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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134화 (134/468)

134화. 폭발적 성장 (2)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다. 아무리 맞아도 죽지 않는다. 심지어 생명력이 계속 빵빵하게 유지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걸 치트키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금.

내 몸이.

치트키가 되었다?

“에이, 쯧. 이거 맞아 보니까 별거 아니네. 소드마스터 이런 거였네, 쯥.”

“……!”

라키엘의 능청스러운 목소리. 더욱 태연한 눈동자가 빙긋 눈웃음을 그렸다.

쟈빌론의 눈빛이 흔들렸다.

‘뭐지?’

이상했다.

성자 군의관.

아니, 마젠타노의 황태자.

원래는 저놈의 다리를 단숨에 베어 버리려 했다. 마침 장소도, 상황도 적당했다. 발루아 요새와 제법 거리가 멀었다.

평원 곳곳을 휘감은 화재와 매캐한 매연 때문에 시야가 좋지 못했다. 아마도 요새의 왕국군 놈들은 이곳의 상황을 제대로 관측하지 못하리라.

그러니 이 상황을 제대로 목격한 자는 황태자의 호위, 그리고 왕녀 아델린과 왕국군 근위대뿐. 그들만 제거하면 된다.

그러면 황태자건 성자 군의관이건, 자신의 전리품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될 것이다.

‘아니, 설령 안다고 해도 상관없어.’

여차하면 마젠타노 제국마저 쓸어버리리라. 자신의 조국은 강력하니까. 앙부아 민족은 위대하니까.

조국과 민족의 저력을 십분 발휘한다면 거대한 제국이라 한들 무너뜨릴 자신이 충분히 있었다.

그래서였다.

서슴없이 검을 휘둘렀다.

정말로 단칼에 두 다리를 베어 버리려 했다. 물론 황태자가 나름 방어를 시도하긴 했다.

냉기를 펼치는 마법 무구? 방패?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실컷 막아 보라지. 그렇듯 애처롭게 발악해보라지. 오히려 코웃음만 나왔다.

하여 조금은 놀라야 했다.

황태자의 냉기 방패가 자신의 검격을 막아 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코웃음은 지워지지 않은 채였다. 방어에 성공한 것은 어쩌다가 운이 좋아서였을 뿐.

‘두 번의 행운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꿀꺽.

쟈빌론의 목울대가 출렁였다. 그의 시선이 라키엘의 전신을 훑었다.

없다.

보이지 않는다.

지금껏 이 손에 죽어간 놈들이 숱하게 버둥거리며 보였던 일상적이고도 당연한 반응들이,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방금 공격을 막아내며 반드시, 분명히, 필연적으로 입었을 타격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버거워서 내뱉는 헐떡임? 없었다. 방어 후의 충격에 의한 근육의 경련? 아예 없었다.

일말의 현기증의 기색도, 고통을 참아 내려는 표정의 일그러짐도, 작은 호흡의 떨림조차도 감지되지 않았다.

즉, 그러니까, 너무나 멀쩡했다!

그래서 말이 안 됐다!

‘어떻게?’

작심하고 내지른 공격이었다. 비록 자신이 까닭 모를 이유로 오러를 발현할 수 없는 상태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만하게 볼 검의 위력은 절대로 아니었다.

자신은 소드마스터였다.

검을 다루는 기예.

검에 대한 이해도.

마나의 운용에 대한 철학.

모두가 최상급 절정의 경지에 도달하여 있었다. 그러한 정수가 깃든 일격이었다.

한낱 말라깽이 황태자 따위가 막아내고 버틸 만한 일격이 아니었다. 막아 낸 후에 저렇듯 태연한 낯빛을 내보일 일격은 더더욱, 절대로 아니었다!

‘정말로 어떻게?’

쟈빌론의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분명히 자신이 모르는 농간이 있을 터. 그러니 저토록 태연할 수 있을 터.

“이봐, 쟈빌론 씨. 그거밖에 못 해?”

“…….”

“약하잖아. 맵지가 않잖아. 소드마스터라며.”

“…….”

“아니, 난 또 소드마스터가 검만 휘두르면 땅을 가르고, 파도를 자르고, 절벽을 뭉개고, 그런 초인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직접 보니까 좀 아닌데? 그냥 허세였네?”

“…….”

“그러니까 자아, 이번엔 실망시키지 말고 제대로 한번 가봅시다. 응? 자자. 화이팅.”

탕탕!

라키엘이 보란 듯이 손바닥으로 만년설을 탕탕 쳤다. 살랑살랑 눈웃음까지 날렸다.

마치 처음 배우는 검술에 허둥거리는 신출내기를 달래는 듯한 말투였다.

물론 쟈빌론은 그 의도를 너무나 잘 알았다.

“…….”

수준 낮은 도발이다.

뻔히 보이는 수작이다.

하지만 그는 기꺼이 도발에 응했다.

다른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빡쳐서(?)였다.

‘……그 잘난 주둥이를 짓뭉개 주마!’

