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71화 (71/468)

71화. 은혜 갚는 누렁이 (1)

“……누우?”

미노타우로스의 왕.

우루스의 가슴이 쿵.

진한 감정으로 물들었다. 자신에게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감정. 인간에게서 받을 거라는 상상도 못 해봤던 그런 기분. 따스한 감동이었다.

“헉……! 후어억!”

라키엘이 비틀비틀 우루스에게서 물러났다. 우루스는 그런 라키엘을 공격하지 않았다. 아니, 전에 없던 흔들리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누우…….’

조금 전까지 자신이 그토록 죽이려 했던 인간이었다. 저놈이 이 도시에서 가장 우두머리인 인간이라고. 그러니 저놈을 죽이면? 나머지 인간들도 모조리 꼬리를 말게 될 거라고. 그렇게 이 도시를 부수고, 자신의 울분을 토해낼 거라고.

그토록 다짐하며 집요하게 저 인간을 죽이려 노력했더랬다. 한데 그 결과는 어떠한가.

‘누우우…….’

아프던 가슴이 씻은 듯이 나아졌다. 거대한 쇳덩이로 짓이기는 듯하던 통증이 싹 사라졌다. 어떻게? 알 수 없었다. 다만, 저 인간이 커다란 가시로 등이며 뒷목이며 곳곳을 찌른 뒤부터 아프던 게 사라졌다는 건 확실했다.

그러니까 저 인간이다. 저 인간이 가시로 콕콕 찔러서 날 낫게 해준 거다. 내 아프던 곳을 고쳐주고 도와준 거다. 그러니까 저 인간이…… 내 은인이다.

“푸르르! 누, 누우우……!”

우루스의 커다란 콧구멍이 파르르 떨렸다. 크고 새까만 눈망울이 삽시간에 젖어들었다.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자신은 미워하고 죽이려 했는데. 저 인간은 얻어맞아 가면서도 이쪽을 도와주려 애썼다니.

그때였다. 거대해진 인간이 이쪽을 흡족한 눈으로 보았다. 온통 땀을 뻘뻘 흘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후, 후우……! 흉통, 가라앉았나? 다행이네.”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 사심 없는 웃음이 우루스의 가슴에 감동의 레일건이 되어 직격으로 꽂혔다.

“누…… 누우우!”

쿠웅!

우루스가 무릎을 꿇었다. 라키엘의 웃음이 더욱 환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도감이 쑴펑쑴펑 피어난 덕분이었다.

‘……후아, 살았다!’

라키엘은 내심 안도했다. 미쳐 날뛰던 미노타우로스였다. 놈을 진정시키고자 목숨 걸고 매달리며 시침을 했더랬다.

한데 그 결과가?

대성공인 듯했다.

‘다행이다. 놈의 흥분이 가라앉은 건 둘째 치고…… 딱 타이밍 맞춰서 협심증 통증도 끝이 났어.’

경혈 스캐닝 옵션 덕분에 보였다.

놈의 가슴. 심장 어름의 관상동맥. 그곳의 엉망진창으로 꼬여 있던 기혈의 순환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게 뚜렷이 보였다. 하지만 사실 협심증 통증이 가라앉은 것은 침술 덕분이 아니었다.

그냥 우연이었다.

그저 행운이었다.

딱 시침이 끝나는 타이밍에 우연히 협심증 통증도 가라앉은 까닭이었다.

‘원래 안정형 협심증이 그렇거든.’

죽을 듯이 아프다가도 슬그머니 통증이 사라진다. 119 앰뷸런스에 실려왔다가도? 병원에 도착해서 의사와 만날 때가 되면 통증이 가라앉은 상태이기 일쑤였다.

‘사실 그래서 안정형 협심증이 무서운 거기도 하고.’

