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163화 (163/468)

163화. 인공호흡기가 필요할 때 (2)

난감하다.

이럴 때는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까. 아니, 이런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할 단어가 사전에라도 있긴 할까.

“…….”

마젠타노 황실 특수정보부 소속의 3호 요원은 침묵을 지켰다. 의료대학 입원병동의 천장 위에 몸을 숨긴 채, 아래쪽 빈 병실을 향해 눈길을 던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황태자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고.

‘또다. 또야. 또 허공을 쳐다보면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어. 아니, 이런 경우는 아무래도…….’

유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닐까.

혹은 여타의 영적인 존재라거나.

아니면 정령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조심스럽게 짐작을 해보자면, 황태자는 어떠한 영적인 신비한 존재와 소통을 하고, 때로는 환상종을 선물 받기도 하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저런 모습은 설명이 안 되니까.

“…….”

문득, 3호 요원은 추억에 잠겼다. 자신이 황태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지켜보며 관찰한 지도 벌써 얼마나 되었던가.

‘거의 10년쯤 됐나.’

문득, 선임 요원에게 인수인계를 받은 후 처음 임무를 맡았던 신입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일하는 게 참 편했다. 황태자는 온갖 지병을 버라이어티하게 앓으며 병상에만 누워 있었으니까. 활동하는 것이라고 해봐야 복도나 정원을 깨작깨작 힘겹게 산책하는 것이 다였으니까.

덕분에 그 시절 황태자의 일상을 관찰하고, 보고하는 일은 거의 단순 반복노동에 가까웠다. 거의 타성이라 부를 수 있을 손쉬운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달라졌어…….’

3호 요원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는 순수한 인간적인 마음으로 황태자가 건강해지길 응원한 적이 있는 그였다. 그런데 이제는 황태자가 너무 움직인다. 도무지 쉬지를 않는다.

난데없이 검투사를 만나겠다고 지하 검투장에 내려가질 않나. 크레모에 다녀오질 않나. 심지어는 앙부아즈의 내전에까지 끼어들질 않나.

“…….”

앙부아즈 내전에까지 황태자를 따라가서 관찰 임무를 수행한 거, 장기 출장 수당 꼭 받아내야지. 황태자가 반란군과 접촉하던 때에는 잠시 거취를 놓쳐서 시말서를 쓰긴 했지만, 그건 진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3호 요원은 나름의 야물딱진 다짐을 삼켰다. 제국 최고의 잠입, 은신, 정보수집 전문 요원답게 차분한 시선으로 황태자 관찰을 이어갔다.

난감하다.

이럴 때는 뭐라고 해야 할까.

라키엘은 자동으로 PT 8번 온몸비틀기를 시전하려는 대뇌피질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흔들리는 동공으로 눈앞에 떠오른 세 장의 카드를 살펴보았다.

[당신은 환상종 선택 뽑기 시스템으로부터 3마리의 후보를 제시받았습니다.]

[세 후보는 당신의 요구사항을 각각 100%, 50%, 0% 반영하고 있습니다.]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한번 선택한 후보는 환불이 불가능하니 신중하게 선택해주세요.]

……그래.

저 안내문은 다 좋다.

무슨 뜻인지도 이미 겪어서 다 안다.

그런데 말이지.

‘인간적으로 말이야. 문제를 이렇게 내면 어떻게 맞추란 거냐?’

라키엘의 난감함에 휩싸인 눈길이 각각의 카드에 쓰인 문구를 훑었다.

<후보 1 : 오늘 밤도 뜨겁게! 열정의 풍선 노래방!>

<후보 2 : 비벙!>

<후보 3 : 그의 따뜻한 콧김에 마음까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포근했다. 위로받는 것 같았다. 아아, 이대로면 숨이 콱 멈춰 버려도 좋아.>

“…….”

자, 일단 추리부터 시작해보자.

‘첫 번째부터 난관이네.’

라키엘은 미간을 콱 찡그렸다.

‘오늘 밤도 뜨겁게? 열정의 풍선 노래방?’

노래와 관련된 능력이 있는 동물이라는 뜻일까. 그럼 풍선은 또 뭘까. 풍선을 부는 능력? 몸에 풍선이라도 달렸나?

‘풍선을…… 부풀리면서 노래를 하는 습성?’

라키엘은 문득 뭔가가 짚이는 걸 느꼈다. 그의 머릿속 뉴런이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고구려 시대의 권위 있는 멜론도에 수록된 단서를 탐구해냈다.

‘몸을 부풀리면서 노래하는 동물이라면, 뭐가 있지? 코가 큰 원숭이가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구애할 때 노래를 부르는 비슷한 새가 있었던 거 같기도 한데…… 그런데 오늘 밤도 뜨겁게? 그럼 밤에만 노래하나? 아, 혹시?’