투칵-!

생각과 돌진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마음이 검을 이끌었다. 살의가 공격 경로를 정하였다.

불과 호흡의 끝자락이 입술에 닿을 찰나에, 쟈빌론은 이미 라키엘을 덮쳐 가고 있었다.

쐐애액!

일점에 집중된 찌르기!

‘온다.’

라키엘의 눈이 빛났다. 그의 오감이 극도로 확장되었다.

물론 그는 소드마스터인 쟈빌론의 동작을 따라잡지도, 100% 간파하지도 못했다. 애초에 그럴 역량 자체가 안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스라한 심법이 있었다.

키이이잉-!

마나써클이 포효했다. 세차게 회전했다. 주위의 마나를 끌어당겼다. 흡수하고, 증폭했다.

증폭한 마나를 전신으로 실어날랐다. 근육과 근막에 증폭된 마나가 깃들었다. 신경계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시각과 촉각, 청각이 한계치까지 활성화되었다.

그토록 민감해진 감각. 덕분에 쟈빌론의 공격 시점을 대략적으로는 간파할 수 있었다. 공격 방향도 어림짐작으로나마 감지할 수 있었다.

‘여기!’

콰가각!

왼쪽, 시계 반대 방향으로 몸을 70도 틀었다. 왼발을 축으로 오른발 피벗턴을 했다.

그대로 자세를 낮추었다. 만년설을 비스듬히 들어 올렸다. 마나를 투입했다.

츠즈즈즈!

만년설의 냉기 실드 범위가 극적으로 확장되었다. 거의 몸 전체를 다 뒤덮을 정도로. 시간당 100mm 소나기가 쏟아져도 몸에 빗물 한 방울 튀지 않게 막을 수 있을 듯했다.

물론 쟈빌론의 찌르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콰창!

예리한 찌르기가 만년설의 냉기 실드를 때렸다. 순간 실드가 거의 깨질 뻔하다가 버텨 냈다.

어마어마한 충격이 팔을 때려 왔다. 어깨를 짓눌렀다. 그걸 느끼는 순간 뒤로 몸을 던졌다. 넘어지며 아예 굴러서 충격을 분산시켰다.

‘……그읏!’

라키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명치가 콱 조이는 기분이었다.

입으로는 별거 아니네 어쩌네 도발을 했지만, 역시나 이런 찌르기 한 번을 막아 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공격은 찌르기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또 온다.’

투팍!

쟈빌론이 악에 받친 표정으로 쇄도해 오고 있었다. 검을 치켜들고 있었다. 내리치기?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라키엘은 만년설을 치켜들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공격에 곧바로 반응할 정도로 순진하지도 않았다.

‘경혈 스캐닝!’

외쳤다.

쟈빌론을 주시했다.

딩동!

[진맥 스킬 옵션 ① : 경혈 스캐닝을 발동합니다.]

[경혈 스캐닝 옵션이 Lock-on 대상을 포착하였습니다.]

[대상이 성공적으로 Lock-on 되었습니다.]

키이잉-!

신속한 알림음과 함께 시야가 변했다.

쇄도해 오는 쟈빌론의 몸 주위로 밝은 외곽선이 생겨났다. 그와 함께 쟈빌론의 몸속 경혈의 배치가 낱낱이 보였다.

그 속에서 흐르는 기혈의 위세와 순서, 강약, 조화까지, 전부 한눈에 간파할 수 있었다.

덕분에…….

‘……보인다!’

라키엘의 눈이 번득였다. 그 순간, 그가 만년설을 위가 아닌 정면 우측으로 내밀었다.

동시에 쟈빌론의 위로 치켜들었던 검이 좌하방으로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흔들렸다.

‘내리치기는 페이크. 실제 공격은 좌하단에서 우상방으로 올려 베기!’

경혈 스캐닝으로 보이는 쟈빌론의 몸속 기혈의 움직임. 그 모든 흐름이 답을 알려 주고 있었다. 답을 따라 움직였다.

‘이쪽!’

답을 내밀자마자 채점(?)이 이루어졌다.

콰아앙-!

1톤 포터가 와서 부딪치는 것 같은 충격!

‘……거헉!’

이거다. 제대로 막아 냈다. 라키엘은 수 미터나 날려 가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일순간 이쪽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쟈빌론과 눈이 마주쳤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래. 이쪽이 번번이 공격을 간파하고 막아 내는 게 이해가 안 되겠지. 게다가 이렇게, 공격을 막아내자마자 완벽하게 회복을 해 버리는 건 더더욱 이해가 안 될 테고.

‘HP 변환.’

날려가는 와중에. 땅에 착지하기도 전에 되뇌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딩동!

[아스라한 심법 스킬 옵션 ③ : HP 변환을 발동합니다.]

[현재 변환 비율 = HP 10 : 생명력 1]

[변환에 사용될 HP의 양을 설정하여 주십시오.]

[현재 당신의 생명력 : 190 / 300]

[현재 당신이 보유 중인 HP : 5,700]

‘1,100!’