안 아프니까 괜찮아졌구나 하기도 한다. 검사하고 진단할 타이밍을 놓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 증상이 잠깐 사라졌다고 병이 사라진 게 아니다. 반드시 의사의 말을 듣고 제대로 검사와 치료를 받아야 한다.

지금 우루스의 상태가 그런 듯했다.

‘어쨌건…… 다행히 타이밍 좋게 협심증 통증이 가라앉으면서, 내가 자길 치료해준 걸로 오해한 건가.’

우루스의 태도로 보아선 아무래도 그런 듯했다. 나름 행운이라면 행운인 셈이었다.

‘그나저나…… 힘들어 죽겠네! 후으, 후!’

라키엘은 거칠어진 숨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하지만 거대한 미노타우로스와 실랑이를 벌인 여파(?)는 좀처럼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목구멍에서 쌕쌕 소리까지 났다. 오랜만에 천식기가 도진 걸까.

딩동!

[오장육부가 당신의 극심한 컨디션 변화에 동요합니다.]

[심장 : 뭐냐. 뭘 먹었는데 몸뚱이가 이렇게 커진 건데? 게다가 이거, 혈류 흐름 이상한데? 호흡도 이상한데? 곧 기절할 삘인데?]

[허파 : 허…… 파하학…….]

[대장 : 몸이 커지니까 제가 품은 끙까도 같이 커졌지 말입니다?]

[간장 : 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위장 : 난 지금…… 위대해졌어…….]

“…….”

아주 난리다.

남은 거대화 시간이 간당간당했다. 곤란했다. 데미안을 비롯한 일행에게 할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씨흑……! 후욱! 내가, 할 말이 있는데…….”

일행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 잠시 후에 내가, 콜록! 쿨룩! 다시, 원래 크기로 작아지면…….”

그때였다.

딩동!

[현재 남은 거대화 유지 시간 : 0분 0초]

머릿속에 청명한 알림음이 울렸다. 단호박처럼 단호한 메시지가 눈앞에 주르륵 떠올랐다.

[거대화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당신이 복용한 빨간 해바라기씨는 인간이 아닌, 환상종 전용의 보조 식품입니다.]

[거대화가 종료되며 당신의 신체에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현재 시점으로부터 향후 120시간(5일) 동안, 당신은 혼수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굿나잇-?]

‘……!’

그걸로 끝이었다. 마지막 메시지가 눈앞에 떠오른 순간. 시야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좁아졌다. 눈이 감겼다.

‘늦었…….’

아직 할 말이 남았는데. 5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질 거라고. 잘못된 거 아니니까 놀라지도, 호들갑 떨지도 말라고. 미노타우로스도 적개심을 풀었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그거, 전부 말해줘야 하는데.’

하지만 할 수가 없었다. 입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눈이 제멋대로 스르륵 감겼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어디로 닿는지 알 수도 없었다.

……터엉!

뭔가가 부딪치는 소리. 아니, 머릿속을 울리는 아득한 진동. 혹시 풀썩 쓰러진 걸까. 이렇게 나, 잠드는 걸까.

그게 마지막이었다.

“드르렁, 퓌유으…….”

순식간에 원래 크기로 돌아온 라키엘이 갑판에 쓰러지듯 널브러졌다.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할 틈도 없이 고롱고롱 코를 골기 시작했다.

“…….”

갑판 위에 괴괴한 적막이 깔렸다.

방금까지 라키엘과 호흡을 맞추어 검을 휘둘렀던 데미안도. 라키엘에게 열심히 가시를 뽑아서 던져주던 꼬슴이도. 패대기쳐져 기절했다가 간신히 깨어나던 아니스도. 비틀비틀 몸을 추스르던 근위기사들도. 그들을 부축하던 특근대원들도. 그 밖의 선원들도 모두.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그리고 다들 비슷한 생각을 떠올려야 했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인 거야?’

