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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264화 (264/468)

264화. 별궁 한의원의 이빨요정 (2)

세상사 살다 보면 뽀록이 터지는 날이 있다. 심지어 그게 연타로 터지며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되는 날도 있다.

생각 없이 편의점에 갔더니 포카몬 빵이 방금 들어온 날이 있다. 쾌재를 부르며 사서 집에 돌아오다가 만 원짜리 지폐를 줍기도 한다.

혹은, 생각지도 못했던 계약 성사를 기뻐하며 친구한테 술을 쏘는 도중에 우연히 옆 테이블과 합석을 하게 되고, 그렇게 만난 사람과 연인으로 맺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우리 인류는 그런 경우를 겹경사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히죽.

라키엘은 급경사로 치솟아 귀에 걸리려는 입꼬리를 애써 단속했다. 대신 고개를 들었다. 마침 또 한 팀의 소방대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 들것이 실려 있음은 물론이었다.

“전하! 응급환자입니다!”

소방대가 들것을 내려놓았다. 전신이 만신창이가 된 환자의 모습이 보였다. 인간이었다면 진즉 정신을 잃었을 부상. 그럼에도 기절하지 않고 있다는 건…….

“역시나. 뱀파이어인가?”

“……!”

흠칫!

들것에 실려 오는 내내 주위의 눈치를 살피던 환자, 아니, 뱀파이어가 어깨를 희미하게 떨었다. 하지만 이제 라키엘도, 소방대원 중의 그 누구도 환자의 종족적 진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최소한 뱀파이어가 보는 앞에서는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

‘당연하지! 그래야 뱀파이어가 방심하고 얌전하게 실려 올 거니까!’

라키엘은 므흣한 미소를 감추었다.

반면, 소방대원들은…….

‘과연! 상대가 뱀파이어라도 기꺼이 상처를 보듬어 주시려는 전하의 넓은 마음가짐과 자비심이란……!’

다들 라키엘의 속내도 모르고서 지레짐작으로 감동했다. 더욱 불타오르는 휴머니즘을 2심방 2심실 가득 장착하고서 붕괴현장으로 달려갔다.

“치료실로 옮기도록.”

라키엘이 눈짓했다. 간호사들이 움직였다. 뱀파이어를 실은 들것이 응급실을 지나 안쪽의 치료실로 옮겨졌다. 그동안 뱀파이어 환자(?)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렸다.

뱀파이어는 생각했다.

‘나…… 정말로 치료받는 거야? 진짜로?’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사실 건물 잔해에 깔렸던 때에는 죽는 줄로만 알았다. 이대로 잔해에 압사당하거나, 잔해 사이로 스미는 태양빛에 몸이 불타거나, 그도 아니라면 오랜 시간 피를 마시지 못해서 굶어 죽는 등의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리라 여겼다.

절망했다.

암담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인간 소방대의 구조를 받았다. 이렇게 병원으로 실려 오기까지 했다. 물론 자신을 받아준 이가 황태자라는 사실에는 조금 겁이 나긴 했다.

‘주군께서는…… 황태자를 적대하고자 황도에 뱀파이어 변이증을 퍼뜨렸는데.’

그런데 황태자는 오히려 이쪽을 보듬어주고 있다. 놀라웠다. 세상에 이런 일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자신보다 먼저 구조되어 실려 갔던 동료들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고생을 덜 했을 테니까. 더 일찍 치료를 받으며 고통에서 해방되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자아, 송곳니부터 뽑자고.”

뱀파이어의 중추신경이 감동에 절어서 완전히 쫄깃해지기 직전이었다. 황태자의 태연한 말이 귓구멍을 쏙 파고들었다. 덕분에 뱀파이어는 멈칫. 혹은 흠칫. 자신이 방금 뭘 잘못 들었나 싶어서 면봉 플리즈를 중얼거릴 뻔했다.

그리고 그때.

꽈악!

별안간, 밧줄이 몸에 감겼다. 그리고 어찌 반응할 틈도 없이 전신이 병상에 단단히 고정되어 버렸다.

“……!”

어? 이게 무슨?

뭐라고 외칠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웨어울프 간호사들이 손을 뻗어와서 입에 뭔가를 집어넣었기 때문이었다.

“웁! 으웁? 웁!”

입이 강제로 꽉 벌어졌다. 다물 수가 없게 됐다. 당혹감에 젖어 무어라 외치려는데, 황태자의 태연한 말이 떨어져 내려왔다.

“특수 강철 개구기야. 입 벌린 상태를 유지해 주는 기구.”

“읍! 웁웁?”

“아픈 거 아니니까 겁내지 말고. 무리하게 입 닫으려고 힘 주지도 말고.”

“으읍! 읍!”

