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129화 (129/468)

129화. 미친놈들의 추격전 (2)

쉬쉬쉬쉬쉭!

날카로운 파공성이 하늘을 갈랐다. 정오를 향해 치솟던 새파란 늦가을 하늘에 수백 줄기의 붉은 선이 그려졌다.

선이 선율이 되고. 불꽃이 되어. 지면에 꽂혔다.

마침내 불꽃으로 피어났다.

화르륵!

불화살의 효과는 만점이었다. 원래부터 건조한 늦가을이었다. 이른 새벽에는 안개가 피었다곤 하지만, 그마저도 오전의 햇살에 완벽히 마른 터였다.

게다가 겨울을 앞둔 계절답게 지면에는 누렇게 메마른 풀과 갈대가 한가득이었다.

불화살이 떨어진 자리마다 불길이 피어났다. 그런 불화살이 수백, 수천 발이었다.

수백, 수천 줄기의 불길이 번지고, 덩치를 불려갔다. 차츰? 아니, 급속도로. 막을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한계를 모르고서. 감당이 불가능할 만큼.

쿠화아아아악-!

“……미친.”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느새 평원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있었다.

불길이 메마른 계절의 풀과 바람을 만나 급속도로 커지고, 서로를 잡아먹으며 기하급수로 커졌다. 순식간에 평원 전체를 집어삼킬 기세였다.

물론 일행이 몸을 숨기고 있던 바위 무더기 인근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친! 진심 저거 미친놈이!’

라키엘은 욕지거리를 삼켰다. 상황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상하는 것도 쉬운 일이었다.

이대로 여기서 미적거리고 있다간?

‘돌솥 불판구이 빼박 당첨이지!’

생각할수록 심장이 쿵, 쿵, 빠르게 뛰었다. 실제로 심장과 오장육부가 난리를 치고도 있었다.

딩동!

[당신의 오장육부가 당신이 처한 상황에 몹시 놀랐습니다.]

[심장의 근심과 걱정이 깊어집니다.]

[심장이 깊어지는 걱정만큼 더욱 쿵쿵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나머지 오장육부가 층간소음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웃을 배려하는 생활습관을 가지고 층간소음을 줄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실내에서는 슬리퍼 착용을, 바닥에는 층간소음 방지용 매트를, 마음속엔 혼자가 아닌 다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개념을 차곡차곡 새겨 주세요. 반박시 네 말이 다 맞음.]

“…….”

뭐지, 방금 내가 본 메시지는.

하지만 저런 것(?)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라키엘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평원 전체에 불을 싸질러 버린 쟈빌론, 그놈의 의도를 짐작해냈다.

‘뻔하지. 그놈, 내가 평원 어디엔가 숨어 있다고 짐작했을 거야. 그런데 왕국군의 견제가 신경 쓰이니까 이런 수를 쓴 거고.’

불을 지르면?

이쪽이 못 견디고 뛰쳐나가게 될 거다. 그걸 노리고 있는 거다.

너구리 등을 잡을 때 굴속으로 연기를 피워서 사냥감이 뛰쳐나오게 만들듯이. 그때 비로소 사냥을 개시하듯이. 그렇게 이쪽을 사냥하려 하는 거다.

그러니 가급적 여기서 버텨야 한다. 움직이면 손해다. 하지만…… 버티기가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다.

“전하! 여기서 더 머무르다간 끝장입니다!”

데미안의 다급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르딘 경의 떨리는 외침도 날아왔다.

“흐으으으! 전하아!”

아닌 게 아니라, 이미 불길이 인근까지 번져 오고 있었다. 그 속도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빨랐다.

바람 방향이 좋지 않았다. 이대로 여기서 미적거리다간? 정말로 돌무더기 속에서 오순도순 돌솥구이가 되는 엔딩을 맞이할 판국이다.

‘……젠장.’

까드득!

설마 쟈빌론이 이런 미친 짓을 벌일 줄은 몰랐는데. 라키엘은 이를 갈며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상대를 덜 미친놈으로 보았던 게 실수였다.

그는 결단을 내렸다.

“가자, 북쪽으로.”

“북쪽 말입니까, 전하? 동쪽이 아니라요?”

가르딘 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불길은 서쪽에서 번져 오고 있었다. 발루아 요새가 있는 동쪽 방면은 아직 깨끗했다.

그래서 가르딘 경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동쪽으로 도망치는 편이 안전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의 생각을 짐작한 라키엘이 고개를 저었다.