믿기지가 않았다. 미노타우로스에게 내몰려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던 황태자. 뭔 짓을 했는지 갑자기 미노타우로스만큼 커졌더랬다. 그리고 미노타우로스와 실랑이를 벌였다. 미노타우로스를 잠잠하게 만들었다.

그러더니 원래 크기로 돌아오며 정신을 잃고 뻗어 버렸다.

‘마법……인가?’

데미안은 미간을 찡그렸다. 황태자가 따로 마법을 익힌 적은 없을 텐데. 아니, 애초에 저런 류의 거대화 마법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도 못 들어봤는데.

‘이상해.’

그러나 의문을 계속 곱씹을 여유는 없었다. 잠깐 잠잠해졌던 미노타우로스가 움직이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누, 누오오!”

우루스가 포효했다. 다시 분노를 느껴서? 인간들을 다 박살 내겠다는 다짐을 새삼 떠올려서?

모두 아니었다.

우루스의 이번 포효는 경악과 걱정을 담고 있었다. 바로, 라키엘을 향한 걱정이었다.

“누오오! 누우!”

환하게 웃던 은인이 갑자기 작아지더니 쓰러졌다. 쓰러지더니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만으로도 걱정이 왕창 될 일이었다.

한데 설상가상으로…….

콰르르르! 콰득, 쿨렁쿨렁-!

배 아래쪽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대량의 바닷물이 배 아래쪽으로 침수되어 들어오는 소리였다. 갑판 아래, 선실 쪽에서는 선원들의 다급한 외침도 뚜렷하게 들려왔다.

“물 빨리 퍼내! 더! 어서!”

“으으으! 하고 있습니다, 항해사님!”

“더 빨리 움직이라고!”

“후욱, 후우욱! 여기서 어떻게…… 더 빨리 합니까아!”

“그래도 움직여, 인마! 거기! 좀 더 틀어막아 봐!”

“여기도…… 안 됩니다! 틈새가 너무 벌어졌습니, 우풉! 컥!”

“항해사님! 침수가 너무 심합니다!”

“이건 못 막습니다!”

“빨리 갑판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우리 여기서 다 죽습니다!”

“야! 위에선 괴물이 날뛰고 있다고!”

“여기서 죽으나 위에서 죽으나 똑같이 죽는 거면, 물귀신이 되느니 위에서 죽겠습니다!”

“다들 거기 서! 내 말 안 들리나! 내려오라고!”

……라는 외침이었다.

즉, 이 배는 가라앉고 있었다.

누구 때문에? 자신 때문이었다.

‘누우……!’

우루스의 콧김이 다급해졌다. 내가 날뛰어서 배가 가라앉게 됐다. 한데 가라앉는 배 위에 은인이 쓰러져서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럼 앞으론 어떻게 될까.

‘누우! 누우우!’

지금껏 내가 본 인간들은 전부 이기적이고 잔혹한 놈들이었지. 한데 그런 놈들이, 배가 가라앉는 상황에서 정신을 잃은 은인을 챙겨줄까?

아니.

안 그럴 거 같다.

자신만 살려고 들겠지. 그 과정에서 내 은인은 버림받겠지. 그럼 결국, 침몰하는 배와 함께 바다에 빠져 죽겠지.

그건…… 안 된다. 은인을 죽게 버려둘 순 없다. 남들이 구하지 않는다면, 내가 구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은혜를 갚으리라!

“누우우우우! 푸륵!”

결론이 나왔다. 우루스가 더욱 거친 콧김을 뿜어냈다. 거대한 손을 불쑥 뻗었다. 쓰러진 라키엘을 집어들었다.

행여나 잘못 쥐어서 다칠까. 혹시나 힘을 주어서 상하게 할까. 깃털 붙잡듯 살며시 조심조심 집어서 품에 보듬었다. 그랬더니 주위의 인간들이 난리가 났다.

“황태자 전하아-!”

“감히 전하를!”

“막아!”

채채챙! 스릉!

