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아름다운 보상 (3)
이곳은 크라노스 시가지 외곽, 그 한쪽에 자리한 평범한 가정집 뒤뜰. 언데드 군단의 침공이 안겨준 충격에서 벗어난 어느 가족이 일상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외삼촌, 그거 들으셨어요?”
“혹시 우리 도시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온몸을 내던진 영웅 좀비 이야기 말이더냐?”
“……어?”
“조카야. 넌 내가 그런 소식을 못 들었을 거라고 여긴 거냐? 이 삼촌이 늙어서 세상 소식에 느리고 어두울 거라는 생각은 편견에 불과하단다.”
“그, 그럼 그 좀비가…….”
“도시를 구하고는 아무런 대가나 칭송조차 바라지 않고서 유유히 잠적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느냐고 물으려던 참이지?”
“…….”
“그 소문이 그저 뜬구름만 잡는 과장된 헛소문이 아니며, 황태자 전하께서도 인정하고 인증한 공식적인 사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냐고도 물으려 했지?”
“……다 아시네요.”
“늙은이 무시하지 말라니깐.”
“그럼 이건 아세요?”
“뭔데, 또.”
“외삼촌, 사랑합니다.”
“용돈 필요하다고?”
“옙.”
“옛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외삼촌? 왜 이렇게 용돈을 잘 주세요?”
“그래야 우리 누나가 빡치니까.”
“아하.”
……라는 내용의 대화가 오순도순 오갔다.
한편, 그곳에서 두 블럭 떨어진 어느 술집에서는…….
“어이, 주인장? 그건 무슨 벽보요?”
“아, 이거 말이오? 황태자 전하께서 직접 배포하신 전단이외다.”
“전단?”
“궁금하면 직접 보시든가.”
술집 주인장이 한 발짝 물러났다. 그러자 방금 그가 붙인 벽보의 모습이 드러났다.
“현상금? 도시를 구원한 영웅 좀비를 찾습니다?”
벽보를 본 취객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벽보에는 간단한 인상착의와 함께 발견 및 제보 시에 지급할 사례금이 내걸린 좀비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취객이 물었다.
“이거, 혹시 그 소문의 영웅 좀비 맞소? 언데드 군단의 침공에 맞서서 싸웠다는 그?”
“맞소.”
“에잉, 그거 거짓말 아닌가? 좀비가 어떻게 우리랑 편을 먹고 언데드 군단이랑 싸워?”
“하지만 황태자 전하가 직접 사실이라고 말씀까지 하셨는데 말이오?”
“쯧쯧, 난 그딴 헛소문 안 믿소.”
“정말이오?”
“당연하지. 그런 소문을 믿을 바엔 내가 술을 끊겠수다.”
“정말로?”
“어. 정말로.”
“진짜?”
“어. 진짜로.”
“아. 단골손님 잃게 생겼네.”
“……왜 그런 표정이오, 주인장?”
“그 소문 그거, 정말로 진짜라서 말이외다.”
“……정말로?”
“어. 정말로.”
“진짜?”
“어. 진짜로.”
“그걸 어찌 그리 확신하오?”
“내 친구 아들놈이 북문 수비병이었으니까 말이오.”
“어? 설마 야고프 그 작자네 아들?”
“맞소. 그 친구한테 들었소. 언데드 군단이 쳐들어왔던 날에 말이오. 그날 북문을 지키던 아들이 꼼짝없이 죽게 생겼는데 글쎄, 건장한 좀비 하나가 나타나더니 아들을 살려줬다는구려.”
“그 친구, 술 취했던 건 아니고?”
“당연히 아니지. 세상에서 우리 집 술이 제일 맛없다고 떠드는 빌어먹을 친군데.”
“잠깐. 그럼, 그 소문이 진짜란 말요?”
“그러니까 황태자 전하께서 그 영웅 좀비를 찾겠다고 이렇게 벽보까지 붙이고 거액의 사례금까지 걸어둔 게 아니겠소?”
“…….”
취객이 눈두덩을 비비며 벽보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 아래에 적힌 금액을 보며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꺼덕 삼켰다.
“주인장? 그런데 이 좀비 말이오. 인상착의가…… 내가 아는 누구랑 좀 비슷한데?”
