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첫 페어링의 효력 (2)
[진료비 청구 (Lv.2) 스킬이 발동됩니다.]
‘……왔다.’
눈앞을 보람차게 채우는 메시지.
[당신은 환자 : 에두아르 앙부아즈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식이요법과 탕약, 시침 요법의 적절한 사용을 선보였습니다. 또한, 환자의 곁에 상주하며 아픔과 고난을 함께 감내하는 정성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환자 : 에두아르 앙부아즈의 가슴속에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정성이 환자의 보호자 : 다수의 정령들의 눈물샘을 감동으로 적셨습니다.]
[별궁 한의원의 간호사들이 당신의 헌신적인 진료에 존경심을 느낍니다.]
[진료 보상에 ‘찬사 보너스’ 효력이 추가됩니다.]
[진료비 청구 (Lv.2) 스킬의 효과가 1.5배로 적용됩니다.]
‘……그러취!’
라키엘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장군은 그냥 일반인이 아닌 하프엘프 환자였다. 안 그래도 제법 많은 보너스 수명을 줄 텐데, 거기에 1.5배 보너스라니. 절로 가슴이 콩다닥콩닥 뛰어댔다.
과연 떠오르는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환자 : 에두아르 앙부아즈는 당신의 적절한 감황사심탕 처방과 식단 관리, 정성스러운 간호를 통해 246년 7개월의 기대수명 연장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에 당신은 246년 7개월의 1/1950에 해당하는 보너스 수명을 정산받습니다.]
[45.523일의 보너스 수명이 계산되었습니다.]
[보상에 찬사 보너스 효력이 추가됩니다.]
[당신에게 주어지는 보너스 수명이 1.5배 증가하였습니다.]
[총 68.284일의 보너스 수명이 계산되었습니다.]
[정산되는 보너스 수명의 최소 단위는 1일입니다.]
[정산되는 보너스 수명이 반올림 처리됩니다.]
[총 68일의 보너스 수명이 정산됩니다.]
[당신의 예상 기대수명 : 1,747일]
‘……후아.’
절로 가빠지는 숨결.
한 번에 무려 70일에 가까운 수명을 얻어냈다. 처음 라키엘의 몸에 들어왔던 때엔 어땠던가. 그땐 지닌 수명의 전부가 90일 남짓이었다. 석 달짜리 시한부 인생. 절망의 구렁텅이였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이걸로 끝이 아니겠지?’
그는 기대하며 기다렸다. 과연 후속 메시지가 이어졌다.
딩동동!
[환자 : 에두아르 앙부아즈의 오랜 친구인 정령들이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이러한 미담이 정령계에 널리 퍼집니다.]
[정령들이 당신에 대해 품고 있던 선입견과 비호감이 사라집니다.]
[다수의 정령들이 당신에 대한 수신거부 및 차단 상태를 해제합니다.]
[이로써 당신은 페어링되는 정령과 정상적으로 교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해냈다…….’
오래 앓던 이가 쑥 빠지는 기분이 이러할까. 혹은, 초조하게 기다리던 대출 심사가 통과됐다는 문자를 받을 때의 느낌이 이럴까.
오장육부도 덩달아 신이 났다.
딩동!
[오장육부가 당신의 성과와 노고를 치하합니다.]
[심장 : 후우, 이번 진료는 유독 빡쎘다. 졸지에 우리까지 참여하느라ㅋ]
[허파 : 허파학……ㅎ]
[대장 : 진짜. 어우. 환자랑 같이 미음에 멀건 반찬만 먹다가 기 빠져서 네 발로 기어 다닐 뻔했지 말입니다;]
[간장 : 네 발로? 그럼 사륜구동인가?]
[위장 : 사족 아님? 륜이 없잖아.]
[콩팥 : 찌찌 쪽에 잘 보면 유륜 있음.]
[비장 : 아하.]
[오장육부가 당신의 헌신적 진료의 성공을 축하하며 5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21,700]
보상은 여기까지였다.
‘후우, 솔직히 처음엔 좀 막막했는데.’
라키엘은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장군을 힐끗 쳐다보았다. 처음엔 진짜로 그랬다. 위궤양치고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하프엘프라서, 엘프의 강력한 위산을 지녀서, 그래서 태생적으로 생겨난 고질병이었다.
처음 입원을 시키고 나서는 내심 후회가 든 적도 있었다. 내가 보너스 수명에 눈이 멀어서 무리하게 진료를 권유했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잘됐네.’
