그렇듯 라키엘은 별궁 한의원 자동화의 부푼 꿈을 품었다.

처음에는 서투르기 짝이 없던 아니스와 웨어울프들도 하루가 다르게 간호사 교육에 익숙해져 갔다. 시술을 받은 꼬리의 마비에도, 대신 꼼질거리게 된 새끼발가락에도 차츰 적응해 갔다.

그리고 마침내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딩동!

[당신은 정확한 침술로 환자 : 아니스 외 50인의 웨어울프에 대한 꼬리 국소마비 시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아니스와 50인의 웨어울프는 꼬리를 대체하여 움직이게 된 발가락에 완전히 적응하였으며, 앞으로 대인관계에서 사회적으로 고통받지 않을 것입니다.]

[본 시술은 직접적 수명 연장 효과가 없으므로 진료비 청구 (Lv. 2) 스킬이 발동되지 않습니다.]

[대신, 사상 유례없는 기법을 선보인 당신의 신묘하고 신박한 침술에 오장육부가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심장이 환호합니다.]

[허파가 들숨날숨을 격하게 내쉽니다.]

[대장이 융털돌기를 흔들어 재낍니다.]

[간장이 응원봉을 휘두르며 방방 뜁니다.]

[간장이 일으킨 층간소음이 목극토(木克土)의 원리로 작용합니다.]

[토(土) 속성을 지닌 오장육부의 새로운 멤버가 층간소음에 투덜거리며 깨어납니다.]

[위장이 눈을 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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