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137화 (137/468)

137화. 역혈의 마공 (2)

오싹.

날이 서는 낯선 감각.

쟈빌론은 저도 모르게 오싹함을 느꼈다. 어째서? 처음엔 의아했다. 그러나 곧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놈.’

……뭐지.

눈앞에 나타난 흑발의 호위. 아까부터 신기할 정도로 잘 버티며 자신에게 맞서던 놈. 황태자는 놈을 데미안이라고 불렀던가.

그런데 어떻게, 이번엔 이놈이 자신의 검을 막아낸 걸까. 그것도 오러가 서린 검을.

‘어떻게?’

머릿속으로 수많은 의문이 치밀었다. 당연했다. 데미안, 저놈의 검에선 오러의 흔적을 찾아볼 수도 없으니까.

심지어 반토막짜리 부러진 검이니까. 한데 그걸로 자신의 오러를 막아냈으니까.

상식이 망가지는 기분.

법칙을 부정당하는 기분.

‘대체 어떻게?’

불가능하다.

오러는 오직 오러로만 막아 낼 수 있다. 맞설 수 있고, 대적할 수 있다.

그런데 저놈은 그 법칙에서 벗어나 반쪽짜리 검으로 이쪽의 오러를 막아냈다. 그러고도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은 채, 태연한 눈길을 던지고 있다.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꾸만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앞에 숨결이 닿을 거리에서 도사리고 있는 상대가 아득하게 멀리에 있는,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까마득한 존재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쟈빌론은 자신이 느끼는 그러한 감정의 정체를 곧 자각해야 했다.

그것은…… 공포였다.

‘내가? 이따위 놈에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분노했다. 그럴 리가 없다 여겼다.

‘건방진!’

츠칵!

그의 검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여전히 찬란하게 빛나는 오러를 담고서 데미안의 반쪽짜리 검신을 타고 올라갔다. 목표물은 검을 쥔 데미안의 엄지손가락이었다.

‘손가락부터 썰어 주지!’

엄지를 베고, 손목을 가르고, 그 기세를 살려 겨드랑이를 거쳐 목을 대각선으로 잘라내어 버릴 것이다.

막을 틈도, 반응할 찰나의 기회도 없겠지. 당연히 그러하겠지. 놈은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 불과하니까. 반면에…….

‘나는 소드마스터니까!’

……후욱!

쟈빌론의 확신에 담긴 검이 치명적인 사선을 그렸다. 올라갔다. 데미안의 엄지를 향해 섬뜩한 섬광을 토해 냈다. 그리고 튕겨 나갔다.

쩌컹-!

“……!”

순간 쟈빌론은 보았다. 자신의 검이 데미안의 엄지를 베기 직전, 데미안의 손목이 섬전처럼 반응했다.

아주 짧은 흠칫거림. 그 속에 거대한 탄력을 실어 검날을 밀어냈다. 그리고 자신의 검을 튕겨 냈다! 오러가 실린 검을!

‘이게 무슨…….’

쟈빌론의 두 눈이 경악으로 휩싸였다. 황태자를 노리던 검격이 막혔을 때만 해도 설마 싶었다.

그런데 두 번째였다. 거듭 오러가 없는 검으로 오러를 막아 내고, 튕겨 냈다.

그러니 확실하다.

‘이놈, 오러 없이 오러에 대적하고 있다고?’

두 번은 우연이 아니다.

승부의 세계에선 더더욱 그렇다.

쟈빌론은 내심 경악하면서도 지금 상황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이유를 고민하는 것도 멈추었다.

지금은 결과만 바라보면 된다. 놈은 오러 없이 오러를 막아 내고 있다. 그것만이 사실이다. 그 사실에만 집중해야 한다.

잡념을 버리는 순간부터였다.

잠시 흔들렸던 쟈빌론의 기세가 정돈되었다. 흉험해졌다. 비로소 소드마스터로서의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극.

극도로 정제된 동작.

190센티를 넘기는 쟈빌론의 거구가 표범처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군더더기를 모두 덜어낸, 검의 정점에 올라선 자다운 걸음이었다.

걸음이 몸을 이끌고, 몸이 검을 불렀다. 검이 가리키는 곳으로 몸이 향하고, 몸이 향하는 곳에 걸음이 있었다.

생각과 검격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오러의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

스카가가가각-!

찌르고, 베었다.

베는가 싶으면 후렸다. 후리다가 치고, 치는가 했더니 찍었다. 걸었다. 저며냈다. 가르고, 후벼 파고, 때리고, 당겨 베며, 양단했다.

단 한 번의 호흡.

