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함정 속의 함정 (2)
딩동!
[당신의 오장육부가 경혈스캐닝 관측 결과에 놀라서 쑥덕거립니다.]
[심장 : 야야. 저거 뭐냐. 흑마법사 쟤, 우리가 제대로 보고 있는 거 맞음?]
[허파 : 허허…… 퍼허헛……ㅋㅋ]
[대장 : 형님들? 아무리 봐도 저 흑마법사, 사람이 아니라 좀비인데 말입니다?]
[간장 : 그래도 겉모습은 멀쩡한 사람인데?]
[위장 : 우리도 겉모습은 멀쩡한 사람이잖아?]
[콩팥 : 근데 왜 여자친구가 없을까ㅋㅋㅋ ㄹㅇㅋㅋㅋ]
[심장 :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허파 : 헠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장육부가 새삼스러운 깨달음(?)에 눈물겨운 웃음으로 서로를 위로합니다.]
[오장육부가 당신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200 HP를 후원합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3,300]
“…….”
왜 가타부타 깜빡이도 없는 노빠꾸 데미지가 가슴속을 훅 치고 들어오는 걸까. 아니, 그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스캐닝 결과가 맞는 걸까.
‘혹시 잘못 봤나.’
라키엘은 눈을 질끈 감았다. 경혈 스캐닝을 취소했다. 방금 본 결과가 믿기지가 않았다. 스캐닝으로 엿본 흑마법사 카르투의 몸속 경혈의 흐름. 그건 아무리 봐도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보기에 불가능한 흐름이었으니까.
‘분명 좀비였는데.’
어쩌면 관측을 잘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 거리가 애매하게 멀어서 잘못 보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두 걸음을 더 다가갔다. 다시 경혈 스캐닝을 켰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꿀꺽.
‘이게 무슨.’
카르투의 경혈 흐름은 그야말로 기괴했다. 죽어 있는 몸뚱이를 흑마술이 억지로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전에도 본 적이 있는 광경이었다. 언제? 며칠 전에. 누구에게서? 좀비 툴룬 상단장에게서.
그러니까 확실하다. 흑마법사 카르투는 사람이 아니라 좀비다. 그렇기에…… 혼란스러워졌다. 소설 마검황에서는 나온 적이 없는 상황과 설정이기 때문이었다.
‘소설 속의 카르투는 최후의 순간까지 인간이었어.’
분명 그랬다.
카르투는 지금으로부터 약 7년이 흐른 미래의 시점에 언데드 군단의 재난을 일으킨다. 그리고 약 6개월이 지난 뒤에 데미안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처절한 격전 끝에 목이 잘린다. 그것이 카르투의 최후였다.
그렇듯 카르투는 인간으로서 난리를 부렸고, 인간으로서 죽었다. 절대로 좀비가 아니었다.
‘혹시 역사가 바뀌었나?’
잠깐 색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희망적인 추측도 잠깐이었다.
“……그으읏! 쿨룩! 콜록!”
큰 충격을 받아 널브러져 있던 카르투가 온몸을 움찔거리며 기침을 했다. 이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빌어…… 먹을…… 내가…… 이렇게…… 당하다니…….”
분노와 원망이 한껏 담긴 눈빛이었다. 그걸 보자, 다시금 쌔한 느낌이 몰려왔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저 몸짓과 표정이 너무나 생생하고 리얼했기 때문이었다.
‘좀비가 저게 가능한가?’
그냥 보면 사람 같다. 일전에 생포했던 툴룬 상단장의 경우와도 많이 달랐다. 저건 스캐닝을 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좀비라고 볼 수 없을 모습과 행동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더욱 의심이 들었다.
‘이건 진짜로 이상해.’
분명 뭔가가 있다.
강한 예감이 들었다.
보다 눈을 부릅뜨고,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모든 경혈의 가장 사소한 흐름까지 놓치지 않고 관찰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흠칫!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비로소 보였다. 이토록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더라면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을 희미하고 특이한 마나의 흐름. 그런데 자신에게 꽤나 익숙한, 이런 순간에는 보고 싶지 않았던 마나의 흐름을 기어코 보고야 말았다.
“꼬슴아? 검정색 가시 좀.”
“꼬슴?”
라키엘이 말했다.
꼬슴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은 지금 빨간 해바라기 씨를 먹고 거대해진 상태인데, 지금 뽑아주는 검정색 가시는 엄청 클 텐데. 그게 왜 필요하다는 걸까. 의아해졌다.
하지만 라키엘은 상관하지 않았다.
“뽑아줘. 얼른.”
“……꼬, 꼬슴!”
라키엘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꼬슴이도 비로소 느꼈다. 얼른 검정색 가시를 뽑아서 주었다.
죽창처럼 커다란 검정색 가시가 라키엘의 손에 들렸다. 그는 가시를 받아들자마자 흑마법사 카르투에게 다가갔다. 가시를 치켜들었다.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카르투의 명치에 꽂아 넣었다.
콰악-!
“……흡?”