“누구 말이오?”
“툴룬 상단장 말이외다. 좀 닮았지 않소?”
“어? 어어? 그러고 보니까? 이거?”
……라는 대화가 오갔다.
비단 어느 평범한 가정집 뒤뜰이나, 낡은 술집에서만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 아니었다. 오전이 지나고, 점심이 스쳐 가고, 오후가 될 무렵부터는 사람들이 대놓고 광장에 모여 삼삼오오 떠들기 시작하였다.
그 내용은 다들 비슷했다.
“뭐야? 이 정도 사례금이면…… 인생이 바뀔 수준인데?”
“그런데 저 영웅 좀비 말입니다. 아무리 봐도 익숙한 모습 아닙니까?”
“툴룬 상단장이랑…… 좀 비슷한데요?”
“좀이 아니라 제법 비슷한 것 같습니다만…….”
“정말로 툴룬 상단장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는 죽었잖아요?”
“죽었으니까 좀비가 됐겠죠!”
“……아하.”
모두가 새삼스러운 눈길로 벽보를 쳐다보았다. 벽보에 그려진 좀비의 얼굴은 누가 보아도 툴룬 상단장과 비슷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곳 도시의 사람들치고 툴룬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다.
배타적이고 고집이 강한 오크 전사들과 거래를 성사시킨 최초의 인간. 거래 성사를 위해서 50세가 넘은 나이에 운동을 시작하여 집념으로 3대 700킬로그램을 성공한 불굴의 사나이.
그가 오크족과 거래를 트고, 그걸 바탕으로 상단을 세웠다. 덕분에 이곳 변방의 보잘것없던 도시에 무역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일자리가 생겨났다. 이전보다 윤택해진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툴룬 상단장은 이 도시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가 죽었을 때는 도시 전체가 비탄에 잠겼을 지경이었다.
한데 그가 죽은 후에도, 좀비가 되어 도시를 지키기 위한 영웅적인 활약을 펼쳤다니! 과연 그답다는 생각을 모두가 품었다. 한편으로는 툴룬을 찾아내어 거액의 사례금을 받고 인생 팔자를 고쳐보겠다는 소망도 머금게 되었다.
‘이럴 때가 아니야. 남들보다 빨리 찾아야 해.’
‘사례금만 받으면…… 그걸로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지긋지긋한 출근을 평생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어!’
모두의 눈에 불이 켜졌다. 아니, 아주 그냥 탐욕으로 눈이 뒤집혔다. 본격적인 보물(?) 찾기 타임의 시작이었다.
그렇듯 월ㄹ…… 아니, 툴룬을 찾아라 물결에 가담한 이들 중에는 툴룬의 외손녀, 네일라도 있었다.
“저기, 황태자 전하?”
“응?”
“저 벽보 속의 좀비 말예요. 정말 외할아버지가 맞아요?”
“으음, 나도 아직은 잘 몰라.”
이쪽을 빤히 올려다보는 네일라의 눈동자. 그 맑은 눈빛 앞에 라키엘은 짐짓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그냥, 뭐, 영웅적인 좀비 하나가 성벽을 지키기 위해서 활약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그 덕분에 내가 토벌군을 이끌고 돌아오기 전까지 성벽이 함락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그래서야. 착한 사람은 상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닐까?”
“사람이 아니고 좀비…….”
“좀비라도 예외는 없지. 난 공평한 사람이거든.”
라키엘은 어깨를 으쓱였다. 방금 아이에게 해준, 성벽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소문을 접하고 나름 더욱 깊이 조사를 해보았다. 덕분에 당시 북쪽 성문을 지켰던 생존 병사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건장한 좀비가 병사들을 덮치는 척을 하며 좀비 연기를 시켰고, 덕분에 다들 언데드 군단의 공격을 받지 않았노라 했다.
더 놀라운 것은 다음의 이야기였다. 다들 혼신의 좀비 연기를 하며 성벽 바깥으로 기어내려갔다고 했던가. 덕분에 언데드 군단이 그 바람몰이에 이끌려서 성벽에서 잠깐 철수를 했다고도 하였던가.
‘덕분에 시간을 번 거지. 안 그랬으면…… 우리가 돌아오기 전에 크라노스가 완전히 함락됐을 거야.’
