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198화 (198/468)

198화. 정신이 번쩍 (2)

“제 아이…… 네일라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 아이, 무사합니까?”

조심스럽게, 그러나 명확한 뜻을 담고서 떨리는 목소리. 황태자를 보는 상단장 좀비, 툴룬의 떨리는 눈빛과 눈꼬리.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인간적인. 순수하게 절박하고 초조하여, 더 사람처럼 느껴지는 표정까지.

그걸 보며 모두는 생각했다.

죽은 사람은 되살아날 수 없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섭리이다. 그걸 거스를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물론 거기서 예외인 존재가 있다. 흑마법사는 금지된 주술로 좀비를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좀비를 과연 되살아난 존재라 여겨야 할까? 아니. 그건 절대로 아닐 것이다.

‘그저…… 금지된 사술에 의해 걸어 다니게 된 시체에 불과하니까.’

그것이 좀비다.

즉,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든, 그 시체로 만든 좀비는 아무런 이성이나 인간적인 감정을 바랄 수 없는 끔찍한 존재일 뿐이다. 그저 걸어 다니는 시체일 따름이다.

그게 진리이며, 상식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제발, 제발 좀 알려 주십시오. 제 손녀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 아이, 괜찮습니까? 예?”

“…….”

상단장 좀비, 툴룬이 황태자에게 매달리듯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아예 애원하듯 대답을 갈구하였다.

그 모습에 모두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만 같은 충격을 두 가지나 느꼈다.

하나는 상단장이 여전히 좀비의 모습이라는 것. 그럼에도 사람처럼 표정을 짓고, 말을 하고, 애원까지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좀비의 몸을 지닌 채로 기억과 이성을 찾았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좀비인 상태에서도 손녀부터 걱정하는 건가.’

라키엘은 가슴속 한쪽이 아려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것이 혈육의 정이라는 걸까. 그는 자신을 향해 절박하게 애원하는 상단장 좀비, 툴룬을 바라보았다.

옵션 사용은 성공적이었다.

툴룬은 여전히 좀비의 몸을 유지하고 있되, 기억과 이성을 모두 되찾은 듯했다. 이쪽을 향해 보내는 눈빛과 표정이 그걸 증명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라키엘은 환호하지 않았다. 가볍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상단장 좀비, 툴룬의 어깨를 툭툭 짚어 주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서 말해주었다.

“괜찮아. 그대의 손녀 네일라, 그 아이는 건강을 되찾았으니까.”

“저, 정말입니까? 그 말씀이 사실입니까?”

“그래.”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러고 보니 툴룬이 기억과 이성을 되찾자마자 외손녀의 안위부터 걱정하는 이유가 짐작이 되었다.

‘툴룬이 사망하던 시점엔 네일라가 여전히 백일해에 고통받으며 투병 중이었으니까. 이 사내, 외손녀가 위독하던 모습만 보다가 죽었으니까. 그게 마음에 걸렸던 거야. 죽은 후에도 그 걱정을 끝내 떨쳐내지 못하고 있던 거야.’

그러니 이성이 살아나자마자 외손녀 걱정부터 하는 것이리라. 라키엘은 그런 툴룬의 심정을 헤아리듯, 혹은 토닥이듯 말했다.

“사실일 수밖에. 내가 직접 그 아이를 진료했으니까.”

“그게 무슨…….”

“세세하게 설명하자면 제법 긴데. 그래도 들어볼 텐가?”

“예, 예. 부탁드립니다.”

꼭 듣고 싶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상단장 좀비, 툴룬. 그 모습에 다시금 희미한 미소가 절로 맺혔다.

“그래, 그렇다면야.”

그때부터였다.

라키엘은 자신이 이곳 크라노스크 지방에 왔던 때부터의 일들을 찬찬히 말해주었다.

상단장의 장례식, 위독하던 네일라, 거대 구렁이 사냥과 긴뿌리 감초, 백일해 치료약의 개발과 성공까지.

그동안 툴룬은 탄식하고, 감탄하고, 끝끝내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감사…… 감사합니다. 제 손녀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툴룬이 연신 소매로 눈가를 거칠게 닦았다. 덕분에 라키엘은 기겁했다.

“어어, 조심. 그러면 눈가 피부 쓸려서 벗겨질 텐데?”

“엇? 예에?”

“자네는 좀비야. 스스로도 알고 있을 텐데. 기억과 이성을 되찾았지만, 육체는 좀비인 상태 그대로라는 거.”

