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아름다운 보상 (2)
나를 기꺼이 지켜주고.
내게 기꺼이 희생하고.
그렇게 내 곁을 지켜준 이들.
그들과의 감격적인 해후를 마쳤다.
마침내 평범한(?) 보상을 확인할 순간이 다가왔다.
딩동!
귓가를 울리는 알림음.
눈앞을 상큼하게 채우는 메시지.
보상을 확인하는 순간은 즐겁다. 또 해도 즐겁다. 절대로 질리지 않는다. 언제나 새로운 기분이 든다.
[마나하트 생성]
[당신의 심장에 마나하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당신은 초월적인 신화적 존재와 대면하는 충격을 겪었고, 그 결과로 즉사할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당신의 오장육부가 마나써클을 동원하여 심장 마사지를 시행하였고, 그 자극에 의하여 당신은 목숨을 건짐과 동시에 심장의 마나하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스킬명 : 마나하트]
[단계 : 마나 유저 Lv. 1]
[심장 내부에 고밀도의 마나 저장소를 생성합니다. 저장된 마나는 자유롭게 꺼내어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신체 능력 향상에 큰 도움을 주며, 레벨이 오를수록 마나의 저장량과 사용 효율이 증가합니다. 또한, 마나하트에 저장된 마나는 써클과 연계되어 더욱 증폭될 수 있습니다.]
[신체 능력 향상률 : 150%]
[다음 레벨업에 필요한 HP : 500]
[현재 보유 중인 HP : 2,900]
‘후아.’
열흘이나 정신을 잃었던 사이에 와르르 쌓여 있던 보상 무더기. 그 속에서 떠오른 첫 번째 보상은 마나하트 생성이었다. 보자마자 미쳤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내가 마나하트를 얻다니.’
실화 맞나.
만약, 예전에 누군가가 이런 일을 말해줬다면 거짓말 말라며 코웃음부터 쳤을 것이다. 그만큼 마나하트를 얻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설 마검황의 설정을 따르자면…… 보통 최소 5년은 걸린다고 했지.’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도 1년은 개고생을 해야 한다 하였다. 만약 자질이 없는 편이라면? 10년을 매달려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던가.
그만큼 마나하트는 아무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여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당장 죽지 않기 위해 기대수명을 늘리는 것만도 바쁘고 빡센데, 마나하트 연공에 매달리며 투자할 시간이나 여유는 없었으니까.
한데 그걸 이렇듯 공짜(?)로 얻게 되었다. 처음엔 얼떨떨하고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키이이이잉……!
두 갈래의 마나써클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슬며시 회전했다. 그러자 심장 어름에 뭉쳐 있던 마나하트가 반응했다. 저장하고 있던 소량의 마나를 방출했다. 방출된 마나가 써클로 흘러들어갔다. 증폭되었다. 전신으로 퍼졌다.
“…….”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마다 <비타 5,000>을 디테일하게 들이붓는 기분이란!
상큼했다. 짜릿했다. 머리칼이 쭈뼛 서며 모낭이 폴댄스를 흔들어 재꼈다.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내가 마나하트 유저가 되었구나. 생각지도 못한 행운과 기연에 왼쪽 오른쪽 콧구멍이 절로 흥겨움의 트월킹을 추며 벌렁거렸다.
‘그럼 다음 보상은?’
눈길을 바쁘게 움직였다.
딩동!
또다시 울리는 상큼한 알림음. 쑴펑쑴펑 보람차게 떠오르는 메시지.
두 번째 보상은 바로…….
[당신은 마나하트 획득 과정에서 심장에 특수한 자극을 수차례 받았습니다.]
[이 자극에 의하여 활성화된 심장의 화(火) 성질의 기운이 토(土)의 기운을 북돋아 생(生)하였습니다.]
[화생토(火生土)의 원리에 의하여, 토의 성질을 지닌 오장육부의 장기, 비장이 눈을 뜨고 있습니다.]
[당신의 비장이 깨어났습니다.]
‘허?’
눈이 번쩍 뜨였다. 얼마 만에 새로 눈을 뜨는 오장육부 뉴비 멤버인지. 기대감이 좌심실 우심실을 16비트로 두드리는 사이, 마침내 비장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비장 : 크아아! 내가 비장!]
[짱쎈 비장이 울부짖었습니다.]
[나머지 오장육부가 고개를 갸웃하며 쑥덕거립니다.]
[심장 : 비장이 누구?]
[허파 : 허어? 파하……ㅋ]
[대장 : 비장이라면 전에 들어본 적은 있지 말입니다.]
[간장 : 뭐하는 애야?]
