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259화 (259/468)

259화. 흡입한다 부하아아앙 (2)

딩동!

[아스라한 심법을 발동합니다.]

[써클 회전수 최대치!]

[흡입 모드, On!]

눈앞에 야물딱지게 떠오르는 메시지. 갓 건져 올린 생선처럼 펄떡펄떡 맥동하는 마나써클. 써클의 회전력이 막강한 흡인력을 발휘했다. 모든 걸 다 빨아들일 기세였다. 이 정도면 손바닥으로 진공청소기 코스프레 각이 날카롭게 설 것 같다.

‘좋아. 이 정도면 됐어.’

흡인력을 유지하며 손을 뻗었다.

목표는 환자 발렌티노의 등.

정확히는 등에 갖다 댄 성물 부항컵을 향해서였다.

촵.

손바닥이 성물 부항컵 둥근 면에 물 묻힌 깻잎처럼 착 달라붙었다. 대짜 사이즈 밥공기 아랫면을 포근하게 감싸 쥔 것 같은 그립감(?)이 일품이었다.

그 상태에서 흡인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키이이잉-!

본격적으로 발동되는 아스라한 심법, 흡입 모드. 목표 대상은 발렌티노의 등짝과 성물 부항컵의 움푹한 안쪽 면 사이에 있을 공기였다. 즉, 공기를 빨아내었다.

쏴아압!

약간의 공기가 손바닥으로 끌려왔다. 물론 손바닥과 공기층 사이에는 성물이 있었기에, 공기 분자 자체가 성물을 통과해서 손바닥으로 들어오지는 못했다. 대신 공기 대부분이 성물 안쪽 면의 움푹한 부분으로 확 몰렸다.

마치 종이를 사이에 두고 자석에 이끌린 클립처럼.

그거면 충분했다.

부항컵 내부에서 상당한 기압차가 발생했다. 대부분의 공기가 움푹한 쪽으로 몰려오며, 발렌티노의 등이 있는 넓적한 쪽의 기압이 뚝 떨어졌다.

성물 부항컵이 욕실 벽면 타일에 붙여두는 문어빨판처럼 발렌티노의 등에 쫙 달라붙었다. 낮은 기압으로 피부를 쭈아압 잡아당겼다.

그 힘에 의해 피부 아래의 모세혈관과 세포 조직이 미세하게 파열되었다. 혈액과 림프가 조직에서 새어나왔다. 음압이 당기는 방향을 향해서. 피부 바깥을 향해. 자유를 찾아. 힘차게. 무럭무럭. 쑴펑쑴펑.

왈칵!

마침 라키엘이 하얀 가시로 피부를 콱콱 찔러둔 터였다. 그렇게 미리 개통(?)해둔 구멍들이 림프액과 혈액이 손쉽게 나올 수 있는 하이패스 통로가 되었다.

덕분에 제법 많은 혈액이 피부 밖으로 흘러나왔다. 성물 부항컵 안쪽에 고였다. 정화되었다. 격렬하게.

……치이이이익!

삽시간에 진료실을 가득 채우는 고등어 굽는 냄새!

“이, 이건…….”

그 과정을 지켜보던 대주교, 베르토나는 입을 떡 벌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황태자의 교묘한 혀놀림에 함락되어 끝내 성물을 지키지(?) 못한 그였다. 아마 신께서도 사람을 긍휼히 여기기 위한 성물의 훼손에는 찬성하시리라 여긴 까닭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못내 불안하였다. 과연 황태자가 두 쪽으로 자른 성물을 어떻게 활용하여 환자를 치료할 것인가. 궁금하고, 걱정이 되었다. 하여 초조한 심정으로 황태자의 하는 양을 지켜보았던 것인데…….

‘마나 심법으로 일으킨 압력을 통해서 환자의 몸에서 오염된 피를 뽑아냈구나. 그걸 잘라낸 성물 안쪽 면에 가두어서 정화하는 것이었어.’

보자마자 원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덕분에 무릎을 탁 쳤다.

‘세상에. 신이시여. 이런 식으로 뱀파이어 변이증에 맞서 싸울 수 있을 줄이야.’

절로 찬탄이 나왔다. 소문에 듣기로는 드래곤마저도 치료를 받고자 황태자를 찾아왔다더니, 과연 그 명성이 헛되지 않은 것이었구나 싶었다.

그때부터였다. 대주교는 걱정하던 마음을 뇌주름 다리미로 다리듯 훌훌 날려 보냈다. 대신 한편으로는 감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팝콘을 와작와작 씹는 심정으로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라키엘의 치료를 지켜보았다.

‘흐읍!’