“아…….”

“그러니 피부 관리를 조심해야 해. 한 번 상하면 회복이 안 되니까.”

“그럼, 아기 피부처럼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겁니까?”

“물론이지.”

“그럼…… 운동은…….”

“미안. 해도 소용이 없을 거야. 아무리 쇠질을 열심히 해도 근육 회복과 성장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라서.”

“…….”

툴룬의 표정이 단숨에 침울해졌다.

“그, 그렇습니까.”

“응.”

“그럼 저, 외손녀를 볼 수는 없는 거겠지요?”

“으음, 당분간은? 방법을 좀 고민해보는 게 좋겠지. 아무래도 덜컥 모습을 보였다가는 아이가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테니.”

“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자네는 반갑구만, 브라쉬.”

잠깐의 우울감(?)을 털어낸 좀비, 툴룬이 눈길을 돌렸다. 그의 반가운 인사가 향한 곳. 그곳에 오크 족장 브라쉬가 있었다.

한데 브라쉬의 반응은…….

“상한 고기가 말을 한다, 꾸이익!”

“…….”

“미안, 꾸익.”

“후우. 친우만 아니었어도 그냥.”

“그래도 좋지 않나? 나는 자네와 이렇게 다시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은 몰랐네. 인간의 황태자께서 대체 자네에게 무슨 일을 해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꾸익.”

“뭐 그건, 차차 말해줌세. 허허.”

좀비 툴룬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정신적으로나마 되살아난 자신의 모습이 솔직히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족장 브라쉬도 커다란 송곳니를 드러내며 기쁘게 웃었다.

덕분에……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의 멘탈이 살짝 이 세상의 끝자락을 찍먹하고 오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뭐야. 진짜로 살아난 거야? 좀비가?’

‘좀비의 정신을…… 되살렸다고?’

특근대원 둘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서로 상대방의 바운스 바운스 흔들리는 눈동자를 발견했다.

‘그런데 좀비의 정신을 되살리는 그 미친 짓거리를…… 거창한 마법이나 주술도 아닌 침술로 해낸 거라고?’

‘가시로 몇 번 찔러서 좀비를 정신 차리게 만드는 일이 가능한 거였어?’

불가능하다. 아니, 불가능해야 한다. 그게 엄연히 보편타당한 상식이다.

한데 지금 황태자는 그런 상식을 너무나 간단하게 깨부숴 버린 무지막지한 위업(?)을 저지르고 말았다.

특근대원 두 사람의 눈짓이 더욱 바쁘게 오갔다.

‘기적이다. 기적이군, 이건.’

‘흑마술사의 흑마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전하의 침술에 비하면.’

믿기지가 않았다.

한편으로는 소름이 돋았다.

매일 황태자를 곁에서 모시고 있던 까닭에, 어느 순간부터는 황태자의 의술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의 의술이 종종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잠시 잊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실감할 수 있었다.

‘……죽은 좀비도 벌떡 일으켜 세우는 전하의 솜씨라니!’

이런 황태자를 모시고 있는 자신이 자랑스러워졌다.

황도에 돌아가면 이걸 어떻게 소문낼까. 어떤 방식으로 말해야 조금 더 극적으로 사람들의 감탄을 끌어낼 수 있을까. 각자의 머릿속에서 방금 목격한 기적이 야물딱지게 각색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라키엘이 좀비 툴룬의 상태를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그나저나 괜찮나? 의식을 찾은 느낌은 어떻지?”

“그게…… 아픕니다.”

“아파? 어디가?”

“전하의 가시에 찔린 자리들이 말입니다. 아직도 욱신거리고 아픕니다.”

“…….”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진심으로.”

“…….”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차라리 영원히 눈을 감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미안.”

“괜찮습니다. 절 위한 행동이었음 또한 알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오히려 감사합니다. 이렇게 제 눈을 뜨게 해주셔서, 제 손녀의 무사함을 알 수 있을 기회를 주셔서 말입니다.”

“그런가. 어쨌건, 그럼 좀비 상태였던 때의 기억도 지니고 있다는 뜻이겠지?”

“맞습니다.”

좀비 툴룬이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기억합니다. 제가 살아 있던 때의 기억은 물론이고, 좀비가 된 이후의 일들을 모두 말입니다.”

“그 말은, 좀비가 되기 전의 평범한 시체였던 때의 기억만 없다는 뜻이겠군. 맞나?”

