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136화 (136/468)

136화. 역혈의 마공 (1)

아프다.

언제나 눈을 뜨는 순간마다 아팠다. 탄생의 몸부림. 축복의 고통. 세상 가득 쏟아지면서도 오직 내게만 비추어지지 않는 태양을 원망하듯, 그렇게 항상 아팠다.

물론 지금도, 나는 그렇다.

“…….”

데미안은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감각에 집중했다.

전신의 마나가 흐르는 모든 경로에서 통증이 올라왔다. 지독한 충격의 후유증. 소드마스터의 일격을 막아 내며 온통 진탕된 마나의 흐름. 하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사소한 후유중 따위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니까.

으드득!

‘……이번에는 같은 꼴을 겪지 않아.’

이를 갈았다. 다짐했다. 크레모에서 겪었던 것과 같은 무력감. 그런 기분을 두 번 다시는 느끼지 않겠노라고. 자신을 향한 의문과 자괴감에 빠지는 경험을 하지 않겠노라고.

그래서였다.

크레모에서 미노타우로스와의 격전을 치른 뒤부터였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황도의 별궁으로 돌아간 이후부터였다. 매일 뼈를 깎는 시간을 보냈다. 지닌바 검술의 바닥을 모두 긁어냈다.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훈련의 나날이었다.

물론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밤 피를 토했다. 전신의 마나가 바닥이 날 때까지. 그러고도 한 걸음 더. 한계의 선을 찢고, 넘어서고, 남모를 혹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던가.

사고를 겪었다.

지나치게 탈진한 나머지 마나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 정상적으로 흐르던 마나가 일순간 역류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당연했다. 마나의 역류는 절대적인 금기사항이니까. 처음 검을 쥐고 마나 연공법을 익히는 어린아이가 제일 먼저 지도받는 기초 상식이니까.

마나가 역류하면 안 된다.

역류하는 마나는 제어할 수 없는 힘을 불러온다. 그 힘이 스스로의 마나하트를 침범하는 순간, 마나하트는 버티지 못하고 깨어진다. 십중팔구 죽는다. 운이 아주 좋아야 살아남을 수 있되, 대신 폐인이 되어 평생 남이 떠주는 죽만 받아먹어야 한다.

자신도 그렇게 배웠다.

처음 검투장에 들어왔을 때, 검을 쥐는 법조차 제대로 몰랐던 시절, 자신에게 투박한 마나심법을 알려주었던 고참 검투사의 가르침이었다. 물론 그는 6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검투장 구석에서 이름 없이 쓸쓸히 죽었지만, 그가 알려준 가르침만은 아직껏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그런 덕분이었다.

의도치 않았던 마나의 역류를 자각한 순간, 섬뜩했다. 서둘러 마나의 흐름을 수습했다. 다행히 늦기 전에 마나의 흐름을 정상적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걱정이 되었다. 후유증에 대한 염려였다.

- 이 등신 같은 애새끼야. 내가 말했지. 마나가 잠깐이라도 역류하면 안 된다고. 그것만으로도 최소한 며칠은 앓아누워야 할 거다. 너 따위 놈이 그런 꼴이 난다고 해서 여기서 누가 챙겨 줄 줄 알어? 이런 검투장에서?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 등신같이 정신줄 놓다가 뒈지지 말고.

문득 떠오르는 거친 목소리가 기억 속의 서랍을 두드렸다. 그렇다. 후유증. 잠깐이었지만 잃었던 마나의 통제력. 일순간 역류했던 마나. 그것 때문에 걱정이 들었더랬다.

요즘 황태자 전하는 앙부아즈 왕녀의 담석을 치료하느라 바쁘던데. 그만큼 곁을 잘 지켜줘야 하는데. 이대로 후유증 때문에 앓아누워 버리면 호위에 공백이 생길 텐데. 나머지 특근대원들에게 잘 부탁해야 할까.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후유증이 없었다.

조금도 없었다.

앓아눕는 일도, 현기증을 느끼는 일도, 심지어 사소한 근육통을 겪는 일마저도 없었다. 그냥,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멀쩡했다. 자신이 알던 상식과 달랐다. 이상했고, 신기했다.

그때부터였던가.

‘마나의 역행…….’

크그그극……!

데미안은 자신의 마나하트에 집중했다. 그 속에 담긴 마나의 도도한 흐름. 그 방향에 조금씩 간섭했다. 정상적으로 흐르려던 마나의 줄기를 붙잡았다. 되돌렸다. 천천히. 신중하게. 그러나 망설임 없이. 역행시키기 시작했다.

콰그극!