[위장 : 어떤 놈임?]
[콩팥 : 으음, 여기 찾아보니까 관련 자료가 있는데? 모든 척추동물에게 있는 기관이고, 낡은 적혈구를 걸러주고, 헤모글로빈에 있는 철 성분을 재활용하고, 항체도 생성하고, 뭐 그러는 림프 기관? 그렇다는데?]
[심장 : 솔직히 처음 들어봄ㅋㅋㅋ]
[허파 : 허프흐흨ㅋㅋㅋㅋㅋ]
[대장 : 어디 달렸는지 진짜 모르겠지 말입니다ㅋㅋ]
[간장 : 나도ㅋㅋㅋㅋㅋ ㄹㅇ]
[위장 : 결론은 듣보란 거자너ㅋㅋㅋ]
[비장 : ……tlqkf ㅜㅜ]
[나머지 오장육부가 뭐 하는진 여전히 잘 모르겠는 비장을 어쨌건 환영해줍니다.]
[오장육부가 뉴비 탄생을 기뻐하며 1,0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3,900]
역시나.
HP를 후원해줄 오장육부는 많이 깨어날수록 좋다. 이로써 환자를 진단할 때 비장도 상담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정밀한 진단 범위가 늘어난 셈이다. 흐뭇함에 미소가 무럭무럭 피어날 무렵이었다.
숨 쉴 틈도 없이 연계 보상이 터졌다.
딩동!
[(경) 오장+육부 수집 퀘스트 달성! (축)]
‘허?’
펑펑펑!
눈앞에서 상큼하게 터지는 축하 폭죽. 그 사이로 처음 보는 내용의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당신은 비장을 일깨움으로써, 오장 수집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당신의 오장 + 육부 수집 현황]
[오장 (5/5) : 심장(☆), 간장(☆), 폐장(☆), 콩팥(☆), 비장(☆)]
[육부 (2/6) : 대장(☆), 위장(☆), 소장(X), 쓸개(X), 방광(X), 삼초(X)]
[오장 수집 보상으로 12,000 HP가 특별 지급되었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15,900]
“…….”
미쳤다.
HP 게이지가 터질 지경이다.
그런데 연계 보상이 더 있었다.
딩동!
[오행 순환 시스템이 오픈됩니다.]
‘어?’
오행 순환? 시스템?
저건 뭘까.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이, 추가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세상의 모든 사물에는 오행의 원리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신체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당신은 오늘, 오장 수집 퀘스트를 완료함으로써 신체에 깃든 오행의 장기를 모두 일깨우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당신의 신체에서 오행의 기운이 순환합니다.]
[각 장기별 오행의 위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심장 : 화(火) / 비장 : 토(土) / 폐장 : 금(金) / 콩팥 : 수(水) / 간장 : 목(木)]
[이로써 당신은 자연계에 깃들어 있는 오행의 정령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행의 영향을 받는 정령들이 당신에게 크나큰 호감을 갖습니다.]
‘정령?’
내가?
그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됐다고?
라키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장 실감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나중에 뭔가 쓸모가 있겠지 싶었다.
그 밖에도 보상은 더 있었다. GDP 포인트를 얻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거짓말 이용권도 한 장을 얻게 됐다.
“후아.”
이렇게 많은 보상을 한꺼번에 받는 건 처음이었다.
다 확인하고 나니 먹은 것도 없는데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하지만 마음 편히 뒹굴거리고만 있을 틈은 없었다.
“전하. 종종 허공을 그렇게 혼자 쳐다보시는 거 말입니다.”
생각에 잠길 틈도 없이 데미안 녀석의 말소리가 귓가를 콕콕 찔러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녀석이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응?”
“전부터 종종 그러시는 걸 보았습니다.”
“그……랬냐.”
티가 났던 건가.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냥 멍하니 있는 모습과는 또 다른 면이 있으셔서, 그냥 특이한 습관인가 싶었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걸 알겠습니다.”
“…….”
녀석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수호천사들과 소통하는 것이었군요. 맞습니까?”
“어.”
숨도 쉬지 않고 거짓말로 응수했다. 앞으로도 시스템창을 빤히 쳐다보는 순간들이 종종 있을 테니까. 이렇게 녀석이 알아서 오해를 해주면 차라리 땡큐다.
그렇게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거짓말을 한 라키엘은 능구렁이처럼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툴룬 상단장은?”
“여전히 소식이 없습니다.”
“흐음.”
라키엘은 침실 구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침실 한쪽에 놓인 테이블. 그곳에 자그마한 화분 수십 개가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긴뿌리 감초 양산(?)을 위한 싹 틔우기 실험. 그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싹을 틔운 화분은 하나도 없었다. 딱 한 개만 빼고 말이다.