기껏 돌아왔지만 함락되어 있었을 크라노스. 무고한 시민들은 모조리 희생되어 언데드 군단의 좀비로 흡수가 됐을 터다. 지금 함께 있는 네일라도 예외가 아니었을 테고. 생각만 해도 끔찍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그걸 막아냈다. 툴룬의 용기와 기지 덕분이었다. 그래서였다.
“좋은 일을 하면 상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 게 세상의 진리란다. 그게 사람이든, 좀비든, 또 다른 존재이든 예외란 없어. 그래야 공평한 거니까.”
“돌아가신 우리 외할아버지도요?”
“응. 당연하지. 네일라는 그 좀비가 외할아버지였으면 좋겠어?”
“네.”
아이가 1초도 고민하지 않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좀비라도 상관없는 거야?”
“네. 할아버지니까.”
“이상한 냄새가 나고 전이랑 조금 다른 모습이어도? 그래도 괜찮아?”
“네. 할아버지 원래 발 냄새 심했어요. 그러니까 괜찮아.”
“……어, 그래. 그렇구나.”
꼭 찾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서 나란히, 천천히 거리를 걸으며 물었다.
“그런데 네일라는 말이야. 만약 할아버지가 겁을 내면 어떡할 거야?”
“할아버지가요? 왜요?”
“으음……. 말하자면 조금 복잡하기는 한데, 할아버지는 아마 걱정을 많이 할 수도 있어.”
“어떤 걱정이요?”
“네일라 걱정.”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기색이다.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해 주었다.
“만약 그 영웅 좀비가 할아버지라도 말이야. 사람들이 아무리 칭송을 해도 할아버지는 달라진 자기 모습 때문에 부끄러울 거야, 아마도. 그래서 선뜻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어.”
“에이, 말도 안 돼요.”
네일라가 자그마한 눈썹을 찡그렸다.
“우리 할아버지 안 그래요. 만약에 우리 할아버지 놀리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혼내줄 거야.”
“정말?”
“응. 정말요.”
“네일라가 할아버지 지켜줄 거야?”
“네.”
“언제까지?”
“계속. 끝까지. 저 시집갈 때까지요.”
“어? 그럼 그다음은?”
“할아버지 하는 거 봐서요.”
“그럼 할아버진 큰일 났네. 네일라한테 진짜 잘해야겠네?”
“당연하죠. 그러니까…… 보고 싶어.”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안 그러면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아직은 울고 싶지 않았다. 헤프게 울면 할아버지와 만날 행운이 도망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 이유도, 까닭도 없었지만, 괜히 느낌이 그랬다.
그때였다.
“그럼…… 고개 들어볼래?”
부드러운 황태자 삼촌의 목소리. 네일라는 엉겁결에 그 말을 따랐다. 그리고 보았다.
“어?”
저기 앞쪽. 평범한 거리. 그 언젠가 할아버지랑 술래잡기를 했던 길목. 그러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고, 피가 나는 걸 보고는 울고, 그랬던 자신을 할아버지가 쩔쩔매며 달래주었던 그 자리.
그곳에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네일라? 우리…… 병아리?”
구수한 목소리.
익숙한 음성.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아무 이유도, 까닭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다. 날 저렇게 불러주는 사람은 세상에 할아버지밖에 없으니까.
그다음에 어떻게 뛰어갔는지, 어떻게 와락 안겼는지, 어떻게 할아버지가 통곡하듯 울었는지, 네일라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믿기지 않는 감격만이 가득하였다. 전과 조금은 달라진 할아버지 냄새, 얼굴. 하지만 아무 상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라키엘은 말없이 미소 지었다. 한편으로는 생각했다. 오늘 일을 벌이길 참 잘했다고. 영웅적인 소문을 퍼뜨린 것도. 그 누군가가 들을 수 있도록 네일라와 이야기를 나눈 것도. 전부 보람차다고. 그리고 조금은…….
‘눈이 조금, 이상하네.’
아무래도 요즘 눈 상태가 안 좋은 거 같다. 그래서 자꾸 시도 때도 없이 시야가 일렁거리는 거 같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진단이 좀 필요하겠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