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329화 (328/468)

329화. 강력한 지원군 (1)

[업적에 걸맞은 명의 포인트(GDP : Great Doctor Point)가 수여됩니다.]

[170 GDP를 획득하였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명의 포인트(GDP) = 434]

“…….”

왔다.

생각지도 못했던 인증서(?)가 왔다.

‘거대한 업적? 추출한 인슐린이 성공적으로 효과를 드러냈다고?’

원래는 데미안에게 진맥 스킬을 사용하려던 참이었다. 방금 투여한 인슐린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 혈당이 제대로 내려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뜻밖의 업적 메시지가 먼저 떠 버렸다.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성공했구나, 인슐린.’

가슴이 쿵쿵 뛰었다.

이윽고 눈앞에 떠오르는 종합검진표가 그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알려주었다.

[종합검진표]

[검진 대상 : 데미안 카이엔]

[종족 : 인간(+?)]

[성별 : 남자]

[연령 : 3,913세]

[신장 : 186.6 Cm]

[체중 : 65.1 Kg]

[혈액형 : He+ D]

[종합소견 : 모든 항목에서 예후가 좋지 않은 신체입니다. 전형적인 1형 당뇨병이 감지됩니다. 췌장의 베타세포 파괴로 인한 인슐린 분비의 결핍으로 혈당 항상성이 무너졌습니다. 다만, 방금 투여된 소량의 인슐린의 도움으로 혈당이 성공적으로 하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지속적이고 규칙적인 투여를 권장합니다.]

……진짜다.

“데미안?”

“예, 전하.”

“어때?”

“예?”

“기분이 어떻냐고.”

“그냥, 여전히 피곤합니다.”

“어, 응.”

“주사는 효과가 있는 겁니까?”

“어, 아마도. 잠시 확인 좀. 따끔할 거야.”

콕!

재빠르게 가시로 데미안의 손가락을 땄다. 흘러나오는 약간의 피를 검사지에 묻혔다. 그리고 혈액검사실로 달려갔다.

“피믈리에들? 한가하지?”

“……으엇?”

이쪽이 워낙 벌컥 들이닥친 탓일까. 혈액검사실에서 탱자탱자 노예 재직(?) 중이던 뱀파이어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중의 하나에게 검사지를 불쑥 내밀었다.

“검사해. 당장.”

“예?”

“일하라고.”

“…….”

엉겁결에 검사지를 받아든 피믈리에 뱀파이어. 그가 이쪽의 눈치를 살피며 검사지를 할짝, 핥았다.

“맛이 어떻지?”

“으음…… 이거 혹시 데미안 카이엔 경의 혈액입니까?”

“맞아. 그런데?”

“저번보다 단맛이 좀 떨어졌습니다?”

“그래? 얼마나?”

“약 20퍼센트 정도쯤이요?”

이걸로 피믈리에 인증도 통과!

희망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당장 인슐린 생산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농축 방법을 조금씩 개선했다. 추출 시간을 효율적으로 줄여나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희망이 보였다.

분명 그랬다.

그랬는데…….

“쓰읍.”

열흘이 지난 후였다.

데미안에게 인슐린을 투여한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전하?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어. 약간.”

라키엘은 상황을 숨기지 않고 말해주었다.

“인슐린을 주사한 자리에 비세균성 농양이 생겼네…….”

“아, 이거, 어제부터 이랬습니다.”

“어제부터? 빨갛게 붓던 게?”

“예.”

“…….”

“혹시 많이 안 좋은 겁니까?”

“제법.”

라키엘의 미간 주름이 깊어졌다.

“인슐린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남은 불순물 때문에 염증 반응이 생기는 것 같다.”

“하면…….”

“불순물을 지금보다 더 걸러낼 수는 없어.”

사실이었다.

현대식 공장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생산하는 게 아니었다. 제대로 된 설비 없이, 원시적인 방법으로 추출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미량의 불순물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문제를 일으키는 듯했다.

“게다가 뭐랄까. 생각보다 혈당이 많이 내려가지가 않고 있어.”

“그렇……습니까.”

“어. 전보다 기운은 나지?”

“예, 전하.”

“그래도 예전처럼 활동할 엄두는 안 나지?”

“그저 천천히 걸어 다니는 정도로만 만족하고 있습니다.”

“후우. 그래서 문제라는 거야.”

라키엘의 한숨이 깊어졌다.

처음 인슐린을 투여하고 효과를 확인했을 때만 해도 희망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첫 투여에서 20%의 혈당 강하 효과를 보았으니, 농축과 추출 방식을 개선하면 더 나아질 거라고 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개선이 쉽지가 않았다. 처음 추출을 할 때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개선은 그보다도 더 어려웠다. 아무리 추출 방법을 발전시켜도 혈당 강하량이 최대 25% 정도가 한계였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당연하지. 이 상태로는…… 연명밖에 되지 않으니까.’

