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58화 (58/468)

58화. 신경 교란 시술법 (3)

[위장이 눈을 떴습니다.]

‘음?’

라키엘은 눈을 끔벅였다. 전혀 기대도 없던 타이밍에 떠오른 뜻밖의 메시지였다.

‘위장? 오장육부의 새 멤버가 깨어났다고?’

한데 그 타이밍이 묘했다.

아니스와 50인의 웨어울프들. 그들의 꼬리를 성공적으로 마비시킨 직후엔 어떠한 메시지도 뜨지 않았더랬다. 한데 지금, 한 달이나 지난 시점에서 이게 떴다는 건?

‘진정한 의미의 시술이 이제야 완료됐다는 뜻이겠지.’

아무래도 환자의 적응이 필요한 시술이었다. 꼬리를 마비시키고 신체를 속였다. 새끼발가락을 꼬리 대신 움직이게 했다. 당연한 불편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 적응이 이제 완료됐고, 덕분에 지금 보상이 들어온 거구나.’

한데 그 보상이 새로운 오장육부의 멤버라니. 어쩐지 모를 기대감이 쑴펑쑴펑 피어났다.

‘위장은 어떤 녀석일까.’

아침으로 먹던 샐러드를 한 입 꿀꺽 삼켰다. 그러자 곧바로 반응이 돌아왔다.

딩동!

[위장이 당신이 섭취한 음식에 반응합니다.]

[위장 : 응애 나 아기 위장! 풀 싫어! 맛있는 거 줘!]

“…….”

이놈 뭐지.

태어나자마자 반찬 투정이라니.

라키엘은 묘한 기분을 느끼며 포크를 옮겼다. 수세 소시지를 씹었다. 삼켰다. 위장이 곧바로 반응했다.

[위장 : 흐으응, 이거보다 맛있는 거 없어?]

‘더 맛있는 거?’

라키엘은 갸웃했다.

위장이 대답했다.

[위장 : 돈까스…… 탕수육…… 치킨…… 피자 주세요. 현기증 날 것 같단 말이에요.]

‘…….’

[위장 : 그리고 김밥도 한 줄…… 떡볶이 양념 푹 찍어서. 거기에 간짜장 달리고 후식은 시럽 묻혀서 설탕에 굴린 도나쓰? 콜?]

“…….”

몇 마디 들어보니 좀 알겠다.

‘이놈, 초딩 입맛이구만?’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위장의 저 요구(?)를 들어줄 방법도 딱히 없었다.

‘미안한데, 여긴 그런 음식 없거든? 나도 김치랑 고추장이랑 된장 그리운 건 똑같거든?’

한국인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로 이곳의 음식만 줄창 먹다 보니 종종 야식 생각이 났다. 특히나 새콤한 김치라든가, 한식 특유의 맵쌀한 맛이 떠올라 종종 잠을 설칠 정도였다.

‘하지만 참고 있지. 어쩔 수 없잖아. 그러니까 너도 좀 참아라, 응?’

[위장 : 흐흑…… 그럼 사탕이라도.]

‘쯧. 그래. 알았다.’

못 이긴 척 후식으로 접시에 놓인 사탕을 집었다. 살살 굴리며 녹이다가 와득 씹어먹었다.

[위장 : 단맛! 크아앙!]

[위장이 자신의 생일축하 단맛에 환호합니다.]

[위장이 당신에게 3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심장과 허파, 대장과 간장이 막내의 탄생을 기뻐하며 5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간장이 막내 탈출을 특히나 기뻐하며 200 HP를 추가로 후원하였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1,000]

“……후아.”

생각지도 못하게 HP 폭탄 후원을 받았다. 게다가 앞으로 환자들을 진료할 때도 더 수월하게 됐다.

‘오장육부의 상담 범위가 늘어났네. 위장 관련 질환을 진단하기에도 편해지겠어.’

그 생각에 절로 기분이 든든해졌다. 한데 보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딩동!

[아스라한 심법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음?’

아무래도 오늘은 노다지가 터지는 날인가 보다. 라키엘은 기쁨의 들숨날숨을 내뱉었다. 추가로 떠오르는 메시지를 지켜보았다.

[당신은 웨어울프 일족의 꼬리에 국소마비 시술을 하는 과정에서, 써클슬롯에 보관된 물질을 마이크로그램 단위로 조절하며 방출하였습니다. 이러한 세심한 컨트롤을 반복하였던 경험이 크나큰 자산이 되어, 아스라한 심법의 성장이 촉진되었습니다.]