찰나에 이루어진 경이로운 연격이었다. 아까 라키엘을 상대할 때에는 자신의 두통을 없애 줄 자를 죽게 할까 싶어 차마 드러내지 않았던 송곳니를, 지금은 마음껏 드러내었다.

한편으로 확신했다.

이겼노라고.

그리고 경악했다.

이건 잘못되었다고.

터컹-!

들릴 리 없는 소리가 들렸다. 수없이 쏟아진 연격. 그게 단 한 번에 가로막히며 생긴 모든 충격파가 찰나의 순간에 압축되어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 순간, 깨달아야 했다.

“……!”

막혔다. 너무나 턱없이 막혔다.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검날은커녕 오러의 끝자락조차 닿지 못하였다.

쟈빌론은 망연자실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데미안이 있었다.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모든 연격을 막아 낸 모습이었다.

그저 귀찮은 파리를 내쫓듯이, 반토막 검으로 단순하게 그려 낸 움직임으로 모든 연격을 가로막은 채였다.

그러고도 아무런 타격도 없어 보였다.

이쪽을 보는 데미안의 검은 눈동자.

그 무기질 같은 감정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혼란스러워졌다. 그때였다.

“전하. 죽일까요?”

서늘한 목소리.

데미안이 자신의 뒤에 선 황태자를 향해 물었다. 황태자가 다급히 대답했다.

“아니, 생포! 일단 그냥 패!”

“알겠습니다.”

비현실적인 대화가 면전에서 오갔다. 듣고 있자니 기도 차지 않았다. 하지만 화를 낼 여유 따위는 주어지지도 않았다.

쟈빌론이 발끈하기 직전, 데미안이 쟈빌론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쟈빌론의 시야 속에서 세상이 번쩍했다.

……!

소리도 없었다.

충격도 없었다.

뭔가가 번득였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컥!”

쟈빌론은 아득한 충격을 느꼈다. 뭔가 위험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반응하긴 했는데. 저도 모르게 오러가 서린 검으로 전면을 방어했는데.

그런데 깨어졌다.

무엇이?

‘내 검이…… 오러가…… 일격에 깨졌다고?’

그는 멍해진 눈길을 들어 올렸다.

강렬한 충격을 받아 뒤로 주르륵 밀려나고 있는 자신의 몸. 그리고 허공에 흩날리고 있는 쇳덩이 파편들. 한때 자신이 아끼던 보검이 박살 났다.

수십 조각의 고철이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오러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마나의 완전한 순환을 이루어낸 소드마스터만 피워 낼 수 있는 찬란한 파괴적 불꽃. 섬광. 그러한 영광의 증거가 흔적도 없이 짓뭉개졌다.

단 일격에. 오러가 실리지도 않은 반토막 검을 막아 냈다는 이유로. 너무나 허망하게.

‘이게…… 말이 돼?’

크그그그극-!

10미터 넘게 밀려난 쟈빌론은 가까스로 넘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단지 그뿐, 이미 그의 보검은 손잡이만 초라하게 남은 상태였다.

단 한 번의 타격에 팔뚝의 근육과 인대가 모조리 늘어났다. 검 손잡이를 간신히 움켜쥔 게 다였다. 격통과 함께 힘이 들어가지가 않았다.

허리도, 하체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버티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떨렸다.

‘미친…… 미친!’

거짓말 같은 악몽이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당연했다.

그는 일개(?) 소드마스터일 뿐이었다. 소설 마검황의 리베르사 심법도, 그 심법의 가장 악랄하고도 사기적인 특성인 ‘하극상’에 대해서도 까맣게 몰랐다.

그렇기에 그저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마나 역행의 첫 포효를 터뜨린 리베르사 심법 앞에, 미증유의 힘을 처음으로 분출하는 데미안의 기세 앞에, 데미안이 발산하는 ‘하극상’의 특성이 상대보다 무조건 한 단계 상위의 위력을 발휘한다는 차가운 현실 앞에. 그저 무력함만을 한껏 느껴야 하였다.

그러나 쟈빌론은 쟈빌론이었다.

‘하지만…… 이게 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쟈빌론이 이를 갈았다.

그는 소드마스터였다. 마스터는 단순히 검만 잘 다룬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마나의 운용과 기법에 있어서도 정점에 올라야 가능한 경지였다.

물론 그도 마찬가지였다.

쟈빌론 또한 검을 다루는 기법과 별개로, 자신만의 특화된 마나 운용 심법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그 심법의 특성으로 비롯된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그으읏!”

콰앙-!

