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95화 (95/468)

95화. 체외충격파 치료법 (2)

“왕녀님의 정권으로 명치에 셀프샷을 치면 되는 거라서 말입니다.”

“……네에?”

왕녀 아델린의 눈빛이 흔들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황태자 이 인간, 지금 무슨 소릴 한 거야?’

셀프샷?

명치를?

스스로 치라고? 그러면 담낭 속의 담석이라는 게 치료될 거라고?

“…….”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그래도 잠깐은 믿으려 했는데. 역시나 고약한 농담이었던 거구나. 끝까지 이쪽을 농락하려는 거였구나.

라키엘을 향해 가까스로 생겨나려던 그녀의 신뢰감이 짜게 팍 식었다. 아니, 식으려는 순간이었다. 라키엘이 그녀의 실망감 그래프에 야물딱진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제부터 저는 왕녀님의 담석 치료를 위해 체외충격파 치료를 할 겁니다.”

“체외충격파라니요?”

“왕녀님이 정권으로 쏘아 내는 마나에 제 아스라한 심법을 덧씌울 겁니다. 마나 충격파의 경로를 유도할 겁니다. 그러면 충분히 가능하겠지요.”

“…….”

무슨 소리일까, 저게. 왕녀가 아리송함에 빠졌다. 라키엘의 설명이 이어졌다.

“왕녀님께서도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아스라한 심법은 마나를 흡수하거나 유도하는 데에 특화된 특성을 지녔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왕녀님께서 본인의 명치를 향해 약간의 마나를 발출하면 제가 그걸 유도할 겁니다.”

“유도한다니. 어디로 말이죠?”

“왕녀님의 담낭 속 담석으로요.”

라키엘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렸다. 마나를 유도해서 담석을 정확하게 때리면 된다. 그렇게 수차례만 타격하면? 담석이 뽀각 부서질 것이다. 그것이 체외충격파치료(ESWT : Extracorporeal Shock Wave Therapy)의 원리였다.

‘체외충격파. 어깨 통증이나 요로결석에 시달려본 사람이라면 병원에서 한 번은 접해보는 단어지.’

사실 체외충격파 치료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그 시초는? 세계대전 무렵이었다.

전쟁터에서, 폭약에 직접 신체 손상을 입지 않은 병사가 폭발의 충격파 때문에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람들은 그 원리를 여러 분야에 써먹을 궁리를 시작했다. 의료 분야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게 과학자들이 여차저차 어기영차. 마침내 독일 국방부의 지원을 받던 과학자가 인체실험에 성공을 했다. 1984년에 미국 식품의약청에서 승인을 받았다. 그 기술을 다듬고 개량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체외충격파(ESWT) 치료였다. 말 그대로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생성한 충격파를 신체 내부의 특정한 국소부위에 전달하여 결석을 깨거나, 신체조직의 회복을 돕는 치료법이었다.

‘그리고 그거, 여기서도 가능해. 데미안을 데리고 연습도 해봤으니까.’

왕녀가 황도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데미안을 불러다가 연습도 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커다란 돼지고기 덩이를 두고 실험했지. 데미안에게 고깃덩이를 향해 마나 충격파를 쏘게 했어. 나는 그걸 아스라한 심법으로 유도했고. 고깃덩이 뒤쪽에 붙여둔 5mm 크기의 완두콩에 마나를 충돌시켰지.’

처음엔 어려웠다. 그래도 열심히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마지막엔 보란 듯이 완두콩만 뽀갰다. 앞에 놓인 고깃덩이엔?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희미한 멍조차 들지 않았다. 깔끔한 성공이었다.

‘성공의 관건은 섬세한 컨트롤이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서 마나를 끝까지 유도하는 게 중요하더라고.’

마치 뉴클리어 발사를 유도하는 테랑 종족의 고스트처럼. 혹은 신호위반 차량을 생활불편신고 앱에 정확하게 신고해서 벌금 딱지를 알뜰하게 보내주는 것처럼.

마나를 정확하게 끌어올 자신이 있었다. 담석을 제거해줄 확신 또한 있었다. 그러한 자신과 확신을 담고서 말했다.

“할 수 있습니다. 담석, 제거될 수 있습니다. 건강해지실 수 있습니다.”

“…….”

아델린은 얼떨떨함을 느꼈다.

나, 이미 충분히 건강한데. 매일 아침마다 15킬로미터씩 달리는데. 이 자리에서 300킬로그램 스쿼트도 가능한데. 지금 당장 아무 산적 소굴에나 던져놓아도 그런 곳 따위, 혼자서 가볍게 토벌할 자신도 있는데.

하지만 라키엘의 뻔뻔한 설득은 계속되었다.

