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뱀파이어 변이증 (3)
“음? 뭐지? 오늘 점심 왜 이래?”
“무슨…… 문제가 있으십니까, 전하?”
곁에 시립해 있다가 놀란 기색으로 물어오는 시종장. 라키엘은 그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조금 아쉽다는 듯이 툭, 말했다.
“이 수프 말이야. 마늘이 좀 적게 들어간 것 같은데?”
“그, 그렇습니까?”
“어.”
진심이다.
“오늘 유독 좀 밍밍해. 왜 이렇지? 이상하네.”
라키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껏 이곳 세상에 잘 적응해온 그였지만, 유독 적응이 느린 분야(?)가 있었다. 바로 음식이었다.
‘하여간 이 동네 음식들은 죄다 밍밍해서. 원 참.’
김치찌개, 된장, 순댓국, 불닭, 매운탕과 시뻘건 육개장까지. 전형적인 한국적 입맛을 지닌 그였다. 덕분에 아직까지도 종종 맵고 자극적인 찌개를 원샷하는 꿈을 간혹 꾸기도 했다.
물론 이곳에서도 고추를 구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고추는 한국의 것과 어딘가 달랐다. 고추장은 언감생심 바랄 수도 없었다. 고춧가루? 있긴 했는데, 뭔가 영 다르고 슴슴했다.
그래서 마늘이 소중했다.
그나마 한국에서 먹던 맛과 비슷했다. 어떤 요리이건 마늘을 무식하게 때려부으면 대강 참고 먹을 수준이 됐다. 그래서였다. 그는 항상 별궁의 요리장에게 특별히 주문하곤 했다. 마늘 넉넉히!
“음, 오늘은 요리장이 잠깐 주문사항을 까먹었나 보군.”
아마도 그런 거겠지.
바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뭐.
라키엘은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며 스푼을 들었다. 한데 이쪽의 말을 들은 시종장의 반응은…….
“설마 그럴 리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전하. 제가 확인해보겠습니다.”
“어?”
뭐라고?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시종장은 이미 붙잡을 새도 없이 복도로 우다다 달려나가고 있었다.
“…….”
아뿔싸.
내가 실수를 했구나.
과연 곧, 그 실수의 결과가 드러났다.
“전하! 저를 죽여 주시옵소서!”
“…….”
시종장에게 불려온 별궁 요리장이 울먹이며 들어왔다. 그걸 본 순간 라키엘은 아차 싶은 기분을 느꼈다. 엄청난 난감함과 미안함도 물론이었다.
‘후아. 이거 참. 그냥 오늘 마늘이 좀 적게 들어간 거 같다는 말만 했을 뿐인데…….’
설마하니 요리장이 이렇게 직접 달려와서 울먹이기까지 할 줄이야.
문득, 생각 없이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 생각이 났다. 지금이 딱 그런 꼴이었다. 군대에선 사단장이 재채기만 해도 사단 전체가 감기에 걸린다고 했던가. 혹은 기업 회장님이 강림하시면 제일 죽어나가는 건 제일 밑바닥 사원이라고 했던가.
한데 지금은 내가 그런 짓을 저질러 버렸다. 무의식중에 벌인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 깔끔하게 인정하자. 사과하고 수습하자.
라키엘은 솔직하게 말했다.
“미안해.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항상 애쓰면서 신경 써주는 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아닙니다, 전하. 제가 전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탓입니다. 오늘 같은 날은 제가 전하의 기분과 취향을 미리 헤아려 마늘 사용량을 두 배로 늘렸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던 저의 잘못입니다, 전하.”
“으음?”
라키엘은 멈칫했다.
저게 무슨 소리일까.
“마늘 사용량을 두 배로 올리지 못한 게 잘못이라고?”
“예, 전하.”
“그럼, 오늘 점심 요리에 평소랑 같은 양의 마늘을 넣었다는 건가?”
“그렇게 해서 실로 송구합니다, 전하.”
“…….”
요리장이 더욱 울먹이며 고개를 숙였다. 기색을 보자니 절대로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듯했다. 평소와 같은 마늘 투입량. 그런데 그걸 밍밍하게 느낀 자신.
그럼 결론은 하나다.
내가 피곤해서 맛에 둔감해졌다는 거.
“……허어.”
아까보다 더 미안해졌다. 한편으로는 다음부턴 요리가 조금 마음에 안 들어도 절대 티를 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라키엘은 스푼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의 바닥에 무릎을 꿇을 기세인 요리장에게 다가가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여 주었다.
