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254화 (254/468)

254화. 뱀파이어 변이증 (2)

‘뭐야. 이거 왜 이래?’

어이가 없다.

살다살다 이런 건 처음 본다.

라키엘은 마른침을 꿀떡 넘기며 안구에 힘을 빡 주었다. 경혈 스캐닝에 한층 집중하며 스캐닝 대상, 의사 발렌티노를 째릿 노려보았다.

키이이잉-!

다시금 떠오르는 관측 결과.

‘이거…… 정상인가?’

새삼스럽게 말하는 거지만, 경혈 스캐닝은 대상의 내부에 존재하는 경혈의 흐름을 낱낱이 관측할 수 있는 기술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관찰 대상으로 지정된 의사 발렌티노의 신체 내부 경혈의 흐름이 모조리 보였다.

그래서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거, 암만 봐도 존재할 수가 없는 흐름인데?’

온통 헝클어져 있었다.

마치, 파카 안주머니에 쑤셔 박아 놓고선 6개월쯤 까먹었다가 뒤늦게 발견한 유선 이어폰줄의 꼬임을 보는 것 같았다. 그만큼 난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게다가 그렇듯 꼬인 경혈 흐름의 범위도 엄청났다. 그냥 아예 전신의 경혈 흐름이 죄다 꼬여 있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만큼.

“……이봐? 괜찮아?”

원래 특이체질이었던 걸까.

아니면 뭔가 이상이 생긴 걸까.

발렌티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발렌티노가 힘없이 웃으며 예를 표했다.

“아, 전하를 뵙습니다…….”

“전하는 무슨. 한의원 진료시간엔 원장님이지.”

“아, 예…….”

“그런데 괜찮나?”

“……예에?”

“어디 아프지 않느냐고.”

“아, 저는…… 그냥 오늘 좀…… 멍합니다.”

“멍해?”

“예…….”

“어제 기껏 휴가 내고 밖에 다녀오더니, 그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 약혼녀 만날 거랬잖아.”

“아, 예. 만났습니다…….”

“혹시 차였어?”

“그건…… 아닙니다…….”

“그럼 왜 그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발렌티노는 멍하니 대답했다. 솔직한 사실이었다. 정말로 모르겠다. 어째서 자신이 이토록 몽롱한 것인지.

아침부터 이랬다. 눈을 뜨던 순간부터 내내 이러했다. 마치 먹지 말아야 할 독한 약이나 술을 잔뜩 들이켠 기분이었다. 숙취? 아닐 텐데. 난 어제 술 같은 건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진짜로 모르겠다. 어젯밤엔 그저 약혼녀를 만나고, 함께 걷고, 집에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홀로 산책을 조금 하다가…… 하다가…… 하다가…….

‘그 후엔…… 어떻게 됐지……?’

흐릿했다.

아무리 떠올리려 애를 써도 도통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 뒤의 모든 일이 짙은 안개에 휩싸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생애를 통틀어 다시는 없을 듯한 지독한 몽롱함이 동반된, 그런 아침.

그런 이쪽을 황태자도 이상하게 여긴 걸까.

“잠깐 진맥 좀. 손 줘봐.”

“예…… 전하…….”

시키는 대로 했다.

황태자가 손목을 짚어왔다. 잠깐 그러고 있더니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쓰읍. 진짜 이해가 안 되네.”

라키엘은 난감함을 느꼈다.

딱 봐도 이상한 발렌티노의 안색과 분위기. 더욱 이상하게 보이는 경혈 스캐닝의 결과. 하여 진맥 스킬을 썼다. 오장육부 상담까지 했다.

그런데 결과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부분 정상이라는 답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딩동!

[종합소견 : 대부분의 항목에서 큰 질환이 보이지 않는 신체입니다. 젊고, 영양상태가 우수하며, 피로의 누적도 관찰되지 않습니다. 다만 경미한 수준의 빈혈 증상과 부교감신경의 활성화가 감지됩니다. 가급적 편안한 휴식을 권장합니다.]

“…….”

뭐, 약간의 빈혈이나 부교감신경의 활성화 정도야 누구에게나 있을 순 있겠다. 그 외에 정상이라는 말도 알겠다.