간신히 균형을 찾으며 비틀거렸던 쟈빌론이 땅을 박찼다. 망가진 근육의 고통은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손잡이만 남은 보검을 버렸다. 돌진했다. 데미안을 향해. 맨손을 뻗었다.

그저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모양새?

이판사판이라는 발악?

아니었다.

그는 엄연히 노리는 바가 있었다.

‘이 손으로…… 한 번만 붙잡으면!’

된다.

그러면 이긴다.

지금의 불리한 상황을 모조리 뒤엎을 수 있다. 상대를 죽일 수 있다. 쟈빌론은 확신했다. 한편으로 자신이 지닌 비장의 무기를 떠올렸다.

자신의 은밀한 무기.

최후의 비기.

그것은 상대와 자신의 신체에 기본적으로 깃든 순수한 마나량을 겨루는 기술이었다. 상대의 몸을 붙잡고서, 마나를 충돌시키는 기술이었다.

그러면?

서로의 순수 마나가 충돌하며 소모된다. 극한의 소모전이 펼쳐진다. 그 끝에, 순수 마나가 먼저 소진되는 쪽의 혈맥이 파괴된다.

그리고 쟈빌론은 그러한 형태의 소모전에 자신이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이 지닌 신체의 순수 마나는 무조건, 신체의 크기에 비례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순수 마나인 것이지. 어떠한 심법으로도 증폭되거나 증가하지 않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신체가 기본적으로 담고 있는 순수한 마나!’

즉, 순수 마나량은 체구의 크기에 비례했다.

한데 자신은?

키가 190이 넘었다. 그게 걸맞은 체격 또한 지녔다. 자신보다 커다란 신체를 지닌 이를 거의 만나보지 못하였다.

그래서였다.

쟈빌론은 최후의 비기에 자신감이 있었다. 어떠한 조건에서건 자신보다 신체가 작은 놈은 이걸로 끝장낼 수 있노라고. 눈앞의 데미안 또한 그렇다고.

확신하며 손을 뻗었다.

‘잡았다!’

활짝 펼친 손아귀.

그 맨손에 데미안은 전혀 경계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아마 이쪽의 최후 비기를 전혀 짐작조차 못 하고 있을 것이다.

손이 더욱 가까워졌다. 잡기 직전까지 뻗어 갔다. 쟈빌론의 두 눈에 승리의 열망이 피어났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워워, 스톱!”

“……!”

난데없이 끼어든 목소리. 황태자가 데미안과 자신 사이로 난입했다.

데미안을 붙잡기 직전에 팔을 불쑥 내밀었다. 데미안 대신 이쪽의 손아귀에 붙잡혔다.

쟈빌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무슨?”

놀라서 황급히 손을 움츠리려 했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어느새 뻗어온 황태자의 손이 이쪽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평소라면 쉽게 뿌리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망가진 인대와 근육 때문에 힘을 내기가 어려웠다. 황태자의 가느다란 손아귀를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 그으읏! 지금, 이게 무슨 짓인가!”

다급해진 쟈빌론이 외쳤다.

이미 심법의 최후 비기를 발동하고 있던 자신이었다. 한번 발동하면 멈출 수 없는 비기였다.

한데 이대로 황태자를 붙들고 있다가는? 본의 아니게 황태자를 죽이게 될 것이다. 그건 싫었다.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고 이러는 건가!”

급한 마음에 소리쳤다.

황태자가 태연한 투로 대꾸했다.

“응.”

“……뭐?”

“알고 있는데.”

“설마, 호위 따위를 대신해서 희생하려고?”

믿기지가 않았다. 황태자가 자신의 비기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허풍처럼 들렸다. 한데 하는 행동을 보니 정말로 아는 것도 같았다.

황태자 이 인간이 제정신인가 싶었다. 난데없는 희생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이런 개죽음을…….”

선택하는 건지 물으려 했다. 한데 황태자의 대답이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왔다.

“희생은 개뿔.”

“뭐?”

“희생이 아니라, 댁을 짓뭉개려는 거거든.”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다. 뭘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째서 황태자가 저렇듯 의미심장하게 웃는 건지. 어째서 난데없이 빨간색 해바라기 씨를 입안에 털어 넣는 건지. 더욱 활짝 웃으며 와작 씹는 건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라고 쟈빌론이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뚜와앙-!

“……!”

자신의 190센티미터 이상의 체격에 자신감이 넘쳤던 쟈빌론은, 그래서 체격의 우위를 극대화한 비기를 사용하려던 쟈빌론은, 자신보다 무려 600센티미터 거대해진 라키엘과 졸지에 손잡고 쎄쎄쎄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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