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164화 (164/468)

164화. 인공호흡기가 필요할 때 (3)

‘……미친.’

대박.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예기치 못한 충돌 때문에 왈칵 나오던 쌍코피였다. 덕분에 코로 숨을 쉬는 건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의 환상종이 그걸 해결해 줬다?

‘코를 내 쪽으로 뻗더니 숨을 빨아들였어.’

심지어 코를 접촉하지도 않았다.

눈앞의 아기 코끼리 환상종은 이쪽을 향해 코를 뻗은 채, 허공에 대고서 콧김을 빨아들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흡입력이 원격(?)으로 이쪽의 콧구멍 속 압력을 조절했다! 코피를 쏙 빨아내듯 콧구멍 바깥으로 뽑아 버렸다!

‘석션이잖아, 이거.’

비염 때문에 이비인후과에 가본 사람은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의사쌤이 가느다란 빨대 비슷한 기구를 콧구멍에 넣는 거. 그러면? 콧구멍 안에 들어차 있던 고인물, 아니, 콧물이 쏙 빨려 나가는 시원한 경험 말이다.

‘딱 그거네. 석션이네. 게다가 석션은…… 인공호흡기 사용에도 필수적인 건데.’

사실이었다.

병원에서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건 마냥 편한 일은 아니다. 특히, 기도(trachea)에 가래 등의 분비물이 줄줄 고이곤 한다. 그렇기에 때에 맞춰서 석션으로 분비물을 빼줘야 한다. 안 그러면 자칫 폐렴이 생길 수도 있다.

‘그 귀찮고 신경 쓰이지만 꼭 필요한 석션을 이렇게 쉽게, 심지어 원격으로 해준다고?’

미쳤다, 미쳤어.

그런데 눈앞의 아기 코끼리 환상종의 더 미친(?) 점은 거기서 끝이 아닌 듯했다.

“이봐?”

“코몽?”

“너 이름이 코몽이야?”

“코모몽! 코몽!”

“응, 그래. 나도 반가워. 그런데 코몽아? 하나만 좀 물어보자.”

“코몽!”

“너 방금, 내 코피를 빨아낸 다음에 말이야. 혹시 내 기관지에 콧김을 불어넣어 준 거야?”

“코모몽! 코몽!”

“그러면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으니까?”

“코몽!”

“…….”

알겠다.

확실하다.

방금 코몽이가 이쪽의 콧구멍에 불어준 콧김, 정말로 인공호흡이었던 거다. 그런데 심지어 이것마저도 원격이었다!

‘미친. 이건 무슨 와이파이 인공호흡도 아니고.’

감탄이 절로 나오는 가운데, 코몽이의 능력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디테일하게 알고 싶어졌다.

“그럼 코몽아. 너도 혹시 설명서 가지고 있어?”

“코몽!”

녀석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입안에서 뭔가를 되새김질하듯 우물거렸다. 그러고는…….

“퉤!”

철퍽!

설명서 뭉치를 뱉어냈다.

“…….”

라키엘은 설명서를 펼쳐보았다.

[코몽이 사용설명서]

[코몽이는 귀여운 아기 코끼리입니다. 사랑으로 보살펴 주세요.]

[코몽이는 소환자인 당신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칩니다. 환상종은 평생의 반려동물이자 또 하나의 가족입니다. 함부로 유기하지 말아 주세요.]

[코몽이는 함께 동봉된 두 가지 종류의 해바라기씨를 먹음으로써 덩치를 바꿀 수 있습니다.]

[빨간 해바라기씨 : 코몽이를 거대하게 만들어줍니다. 거대화 최대 유지 시간 = 12시간]

[파란 해바라기씨 : 코몽이를 아담하게 만들어줍니다. 거대화 최대 유지 시간을 초과하기 전에 먹여 주세요. 거대화 상태에서 파란 해바라기씨를 먹지 않고 12시간을 넘기면 꼬슴이는 자동으로 아담한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대신, 탈진 상태에 빠져 24시간 내에는 다시 거대화가 불가능해집니다.]

[2색 해바라기씨 세트 구매 비용은 1 HP입니다.]

[코몽이는 소형화 / 거대화 상태에서 다양한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코몽이 보유 스킬 목록>

[코머즈 모드 (패시브) : 코몽이는 크고 밝은 귀를 지녔습니다. 덕분에 호흡 소리를 통해 환자의 1회 호흡량(tidal volume) x 1분간 호흡수 = 분당 환기량(minute ventilation) 및 환자의 흉강내압(intrathoracic pressure) 등의 호흡 컨디션을 실시간으로 감지할 수 있습니다.]