“바람 방향 때문에 불길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번져 오고 있어. 그런 불길을 계속 등지고서 도망친다는 건 자살행위지. 불이 번지는 속도가 우리 걸음보다 빠를 테니까.”

“아…….”

“그러니 가능한 한 불이 번지는 방향과 직각으로. 어서 움직이자. 시간 없으니까.”

정말로 미적거릴 틈이 없었다.

라키엘이 앞장서서 바위틈을 버리고 뛰쳐나갔다. 뒤이어 데미안이, 마지막으로 꾸꾸를 안은 가르딘 경이 황급히 뛰었다.

그리고 수백 걸음 떨어진 평원의 서쪽 건너편. 그곳에서 쟈빌론이 일행의 모습을 보며 두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찾았다…….”

쟈빌론은 환희를 느꼈다. 동시에 끔찍한 통증을 실감했다.

아팠다.

숨을 쉴 때마다 머리가 아팠다. 그냥 단순히 아픈 게 아니었다. 맨정신인 채로 도끼에 머리가 쪼개지는 느낌이었다.

양쪽 관자놀이에 꼬챙이를 찔러넣고 휙휙 돌려대는 것만 같았다. 당장에라도 안구가 튀어나오진 않을까 싶었다.

며칠 만에 겪는 고통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성자 군의관이 아침마다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괴상한 노래와 함께 그의 손맛을 보고 나면 온종일 아플 일이 없었는데. 그때가 행복했는데.

‘그런데, 날 버리고 도망을 쳐?’

자신을 속였다.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도망을 쳤다. 감히. 자신의 고마워하는 마음을 몰라주고. 팽개치고. 잔혹하게 떠나갔다. 헌신짝처럼 버리려 했다.

……까드득!

이가 갈렸다.

괘씸했다.

지금, 평원 건너편에서 불길을 피해 도망치고 있는 성자 군의관이. 한때 자신이 평생 친구로 두고 싶노라 여겼던 리한 군의관이. 증오스러웠다.

원망스러웠다. 동시에 너무나 소중했다. 떠나보내기 싫었다. 그 어떤 이에게도 빼앗기기 싫었다.

‘그대는 내 수족이야.’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불을 질렀다. 혹시나 하는 의혹으로. 설마 싶은 확신으로. 평원을 향해 외치고, 불을 놓았다.

덕분에 찾아냈다. 기뻤다. 가슴이 떨렸다. 이제부터 저자를 평생 잡아 둘 것을 생각하니, 환희를 멈출 수가 없었다.

스르릉!

쟈빌론의 검이 뽑혔다. 그가 검으로 라키엘 일행을 겨누었다.

“친위대, 출진!”

외침과 함께 박차를 가했다. 그를 태운 거대한 흑마가 거친 숨결을 토했다.

그를 따르는 친위대 300기가 투구를 눌러썼다. 정예 기병의 함성이 그를 따라 평원을 가로질렀다.

투두두두두……!

쟈빌론과 친위대의 앞길을 이글거리는 화재의 현장이 가로막았다. 그러나 쟈빌론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애마를 더욱 독촉하였다. 주인의 뜻을 깨달은 흑마의 전신 근육이 폭발적인 힘을 냈다. 속도를 높였다.

동시에 쟈빌론이 검을 뒤로 당겼다. 겨누었다. 그 눈동자에 광기 서린 광휘가 맺히는 순간.

츠핏!

찔렀다.

검이 가리킨 끝은 허공이었으되.

검이 갈라낸 것은 불길이었다.

투콱- 쿠화륵!

소드마스터의 오러가 모조리 실린 폭발적인 찌르기였다. 검이 찌른 방향의 불길이 진공의 폭풍을 만난 듯 순식간에 꺼졌다.

화염 속으로 수 미터 너비의 순간적인 터널이 생성되었다. 쟈빌론이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친위대가 뒤를 따랐다.

“하! 이랴! 하!”

자신의 애마를 독려하며.

화염 속으로 길을 만들며.

쟈빌론은 잔혹한 환희의 미소를 지었다. 저 멀리서 도망치고 있는 성자 군의관. 그와 시시각각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제 곧 그를 붙잡고, 두 다리를 잘라, 영원히 도망칠 수 없게 만들리란 생각에 흐뭇함을 누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참으면.

조금만 더 달리면.

이 지옥 같은 두통도 끝이다.