머릿속에 전구가 반짝.

라키엘의 눈빛도 반짝.

‘……개구리!’

마침내 떠올랐다. 그는 첫 번째 카드를 쳐다보며 나름 추론한 내용을 정리했다.

‘그래. 이건 아마 개구리겠네.’

문득, 한국에 있던 시절이 떠올랐다. 특히, 그때 살던 투룸 전셋집 뒤편의 작은 공원이 떠올랐다. 그 공원에는 연못도 있었는데, 매년 5월쯤 되면 밤마다 수백 마리의 개구리 우는 소리를 거실에서 들을 수 있었다.

가히 개굴 콘서트였달까.

‘그놈들, 특이하게도 낮보다는 밤에 엄청 울어댔지. 그러니까 개구리 맞네. 몸을 부풀리면서 밤에만 노래하는 놈들. 그런데…….’

개구리가 인공호흡기 능력과 얼마나 연관이 있는 걸까.

‘혹시 볼을 부풀리면서 공기를 저장하고, 그걸 인공호흡에 써먹나?’

쓰읍.

좀 애매한데.

라키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아직 카드는 둘이나 더 남아 있었다. 그의 눈길이 두 번째 카드로 옮겨갔다.

<후보 2 : 비벙!>

“…….”

이건 딱 보니까 알겠다.

‘비버네, 비버.’

어쩐지 다른 건 추측하기가 어려웠다. 아니, 애초에 추측할 근거나 건덕지 자체가 없어 보였다.

‘인공호흡과 비버. 거의 연관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럼 3장의 카드 중에서 이놈이 내 요구가 0% 반영된 쪽박이구만.’

그럼 마지막 카드는 뭘까.

세 번째 후보의 프로필을 본 그의 눈길이 난감함으로 물들었다.

<후보 3 : 그의 따뜻한 콧김에 마음까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포근했다. 위로받는 것 같았다. 아아, 이대로면 숨이 콱 멈춰 버려도 좋아.>

……어째서 이놈만 장르가 멜로로 급발진되는 거냐고.

‘아 씨. 애매해서 미치겠네.’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살펴볼수록 뭔가 아침 막장 드라마스러운 저 내용으로는 도무지 추측되는 게 없었다. 어떤 동물을 베이스로 하는 환상종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은 최대한 키워드를 추려보자. 따뜻한 콧김. 마음이 녹아. 포근하고. 위로받고. 숨이 콱 멈춰도 좋…… 아오 썅.’

추리할수록 머리만 더 아파졌다.

그래도 대강은 알겠다.

‘콧김이 주요 능력이라는 건데, 그 콧김을 쐬고 있으면 숨이 멈춰도 좋다는 거지? 이거, 어쩌면…….’

인공호흡기와 관련된 능력을 언급하는 게 아닐까. 살짝 희망회로가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낙관할 수만은 없었다.

‘문제는 저 표현이 그냥 비유인 거라면, 곤란해진다는 거지.’

그러면 된통 낚시질에 걸리는 셈이다. 그건 싫었다. 그렇기에 더욱 계산하기가 빡쎄졌다.

‘자, 그럼 환상종 선택 뽑기의 규칙을 다시 상기해보자. 주어지는 카드는 세 장. 각각의 카드가 내 요구사항을 반영하는 비율은 0%, 50%, 100%. 즉…… 쪽박, 중박, 대박.’

그 기준으로 지금 주어진 세 장의 카드를 보자면?

‘일단 2번 카드가 0% 쪽박인 건 확실하고.’

그러니 2번은 잊고.

문제는 남은 1번과 3번이었다.

‘둘 중의 하나가 100%, 나머지가 50%. 그런데 어느 쪽이 100% 대박인지를 모르겠어. 판단이 안 돼.’

특히 3번 카드가 제일 애매했다. 따뜻하고 포근한 콧김을 지녀서 숨이 콱 멈춰도 좋다는, 저 인공호흡기를 떠올리게 하는 문구가 실제 능력을 설명한 건지, 아니면 그저 비유적인 낚시인 건지가 판단이 되지가 않았다.

‘환장하겠네.’

라키엘은 미간을 찡그렸다.

무려 2,700 HP를 투자하는 뽑기였다. 이번에 실패하면 재시도도 어렵다. 게다가 당장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그냥 콱 1번 카드를 뽑아?’

그의 눈길이 개구리형 환상종일 것으로 추정되는 1번 카드에 머물렀다. 볼을 부풀리는 능력이라면 분명 공기와 연관이 있을 것인데, 그게 과연 인공호흡에 활용될 수 있을까?

“……아니.”

그는 카드에 쓰인 소개말에만 순수하게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자 자연히 결론이 나왔다.