마나가 역행하며 증폭되기 시작했다. 아팠다. 끔찍할 정도로.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처음 실수로 마나 역행을 겪은 뒤, 아무런 후유증이 없다는 것을 자각했던 뒤부터 매일 조금씩 시도해보았던 것처럼. 더 나아가 지금껏 시도하지 않은 단계까지.

데미안은 성큼 걸음을 내딛는 심정으로 마나의 역행을 밀어붙였다.

‘괜찮을까.’

한편으로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아주 잠깐은 마나 역행을 시켜도 후유증을 겪지 않는 자신의 신체. 그 이유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아직 모르는 미지의 영역은 더 있었다.

‘아직…… 마나 역행을 완전히 한 바퀴를 돌려 본 적은 없었으니까.’

그저 잠깐.

아주 일순간.

눈 한 번 지그시 감았다가 뜨는, 딱 그 정도.

그만큼의 시간이 자신이 시도해본 마나 역행의 최대 지속 시간이었다. 그 이상은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 두려웠고, 불안했다. 거기서 더 오래 마나를 역행시켰을 때 생겨날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도 했다.

‘아주 잠깐의 마나 역행이면…… 그 사이에 폭증하는 마나의 위력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원래 자신이 내던 위력의 1.5배의 검격을 구현할 수 있었다. 놀라웠다. 이게 자신의 재능인가 싶었다. 하여 딱 그 정도에 만족했다. 아까까지는 분명, 그러했다. 소드마스터와 대적하며 다시금 한계를 느끼기 전까지는, 분명.

‘…….’

1.5배로는 안 된다.

잠깐의 마나 역행으로는 턱도 없다.

그저 소드마스터 앞에서 간신히 버둥거리며 버틸 수만 있을 뿐. 결국엔 꼴사나운 몰골로 정신을 잃는 수모만 겪어야 했을 뿐.

‘그러니까…….’

끝까지 가보자.

오늘은 더 과감하게.

한계의 선을 찢으며.

데미안의 주먹이 굳게 쥐어졌다. 그의 전신에 힘이 들어갔다. 그만큼 마나의 역행이 더욱 활발해졌다. 신체의 모든 마나가 순리를 역행했다. 태초의 지시를 거부했다. 진리를 깨부수고, 섭리를 짓밟았다.

이내 막을 수 없는 급류가 되었다.

……콰아아아-!

거침없이 몰아쳤다. 가로막는 관문을 깨부쉈다. 계곡을 휩쓰는 급류처럼. 평원을 집어삼키는 노도처럼. 산맥을 뒤덮는 해일처럼. 역행하는 마나의 도도한 흐름이 거대해졌다. 아득해졌다. 밀어닥쳤다.

마나하트를 향하여.

최초의 완전 역행을 완성하는 최후의 걸음을 내디뎠다.

……!

소리도 없었다.

섬광도 없었다.

그저 어두웠다.

거대한 충격과 분열.

영혼을 깨부수는 아득한 외침.

누구나 말하는 상식처럼 마나하트가 깨어지는 충격인 것인지. 순리를 역행하며 치르는 참담한 대가인지. 그 결말로 다가오는 필멸의 고통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데미안은 일순간 보아야 했다.

……두근.

태초의 끝자락처럼 어두컴컴한 심연.

그 속에서 무언가가 맥동하고 있었다.

심장?

알 수 없었다.

그저 붉고, 또 검붉었다. 한없이 느리고도 거대하게 맥동했다. 그 아득한 파동이 자신을 엿보고 있었다. 미소 짓고 있었다. 무어라 속삭이고 있었다. 속삭임? 그러했다. 그것은 필연적이기에 소름 끼치는 귓속말이었다.

너는 세상에 던져진 나의 씨앗.

씨앗은 마침내 불꽃으로 자라날지니.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을 집어삼킬지니.

그날에야 나는 비로소 너를 휘두르며 환히 웃으리라.

‘…….’

무슨 개소리야.

데미안은 정신을 차렸다. 동시에 쓰라리게 웃고 말았다. 처음 시도해 보는 마나의 완전한 역행. 무리한 시도가 안겨 준 충격. 그 서슬에 일순간 정신을 깜빡 잃었던가 보다. 그래서 잠깐 터무니없는 개꿈을 꾸었나 보다.

‘하여간 이건…….’

너무 아파서 문제다. 마나가 흐르는 전신의 혈맥도, 마나하트도 당장 찢기고 깨질 듯이 아팠다. 그러나 찢기지 않았다. 깨지지도 않았다. 대신 처음으로 느껴보는 미증유의 거친 파동이 온몸을 휘감아 오고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힘의 예감이며 미지의 경지가 선사하는 풍경이었다. 폭발적으로 증폭되는 마나의 흐름을 전신으로 느끼며, 데미안은 사납게 웃었다.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곳곳에서 타오르는 평원의 불길도, 어지럽게 얽히는 왕국 근위대와 반란군 친위대의 격전도. 한없이 몰아치는 쟈빌론과, 그걸 힘겹게 막아 내는 황태자의 모습까지도, 모두.