“요리장? 그대의 말을 들어보니 오늘 일은 내 착오였던 것 같군. 그대에겐 일말의 잘못도 없어. 오히려 내가 미안해.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대를 타박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는데.”
“저, 전하?”
“그러니 그대는 그대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도록. 오늘날 내가 이전보다 건강해진 데에는 요리장의 숨은 헌신과 노력의 공로 또한 있음이니 말이야.”
“전하…….”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 이만 물러가도록. 그리고 이번엔 특별히, 그대를 오해했던 내 잘못을 반성하고 속죄하는 의미로 상을 내리도록 하지. 요리장? 그대의 외동아들이 전부터 미노타우로스를 구경하고 싶어했다지?”
“아? 예, 예! 그렇습니다, 전하.”
“역시. 시종들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맞군. 그럼 내일은 그대의 아들을 별궁으로 데리고 오도록. 아이가 미노타우로스와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말이야.”
“그게…… 정말이십니까, 전하?”
“물론. 그럼 내가 허언을 할까. 우루스에겐 내가 따로 말해두도록 하지.”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요리장의 울먹이던 얼굴이 다소 펴졌다. 그걸 보자니 그럭저럭 마음이 놓였다. 다행이다. 어찌어찌 수습에는 성공했어.
“후우.”
요리장이 물러나고 비로소 소란(?)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한편으로 깨달아야 했다. 잠깐의 소란 덕분에 소중한 점심시간이 절반쯤 날아갔다는 사실을.
“…….”
인생 진짜.
그때부터였다. 라키엘은 살짝 식은 점심을 와구와구 마시듯이 전투적으로 먹었다.
미적거릴 시간은 없었다. 당장 오후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한무더기니까. 게다가 지금은 원인을 모를 증세로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로만 신도림역 플랫폼을 꽉꽉 채울 수도 있을 듯하니까.
“…….”
그나저나 지금 몰려드는 환자들은 대체 뭘까. 어쩌다가 다들 하나같이 멍한 상태가 되어 버린 걸까. 그럼에도 어째서 진맥 스킬에는 아무런 병명이 잡히지 않는 걸까.
‘정작 경혈 스캐닝을 해보면 기혈 흐름은 엉망진창이고. 대체 뭐지, 진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쌔한 느낌이 더해졌다.
그래서였다.
라키엘은 한층 바쁘게 스푼과 포크를 놀렸다.
‘어휴, 바쁘다 바빠.’
그는 식사만 간신히 마치고 곧바로 가운을 입어야 했다. 얼마나 시간이 빠듯했느냐면, 양치질을 깜빡했을 정도였다.
“다음 환자 들어오세요.”
대망의(?) 오후 첫 진료. 호명을 받은 환자가 비척비척 진료실로 들어왔다. 익숙한 사람, 별궁 한의원의 의사인 발렌티노였다.
“뭐야. 아직도 상태가 안 좋아?”
“예에에……?”
“…….”
어제보다 더 흐리멍덩해진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발렌티노. 이제는 아예 눈에 초점조차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걸 보는 라키엘의 표정이 굳었다.
‘이 친구, 너무 똑똑해서 오히려 제 잘난 맛으로 지낼 정도였는데. 대체 어쩌다가…….’
확실히 보통 질환이 아니다.
그냥 몸살이나 빈혈?
절대로 아니다.
거의 확신한 라키엘은 다시금 발렌티노의 손목을 짚고 진맥 스킬을 사용했다. 반드시 정확한 진단을 해내리라 다짐하며 집중했다. 눈을 감았다.
그동안 발렌티노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
목이 말랐다. 멍하고 흐릿한 의식 속에서 점점 또렷해지는 갈증. 목이 마르다. 뭔가를 마시고 싶다. 시원한 물? 아니. 그런 거 말고. 훨씬 진하고 생명에 가까운 것. 이를테면…….
‘피.’
붉고 진한 액체.
생명의 근원을 이루는 혈액.
그걸 마셔야지만 지금의 갈증이 가라앉을 것 같다. 정말이다. 당장 목구멍에 불이 나는 것만 같다. 메마른 식도가 갈라지며 전신이 뭉개질 것만 같다. 그러니까 당장, 지금 당장, 마셔야겠다.
누구의 것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스윽.
발렌티노는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상체를 앞으로 살짝 숙였다. 충동적인 본능이 가리키는 사냥감. 눈앞의 황태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마침 황태자는 진맥에 집중을 하느라 눈을 감고 있었다. 이쪽의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기회다. 지금뿐이다.