[스킬명 : 아스라한 심법]

[단계 : 싱글 써클 Lv. 3]

[주위의 마나를 흡수합니다. 흡수한 마나를 심장 둘레에 써클로 가공/증폭하여 운용합니다. 써클의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증폭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마나 증폭률 : 150%]

[다음 레벨업에 필요한 HP : 1,500]

[현재 보유 중인 HP : 1,000]

여기까진 전에 봤던 레벨업 메시지와 거의 같았다. 한데 그 뒤에, 특별한 추가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아스라한 심법의 성장에 따라, 당신이 보유한 마나써클도 함께 영향을 받았습니다.]

[마나써클의 저장공간이 확장됩니다.]

‘오오?’

써클 슬롯의 용량이 확장됐단다. 그 메시지를 읽어내리는 순간이었다.

후와악-!

돌연, 심장을 둘러싼 써클에 변화가 생겨났다. 가슴 속에서 작은 물풍선이 볼록, 부푸는 느낌이 났다.

이윽고.

딩동!

[1번 슬롯이 확장되었습니다.]

[1번 슬롯의 최대 용량 : 10리터 -> 12리터]

써클슬롯 확장 공사(?) 완료를 알리며 메시지가 마무리되었다.

“…….”

난 그냥 아침밥을 먹고 있었을 뿐인데, 예상치도 못한 보상을 삽째로 퍼 받았다.

‘이야, 이거. 밥도 다 안 먹었는데 배가 불러오네.’

겨울 코트를 꺼내다가 작년에 주머니에 넣어뒀던 5만 원짜리 지폐를 발견한 기분이 이런 걸까. 혹은 집에서 배 긁으며 TV 보던 중에 소개팅 해주겠다는 친구 톡을 받을 때의 느낌일까.

절로 흐뭇한 웃음이 나왔다.

‘어쨌건. 이로써 기본적인 체계가 잡혔구나.’

어렵사리 오픈한 별궁 한의원.

처음엔 잘 될까 싶었다. 그래도 희망을 걸고 추진했다. 우여곡절 끝에 오픈을 하고, 바이럴 홍보에 주력했다. 소문이 나고, 환자가 몰려들고, 부족한 일손을 커버해 줄 전문 간호사도 영입했다. 그렇게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수확의 계절이 온 거지.’

몰려드는 환자들에게 보너스 수명을 챙기기라. 부푼 꿈과 함께 매일매일이 지나갔다. 아니스와 웨어울프 간호사들이 실습을 시작했다. 진료실과 입원실에서 직접 환자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그들의 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황태자 전하, 여기 6번 입원실의 환자가 이상합니다.”

“음? 어디가?”

일반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데 벌컥 뛰어들어오는 웨어울프 청년 간호사. 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체취가 바뀌었습니다. 곧 열이 오를 것 같은데요.”

“그래?”

그를 따라 환자에게 갔다.

환자의 맥을 짚어보니 과연, 열이 오를 전조가 보였다. 간에 피로가 쌓여 있었다. 약이 다소 강한 탓이었다. 하여 처방을 바꾸었다. 내심 놀라움 또한 느꼈다.

‘진맥도 없이 환자의 컨디션 변화를 미리 감지했어. 후아. 이거 실화냐.’

실로 엄청난 능력. 게다가 웨어울프 간호사들은 예상대로 체력 또한 빵빵했다. 인간 간호사들 같은 3교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황태자 전하, 아니스입니다. 이번에 저희가 상의 끝에 근무표를 새로 짰는데 말입니다.”

“으음?”

“이걸 좀 봐주시죠.”

“…….”

아니스가 내민 새로운 근무표를 보니 절로 혀가 내둘러졌다.

“뭐야. 근무 시간이 왜 24시간이야?”

“그게…… 저희는 그게 편한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24시간을 통째로 근무하고, 다음 날은 통째로 24시간을 쉬고? 그렇게 격일 2교대로 일하겠다고?”

“네.”

“안 힘들겠어?”

“매일 낮밤 바뀌는 것보단 차라리 그게 편해서요.”

“아니, 그러니까 24시간 근무하는 거 괜찮겠느냐고.”

“솔직히 48시간 일하고 48시간 쉴까 하다가 이렇게 한 건데요.”

“…….”

“허락해주시는 건가요?”

“어어, 당사자들이 일하는 데 지장 없고 편하면 그걸로 됐지, 뭐.”

“감사합니다, 전하.”

“…….”

라는 식이었다.

한마디로, 웨어울프들은 간호를 위해 태어난 종족 같았다. 모든 신체적 재능이 간호에 최적화가 되어 있었다. 덕분에 별궁 한의원의 체계가 더욱 확실히 잡혀갔다.