[힘찬 흡입 (Lv. 1) : 원격으로 환자의 기도 및 비강에 고인 분비물을 빨아낼 수 있습니다.]

[신선한 숨결 (Lv. 1) : 원격으로 신선한 콧김을 보내 환자의 호흡을 보조합니다. 이는 코머즈 모드(패시브)와 연계되어 환자의 컨디션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이 데이터에 따라 최적의 인공호흡 패턴 및 모드를 능동적으로 세팅합니다. 또한, 이를 통하여 빈호흡(tachypnea), 기흉, 호흡근 피로 등의 인공호흡기 사용의 부작용 현상을 효율적으로 예방합니다.]

“이건 무슨…….”

라키엘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허허 웃고 말았다. 이건 진심으로 미쳤다. 만약 현실 대한민국에 이런 녀석이 있다면? 유수의 종합병원에서 돈다발을 싸들고 달려와서 영입하려고 들 것이다.

‘당연하지. 자기가 알아서 AI처럼 환자의 호흡 컨디션을 감지해서 분석하고, 그거에 맞춰서 최적의 세팅으로 인공호흡을 한다는 거잖아. 그것도 실시간으로 세팅값을 계속 바꿔가면서.’

단언컨대, 이런 능력을 지닌 인공호흡기는 없다.

그러니까 오늘의 뽑기는…….

‘초대박이네.’

라키엘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3연속 텀블링을 뛰고 싶은 충동을 자제했다. 그리고 품속의 다른 환상종 선배(?)들을 꺼냈다.

“자, 그럼 다들 인사하자.”

“꼬슴?”

“뽀복?”

안주머니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다가 나온 꼬슴이와 뽀복이가 졸린 눈에서 눈곱을 떼어냈다. 그러다가 새로운 친구의 모습을 목격했다.

“꼬슴?”

“뽀복?”

“……코몽?”

코몽이도 두 선배의 모습을 보았다. 활짝 웃었다. 꼬슴이와 뽀복이도 해맑은 웃음이 귀에 걸렸다. 이내 세 환상종이 서로를 향해 통통한 궁디를 방실방실 흔들며 반가움을 표했다.

“꼬스슴?”

“뽀보복?”

“코모몽?”

“꼬!”

“뽀!”

“코!”

‘……잘 노네.’

라키엘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뽑은 환상종들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째 세 번의 뽑기를 하면서 한 번도 꽝이 없었다. 우연일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난 덕분인 거지!’

세 가지의 카드 중에서 하나를 뽑는 선택이 항상 현명했던 거다. 그는 자부심의 콧김을 풍, 뿜어내며 병실에 비치된 수건을 꺼냈다. 얼굴에 남은 쌍코피 자국을 열심히 닦아냈다.

한데 그러던 도중이었다.

“황태자 전하는? 어디 계시지?”

별안간 병실 밖 복도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낯설지 않은 목소리였다.

‘조원인가?’

졸업시험을 위해 하나로 묶인 조원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숙덕이던 모습도 떠올랐다. 그중에 저런 목소리가 있었던 것 같았는데.

이어지는 바깥의 대화를 들어보자니, 과연 그 추측이 맞았다.

“못 봤어. 자네는?”

“나도 못 봤어. 켈로드 말로는 아까 이쪽으로 가셨다고 했는데. 혹시 다른 행선지를 들은 사람은? 없나?”

“나도 못 들었어.”

다들 다급한 목소리로 이쪽을 찾는 듯했다. 무슨 일일까. 자신이 없을 때 저들은 어떤 뒷담화를 할까. 궁금한 마음에 귀를 기울였다. 조원들이 복도를 뛰어다니는 소리도 들려왔다.

“젠장, 그럼 어쩔 수 없어. 흩어져서 각자 병실을 전부 둘러보자.”

“그런데 병실에 안 계시다면? 이 건물에 안 계신 거면?”

“내가 건물 밖을 찾아보지. 학장님께도 알려서 다른 사람들을 더 동원해볼게.”

“젠장. 하필이면 이럴 때 자리를 비우다니. 환자 호흡에 이상이 올 거라고 호언장담을 해놓고, 그걸 맞춰놓고, 정작 본인은 모습을 안 보이면 어쩌자는 거야?”

‘……뭐?’

라키엘은 미간을 찡그렸다. 마지막 말을 듣자마자 상황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호흡마비?

벌써?

‘환자한테 호흡마비가 왔다고?’

상황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라키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 환상종에게 손을 내밀었다.

“꼬슴아? 뽀복아? 코몽이도, 가자.”

“꼬? 뽀? 코?”

“환자를 봐야지.”

“꼬! 뽀! 코!”