“아, 거 참. 안 된다니깐. 이거 드워프 장인들이 만들어준 물건이라, 함부로 씹으려다간 어금니 나간다?”

“……읍읍?”

“그렇지. 이제 좀 말이 통하네.”

“으흡…….”

“울 필요까진 없고. 괜찮아요. 안 아파요. 자아, 아~ 해봅시다.”

“아아…….”

“아이고 착하다.”

“…….”

상큼하게 웃으면서 뺀찌, 아니, 강철 집게를 들이미는 황태자. 지상에 악마가 존재한다면 바로 눈앞의 이 인간이 아닐까. 뱀파이어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눈물 젖은 동공을 휙휙 돌렸다.

비로소 치료실(?)의 광경이 제대로 보였다. 다른 뱀파이어들이 자신과 비슷한 몰골로 병상에 묶여 있었다. 다들 넋이 나간 얼굴로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한데 그렇게 벌린 입 안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가 않았다.

그건 바로…….

“이야, 이거 왕건이다, 왕건이.”

꽈득!

송곳니를 꽉 움켜쥐는 황태자의 쇠집게! 동시에 깨달음이 전두엽을 땅 하고 후려쳐 왔다! 황태자는 지금! 내 소중한 송곳니를!

“아, 앙애!”

“응, 돼.”

뽀작?

당신은 혹시 뱀파이어 송곳니가 뿌리째로 뽑히는 맑고 고운 소리를 감상하신 적이 있나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적어도 이 치료실의 모든 이들은 자신 있게 ‘그렇습니다’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방금 송곳니를 뽑힌 뱀파이어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응!”

“뭘 그렇게 엄살이야. 이 송곳니로 죄 없는 사람들을 마음껏 물고 다녔을 거면서.”

“……어, 으흥.”

“우냐?”

“흐흥…….”

“쯧쯧. 댁한테 물린 사람들은 더 울었을 거야. 팔자에도 없던 뱀파이어 변이증에 걸려서 고생을 했고, 더 이전에 물려서 날 만나지 못했던 이들은 죽었거나 뱀파이어가 됐겠지. 그건 안 미안한가?”

“…….”

“그런 짓을 저지른 요 나쁜 송곳니는 벌을 받아야겠지요?”

“어, 어으! 앙애!”

“응, 된다니까. 때찌.”

뽀작!

“……겨응!”

윗송곳니 두 쪽을 모두 잃은 뱀파이어가 자지러지며 눈물 콧물을 흘렸다. 하지만 라키엘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뱀파이어는 이 정도로는 안 죽는다. 게다가 함부로 사람을 물어대고 고통에 빠뜨렸던 놈이라 딱히 불쌍하지도 않았다.

‘이거 딱 모기 잡는 거랑 비슷한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은 그냥 죽일까 싶은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하지 않았다. 동정심 때문에? 천만에. 절대로 아니었다.

‘살려두면 계속 송곳니가 자랄 거니까!’

문득, 드래곤 포르티스가 알려준 정보가 떠올랐다. 송곳니는 뱀파이어에게 가장 중요한 생존 기관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과 달리, 뱀파이어는 불행한 사고나 부상으로 송곳니가 뽑혀도 계속해서 다시 자라난다고 했던가.

그러니까 살려두는 게 이득이다.

자라면 뽑고.

또 자라면 또 뽑고.

이것이 바로 생체 무한 리필!

‘게다가 황도에 계속해서 퍼지던 뱀파이어 변이증을 이걸로 막아낼 수 있게 됐어.’

라키엘은 치료실을 둘러보았다.

이미 송곳니를 뽑힌 수많은 뱀파이어들이 보였다. 그 숫자가 이미 10명이 넘었다. 모두가 붕괴된 건물에서 발굴, 아니, 구조된 놈들이었다.

“…….”

이렇게나 많은 뱀파이어가 황도에서 조직적으로 설치고 있었다니. 비로소 뱀파이어 변이증이 갑작스럽게 대규모로 확산됐던 사태가 이해가 됐다.

한편으로는 의문도 생겨났다.

‘이런 놈들이 한꺼번에 건물 붕괴에 휩쓸렸다니. 대체 뭘까.’

분명 뭔가가 있다. 우연이 아니다. 이들이 활동을 한 것도. 이들이 모여 있던 저택에 의문의 거대한 폭발과 붕괴가 일어난 것도. 이유와 목적이 있을 거다.

‘뭐, 그건 황제와 황실의 정보기관이 알아서 추적하겠지.’

그러니 나는 지금 당장의 일부터 하자.

생각을 정리한 라키엘은 뱀파이어의 상태부터 살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주요 부상은 각종 타박상과 염좌, 골절. 대략 앞서 실려 온 놈들과 비슷한 수준의 부상이었다.