그 모습을 눈에 담는 순간.

데미안의 가슴속에서 아득한 포효가 메아리쳤다.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마나의 역행. 위태롭고도 거대한 발걸음이 탄생시킨, 새로운 심법의 탄생을 알리는 외침이었다.

“크아아아!”

쟈빌론이 외쳤다.

그의 검이 세차게 움직였다. 목표물을 때렸다.

콰아앙-!

“……그읏!”

목표물이 흔들렸다. 만년설의 냉기 실드가 거의 깨질 뻔했다. 그 뒤에서 버티는 라키엘도 비틀거렸다. 어느새 그의 안색은 창백해져 있었다.

‘데미안, 아직이야?’

눈길을 힐끔 움직였다. 아직 저쪽에 있는 데미안. 여전히 웅크리고 있었다. 변화가 없었다. 아까 맞은 자리가 그렇게나 아팠던 걸까. 그래서 여전히 일어나질 못하고 있는 건가.

‘이러면…… 나가린데!’

라키엘은 다급해졌다.

이건 계산과 조금 달랐다. 데미안이 타격을 받고 쓰러진 건 알고 있었지만, 회복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그래서 난감했다. 큰일이었다. 점점 초조해졌다.

‘격침불가 옵션 발동 시간이…… 이제 1분도 안 남았으니까.’

그는 시야 한쪽에 떠올라 있는 타이머를 재빨리 살펴보았다. 표기된 시간은 27초. 아스라한 심법의 전용 옵션인 ‘격침불가’의 남은 발동 시간이었다.

즉, 저 시간이 끝나면?

쟈빌론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설령 만년설로 공격을 막아도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하고 기절할 것이다. 그러면 끝이다. 아스라한 심법이 아무리 대단해도. 경혈 스캐닝으로 아무리 공격을 예측해도. 설령 HP 변환으로 좀비처럼 버텨도.

‘기절하면…… 끝이겠지.’

꿀꺽!

목울대가 초조하게 출렁였다. 다시 한 번 데미안 쪽을 살폈다. 여전했다. 가슴속 가득 암운이 드리워졌다. 이건 예상과 달랐다. 과감하게 쟈빌론의 어그로를 끌며 대결을 시도할 때 그렸던 그림과도 너무나 달랐다.

‘어떡하지?’

흐르는 식은땀 속에서.

어느새 거칠어진 호흡 속에서.

라키엘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 상황을 뒤집을 꼼수를 궁리했다. 하지만 상황이 만만하지가 않았다. 쟈빌론 또한 이쪽이 궁리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어디 한눈을 파는 건가!”

“……!”

투콰앙-!

쟈빌론의 검격이 더 강해졌다. 만년설도 아슬아슬하다. 간신히 버텨내는 순간, 라키엘은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쟈빌론 이놈, 벌써 오러를 되찾고 있어.’

확실했다.

놈이 만년설을 후려치고는 그 반동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장검. 그 검날에 희미한 섬광이 맺히고 있었다. 조금 전까진 없던 섬광이었다. 바로, 오러의 전조였다.

‘벌써?’

놈의 두통을 루틴으로 삼아 발동되던 오러. 내손 약손 스킬로 두통을 없애주며 오러도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저놈은 두통이라는 루틴이 빠진 상태에 벌써 적응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더욱 섬뜩했다.

‘역시 천재라는 건가.’

문득, 소설 마검황에 나왔던 어떤 언급이 떠올랐다. 모든 소드마스터는 천재라고 했던가. 애초에 천재가 아닌 자는 절대로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 없다고 하였던가.

당시에 그 부분을 읽으며 나름 개탄(?)했던 기억도 났다. 역시 검의 영역도 재능빨로 먹고 사는 예체능계라고.

그러니…….

‘당연히 쟈빌론, 이놈도 천재인 거야. 덕분에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오러를 회복하고 있는 거고.’

확실했다.

소름이 돋았다.

만약 놈이 오러를 완전히 되찾는다면, 그땐 끝장이 날 테니까.

‘오러는…… 만년설로도 못 막아.’

오직 같은 오러로만 막을 수 있다.

그걸 알기에 더욱 다급해졌다.

하지만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투콰학-!

“……크급!”

이번엔 찌르기였다. 어찌어찌 반사적으로 막았다. 만년설에 균열이 생겨났다. 확고하던 자신감에도 금이 갔다. 그만큼 이쪽을 보는 쟈빌론의 만면에 승리를 확신하는 듯한 사나운 미소가 배어났다.