“……하!”

투확-!

쟈빌론의 광기 서린 기합이 화염을 갈랐다. 그와, 그를 따르는 300기의 친위대가 평원 중앙의 라키엘 일행을 향해 거침없는 돌진을 이어갔다.

그리고 멀찍이 떨어진 평원의 동쪽 반대편. 그곳의 발루아 요새에서 왕국군이 평원의 분란을 보며 술렁이고 있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앙부아즈의 국왕, 메로뱅거는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동시에 골치가 아파지는 것 또한 실감했다.

당혹스러웠다.

상황을 목격하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냥 단순히 황당한 정도가 아니었다. 맨정신인 채로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당장에라도 한 번쯤 눈두덩을 거칠게 비비고 싶어졌다.

반란군이 난데없이 움직인 상황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심지어 평원 전체에 난데없는 화재를 일으킨 형국이기에 더더욱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이런 난리를 피우고, 기병을 출진시키기까지 하면서, 고작 세 사람을 추격하고 있다고?’

국왕 메로뱅거의 시선이 평원 중앙을 향했다. 그곳에 불길을 피해 도망치는 세 사람이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정체를 식별할 수는 없었다. 다만, 말을 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지체 높은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곁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생 왕좌를 보좌한 원로이자 소드마스터, 이드리스 경이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워낙 연기가 자욱하여 제 시야로도 더 자세한 모습까지 식별할 수는 없사오나, 젊은 남자 셋인 듯하옵니다.”

“남자 셋?”

“그러하옵니다, 전하. 수수한 복장으로 미루어 짐작하기로는…….”

“평범한 백성들이겠군.”

“그런 듯하옵니다, 전하.”

“흐음…….”

국왕 메로뱅거는 침음을 삼켰다.

난데없이 평원에 불을 질러 버린 반란군. 평원에 숨어 있다가 그 불길을 피해 허겁지겁 도망치는 평민 셋. 그런 평민들을 죽일 듯이 추격하며 나선 반란군의 기병대.

이 상황을 무어라 해석해야 할지.

‘혼란스럽군.’

설마 쫓기고 있는 평민 셋이 뜻밖의 중요한 인물들인 걸까. 그러나 심사숙고를 하여도 딱히 그럴싸한 인물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남루하고 평범한 차림으로 반란군 기병대의 추격을 받을 마땅한 사람 또한 생각나는 바가 없었다.

국왕은 이드리스 경에게 물었다.

“한데 아까 불화살을 쏘기 직전에 말이야. 쟈빌론이 무어라 외치는 것 같던데. 혹시 경은 그 내용을 들었는가?”

“송구하오나, 전혀 듣지 못하였사옵니다.”

“소드마스터인 그대의 청각으로도?”

“그러하옵니다, 전하. 쟈빌론 또한 엄연한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자. 필경 이쪽까지 외침의 내용이 전해지지 않도록 목청에 실린 마나를 정교하게 조절하였을 터이옵니다.”

“……그렇군.”

국왕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의 고민이 깊어졌다.

알 수 없는 반란군의 돌발적인 행동.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국왕의 생각이 바빠졌다. 그 끝에 마침내 나름의 결론을 얻었다.

“아무래도 쟈빌론, 저 반역자는 우리의 사기를 떨어뜨리려 하는 것이겠군.”

“소장의 생각도 그러하옵니다, 전하.”

“경도 그렇게 보았는가?”

“예, 전하.”

이드리스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고갯짓에는 어느새 은은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쟈빌론, 저 참람된 반역자의 의도는 명명백백하옵니다. 평원에 불을 질러 우리 왕국군의 이목을 이끌어 낸 상태에서, 아무 죄 없는 평민을 사냥하듯 무참히 학살하는 모습을 보이려 함이겠지요.”

“……그럴 테지. 그리하여 우리 왕국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려 함이겠지.”

“그렇사옵니다, 전하. 우리로 하여금 백성이 사냥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함으로써 무력감을 느끼게 하고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수작일 것이옵니다. 즉, 이것은 명백하고도 저열한 기싸움이옵니다, 전하.”

“하면 기싸움에 밀려선 아니 되겠지?”

“물론이옵니다, 전하.”

이드리스 경이 굳세게 답하였다. 국왕 메로뱅거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 생각도 경의 것과 같네. 하니 반역자에게 쫓기는, 저 나약하고 가련한 우리의 백성을 구출하도록 하지.”