일반 환자들에게서 조금씩 보너스 수명이 정산되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닷새, 열흘……. 10일이 지나는 동안 6일의 보너스 수명을 챙겨 받았다. 아직은 소소하지만, 그럼에도 만족스러웠다.

‘첫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지. 초조해할 필요도 없어. 이건 시작에 불과하니까. 앞으로 정산될 보너스 수명이 훨씬 많아질 거거든.’

자신감에 확신이 더해졌다. 한의원 자동화의 꿈이 더더욱 빵빵하게 부풀어 갔다.

한데 그러던 도중이었다. 웨어울프 간호사들이 현장 실습을 시작한 지 보름째 되던 날이었다. 한창 진료를 보고 있는데, 별궁의 시종장이 찾아왔다.

“음? 경이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혹시 어디 아파?”

“아닙니다, 전하. 실은…….”

“실은?”

“긴히 드려야 할 말씀이 있어서 결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어, 그럼 잠깐만. 이 환자 진료만 마저 보고.”

“알겠습니다, 전하.”

대체 무슨 일인 걸까. 어째서 시종장은 저렇게 침중한 기색인 걸까.

‘혹시 고민상담이라도 하려는 건가. 아니면, 남들한테 말 못 할 질환이라도 생겼나?’

내심 궁금해졌다.

환자 진료를 마쳤다. 그때껏 기다리고 있던 시종장을 돌아보았다.

“그래, 대체 무슨 일이길래 표정이 그렇게 심각해?”

“예, 전하. 실은…….”

주저하던 시종장이 내심 뭔가를 결심했는지 비장한 눈빛을 했다. 뒤이어 그가 꺼낸 말은 폭탄, 그 자체였다.

“전하께 이런 보고를 올리기가 매우 송구하오나…… 근래 들어 별궁의 운영 예산이 바닥나기 일보 직전입니다.”

“……음?”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듣고 보니 너무 황당한 보고였다.

“별궁 운영 예산이? 바닥나기 직전이라고?”

그게…… 가능한가?

‘이상한데.’

여기는 황실의 별궁이다. 자신은 무려 제국의 황태자다. 물론 제국이 아직 망한 것도 아니다. 황실엔 아무런 풍파나 변고도 없다. 한데 별궁 예산이 바닥나기 일보 직전이라니.

이해가 안 됐다.

말도 안 되는 거 같았다.

“뭔가 이상한데. 그거, 제대로 된 보고 맞아?”

차라리 만우절 농담이 아닐까 싶었다. 한데 시종장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하기만 했다.

“전하. 전하께 이렇게 고하여드리기가 매우 송구하오나…… 제 보고는 모두 가감 없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정말로, 별궁 운영 예산이 매우 부족한 상황입니다.”

“진짜로?”

“예, 전하.”

“장난 아니고?”

“물론입니다, 전하.”

“…….”

별궁에 돈이 없다니.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로 반문이 튀어나왔다.

“어째서?”

“보다 자세히 고하여드리길 원하십니까?”

“당연히.”

당연하다. 대체 무슨 일인지 좀 들어봐야겠다. 저게 사실이라면, 아무래도 큰일이 난 것 같으니까.

‘돈이 없으면 한의원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되는 거잖아.’

돈이 있어야 한다.

약재 구입비.

간호사 봉급.

입원 환자들 식비까지.

그 밖에도 돈 들어갈 구석이 많은 한의원이었다. 한데 돈이 없다면, 기껏 체계가 다져지고 있는 한의원이 당장 마비될 것이 아닌가.

‘미친. 이거 대체 뭐야. 어떻게 된 건데.’

절로 까득, 이가 갈렸다. 한국에서도 돈이 없어서 한의원이 망했는데, 여기서도 자금난의 위기가 찾아왔다니.

“무슨 일인지 최대한 자세하게 말해봐.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이건 분명히 정상적인 상황이 아닐 거다. 이쪽이 모르는 뭔가가 있다. 누군가가 야료를 부렸거나. 농간을 획책했거나. 어쨌건 뭔가가 있을 거다. 그렇게 짐작하며 시종장에게 물었다.

비로소 시종장의 입이 열렸다.

“예, 전하. 분부하신 대로 이 사안에 대해 최대한 상세히 고하여드리자면…….‘

그때부터였다.

시종장이 들려주는 대답을 들으며, 라키엘은 지금의 자금난 사태가 누구 때문에 벌어진 것인지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라키엘. 너, 대체 무슨 짓을 했던 거냐?’

그는 이 몸의 원래 주인, 소설 속 병약했던 황태자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를 향해 이를 갈았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