기름 주유건, HP 변환이건 남자는 만땅!

호기롭게 외쳤다.

화아악!

[1,100 HP가 변환됩니다.]

[110 생명력이 보충됩니다.]

[현재 당신의 생명력 : 300 / 300]

온몸이 상쾌해졌다. 뼛속 가장 깊은 골수에서부터 넘치는 활력이 솟아났다.

방금 두 번의 공격을 막아 내며 입었던 데미지가 싹 날아갔다. 이쪽의 보는 쟈빌론의 눈빛에서 어처구니도 싹 날아갔다.

그 눈빛을 받으며 사뿐하게 착지했다. 갓 뚜껑을 개봉한 탄산수처럼 보글보글한 눈빛을 쟈빌론에게 던져 주었다.

이쪽은 멀쩡하다고.

그것밖에 못 하느냐고.

조금 더 분발(?)해 보라고.

진심으로 격려의 정성이 담긴 도발의 마음을 담아서, 한쪽 눈꺼풀만 찡긋.

“……!”

콰앙-!

쟈빌론이 더욱 일그러진 얼굴로 땅을 박찼다.

일반인이라면 반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속도로, 살의의 끝자락마저 읽어 내지 못할 현란한 패턴으로. 맹공을 퍼부어 왔다.

콰앙-! 투컥! 콰직! 츠컹!

‘……긋! 억! 익! 긥!’

매번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막아 냈다. 경혈 스캐닝 덕분에 현란한 기교에 속지 않았다. 아스라한 심법으로 반응속도를 올렸다.

이제 4분 남짓 남은 격침불가 옵션으로 기절하지 않고 버텨 냈다. 공격을 받은 뒤엔 HP변환 옵션으로 생명력을 빵빵하게 채웠다.

그러면서 오히려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으읏! 그윽!’

쾅! 콰텅!

숨 쉴 틈조차 없이 날아오는 공세. 그 속에 과거 기억의 편린이 얽혔다. 시위 현장이 떠올랐다.

끝부분을 여러 갈래로 쪼개놓은 대나무창. 방패와 보호구 사이를 뚫고 눈을 찌르기 위해 만들었던 악랄한 시위 도구.

그런 것들을 막아 내던 때가 떠올랐다. 날아오는 화염병을 보며 목청 높이던 때도 떠올랐다.

물론 방패를 다루던 경험만 믿고서 무작정 전진하는 것은 아니었다.

딩동! 딩동!

[당신은 극한의 전투 상황에서 아스라한 심법의 옵션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며 효율적으로 생명력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당신의 아스라한 심법의 운용 수준을 극적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아스라한 심법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스킬명 : 아스라한 심법]

[단계 : 싱글 써클 Lv.7]

“……!”

숨 막힐 듯이 빠른 전투의 흐름.

그 속에서 상세한 내용까지는 확인할 틈도 없었다. 다만, 그 후에 따라오는 오장육부의 환호성만은 귓가에 뚜렷하게 울렸다.

[오장육부가 아스라한 심법의 성장을 이루며 극한의 상황을 버텨내는 당신에게 진심 가득한 환호와 성원을 보냅니다.]

[심장 : 오오! 업그레이드! 써클이 더 팍팍!]

[허파 : 허! 팍! 허! 팍!]

[대장 : 우리 몸뚱이 오늘 활약 미쳤지 말입니다?]

[간장 : 입 벌려 글리코겐 들어간다!]

[위장 : 탄수! 더 많은 탄수화물을!]

[심장이 날뛰고 있습니다.]

[허파가 더욱 많은 산소를 전달합니다.]

[소화기가 효율적인 운동능력 향상을 위해 혈류량을 기꺼이 양보합니다.]

[간에서 생성된 폭발적인 영양 에너지가 아스라한 심법으로 증폭되어 근육으로 전달됩니다!]

[오장육부가 당신의 생존과 승리를 향한 강렬한 열망을 응원하며 2,0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현재 당신이 보유한 HP : 6,000]

화아악!

[아스라한 심법의 급진적 레벨업에 의하여 옵션 기능이 함께 향상됩니다!]

[<써클슬롯>의 흡수와 방출 딜레이가 줄어듭니다!]

[<격침불가>의 운용시간이 1분 연장됩니다!]

[의 변환 비율이 상승합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메시지의 홍수.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HP 후원.

덕분에 계속해서 채워지는 생명력!

‘……할 수 있어!’

라키엘의 눈이 번득였다.

더욱 힘껏 만년설을 들어 올렸다.

터커어엉-!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는 소드마스터 쟈빌론. 신들린 듯이 방어하며 좀비처럼 버텨 내는 일반인 라키엘. 둘의 치고 막는 대결이 휘몰아쳤다.

아스라한 심법의 레벨이 계속해서 상승했다.

절세의 소드마스터를 맞이하여 내던진 도발적 시도. 그 과감한 확신과 계산 속 혈투가 라키엘의 폭발적 성장을 불러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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