그래서 더욱 이상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눈으로 당장 보이는 발렌티노의 상태는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진맥 스킬은 ‘정상!’을 외치고 있으니 혼동이 왔다. 지금까지 진맥 스킬이 거짓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 너희가 보기엔 어땠냐?’

라키엘은 자신의 오장육부에게 물었다. 마침 발렌티노의 신체와 상담을 마치고 온 오장육부가 곧바로 응답해 왔다.

한데 그 응답의 내용도 의미심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딩동!

[당신의 오장육부가 발렌티노의 정상적인 신체 상태에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심장 : 하…… 괜찮은데…… 분명 괜찮은 게 맞는데…… 그런데 좀……?]

[허파 : 허어…… 파하…… ㅎ]

[대장 : 분명 이거 뭔가가 있지 말입니다?]

[간장 :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 뭔가가 보이지가 않음.]

[위장 : 우리 몸뚱이의 여자친구처럼?]

[콩팥 : 엌ㅋㅋㅋㅋㅋㅋㅋ x박ㅋㅋㅋㅋㅋㅋㅋㅋ]

[비장 : 깜빡이 켜고 들어오라고ㅋㅋ 아ㅋㅋㅋㅋㅋ]

[오장육부 리포트 : 뭔가 찜찜한데 그게 뭔진 모르겠음. 쏴리-(찡긋)]

“…….”

야 이 영양소만 축내는 x끼들아.

라키엘은 때아닌 디스에 눈물을 삼키며 리포트를 접었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눈으로 발렌티노를 쳐다보았다.

“저기…… 제가…… 좀…… 이상합니까, 전하……?”

“응. 충분히.”

“아…… 제가 생각해도…….”

“어떤데?”

“모르겠습니다…….”

“…….”

쯧.

안 되겠다.

“오늘은 우선 쉬자. 그 전에 탕약부터 좀 타가고.”

“탕약…… 말입니까?”

“어. 내가 간호사실에 처방전 보내놓을게. 점심쯤엔 탕약이 달여져 있을 테니까 받아가서 마셔. 그 외에 다른 짓은 하지 말고. 숙소에서 푹 자라, 좀.”

“아, 그…….”

“또 뭐.”

“감사……합니다, 전하…….”

“…….”

얘 원래 이런 놈 아니었는데.

전엔 엄청 빠릿빠릿했는데. 오히려 한때는 자기 똑똑한 맛에 취해서 환자를 싸가지 없이 대하기도 했던 놈인데. 그 후에 반성하는 마음으로 더 성실해졌던 친군데.

그런데 하룻밤 새에 너무나 달라져 버렸다. 그냥 몸살? 빈혈? 모르겠다. 저 멍한 눈빛과 표정도. 여전히 경혈 스캐닝으로 엿보이는 엉망진창인 비정상적 기혈의 흐름도.

‘일단 지켜봐야겠어.’

비틀비틀 돌아서서 멀어지는 발렌티노의 뒷모습을 보며 라키엘은 내심 혀를 찼다. 난감했다. 내심 새로 개설할 치과를 저 친구에게 맡기려 했는데 말이다.

‘별일이 아니면 좋겠는데.’

원장실로 올라온 라키엘은 빈혈과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는 조합의 탕약 처방전을 슥슥 써서 간호사실로 보냈다. 그리고 내심 기원했다. 발렌티노의 저 기혈 흐름이 그저 특이체질에 의한 일시적인 증상이기를.

다음 날이 밝았다.

그리고 라키엘은 깨달았다.

‘이거…… 의외로 흔한 체질이었던 건가. 그런 거야?’

그는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눈길을 들었다. 원장실 책상 건너편, 자신과 마주앉은 아저씨 환자가 보였다. 뭔가 멍한 눈빛과 표정. 어쩐지 축 늘어진 어깨. 어눌한 말투. 거기에 엉망진창인 기혈 흐름까지.

어제 발렌티노에게서 보았던 모습과 똑같았다.

덕분에 잠깐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그런 티를 내지는 않았다. 환자 앞에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절대적으로 참아내야 하니까. 환자를 더 불안하게 만들어 버리면 큰일이 나니까.

라키엘은 심호흡으로 흔들리려던 동공을 꽉 붙들고는 환자에게 물었다.

“자, 그럼 환자분? 어디가 제일 아프세요?”