솔직히 생각보다 회복세가 빨랐다. 아마도 장군이 하프엘프라서, 사람의 나이로는 50대 중반이지만, 전체 수명을 생각하면 아직 쌩쌩한 청년기의 육체를 지닌 덕분이 아닐까.
하지만 장군의 생각은 좀 다른 듯했다.
“제국의 황태자시여.”
“뎃?”
……덥석!
어떻게 반응할 틈도 없었다. 축하한다고, 이제 다 나으신 듯하다고 말을 꺼내기도 전이었다. 장군이 대뜸 두 팔을 벌리더니 이쪽을 덥석 끌어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얼핏 듣기에는 그저 무미건조한 말투. 하지만 끌어안은 팔뚝으로 전해져 오는 가느다란 떨림. 저도 모르게 싱긋 미소가 나왔다.
“장군께서는 제가 알려드리기도 전에 들으신 겁니까?”
“……제 오랜 친구들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 완치, 축하드립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장군이 끝내 콧잔등을 찡그렸다. 사실 처음에는 황태자를 전혀 믿지 않았다. 자신을 왜 입원까지 시키는가 싶었다. 그저 의심스럽고, 갑갑했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알았다.
자신이 근 20년째 항상 얼굴을 찌푸리고 다녔다는 사실을. 위장을 불꼬챙이로 쑤시는 통증에 깨어나지 않는 밤도 있다는 사실을.
더는 아프지가 않았다. 속이 더부룩하지도 않았다. 아프지 않고, 더부룩하지 않고, 쓰라리지 않다는 것. 이게 이토록 편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알겠다.
‘이 사람 덕분이야.’
황태자의 치료 덕분이다. 황태자가 자신과 똑같이 맛없는 병원식을 먹고, 함께 불편을 감수하고 지내며 간호를 해준 덕분이다. 그 정성과 헌신 덕분에 자신의 고통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신은…… 어째서?’
무려 제국의 황태자인 자가, 일개 타국의 장군인 내 건강을 위하여 그런 헌신을 마다치 않았는가. 뚜렷한 목적도, 이유도 모르겠는데. 그런데 어찌하여 그토록 나를 보살핀 것인가.
‘그저 자비와 넓은 아량 때문인 거겠지.’
장군은 보너스 수명의 존재를 몰랐다. 그렇기에 더욱 감동했다. 황태자가 온전히 인류애, 혹은 따사로운 자비로 자신을 진료해준 것으로 여겼다.
대가 없는 헌신.
이유 없는 자비.
그토록 숭고한 행위가 또 있을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제국의 황태자시여.”
“아, 예…….”
“그러니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예?”
“말씀만 하신다면,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드리겠습니다.”
진심이었다.
타국의 황태자라고 해도, 자신의 은인이었다. 은인의 부탁 하나쯤은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 그는 굳게 생각했다. 라키엘의 입에서 뜻밖의 대답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네. 술을 끊어 주세요.”
“…….”
“술, 끊어 주세요.”
“…….”
“장군님? 환자분?”
“…….”
“분명 제가 하는 부탁은 어떤 것이라도 들어준다고 방금 말씀하셨는데?”
“그, 그게…….”
“예, 말씀?”
“다른 부탁은…….”
“안 됩니다.”
“…….”
“저는 이 시간 이후로 에두아르 장군님이 평생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 매운 음식도 좀 줄여 주시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리고요?”
“제가 처방해 드리는 탕약을 평생 드셔야 합니다.”
“예에?”
“맛있었잖아요?”
“…….”
“에이, 좋았으면서.”
“…….”
전혀!
장군은 내심 빼액 외쳤다. 탕약? 감황사심탕? 절대로 맛있다고는 할 수 없는 음료였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끔찍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나무늘보 배꼽을 핥는 맛이었다!
“그걸…… 평생 복용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예. 당연하지요.”
“어째서요?”
“그래야 앞으로도 위산의 과도한 작용을 억제할 수 있으니까요?”
라키엘은 매우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장군의 위궤양은 한 번 나았다고 끝인 질환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요. 육식성인 엘프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과도하게 강력한 위산, 그러나 위를 보호하는 점액은 잡식성인 인간의 것이라서 나약한, 그래서 위산과 점액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 말입니다.”
“그건 아까 하신 말씀처럼 술을 끊고 매운 음식을 줄이면…….”
“그것만으로는 안 되고요. 약도 같이 드시면서 관리를 해야죠. 안 그러면 금방 재발할 겁니다, 위궤양.”