“소장이 직접 가도 되겠사옵니까?”

“아니.”

국왕이 고개를 저었다.

“그대는 언제나 내 곁을 지켜야 할 것임이야. 대신 그 아이와 짐의 근위대를 보내도록 하지.”

“예? 그리하여도…… 괜찮으시겠사옵니까?”

“물론.”

딱 잘라 대답하는 국왕.

근위대라면 충분할 것이다. 반란군의 일개 기병대 따위는 정면으로 박살 낼 수 있을 것이다.

국왕은 자신했고, 확신했다. 물론 소드마스터인 쟈빌론이 반란군의 기병대를 직접 이끌고 있음을 모르기에 품은 오판이었다.

사실 이러한 국왕의 오판은 평원 전체를 휘감은 자욱한 연기 때문이었다.

만약 평소였다면? 곁의 이드리스 경이 소드마스터 특유의 뛰어난 시각으로 친위 기병대 선두의 쟈빌론의 모습을 식별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화재 때문에 시야가 워낙 좋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국왕 메로뱅거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맺혔다.

“반란군에게 쫓기는 우리의 가련한 백성을 구하러 달려가는 친위대와, 그러한 친위대를 이끄는 이가 그 아이라면, 그 또한 제법 상징적인 모습이 될 터이지. 우리 왕국군의 사기 진작에 크나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전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이드리스 경이 고개를 숙였다.

명령이 하달되었다.

잠시 후, 왕국군 발루아 요새의 관문이 열렸다. 총 500기의 국왕 친위대가 은빛 마갑을 번득이며 출진했다.

거침없이 서쪽으로 진격했다. 목표는 쫓기고 있는 세 명의 가련한 백성(?)을 구출하는 것이었다.

그런 국왕 친위대의 선두에 왕녀, 아델린이 있었다.

“하! 이랴! 하!”

내달리는 돌격마.

그 위에서 지르는 노호성.

그렇지 않아도 반란군에게 쫓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온몸이 근질근질하던 아델린이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가련한 백성을 구하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아바마마의 명이 떨어졌다. 기뻤다. 감격스러웠다.

동시에 그녀는 다짐했다.

반드시 백성을 구하겠노라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반란군의 마수로부터 백성들을 구해내어 왕국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겠노라고. 적을 격멸하여 엄준한 좌절감을 선사하겠노라고. 반드시 성공하겠노라고. 다짐하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각오했다.

“하! 하아!”

돌격마를 더욱 독려하였다. 매캐한 연기 속을 내달렸다. 다행히 이쪽이 반란군보다 백성들과 가까웠다. 기뻤다. 이쪽이 먼저 백성들과 맞닿을 수 있을 듯했다.

‘조금만 더! 빠르게!’

달렸다.

백성들과 가까워졌다. 그 뒤편에서 추격하며 달려오는 반란군의 대열도 얼핏 보였다. 가슴이 쿵, 쿵, 뛰었다.

‘좋아. 할 수 있어.’

고삐를 틀어쥔 그녀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스스로를 격려했다. 한편으로 문득, 은인 같은 사람의 모습도 떠올렸다.

‘황태자, 당신, 보고 있나요.’

당신 덕분에 담석증이 완치된 내가, 지금, 가련한 백성을 구하기 위해 반란군과 당당히 맞서고 있답니다.

그러니 당신, 어디에 있든 날 응원해 주세요. 나도 당신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서 언제나 노력할 테니까.

‘그러니까……!’

쿵쿵, 뛰는 가슴.

대지를 때리는 말발굽.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백성들의 모습. 그런데 어쩐지 익숙한 느낌의 알밤 같은 뒤통수. 이윽고 이쪽을 돌아보더니 뭔가 뜨끔한 표정을 짓는 저 빨간머리 통통한 남자는…….

‘어?’

왕녀 아델린은 흠칫했다. 그녀의 눈이 경악으로 번쩍 뜨였다.

‘……황태자?’

당신,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어? 분명 나한테 그렇게 편지 쓰지 않았어? 그래서 난 당신이 담가둔 여왕벌 술통도 황도로 배송 보냈는데. 심지어 제일 비싼 특급 마차배송으로. 완전 알차게 보냈는데.

‘그런데 왜 당신이 여기서 나와?’

묘하게 스멀거리는 서운함과 배신감을 만끽(?)하며, 왕녀 아델린은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빠직 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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