라키엘의 이마에 땀이 삐질삐질 솟구쳤다. 그의 입꼬리에 미소가 슬며시 맺혔다.

‘좋아. 1단계는 성공.’

생각보다 괜찮다.

흡입력으로 뽑아낸 오염된 피가 제법 됐다. 게다가 성물의 위력 또한 생각 이상으로 절륜했다. 덕분에 뽑아낸 분량만큼의 혈액이 한 큐에 정화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다시 몸으로 투입하고 반대편, 배 쪽으로!’

키이이이잉-!

마나써클의 회전수를 조절했다.

오른손의 흡입력을 풀었다.

반대로 왼손에 흡입력을 넣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환자 발렌티노의 명치에 갖다 댄 성물 부항컵에서 아까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명치 방향으로 혈액이 쑴펑쑴펑 뽑혔다. 반면, 등으로 뽑혀서 정화가 완료된 혈액은 다시 피부 조직 속으로 들어갔다.

한쪽에서는 오염된 피를 뽑아서 정화하고. 반대쪽에서는 정화를 마친 피를 몸으로 돌려주고. 이쪽에선 뽑아내고. 저쪽으론 주입하고. 그렇게 전신의 혈액이 모두 정화될 때까지 반복 수행!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부항요법을 빙자한 인간 혈액 투석기의 역할!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는 잔뜩 긴장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딩동!

[당신의 오장육부가 부항요법의 성공을 기원하며 응원봉을 휘두릅니다.]

[심장 : 흡입한다! 부하아아아아앙-!]

[허파 : 흡입…… 파하아…….]

[대장 : 어? 형님들? 방금 허파 형님 연기 뿜은 거 같은데 말입니다?]

[간장 : 설마 흡연? 미친 거 아님?]

[위장 : 이거 전연령이라고!]

[콩팥 : 잠깐? 흡연이 아니다! 다들 자세히 봐!]

[비장 : 폐활량도 후달리는데…… 너무 열심히 흡입 구호 외치느라고…… 허파꽈리 모터가 과열됐…….]

[허파 : ……푸쉬쉬…….]

[오장육부가 하느님이랑 인생 다시보기 시청각이 날카롭게 뜬 허파를 애도합니다.]

‘……그만해, 미친놈들아.’

한숨이 푸욱.

그래도 덕분에 긴장은 좀 풀렸다. 계속해서 부항 정화 시술을 이어갔다. 그 후로도 얼마나 진땀을 뚝뚝 흘렸을까. 옆에서 지켜보던 대주교가 몇 번이나 주먹을 쥐었다가 폈을까. 마침내 환자 발렌티노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엇?”

시술을 잘 받던 발렌티노가 흠칫!

놀라더니 이쪽을 돌아보았다. 이내 더욱 놀라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어왔다.

“저, 전하?”

“…….”

“지금 뭐 하시는 겁니ㄲ…… 엇? 이건 뭡니까?”

발렌티노는 크게 당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잠깐 멍하게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상의를 홀라당 벗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황태자가 괴상한 밥그릇 같은 물건 두 개를 잡고서 자신의 등과 명치에 갖다 대고 있었다. 한데 그쪽 부위들이 제법 욱신거렸다. 마치 수십 번쯤 꼬집기를 당한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는 깜짝 놀랐음에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황태자의 표정 때문이었다. 진지했다. 이마며 콧등이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낯설지는 않은 황태자의 기색. 이건 바로…….

‘크게 신경이 쓰이는 환자를 치료할 때 가끔 보이시던 모습인데. 그런데…….’

지금 자신에게 뭔가를 하며 저런 표정을 보이고 있다.

어째서?

설마 치료를?

‘내가……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고?’

그는 당혹감을 억누르며 기억을 더듬었다. 짙은 안개에 휩싸인 듯이 멍하던 상태에서 벗어나니, 파묻혀 있던 기억이 조금씩 살아났다.

연인을 바래다주고 혼자 돌아오던 골목. 그곳에서 마주쳤던 괴한. 송곳니. 목덜미. 피. 그리고…….

“허억.”

죄다 떠올랐다.

그는 경악에 잠긴 눈길로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라키엘이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이제 사람으로 돌아왔구만?”

그 순간이었다.

딩동!

[당신은 성물의 과감한 활용과 부항 요법의 응용으로 환자 : 발렌티노의 뱀파이어 변이증을 성공적으로 진료하였습니다. 그는 심각한 변이성 질환에서 벗어났으며, 적절한 안정을 취할 시 별다른 후유증 없이 완치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료비 청구 (Lv.2) 스킬이 발동됩니다.]

온세상을 울리는 맑고 고운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동시에 라키엘은 깨달을 수 있었다.