“잘 못 들었습니다?”
“들으신 거 다 압니다.”
“……크흑!”
그렇게 장군의 소심한 저항은 한 큐에 진압되었다. 사라진 위궤양과 함께 정령들이 웃었고, 라키엘도 빵빵해진 자신의 기대수명을 확인하며 보람차게 웃었다.
♣
“하아, 보람이 없어. 보람이.”
그날 저녁.
혹은, 저녁이라기에는 다소 늦은 밤.
앙부아즈의 왕녀 아델린은 지친 얼굴로 별궁 정원을 터덜터덜 걸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 당숙에게 병문안을 가기에는 너무 늦은 게 아닐까 하고.
‘협상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는데.’
전체적인 기간도.
오늘의 협상도.
이렇게 길어질 줄은 정말로 몰랐다. 게다가 이쪽을 쥐 잡듯이 대하는 황제의 깐깐한 협상 태도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었다. 덕분에 협상 테이블에서 종일 시달리고 나면 그대로 까무러치고 싶을 정도로 피곤해졌다.
개인적인 훈련을 할 기력도 없을 만큼.
“…….”
아델린은 무의식중에 주먹을 쥐었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도통 훈련을 하질 못했다. 그놈의 협상에 매달리느라 그랬다. 근육이 느슨해진 느낌이 났다. 초조해졌다. 근손실? 아니, 그것보다는…….
‘실력이…… 늘지를 않아.’
언젠가부터 그랬다.
정확히는 앙부아즈 내전이 끝나고 얼마 뒤부터였던가. 갑자기 실력의 향상이 정체되었다. 아무리 훈련을 하고 애를 써도 그랬다.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것처럼 답답해졌다. 실력이 늘기는커녕 퇴보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지독한 슬럼프였다.
물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슬럼프란 노력하다 보면 지나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황도 마젠타에 온 후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황태자와 대련을 한 뒤부터가, 특히 그랬다.
“…….”
황태자, 마냥 약골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런데 오랜만에 재회했던 밤, 자신과 대련을 하던 황태자는 예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겨루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황태자가 힘 조절을 하고 있노라고. 자신을…… 봐주고 있는 거라고.
초조해졌다.
이대로 자신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협상에 매달리느라 훈련할 시간마저 내기가 어려워졌다.
“하아…….”
다시금 흘러나오는 한숨.
아델린은 스스로를 달랬다. 조바심내지 말자고. 협상을 마무리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면, 그때부터 훈련의 강도를 더 올리면 될 것이리라고. 그러니 오늘은 잡념에 매달리지 말고, 당숙의 병문안만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자고.
‘그래야 일찍 자고, 내일은 더 맑은 정신으로 협상에 임할 수 있을 테니까.’
최대한 빠르게 협상을 마무리 짓는 것. 일단은 그것부터. 아델린은 다짐하며 걸음을 빠르게 했다.
그때였다.
……뻐컥!
‘음?’
그녀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별안간 어디선가 들려온 소리. 육중하고 둔탁했다. 익숙하고도 친근했다. 주먹과 육체가 부딪치는 타격음이었다.
‘어째서?’
여긴 황태자의 별궁 정원인데. 이런 곳에서 한밤에 들려오는 타격음이라니. 그녀는 의아함과 궁금함을 함께 느꼈다. 마침 소리가 들려오는 곳도 그리 멀지 않은 듯했다.
‘잠깐 볼까.’
그녀는 자신을 호위하는 수행원들에게 눈짓했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조심스러운 걸음을 옮겼다. 거리가 가까워지며 타격음이 점점 커지고, 소란스러워졌다.
‘한둘이 아닌데?’
최소한 열 사람 이상.
아델린은 무성한 수풀을 옆으로 치웠다. 그러자 수풀 건너편 공터의 광경이 보였다. 열 명의 웨어울프 간호사들이 거대한 미노타우로스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
휘날리는 늑대 갈기.
포효하는 미노타우로스.
거대하게 맥동하는 근육.
격렬하기 그지없는 충돌.
실전은 아닌 듯했다.
그럼에도 너무나 맹렬하고, 거칠고, 압도적이었다. 보는 순간 온몸에 벼락을 맞은 것만 같았다. 특히 미노타우로스의 움직임을 보는 때가 그러했다.
아델린은 깨달았다.
‘아.’
그토록 절실하게 찾던, 내 한계를 뛰어넘을 방법이, 여기에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