순식간에 인간들이 주위를 둘러쌌다. 저마다 검이며 창이며 방패를 들어 이쪽을 겨누었다. 그 모습에 우루스의 눈빛이 새삼 거칠어졌다. 옛 아픈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까닭이었다.

“……누우우!”

사냥꾼들의 함정에 빠진 날도 이랬더랬다. 구해내고자 품에 안았던 젖먹이 송아지. 그 까만 눈망울을 지켜주려 얼마나 애를 썼던가. 한데 인간이라는 족속은 그 어찌나 잔혹하던지.

결국 젖먹이를 지켜내지 못했더랬다. 인간들의 함정을 빠져나오지 못하였더랬다.

‘누우……!’

어쩐지, 오늘의 이 상황이, 묘하게 그날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구해내고자 품에 보듬어 안은 은인. 쌔근거리는 숨결을 지켜주려 애쓰고 싶다. 한데 인간이라는 족속은 이 어찌나 교활한지. 은혜를 갚으려는 이쪽을 기어코 막아서는 저 가증스러운 꼬락서니라니.

“누우우우! 누우! 푸륵!”

오늘은 다를 것이다.

그날처럼 원통하게 당하지 않으리라. 어떤 일이 있어도 은인을 지켜내리라. 다짐하고, 각오했다. 그리고 돌진했다.

“누우우!”

쿠쿠쿠쿠콰콰-!

갑판을 박찼다. 한 쌍의 뿔을 앞세우며 황소처럼 돌격했다. 그 앞을 감히 막아설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크어억!”

근위기사의 검과 갈빗대가 단숨에 부러졌다. 특근대원의 방패가 쪼개지고, 쇄골에 금이 갔다. 마지막으로 우루스를 막아선 이는 데미안이었다.

“흐읍!”

쐐애액-!

다친 다리를 무릅쓰고 섬광처럼 움직였다. 돌진하는 우루스의 하체를 향해 회심의 검격을 뿌렸다. 아니, 뿌리려 했다. 하지만 늦었다. 우루스의 돌진이 예상보다 아주 조금, 더 빠른 까닭이었다.

터컹-!

“……!”

삽시간에 쇄도한 거대한 뿔! 그 일격을 가까스로 막아낸 데미안이 주르륵 밀려났다.

“크읏!”

자세를 바로잡았다.

반격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 타이밍을 얻지 못했다. 최후의 방어선을 돌파한 우루스가 데미안을 지나쳐 그대로 내달렸기 때문이었다.

“누우우!”

쿵쿵텅쿵쿵!

인간 무리(?)의 방어선을 뚫고서. 자유를 위해. 은인의 안전을 위하여! 우루스가 라키엘을 안은 채 뛰어올랐다. 범선 난간 너머, 바다를 향해서였다.

철푸확-!

우루스가 장대한 배치기를 선보이며 바닷물에 다이빙을 했다. 하지만 우루스는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금방 수면으로 떠올랐다.

떡 벌어진 역삼각형 몸통으로 넉넉한 부력을 얻었다. 풍성하다 못해 빽빽한 털이 공기 방울을 듬뿍 머금어 몸을 파도 위로 동동 떠올렸다.

그렇게 바다로 뛰어든 우루스는 살아 있는 뗏목, 아니, 항공모함 같은 위용을 뽐내며 1우력(?)의 막강한 힘으로 물살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누우! 푸르륵! 푸륵!”

행여나 라키엘이 물에 빠질까. 혹시나 라키엘이 물을 마실까. 아예 자신의 머리 위에 조심스레 올려두고서 본격적인 개헤엄, 아니, 소헤엄을 선보이며 파도를 헤쳐나갔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먼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쭉쭉 나아갔다. 삽시간에 도주했다. 멀어졌다.

그 순간, 배에 남겨진 모든 이들은 이마를 탁 치며 깨달아야 했다. 방금, 마젠타노 황가의 황태자가 미노타우로스에게 납치당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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