됐다고. 이제는 보너스 수명과 보상을 팍팍 퍼받을 때가 왔노라고. 나머지 변이증 환자들의 오염된 피를 쭉쭉 뽑아서 정화하는 만큼 보상 또한 스택 쌓이듯이 팍팍 늘어날 거라고.

……쯔읍! 쯔즙!

“커……억…….”

피가 흘렀다. 목덜미를 타고 내려가며 검붉은 흔적을 남겼다. 희생자가 두 팔을 버둥거렸다. 저항의 뜻은 담았으되, 목적을 이루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몸짓.

그걸 무시하며, 뱀파이어 블라도는 고개를 들었다.

“후우.”

그는 희생자의 목덜미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자신의 송곳니가 뚫어낸 구멍 두 개가 보였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핏줄기도 보였다. 탐스러웠다. 당장에라도 다시 송곳니를 박고서 저 혈액을 모조리 빨아먹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여기서 더 혈액을 탐한다면, 이놈이 죽을 테니까. 변이증을 앓지도 못할 테니까. 그건…… 주군이 허락한 바가 아니니까.

‘쯧.’

참자.

블라도는 가까스로 자제력을 발휘하며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달랬다. 어차피 밤은 길고 사냥감은 많다. 더 많은 피를 탐하고 싶다면, 더 많은 사냥감을 잡으면 된다.

‘이곳의 사냥감들은 경계심이 흐릿하니까. 크흣.’

사실이었다.

황도 마젠타.

거대한 제국의 중심이자, 인간 세상에서 가장 성대한 도시. 24시간 불빛이 꺼지지 않는 지상의 태양. 그런 덕일까. 이곳엔 한밤이 깊도록 행인이 많았다. 치안이 좋은 까닭인지 경계심도 별로 없었다.

‘내 평생 이렇게 사냥이 쉬웠던 적이 있었던가.’

아니, 없었다.

30년 전, 주군의 손에 의해 뱀파이어로 거듭난 뒤로 이렇게 편안한 사냥은 처음이었다. 진즉 황도에 와볼 것을, 그러지 못하였음이 후회가 될 정도였다.

‘그럼 다음은…… 어디 보자.’

희생자를 골목 구석에 버려둔 블라도는 다음 사냥감을 물색했다. 그의 사냥감을 선정하는 기준은 하나였다.

‘기왕이면 덩치가 크면 좋겠는데.’

그래야 혈액량이 많다. 죽지 않을 만큼 먹으면서도 만족스럽게 배를 불릴 수 있다. 거기에 비만으로 커진 덩치가 아닌, 골격과 체구 자체가 큰 사냥감이라면 금상첨화다. 기름기가 적어서 뒷맛이 담백하고 깔끔하니까.

그는 어둠 속 담벼락에 웅크린 채 대로를 지나는 인간들을 장 보듯이 물색했다.

‘저놈? 아니. 뱃살이 많으면 맛이 느끼하니까 탈락. 그럼 저건…… 너무 비리비리하고. 하면 저건…… 어? 저거다.’

문득 눈에 들어온 사냥감 하나.

얼핏 봐도 체구가 컸다. 키는 최소 190센티 이상일 듯하며, 적당한 근육질에 군살도 적어 보였다. 그야말로 양과 질을 모두 만족시키는 1등급 사냥감이었다.

블라도의 눈동자에 핏빛 탐욕이 스몄다.

‘오늘은 너로 정했다. 후후…….’

그는 달그림자에 몸을 숨겼다. 드문드문 밤거리를 거니는 인간들의 오감을 피해 사냥감의 뒤를 밟았다. 당연하게도 사냥감은 그의 미행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하였…….

“누구길래 날 따라오지?”

“……!”

블라도는 흠칫했다.

사냥감을 따라 골목 입구에 첫발을 들이자마자 물음이 날아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처음부터 미행을 알고 있었다는 듯, 달그림자 사이에서 묘한 눈길로 이쪽을 쳐다보는 사냥감의 눈빛이란.

‘뭐지?’

생각보다 실력이 있는 놈인가?

하지만 상관없다. 그래 봤자 열등한 인간일 뿐. 뱀파이어에 비하자면 한없이 나약하디 나약한 사냥감일 뿐. 그러니…….

‘네 피를 바쳐라!’

그는 사냥감의 물음에 대답 대신 비릿하게 웃었다.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를 번득이며 재빠르게 사냥감을 덮쳐갔다.

물론 거구의 사냥감은 그때까지도 반응하지 못했다. 아니,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실망스러운 혼잣말 한마디를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하였을 뿐.

“리한 군의관이…… 아닌가?”

콰직!

잠시 후.

골목 안쪽에서 뱀파이어 아구창 돌아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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