“아직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희망을 놓기에도 너무 이릅니다.”

“…….”

“세상엔 아직 아름다운 것들이 많습니다.”

“…….”

“그러니 제발.”

“제발, 어쩌라는 거죠?”

“체외충격파 치료, 일단 받아보시죠.”

“그러니까, 황태자께서 말하신 대로 제 명치를 스스로 치라는 건가요?”

“예.”

“…….”

너무나 당당하고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황태자.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한 태도였다.

하지만 아델린은 쉽게 휘말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활용하기로 했다.

“만약 제가 순순히 그쪽의 요구에 응하여 체외충…….”

“격파 치료입니다.”

“네. 제가 체외충격파 치료에 응하면 말입니다. 황태자께서도 제 요구를 한 가지는 들어주셔야겠는데요.”

“협상입니까?”

“네.”

“뭘 원합니까?”

“담석이라는 거, 다 치료가 되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시죠. 6개월의 기한이 채워지지 않아도 말입니다.”

“좋습니다.”

라키엘은 듣자마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델린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너무 쉽게 동의하시는데요?”

“저야 왕녀님의 담석만 치료가 된다면 더 오래 붙잡아둘 이유가 없으니까요.”

“…….”

“그럼 치료에 동의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네.”

뭔가 말려든 느낌이다. 아델린의 미간이 더욱 찡그려졌다.

“그럼 이제부터 제가 뭘 하면 되죠?”

“일단 뒤돌아서시죠.”

“이렇게요?”

아델린은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자리에서 돌아섰다. 황태자가 뒤로 접근해 왔다. 이쪽의 등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움찔!

“제 지시 없이 움직이지 마시고요. 잠깐만 숨 참으세요. 일단 담석 위치와 크기부터 자세히 파악해야 하니까.”

“…….”

“됐습니다. 숨 쉬시고. 자, 그럼 오른손 주먹을 쥐어보세요.”

“이렇게 말인가요?”

“네. 주먹을 명치 오른쪽에 갖다 대어 보시죠.”

“……여기?”

“조금 아래쪽으로. 약간만. 살짝 왼쪽. 네. 됐습니다.”

“…….”

이게 뭐 하는 짓일까.

아델린은 자신의 명치 오른쪽에 주먹을 갖다 댄 채로 한숨을 삼켰다. 괜히 이상한 노릇에 장단을 맞춰주기로 한 건 아닌가 싶었다. 시간 낭비 같았다. 이럴 시간에 차라리 책을 읽거나 훈련을 하는 게 훨씬 나을 텐데.

그녀는 영혼의 뿌리까지 착잡해지는 회의감을 느꼈다. 그때였다.

“이제부터 아까 말씀드린 셀프 명치샷을 할 겁니다. 우선 그 전에,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라키엘의 당부가 이어졌다.

“정권으로 쏘아 내는 마나를 아주 좁게 만들어야 합니다. 바늘처럼 단단하고 뾰족하게. 한 점에 집중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

“할 수 있겠어요?”

“네. 물론.”

그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녀의 가슴 속 마나하트가 눈을 떴다.

쿠우우우……!

앙부아즈 왕조의 비전 심법이 포효했다. 묵직하고도 빈틈없이 견고한 성질의 마나가 혈맥을 따라 움직였다.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빨라지며. 성큼성큼. 한층 빠르게. 내달리다가.

쿠그극!

아델린의 주먹에 힘줄이 돋아났다. 정권 가득 마나가 실렸다. 그 순간, 라키엘의 신호가 들려왔다.

“준비됐으면, 쏘세요.”

대답은 필요 없었다.

투쿵!

첫발이니까 조금 약하게. 아직은 황태자를 완전히 믿을 수 없으니까 나름 조절을 해서. 자신의 명치를 향해 마나를 쏘아냈다. 동시에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흡!’

호흡도 조절했다. 깊이 들이마신 호흡으로 복부의 모든 면을 크게 밀어냈다. 코어의 근육을 모조리 활성화시켰다. 자신의 명치에 가해질 엄청난 타격. 그걸 최대한 버텨내기 위한 준비였다.

‘내 타격력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나름 조절해서 아주 살살 치긴 했다. 그럼에도 이건 결코 만만하게 볼 타격이 아니었다. 제대로 맞으면 숨이 턱 막힌다. 운이 나쁘면 갈빗대가 부러진다. 하여 그녀는 각오했다.

‘이건 맷집 훈련이야.’

꿋꿋하게 버티자고 다짐했다. 독한 마음가짐으로 이를 꽉 깨물었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

뭘까.

이 스펀지를 친 듯한 기분은. 아니, 허공에 주먹질을 한 느낌은.

‘대체 뭐지?’