“정확하십니다, 전하. 죽은 직후의 기억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죽은 상태였으니까 말입니다. 다만…… 흑마법사의 주술이 제 눈을 뜨게 한 시점부터는…….”

“말해보도록. 천천히. 생각나는 대로.”

바로 이거다.

이걸 듣기 위해서 툴룬의 의식을 되살렸고, 기대수명 100일을 바쳤다. 라키엘은 귀를 쫑긋 열었다. 좀비 툴룬이 말했다.

“죽은 뒤부터의 제 첫 기억은, 흑마법사 놈의 얼굴이었습니다.”

“얼굴?”

“예. 차가운 물에 빠졌던 것처럼 온몸이 무거웠습니다. 피로하고, 괴로웠지요. 그 상태에서 눈을 떴습니다. 바로 앞에 처음 보는 사람이 있더군요. 음침하고, 깡마르고, 신경질적인 인상이었지요. 보자마자 좀비로서 지닌 본능으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 이 사람이 사악한 주술로 나를 일깨운 거구나, 라고 말입니다.”

“그 당시에도 감정을 느낄 수 있었나?”

“희미하게는 가능했습니다.”

좀비 툴룬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물론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감정과 생각에 불과했지요.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뭐랄까, 꿈을 꾸는 것과 비슷한 상태였습니다. 주위의 것들을 막연하게나마 파악하고 느낄 수는 있는데, 그게 피부에 와닿지는 않는 몽롱한 느낌 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흑마법사에게서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들어? 그가 대화를 걸던가?”

“비슷했지요. 놈에겐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좀비 툴룬은 기억을 더듬었다.

“놈은 혼자 지낸 시간이 무척 길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주위의 좀비들에게 말을 걸면서 혼잣말을 하는 습관이 있었지요.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어제는 황야를 온종일 찾아다녔는데 시체 하나 못 건져서 기분이 나쁘다. 요즘 들어서 입맛이 없다. 뭐, 그런 것들 말입니다.”

“중요한 내용은 없었나?”

“물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깐, 물 좀 마셔도 되겠습니까? 목이 너무 칼칼해서.”

“어. 여기.”

라키엘은 물잔을 건넸다. 좀비 툴룬이 물을 벌컥 마셨다. 그제야 라키엘은 내심 아차 싶은 기분을 느꼈다.

‘좀비가 물을 마셔도 되나?’

하도 자연스럽게 물을 달라고 하는 통에,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물을 건네고 말았다.

뒤늦은 걱정이 덜컥 들었다. 아무리 이성과 지성을 되찾았다고는 해도 툴룬의 육신은 여전히 좀비 상태니까.

‘소화기관이 물을…… 처리하진 못할 것 같은데.’

스멀스멀 피어나는 염려!

이내 그 염려가 현실이 되었다.

“……우웁?”

물을 원샷하고 시원해하던 것도 잠시, 좀비 툴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딱 봐도 알겠다. 토하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쯧. 일단 여기에라도.”

실내 바닥에 토하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람들의 눈에 띄는 뒷간으로 달려가게 둘 수도 없었다.

라키엘은 재빨리 손을 뻗어서 화분 하나를 집었다. 긴뿌리 감초 생장 실험을 위해 감초 뿌리조각 샘플을 심어둔 화분이었다.

“가, 감사합니…… 오애액-”

좀비 툴룬이 마셨던 물을 모조리 화분에 게워냈다. 그의 낯빛이 송구한 감정으로 물들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으음, 이제부턴 마시지는 말고 입만 헹구도록, 입 안쪽만.”

“……알겠습니다. 그럼 드리던 이야기를 마저.”

“그래. 나도 어서 듣고 싶군. 우선 흑마법사의 소굴 위치부터.”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혹시 여기 지도를 지닌 분?”

좀비 툴룬이 지도를 찾았다.

근위대원 하나가 지역 지도를 건넸다. 그때부터 툴룬이 자신의 기억을 짚으며 흑마법사의 소굴로 가는 길을 지도에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걸 보는 라키엘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 사이, 방금 좀비 툴룬이 게워낸 물을 받은 긴뿌리 감초 화분 속에서는…….

……꼬득?

그동안 라키엘이 별별 짓을 다 해도 자라날 기미를 보이지 않던 긴뿌리 감초 샘플이, 마침내 성장의 은밀한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