“왜 그러지? 이젠 더 못 버티겠는가!”

놈은 이제 아예 정면으로만 공격을 쏟아부어 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잘도 공격을 막아낸 것이 자존심을 건드린 건지, 아예 이쪽의 방어를 기교 없이 힘으로 짓뭉개 버릴 기세로 달려들어 왔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게 없다.

암담했다.

‘나는…….’

여기서 끝장나기 싫은데.

그냥 잘 먹고 잘살고 싶은데.

어쩌다가 이런 상황에 내몰린 걸까.

그 순간이었다.

딩동!

[아스라한 심법 스킬 옵션 ② : 격침불가의 발동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

설상가상이다.

이제 더는 못 버틴다.

그 생각이 찬물처럼 정신을 일깨웠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소드마스터와 대결하고 있는 상황이다. 뭔가에 홀린 듯이 날뛰다가 뒤늦게 찬물을 팍 덮어쓴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미 내친걸음이었다.

이제 와서 내빼기엔 너무 늦었다!

‘데미안! 좀!’

까드득!

이를 갈았다. 만년설을 치켜들었다. 쇄도해 오는 쟈빌론. 그 모습이 급격히 커졌다. 가까워졌다. 이쪽을 노려보는 눈빛도. 광기에 젖은 미소도. 거친 숨결도 모두.

그 순간, 오히려 앞으로 튀어 나갔다.

콰악!

도망칠 수 없다면 역공으로.

‘될 대로 돼라!’

……는 심정으로 내질렀다. 한데 그게 뜻밖의 효과(?)를 불러왔다.

“어엇?”

지금까지 이쪽이 오로지 방어 일변도의 거북이 좀비 모드로만 대응했기 때문인 걸까. 그래서 설마 이쪽이 과감한 역돌격을 감행하리란 예상은 못 했던 걸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검을 미끄러뜨리듯 베어오던 쟈빌론이 아주 일순간, 주춤했다. 그 틈에 과감하게 돌진했다. 만년설을 강력하게 끊어치듯 내밀었다.

터컹-!

“……!”

한 방 먹였다!

만년설의 냉기 실드가 쟈빌론의 손목을 후려쳤다. 놈의 검격이 흔들렸다. 해냈다. 용기가 솟아났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같잖은 수작을!”

거칠게 터진 쟈빌론의 외침. 동시에 눈앞에서 뭔가가 번득였다. 반사적으로 눈길을 들었다. 그 순간 보아야 했다.

“……어?”

오러가 번득이고 있었다. 쟈빌론의 검이 섬뜩한 섬광에 휩싸여 있었다. 완벽하게 복구된 오러였다. 그 벼락이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나 빨랐다. 지나치게 가까웠다.

‘나…….’

끝장나는 건가.

뒤늦은 자각. 돌이키기엔 늦었다는 깨달음. 비로소 치닫는 소름. 그 속에 반사적으로 만년설을 치켜들었다. 방어할 수 없을 거라는 절망적 예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터커엉-!

별안간, 면전에서 강렬한 충돌음이 달려왔다. 그러나 치켜든 만년설에는 어떠한 충격도 전해져 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설마 나, 충격을 느끼기도 전에 죽은 건가.

그 생각을 하며 실눈을 떴다.

덕분에 보고야 말았다.

“…….”

불쑥 내밀어진 검이 있었다. 형편없이 잘려서 반쪽만 간신히 남은 검이었다. 그 초라한 검이 쟈빌론의 오러가 깃든 장검을 막아내고 있었다.

“무슨…….”

쟈빌론의 휘둥그레진 눈도 보였다. 놈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 데미안이 있었다.

너무나 차분한 얼굴로.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반쪽짜리 검을 한 손으로 쥐고서 내민 데미안이, 그곳에 있었다.

“어떻게?”

쟈빌론이 중얼거렸다.

자신의 오러가 평범한 검에 가로막혀 있다는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오러는 오직 오러로만 막을 수 있는 것이 상식이니까.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이 뭔지 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소설 마검황에서 이런 거, 나왔으니까.’

떠올랐다.

기억 속 서랍에 꽁꽁 묶어두었던 내용이 뇌리를 비집고 면전에 들이밀어졌다. 그 기억이 알려주었다.

‘리베르사…… 심법.’

마검황 최강, 최흉의 심법.

그 심법이 지닌 첫 번째 특성.

바로, 자신이 지닌 단계를 뛰어넘어 상위 경지의 실력자를 능히 압도할 수 있는 사기적인 특성.

‘……하극상.’

그걸 떠올리는 순간, 지금껏 쟈빌론에게서 느끼던 소름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아득한 감각이 오싹, 몰아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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