녀석들을 챙겼다. 병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마침 근처에 있던 조원 하나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엇?”

“엇은 무슨. 환자 상태는?”

“그게, 음, 숨소리가 이상합니다. 숨 쉬는 걸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급성호흡마비네. 더 자세한 설명은 가면서.”

“예.”

“뭐해? 뛰어.”

“아, 예!”

환자의 병실을 향해 뛰었다. 근처에 있던 다른 조원들도 이쪽을 보고는 황급히 합류했다. 그렇게 일행의 선두에서 달리며, 라키엘은 자신의 안주머니가 있는 곳을 툭툭 두드렸다.

‘준비 됐냐?’

내심 물었다.

마치 대답하듯, 안주머니 속에서 나직하고도 야물딱진 속삭임이 돌아왔다.

“코몽!”

그래, 됐다.

급성호흡부전? 한번 해보자. 살려보자. 그러니까…….

‘호흡 마비, 딱 대.’

라키엘은 뜀박질에 박차를 가했다.

코몽이의 능력은 굉장했다.

이 아기 코끼리 환상종은 투자한 HP 값을 톡톡히 해냈다. 아니, 능히 초과달성이라 말할 정도로 엄청난 능력을 보였다.

“코모몽! 코몽!”

마비 증상이 횡격막까지 침범하여 급격한 호흡마비를 겪던 환자였다. 병실에 갓 도착했을 때는, 거의 안색이 새파래져서 호흡이 멈추기 직전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코몽이가 나서는 순간, 그 모든 위기가 싹 날아갔다.

“코몽!”

팔랑!

코몽이가 귀를 활짝 펼쳤다. 패시브 스킬인 ‘코머즈 모드’로 환자의 호흡 상태를 순식간에 판별했다. 이윽고 뻗은 코로는…….

“코모모모모몽-!”

후우우우욱!

상쾌한 콧김을 환자에게 뿜어냈다. 마치 스나이퍼의 총탄처럼, 섬세하게 조절된 콧김 덩어리가 환자의 콧구멍에 원격 다이렉트로 총알 배송되었다. 정확한 호흡량(vilume targeted)과 공기압력(pressure targeted)으로 환자의 허파꽈리를 토닥토닥 보듬어 주었다.

덕분에…… 환자의 안색이 순식간에 혈색을 찾았다!

“이게 무슨…….”

조원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휘둥그레진 시선을 교환했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거, 혹시 코끼리인가?’

‘코끼리처럼 생겼지만…… 너무 작은데?’

‘그런데 지금 저 코끼리가 콧김을 불어넣고 있는 거야? 환자에게?’

‘환자의 호흡이…… 안정되고 있어.’

믿기지가 않았다. 이런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호흡이 멈춘 사람의 호흡을 도와주는 사과 크기의 코끼리라니.

‘설마 이게 소문으로 떠돌던 환상종이라는 건가.’

조원들은 문득 떠올렸다. 일전에 듣기로는, 황태자가 작고 아담한 환상종 여럿을 데리고 다닌다고 했다. 어떤 환상종은 가시를 제공하고, 또 어떤 환상종은 독극물을 거침없이 먹어치운다고 했던가.

‘그럼 저 작은 코끼리도 그런 환상종이겠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사람의 호흡을 도와주는…… 뭐, 그런?’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상상도 못 했어.’

모두가 황태자와 코몽이를 감탄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중에서 단 한 명, 켈로드만은 단순히 환상종의 모습이나 능력에 감탄하지 않았다. 그는 조원들과 다른 관점에서 황태자에게 경악하고, 감탄했다.

‘황태자의 말이…… 정말로 맞았다. 진짜로 호흡 곤란이 왔어.’

문득, 아까 자신만만하게 환자의 병명을 밝히던 황태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길랭-바레 증후군이라고 했던가. 신경 세포인지 뭔지에 염증이 생겨서 마비가 일어난다고. 조만간 환자에게 호흡마비가 올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당연히 믿지 않았다.

환자는 그저 하지 마비만 겪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하체가 마비된 것과 호흡곤란이라니. 그런 일은 없을 듯했다. 도저히 연관성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였다.

황태자가 그저 잘난 체를 위해 허세를 부린다고만 여겼다. 선뜻 믿기가 어려웠다. 하여 추궁하듯 따져 물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황태자의 말이 맞았어.’

우연일까.

혹은 진짜일까.

켈로드는 자신이 내면에 쌓아둔 황태자에 대한 불신의 탑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앞으로 자신과 조원들 모두가 황태자의 활약을 보며 느끼게 될 경악에 비하자면, 이건 그저 귀여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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