말 그대로 죽창 사이즈의 가시가 명치에 깊숙이 꽂혔다. 카르투의 두 눈이 크게 흡뜨였다. 그 광경을 바라본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엇?”
“저, 전하?”
승리를 확신하며 자축하던 특근대원들과 근위대원들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라키엘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가시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몸을 기울이며 체중을 모조리 실었다.
푸큭!
검정색 가시가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거헉! 가학! 그아하아악!”
카르투가 버둥거리며 온몸을 벌벌 떨었다. 눈이 새하얗게 뒤집혔다. 그냥 피부만 살짝 찔려도 영혼이 잠깐 출타할 정도로 아픈 검정색 K맛 가시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도 아닌 죽창 사이즈가 되었다. 심지어 피부만 살짝 찌른 것도 아니었다.
“그아악! 크아아아아악!”
좀비마저 기절할 정도의 고통!
비명을 내지르는 카르투의 입에 게거품이 물렸다. 그 순간, 불길한 어두운 빛이 카르투의 온몸에 서렸다.
……파아앗!
카르투의 모습이 순식간에 변하기 시작했다. 차갑고 냉정한 흑마법사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곳에 드러난 새로운 모습은, 반쯤 썩어서 부패되고 있는 평범한(?) 좀비의 얼굴이었다.
비명 또한 바뀌었다.
“크아악! 그륵……! 그르륵! 구워어억!”
사람의 비명에서, 지성을 찾아볼 수 없을 포효로 변질되었다. 눈동자도 사라졌다. 심지어 얼굴과 몸의 골격마저 바뀌었다.
즉, 이건 바로…….
‘역시. 변장 마법이었어.’
라키엘은 침음을 삼켰다. 이제는 확실해졌다. 조금 전, 자신이 느꼈던 희미하고도 익숙한 마나의 흐름이 짐작 그대로였다. 변장 마법이었다.
‘이건 내가 잘 아니까.’
앙부아즈 내전에 참전했던 내내 변장 마법을 끼고 지냈던 그였다. 덕분에 변장 마법 특유의 마나 흐름에 누구보다 익숙했다. 변장 마법의 약점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기절할 정도의 충격. 그래서 검정색 K맛 가시로 놈을 찔렀다.
‘좀비는 물리적인 충격으로는 거의 기절시킬 수가 없으니까. 변장 마법을 풀기 어려울 테니까.’
하지만 K맛 가시로는 가능할 것이라 여겼다. 찔렀다. 결과는 생각대로였다. 마침내 놈의 변장 마법을 풀어낼 수 있었다.
덕분에 주위에서는 난리가 났다.
“……어엇?”
“저게 무슨!”
“조, 좀비잖아!”
라키엘이 가시를 쓰던 때부터 이미 많이 놀라고 있던 특근대와 근위대였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경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버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다급히 달려온 데미안이 물어왔다. 라키엘은 굳은 얼굴로 대꾸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속은 것 같다.”
“예?”
“그놈, 이중이 아니라 삼중 함정을 팠어.”
“함정이라시면…….”
“자신의 모습으로 변장시킨 좀비를 지휘관으로 삼아, 폐급으로 분류해둔 좀비를 매복시키고, 그 전체를 미끼로 사용한 거야.”
“…….”
데미안은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라키엘의 시선이 기간토피스의 난리통에 박살 나고 있는 좀비 군단을 향했다.
이제는 알겠다.
박살 나고 있는 좀비들의 얼굴을 보니, 표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은 즉, 저놈들이 모두 중급 이하의 좀비들이라는 뜻이다. 반면, 소설 마검황에서 나왔던 카르투의 언데드 군단은?
‘전원이 상급 좀비로만 구성되어 있었어. 그렇기에 정규군과의 맞대결에서도 압도적인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지.’
한데 이곳에 남겨진 저 좀비들은? 제조 과정에서 하자가 생겨서 폐급으로 분류해둔 놈들인 거다. 그냥 버리는 카드인 거다. 놈이 군단이라 일컫는 숫자에조차 포함되지 않는 열외의 병력. 즉, 주력이…… 아닌 거다.
‘그럼 주력은 어디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깨달음이 몰려왔다.
라키엘은 고개를 들었다.
“전원 집합! 신속히 대열을 정비하고 크라노스로 급속 복귀를……!”
그 순간이었다.
“……그르륵!”
K맛 가시에 찔려 고통스러워하던 카르투, 아니, 위장 좀비가 돌연 버둥거림을 멈추었다. 온몸을 둥글게 말았다. 회백색 안구가 핏빛으로 물들었다. 기이하고도 파괴적인 마나의 응축이 전신을 휘감았다.
반응할 틈도, 대비할 여유도 없었다.
……화아악!
좀비의 전신에서 피어난 핏빛 마나의 섬광.
“전하!”
데미안이 달려들었다. 라키엘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직후, 흑마법사가 심어둔 시체 폭발 마법의 맹렬한 기세가 데미안과 라키엘을 덮쳤다.
♣
콰아앙-!