복부에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분명 정권으로 마나를 발출했는데. 그게 명치로 정확히 들어왔는데.

아프지 않았다.

해머로 후려치는 듯한 충격? 없었다. 내부가 진탕되며 속이 뒤집히는 감각? 그것도 없었다. 마치, 자신이 발출한 마나가 어딘가로 흡수되어 종적도 없이 말끔하게 사라져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

참으로 기이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좋습니다. 잘 쏘셨습니다. 앞에 있는 뽀복이, 보이시죠?”

“…….”

황태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도동실 떠올라 있는 환상종이 보였다. 불꽃 지느러미 화면을 활짝 펼치고 있는 뽀복이였다. 그 화면을 통해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아까부터 비춰주던 자신의 담낭. 그 속에 있는 수많은 담석. 그중의 하나가 확대되어 보였다.

한데 담석 옆구리에 아까는 없던 균열이 생겨나 있었다. 큰 균열은 아니었다. 아주 작은, 실낱같은 균열이었다.

황태자의 말이 이어졌다.

“담석에 균열이 생겨난 게 보일 겁니다. 방금 발출한 마나가 저길 정확히 때렸거든요.”

“…….”

정말일까.

“그러니 이번에도 방금과 똑같이. 쏘세요.”

아델린은 저도 모르게 황태자의 말대로 했다. 그녀의 주먹에 한결 힘이 들어갔다. 아까보다 많은 마나를 묵직하게 실었다. 발출했다.

투쿡-!

이번엔 어떨까.

궁금했다.

기대했다.

역시나 복부에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았다. 대신 뽀복이의 지느러미 화면 속 담석이 크게 흔들렸다. 마치 무언가에 거세게 얻어맞듯이.

……카득!

균열이 아주 조금, 커졌다.

“…….”

이제는 확실하다. 황태자의 말이 사실인 것 같다.

“좋습니다. 잘하고 있어요. 계속 갑시다.”

“…….”

그렇다면 기꺼이.

아델린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때부터였다.

그녀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결 묵직한 마나를 실었다. 자신의 명치를 향해 연달아 내쏘았다. 그럼에도 아무런 타격이 느껴지지 않는 감각에 놀라며. 화면 속에서 점점 커지는 담석의 균열을 바라보며. 이러한 진귀한 경험에 신기해하며.

내쏘고, 또 쏘았다.

투컥! 투훅!

몇 번이나 명치를 타격했을까. 몇 번이나 감탄을 삼켰을까. 정확히 세지는 않았다. 대략 스무 번은 넘게 내쏜 것 같았다. 그 순간, 마침내 화면 속 담석이 박살 났다.

콰즉……!

‘후우!’

해냈다.

아델린은 말로는 표현 못 할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의 뱃속에 생겨나 있던 저 흉측한 덩어리를 박살 냈다는 쾌감. 그걸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뜻밖의 경험이 그녀를 고양시켰다.

큰 성취감이 느껴졌다. 뒤에서 들려오는 황태자의 칭찬도 그러한 기분을 더욱 북돋아 주었다.

“자, 됐습니다. 보시다시피 담석이 제대로 부스러졌습니다. 처음치고는 정말 잘하셨어요.”

“그런가요?”

“예. 저 부스러진 조각들은 담관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출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오늘 치료는 여기까지로 하겠습니다.”

“네?”

……벌써?

끝이라고?

아델린은 까닭 모를 아쉬움을 느꼈다. 기왕 시작한 거, 담석 한 개만 더 깨보면 안 될까 싶었다. 더 하자고. 그냥 오늘 다 깨보자고. 황태자에게 말하려 했다. 뒤를 돌아보았다. 그제야 그녀는 발견할 수 있었다.

“……어?”

황태자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얼굴 가득 식은땀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마치, 당장 쓰러지기 직전인 사람처럼.

‘……어째서? 왜?’

처음엔 놀랐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자신의 명치를 향해 발출했던 마나의 기파. 그럼에도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않았던 자신. 그래서 충격파가 말끔하게 사라졌다고 여겼는데.

과연, 정말로, 사라졌던 걸까.

“…….”

그녀는 흠칫했다.

사라진 게 아니다. 사라질 수가 없다. 불가능하니까. 하다못해 손바닥으로 평범하게 책상을 내리쳐도 그 충격력이 주위로 퍼지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

그런데 자신이 뱃속에서 아무런 충격력을 느끼지 못했다면? 담석을 후려치며 생성된 충격력은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사라진 걸까.

사라진 게 아니라면?

어디로 갔을까.

“설마, 당신…….”

삽시간에 찾아온 무거운 깨달음. 그녀의 눈동자가 경악에 휩싸여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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