“저거. 아무래도 그때 툴룬 상단장이 오애액…… 하고 물을 게워낸 그 화분이 맞는 거 같지?”
“예. 그런 듯합니다.”
이쪽이 가리킨 화분. 딱 거기에만 긴뿌리 감초 싹이 자라나 있었다.
저걸 처음 발견한 것은 아까 환상종들과 세르지오, 특근대, 근위대원들이 물러난 직후였다. 처음엔 헛것을 보았나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확실한 긴뿌리 감초 새싹이 맞았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싹이 안 트더니.’
좀비가 게워낸 물이 긴뿌리 감초 성장의 보약이었다니. 기도 차지 않았다. 어쨌건 그래서 곤란해졌다.
“하필이면 툴룬 상단장이 그날 이후로 행방불명이라. 쯧.”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좀비 툴룬. 그의 행방불명을 알게 된 것도 방금 전의 일이었다.
흑마법사의 침공일 이후로 툴룬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였다.
난리에 휩쓸려서 죽은 걸까.
혹은 시체 폭발을 일으킨 걸까.
하지만 시내에서 보고된 시체 폭발 사례는 없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스스로 잠적을 선택한 것일 터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이야기였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렇지. 아무리 이성과 지성을 되찾았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좀비 신세니까. 그런 모습으로 계속 지내야 하니까. 한데…….’
언제까지 숨어 지낼 수 있을까.
언제까지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특히, 외손녀에게 말이다.
‘…….’
상단 건물의 가장 으슥한 방에서 숨어 지낸다 한들,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들킬 것이다.
하인이나 하녀, 상단의 일꾼들, 가장 최악의 경우라면 외손녀와 직접 마주치게 되는 상황이 있겠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겠지.’
자신의 모습을 보고서 외손녀가 받을 충격. 툴룬의 입장에선 그게 가장 걱정이 됐을 터다.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 자체를 폭탄처럼 여기게도 됐을 것이고.
‘그래서 스스로 떠날 결심을 한 거야.’
때마침 흑마법사가 도시를 침공했다. 난리가 벌어졌다. 그 난리통이 그의 잠적에도 도움이 됐을 터다. 게다가 그런 정황을 설명해주는 간접적인 증거도 있었다.
“데미안. 한데 그 소문이 진짜일까?”
“어떤 소문 말씀이십니까.”
“성벽 위에서 언데드 군단에게 맞서서 싸웠다는 좀비 말이야. 조금 전 세르지오가 나가기 전에 알려준 소문.”
“예. 실은 며칠 전부터 그런 소문이 돌고는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도…….”
“툴룬이겠지?”
“예.”
소문이 사실이라면, 툴룬이 확실하다. 그렇게 싸우다가 죽었거나, 혹은 전투 후에 잠적을 선택했을 터.
“쯧. 그래선 곤란해. 기껏 긴뿌리 감초 양산의 비결을 찾아냈는데.”
툴룬이 필요하다.
그가 매일 물을 벌컥벌컥 원샷을 하고, 긴뿌리 감초밭에 오애액 웅장한(?) 구역질을 해줘야 한다.
그러면 농장에서 쑴펑쑴펑 자라난 긴뿌리 감초가 별궁 한의원에 배송되겠지. 별궁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은 더욱 건강해질 거고.
‘내 보너스 수명도 덩달아 빵빵해지는 거고!’
어떻게든 그런 여유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데미안 녀석의 내면에서 악성 뾰루지처럼 자라나게 될 마계왕의 각성을 저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
인생 진짜.
잠깐 비애감을 느낀 라키엘은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그 좀비 아저씨가 제 발로 돌아오게 만들어야지. 살려낸 값도 노동력으로 톡톡히 받아내고.”
“혹시 생각해두신 방법이 있는 겁니까?”
“물론.”
당연한 소리다.
“외손녀와 마주칠 일이 걱정돼서 숨었을 테니까, 외손녀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멍석 좀 깔아줄까 하는데.”
“……멍석이요?”
“언론 플레이를 통한 이미지 마사지랄까.”
라키엘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다음 날부터, 크라노스 시가지 곳곳에, ‘도시를 지키기 위해 숭고한 용기를 발휘한 영웅 좀비’에 대한 황태자 공식 피셜의 소문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물론 툴룬 상단장의 외손녀, 네일라도 그 소문을 들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남몰래 생각하였다.
그 영웅 좀비가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 되살아난 할아버지였으면 좋겠다고.
아마도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할아버지를 다시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