“모르겠……습니다…….”

“음, 그럼, 최근에 큰 외상이나 충격을 받은 적이 있나요?”

“그것도 잘……. 죄송합니다…….”

어째 대답하는 모양새마저 어제 발렌티노가 보였던 것과 거의 똑같다. 심지어 진맥 결과와 오장육부 리포트마저도 흡사했다.

이거, 우연일까.

“…….”

아닌 것 같다.

그런 쌔한 생각은 다음 환자를 받으며 확신으로 바뀌었다.

“저기…… 제가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너무 멍해져서…….”

“…….”

또다.

연달아 똑같은 증상.

똑같은 어눌함과 멍함.

‘이거 뭔가 있는데?’

직감하자마자 라키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장실을 나섰다.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을 훑어보았다. 굳이 일부러 세세하게 훑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원장실 앞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의 숫자는 약 15명. 그중에 무려 11명이 멍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친.”

심상치 않은 사태를 깨달은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주군이시여. 일이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가.”

“예, 주군.”

“그래. 수고하였다.”

반쯤 열린 창문.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의 햇볕.

그 아래의 흑마법사, 아난샤는 쥐고 있던 주전자를 기울였다. 주전자에 담긴 맑은 물이 쪼르륵 흘러나와 화분으로 떨어졌다. 갓 싹을 튼 새싹이 듬뿍 젖었다.

아난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희미하게 맺혔다.

“배가 부르더냐.”

새싹을 향해 건넨 질문일까. 무릎 꿇은 권속을 향해 내린 하문일까. 다만 그의 권속은 아주 오랜 시간을 충성한 자였다. 덕분에 주군의 뜻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아직 부족합니다, 주군.”

“그래. 마땅히 그래야겠지. 그래야 나의 권속답지.”

“……예. 제법 오랜만의 활동이니까요.”

“벌써 그렇게 됐나.”

“예, 주군.”

“정확히 얼마나 됐지?”

“127년입니다.”

“미안하군. 내 뜻 때문에 그대들이 고초를 겪어서.”

“아닙니다, 주군. 뜻깊은 기다림이었습니다.”

“……그래. 기나긴 기다림 끝의 한 모금이 맛있는 법이지. 물도. 피도. 모두.”

아난샤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의 살짝 벌어진 붉은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엇비쳤다.

“듣자하니 그대들에게 물린 자들 중의 다수가 황태자의 별궁을 찾아가고 있다 하던데. 맞나?”

“예. 정확하십니다, 주군.”

“그래. 예상대로군.”

“하온데 주군? 제가 감히 한 가지를 염려해도 되겠습니까?”

“염려?”

“예.”

“말해보도록.”

“감사합니다, 주군. 감히 여쭙자면, 변이증을 지니게 된 자들이 이토록 일찍 황태자를 찾아가면 자칫…… 주군의 계획이 틀어질까 염려가 됩니다.”

“혹여 변이증을 지닌 자들 중에 황태자에게 성공적으로 치료받는 자가 생길 것을 두려워함인가?”

“……예.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다. 그대의 염려가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니.”

아난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충성스러운 권속의 염려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는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자면, 황태자는 실로 뛰어난 의술을 지녔기에 고치지 못하는 병이 없다고 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연…… 우리 위대한 혈족이 선사하는 변이증의 시험을 막아낼 수 있을까? 아니.”

그렇다.

변이증은 단순한 병이 아니니까. 자신의 혈족이 선사하는 밤의 축복이기에, 성직자의 축복과 신성력조차 통하지 않으니까.

“축복을 이겨내지 못한 자들은 생명을 잃을 것이며, 이겨낸 자들은 나의 권속이 될 자격을 얻겠지. 그런 것이다, 변이증이라는 시험은. 그러니 결코-”

절대적으로.

어떠한 이변조차 없이.

“황태자는 변이증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결국에는 황태자도 변이증을 지닌 숙주에게 물리는 신세가 될 것이며, 끝내 우리 일족이 내리는 시험 앞에 무릎을 꿇을 터.”

아난샤의 목소리에 확신이 깃들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한국인의 사실상의 주식이자, 소울 식자재이며, 대 뱀파이어용 궁극의 병기인 마늘이라는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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