스흡.
입을 살짝 벌렸다. 황태자의 무방비하게 드러난 목덜미. 새하얀 목덜미. 깨물어야지. 솟구치는 피를 벌컥벌컥. 한 방울의 남김도 없이. 마셔 버리겠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고조되는 흥분감에 발렌티노는 입을 벌린 채 숨을 크게 들이켰다. 한 모금의 공기가 코와 입으로 훅 들어왔다. 때마침 황태자가 내뱉은 날숨 일부도 섞여서 훅 들어왔다. 황태자가 바빠서 미처 양치질로 날려보내지 못한, 마늘 듬뿍 수프 냄새도 훅 들어왔다.
“……!”
멸망의 냄새!
콰당탕!
발렌티노는 본능적으로 기겁하며 뒤로 확 물러났다. 아예 의자와 함께 와당탕 넘어졌다. 덕분에 진맥에 집중하던 라키엘은 깜짝 놀랐다.
“엇, 뭐야? 왜 그래?”
“히, 히이이이익!”
“발렌티노?”
“흐아아악! 흐아악! 오지 마! 오지 마아!”
발렌티노가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뭔가 못 볼 것이라도 본 듯이 공포감에 휩싸여 손을 휘저어댔다.
라키엘의 표정이 굳었다.
동시에 귓가에 오장육부의 보고가 올라왔다.
딩동!
[당신의 허파가 발렌티노의 신체에서 특이한 반응을 포착하였습니다.]
[허파 : 쟤 허파 방금…… 마늘 냄새 맡더니 자지러졌어…… 저런 애 처음 봤음. 퍼헣……ㅋㅋ]
“…….”
간단한 보고였다. 그러나 그 내용이 전해주는 의미심장함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평소의 똑똑함은 온데간데없이 멍해진 행동. 빈혈 증상. 마늘 냄새를 맡더니 공포감에 휩싸여 자지러짐. 그리고 이제야 보이는…….
‘저 목덜미의 상처.’
라키엘은 발렌티노의 목덜미를 주시했다. 때마침 발렌티노가 몸부림을 치는 통에 옷차림이 크게 흐트러졌다. 덕분에 셔츠 목깃이 헝클어졌다. 내내 목깃에 가려져 있던 목덜미 아래쪽이 살짝 드러났다.
그곳에 특이한 상처가 나 있었다. 마치 송곳 두 개로 나란히 찌른 듯한 상처. 그런데 그 상처의 간격이 마치…….
‘고전 공포 영화에서 보이던 자국 같은데? 흡혈귀 송곳니 자국.’
딱 그랬다.
보자마자 느낌이 왔다.
“아니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간호사 아니스를 불러 명하였다.
“지금 대기실에 앉아 있는 똑같은 증상의 환자들, 목덜미를 검사해봐.”
“목덜미를요?”
“응. 전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여기 발렌티노의 목이 보이지? 이것과 똑같은 상처가 있는지만 보면 돼.”
“알겠습니다, 전하.”
뭔가 심상치가 않다는 걸 알아챈 걸까. 아니스가 곧바로 복도로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녀의 보고는 과연 예상대로였다.
“전하? 전하께서 말씀하신 상처가 정말로 있습니다.”
“그래? 대기 중인 환자 모두가?”
“네. 멍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전부 다요.”
“…….”
비로소 알겠다.
감이 왔다.
‘맞네. 물린 거네. 뱀파이어한테.’
그럼 발렌티노와 환자들이 전부 뱀파이어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까. 아무래도 그런 듯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잘 들어, 아니스. 황태자이자 별궁 한의원의 원장으로서 긴급령을 내리겠다.”
“네? 긴급령이라시면…….”
“입원 병동 두 개를 싹 비워. 1병동에는 멍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격리시키고, 2병동에는 그 환자들의 가족을 격리시켜. 그리고 1, 2병동의 환자식 메뉴를 통일한다.”
“어떤 메뉴로 말이죠?”
“생마늘과 쑥.”
“……네?”
아니스가 흠칫했다.
라키엘이 확신을 담아 명했다.
“우리 수간호사가 알지는 모르겠지만, 자고로 사람 아닌 존재를 사람으로 만드는 데에는 마늘과 쑥만큼 직빵인 식재료가 없었거든.”
확실하다.
역사와 신화가 증명하는 전통(?)의 요법이니까.
그렇게, 별궁 한의원에서 뱀파이어 변이증을 치료하기 위한, 전격적인 ‘웅녀 테라피’가 시행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