“아니스? 접골과 응급처치 부탁해.”

“크릉!”

믿음직한(?) 간호사들에게 뒤를 맡겼다. 그 후로도 추가로 실려 오는 뱀파이어들의 송곳니를 알차게 수확했다. 덕분에 하루가 지나는 사이, 뱀파이어의 송곳니를 무려 43개나 모을 수 있게 되었다.

“……후아.”

이게 웬 떡인가. 뱀파이어 변이증 방역과 송곳니 득템(?)까지 당첨되는 겹경사, 뽀록 연타의 하루라니. 쓰지도 않던 일기를 쓰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듯 콩다닥콩닥 설레는 마음을 다잡으며 곧바로 다음 일을 서둘렀다.

앞서 등갑룡, 드래곤 포르티스의 충수염을 수술해 주며 얻었던 드래곤 맹장의 독성을 제거하는 작업이었다.

‘당연히 서둘러야지. 시간이 많지가 않아.’

자고로 약초든 뱀파이어 송곳니든 뭐든, 뽑은 직후가 가장 신선한(?) 법! 게다가 드래곤 맹장도 오래 방치하기가 어려웠다. 지금이야 저온 식품창고에 보관을 해두고 있지만, 결국에는 상하고 썩을 테니까.

하여 라키엘은 곧바로 드래곤 맹장의 독성을 제거하는 작업, 법제를 서둘렀다.

그 첫 단계는 뱀파이어 송곳니 가공이었다.

“자, 갈아보자고.”

“…….”

커다란 절구를 받은 가르딘 경과 데미안이 라키엘을 슬금슬금 쳐다보았다. 라키엘이 뻔뻔하게 반문했다.

“뭐. 왜. 뭐.”

“…….”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하세요들.”

“으음, 전하? 불만이라기보다는 말입니다. 그게…… 요즘 들어서 조금, 혼란스러워서 말입니다.”

“혼란?”

“예, 전하.”

“어떤 혼란?”

“어, 음, 그게-”

잠시 주저하던 가르딘 경이 입을 열었다.

“제 본분이 뭐였는지, 요즘은 종종 그걸 잊어버리는 때가 있는 듯해서 저도 모르게 흠칫하곤 합니다. 전하의 건강을 보살피는 주치의로서의 제 본분 말입니다.”

“아하.”

라키엘은 상큼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가루약 조제용 절구를 끌어안고서 뱀파이어 송곳니를 뿌셔뿌셔 갈갈갈하는 이런 일을 왜 하고 있어야 하나, 뭐 그런 업무적 회의감이 든다는 거지?”

“예에? 아, 그, 제 말씀은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라키엘은 콧김을 풍 뿜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뱀파이어 송곳니는 드래곤 맹장을 법제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재료고, 그걸 곱게 갈아서 가루로 만드는 일 또한 그만큼 아주 중요하고,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 내가 제일 믿을 수 있는 경에게 맡기는 거 아니겠어?”

“예?”

“경을 제일 많이 믿는다고.”

“…….”

“물론 추가 수당은 없다.”

“…….”

살포시 솟구칠 뻔했던 가르딘 경의 감동이 빛의 속도로 짜게 식었다. 그렇게 세 남자는 저녁 내내 열심히 뱀파이어 송곳니를 찧고, 빻고, 갈았다.

그리고 다음 날.

라키엘은 날이 밝자마자 뱀파이어 송곳니 가루를 분석했다.

“저기, 뽀복아?”

“뽀?”

“너 배고프진 않아?”

“뽀보?”

“별로? 으음, 그러면 안 되는데. 건강에 안 좋은데.”

“뽀오?”

“정말이야. 너 혹시 그거 알아? 아침을 든든하게 먹을수록 신진대사가 활발해진대.”

“뽀?”

“그러니까 이거 조금만 먹어 보자아?”

“……뽀보오?”

“아이고 맛있다. 아이고 잘한다 우리 뽀복이.”

“뽀!”

꼬드김에 넘어간 불사조 개복치, 뽀복이가 입을 빵긋 벌렸다. 라키엘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준비하고 있던 뱀파이어 송곳니 가루 약간을 재빠르게 티스푼으로 퍼서 뽀복이의 입에 탁, 털어 넣었다.

“뽀보! 뽀!”

뽀복이가 가루를 야물딱지게 녹이며 삼켰다. 그리고 역시나 꼴까닥 죽었다.

“……뽀보!”

항상(?) 있던 일이었다.

라키엘은 뽀복이의 성분 분석 결과를 기다렸다.

그런데 잠시 후.

딩동!

[당신은 뱀파이어의 송곳니를 원료로 하는 새로운 약재, <뱀각산>을 발견하였습니다!]

뜻밖의 야물딱진 메시지가 눈앞을 알차게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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