‘1번 카드에 쓰인 글귀에는 호흡과 관련된 언급이 없어. 노래만 있지. 그렇다면 결론은…… 1번 카드는 공기를 활용해서 노래하는 능력에 특화된 환상종이라는 것.’

공기 활용은 확실한데.

목적이 인공호흡이 아니라 노래다.

그렇다면 1번 카드가 50%, 중박 카드다.

‘후우.’

추리 끝에 결론을 내린 라키엘은 심호흡을 했다. 나름 궁리를 했지만, 확신이 서질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확률의 싸움이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각이 더 보이는 쪽에 올인.’

라키엘은 과감하게 3번 카드로 손을 뻗었다.

딩동!

[당신은 후보 3 : <그의 따뜻한 콧김에 마음까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포근했다. 위로받는 것 같았다. 아아, 이대로면 숨이 콱 멈춰 버려도 좋아.> 를 선택하셨습니다.]

메시지가 눈앞을 채웠다.

선택된 3번 카드가 광채로 물들었다.

화아악-!

카드가 확 뒤집혔다. 뒷면에 새겨진 검은 실루엣이 얼핏 보였다.

‘……날개와 촉수?’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윽고 실루엣이 환하게 빛났다.

파츠즈즈즛! 파칙!

카드에서 발산되는 스파크!

마법진이 발동했다. 새로운 존재가 자신의 탄생을 알리며 카드를 뾱 박차고 튀어나왔다.

파츳!

자그마한 충격파와 함께 맹렬히 쏘아져(?) 오는 사과 크기의 덩어리!

“코몽!”

“……컹헝!”

빠악!

미처 받지 못했다. 아니, 안면으로 받아(?)냈다. 스트레이트에 얻어맞은 느낌. 콧등이 얼얼했다. 쌍코피가 터지진 않았을까.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할 겨를은 없었다.

‘환상종부터!’

받아내야 한다. 행여나 바닥에 떨어지면 다칠 테니까. 콧등이 찡한 아픔 속에서도 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이쪽의 얼굴을 때린 반동으로 도동실 떠올라 있는 덩어리가 보였다.

손을 뻗었다.

몸을 날렸다.

슬라이딩을 하며 타구를 극적으로 잡아내는 외야수처럼, 새로운 환상종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가까스로 잡을 수 있었다.

콰당탕!

세이프.

“……거억.”

하지만 한낱 고깃덩이 육신의 아픔 따위엔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는 환상종의 모습부터 확인했다.

‘어떤 녀석이야?’

“코몽!”

마치 대답하듯 손바닥 위에서 해맑게 외치는 새로운 환상종.

그건 바로…….

“코끼리?”

“코모몽! 코몽!”

마치, 정답이라고 말하듯 빵긋 웃는 환상종. 그 모습은 바로 사과 크기의 작고 통통한 아기 코끼리였다. 한데 녀석이 이쪽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코몽? 코모몽?”

“……응? 나 괜찮냐고?”

“코몽!”

“괜찮은데? 왜?”

“코몽코몽! 코모몽!”

“뭐? 쌍코피?”

되묻는 순간이었다.

……주르륵.

삽시간에 코 아래쪽이 찝찝해졌다. 방금 마법진에서 쏘아져 나온 녀석에게 얻어맞으며 기어코 쌍코피가 터진 듯했다.

“어오, 씨.”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다. 코피가 제법 많이 나왔다. 옷에 묻으면 안 되는데. 생각하는 사이에도 코피가 바닥으로 뚝뚝, 점점이 떨어졌다. 코가 왕창 막혀서 입으로 숨을 쉬어야 했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코몽!”

아기 코끼리 환상종이 외쳤다. 이쪽을 향해 자그마한 코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후우욱!

콧김을 빨아들였다.

이쪽의 코피가 쑥 빠져나갔다. 코피로 막혔던 콧구멍이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처럼 뻥 뚫렸다. 그러나 놀랄 겨를은 없었다. 이번엔, 이쪽이 놀라기도 전에 아기 코끼리 환상종이 콧김을 훅 불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후우욱?

뻥 뚫려서 시원해진 이쪽의 콧구멍 속으로, 대자연의 신선하고 상쾌한 1급수 공기가 훅 불어 들어오며 허파 꽈리를 구석까지 야물딱지게 적셨다. 순식간에, 어떻게 반응할 틈도 없이.

딩동!

[당신의 허파가 능동 지능형 석션 기능을 겸비한 인공호흡에 놀라움을 표시합니다.]

[뜻밖의 신선한 공기를 원샷한 허파가 기쁨의 훌라춤을 춥니다.]

[허파가 당신에게 2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300]

‘……대박.’

빙고.

고심 끝에 뽑은 환상종, 아기 코끼리 ‘코몽이’의 능력을 깨달은 라키엘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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