맹렬한 기세가 성문을 때렸다. 수십 구 시신의 뼈를 얽어서 만든 공성추가 끔찍한 괴성을 내며 뒤로 당겨졌다. 이내 다시금 성문을 때렸다.
콰아아앙-!
변방 도시, 크라노스의 성문이 가까스로 버텨내었다. 하지만 성벽 위쪽의 수비병들은 그런 굉음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당장 성벽을 기어오르는 눈앞의 적들을 밀어내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막아! 무조건 막아!”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아아악!”
곳곳에서 터지는 외침과 비명.
수비병들이 검과 도끼를 쉼 없이 내리쳤다. 그때마다 성벽을 기어오르던 좀비의 머리가 쪼개졌다.
그러나 좀비는 어째서 자신이 언데드인지를 훌륭하게 증명해냈다. 머리가 쪼개지건 말건, 전혀 아랑곳없이 성벽을 기어올랐다. 자신을 공격한 병사를 덮쳤다.
“저, 저리 가! 거으어억!”
병사가 넘어졌다. 좀비 다섯이 먹잇감을 발견한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었다. 썩어가는 입을 벌리고, 서슴없이 물어뜯었다.
“……으아악! 아악!”
병사의 전신이 삽시간에 피로 물들었다. 산 채로 뜯어먹히는 고통과 공포 속에서 병사는 생각했다.
오늘은 그저 평범한 저녁일 뿐이었는데. 보초 순번이 꼬여서 품었던 불만이 하루의 가장 큰 불행이어야 했을 하루였는데.
‘그런데…… 어째서? 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크 전사들이 흑마법사를 토벌한다며 출격을 하고. 덕분에 전력의 공백이 생겼다며 밤샘 보초를 명받고. 투덜거렸다. 그렇게 꾸벅꾸벅 졸다가 우연히 지평선을 가득 채우며 몰려오는 흙먼지를 발견했던가.
‘토벌군이…… 돌아오는 줄 알았는데…….’
돌아온 것은 언데드 군단이었다.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삽시간에 도시를 포위했다. 파도가 몰아치듯 공세를 퍼부어 왔다. 악다구니를 쓰며 버텼다. 그러나 수비병의 숫자가 너무나 모자랐다. 아니, 좀비 군단의 기세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나는…….’
죽기 싫어.
그 생각을 끝으로 수비병의 의식이 끊어졌다. 눈동자의 검은자위가 사라졌다. 고통과 공포의 비명 대신 짐승 같은 포효성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르르워억!”
좀비로 변한 수비병이 벌떡 일어났다. 자신을 구해주기 위해 달려오던 동료를 기습적으로 덮쳤다.
“어아악!”
새로운 희생자의 비명이 성벽을 물들였다. 그러한 비명이 성벽 위 곳곳에서 삽시간에 번져갔다. 공포의 물결이 살아남은 수비병들을 덮쳐갔다.
“……히, 히이익!”
죽여도 죽일 수가 없는 언데드 군단의 위세. 하나둘씩 쓰러진 후 좀비가 되어 버리는 동료들. 사기가 꺾인 생존 병사들이 하나둘씩 위치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공포는 도시 내부까지도 순식간에 번졌다. 때아닌 한밤의 침공에 시민들이 패닉에 빠졌다. 불붙은 난파선에 갇힌 쥐 떼처럼 우왕좌왕 살길을 찾으러 뛰어다녔다. 혼돈과 혼란이 춤을 추었다.
툴룬 상단 본부 건물 또한 마찬가지였다.
“유모? 우리 오늘, 죽는 거예요?”
툴룬의 외손녀, 네일라는 울먹이는 눈길을 들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다만 무서웠다. 사람들이 뛰어다니며 내지르는 비명도. 곳곳에서 피어나는 불길에 물든 붉은 밤하늘도.
만일 유모마저 곁에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할아버지…….’
자신을 보듬어 주는 유모의 품속에서 네일라는 생각했다. 만약 오늘 죽으면, 먼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차라리 그런 거라면 좋겠다. 그저 무섭고 또 두려워서, 할아버지가 무척 보고 싶었다.
좀비 툴룬은 그런 외손녀를 창밖에서 몰래 바라보았다.
“…….”
하나뿐인 손녀.
아이가 행여나 놀랄까 봐, 이런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을까 싶어 계속 숨어서 지냈던 그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달려가서 아이를 달래주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카르투, 그놈의 진짜 주력 군단이 온 것이야.’
좀비의 본능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강력한 고위급 언데드의 기운이 사방에서 느껴졌다. 죽음의 군단이 몰려온 까닭일 터다. 이대로 있다간 도시가 함락되고 모든 시민이 좀비가 되겠지.
자신의 외손녀 또한 마찬가지로…….
“…….”
좀비 툴룬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나설 때가 되었음을. 설령 두 번 다시 외손녀를 보지 못하게 되더라도, 자신이 움직여야 할 때가 왔음을.
잠시 후.
한때 3대 700킬로그램을 달성하며 전사의 칭호를 얻었던 집념의 사나이가, 좀비의 육신 가득 결의와 각오를 품고서, 함락 직전의 성벽으로 비장한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