약간의 시간을 벌기는 했다. 당장 죽지 않게 만들 수는 있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쾌거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장기전을 버텨낼 수 있을까.

아니.

절대로.

‘이런 식의 언 발에 오줌 누기로는…… 데미안의 신체가 계속 약화될 거야. 몇 년이 지나면서 거동도 불가능해지는 수준이 되겠지. 말 그대로 숨만 붙여놓는 상태. 그래서는 안 돼. 그렇게 쇠약해진 상태에선 오늘 같은 비세균성 농양 하나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워질 테니까.’

합병증.

당뇨의 가장 무서운 동반자.

몇 년이 지나며 갉아 먹히고 쇠약해진 신체로는 작은 농양 하나도 못 버틴다. 다이렉트 합병증 당첨의 심각한 길을 걸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못 막는다.

죽는다고 봐야 한다.

결국에는 마계왕의 계획이 성공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인슐린의 생산 방식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 아니.’

그는 냉정한 결론을 내렸다. 마냥 낙관하기에는 생산 방식의 한계가 뚜렷했다. 어느 정도까지는 개선이 가능하겠지만, 이 상황을 뒤집을 정도의 각은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시간 벌기에만 성공한 꼴이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지원군이 필요할 것 같다.”

“지원군이라시면?”

“뱀파이어 로드.”

라키엘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전에도 말했지? 네가 앓는 1형 당뇨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그러니 서둘러야지. 미적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 부를 수 있는 최강의 지원군을 불러서라도.”

“당뇨는 혈액의 혈당이 치솟는 질환이고, 뱀파이어는 혈액의 전문가니까, 그중의 최고인 뱀파이어 로드를 부르시겠다는 거로군요.”

“어. 우리 카이엔 경 똑똑하네?”

“제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요.”

“목숨이 달랑거리는 사람치고는 대답이 참 태연하구나?”

“울거나 침울한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아프다고 마냥 축 늘어져 있으면 더 힘들어진다. 물론 밝게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안다. 아니, 사실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한데 데미안이 그걸 해내고 있다. 힘들 텐데도 힘껏 노력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더더욱 포기하기 싫어졌다.

“그럼 부르자. 지금 당장.”

라키엘은 품에서 펜던트를 꺼냈다. 일전에 뱀파이어 로드 힐데르트가 떠나며 선물한 펜던트였다.

로드가 말하길, 이 펜던트를 열면 한 번은 ‘무조건’ 와서 도움을 주겠다고 하였던가.

“후우.”

심호흡을 했다.

딸각, 펜던트를 열었다.

펜던트 안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특별한 장식이나 그림도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마력의 흔적이라거나 기색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그냥 밋밋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반응이었다.

‘뭐지.’

설마 불량품인가.

아니면 로드가 뻥카를 날리고 튄 건가.

……라는 생각이 들던 무렵이었다.

끼이익.

병실 문이 열렸다.

이윽고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펜던트를 맡기면서도 이렇게 일찍 내가 소환될 일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어?’

놀라서 돌아보았다.

문을 열며 들어오던 뱀파이어 로드, 힐데르트가 특유의 서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랜만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군, 인간의 황태자여. 나를 불렀나?”

“예, 불렀습니다. 그런데…….”

“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거냐고?”

“예…….”

“소환되어서 왔더니 복도라서. 문 안쪽에서 그대의 기운이 느껴지더군. 그래서 문을 열고 들어왔지.”

“…….”

“설마 그 펜던트를 열면 마력이 쏟아져나오거나 빛이 뿜어져 나오고 그 속에서 내가 화려하게 소환될 줄 알았나?”

“어, 솔직히는요?”

“그랬겠지. 하지만 그런 건 별로.”

“별로라니, 어째서입니까?”

“비효율적이잖나. 마력이나 빛이 쏟아져나오는 거, 그런 것들도 다 일일이 마력의 배치가 필요한 일이니까. 쓸데없는 연출이기도 하고. 그게 바로 낭비지.”

“아, 예…….”

들어보니 맞는 말이었다.

번쩍번쩍 이펙트 따위, 뭐가 중요할까. 목적이던 뱀파이어 로드 소환이 잘 됐으니 됐지.

“어쨌건, 이렇게라도 다시 보니 반갑군. 사실은 나도 기쁜 소식을 전하려던 참이었는데.”

“기쁜 소식이라시면?”

“임신하였다네.”

“……예? 설마?”

“그래. 맞아. 아내가 무사히 임신을 하였어.”

“버, 벌써요?”

“열심히 노력했다네.”

“추……축하드립니다?”

“무슨. 다 그대의 수술 덕분일세.”

로드 힐데르트가 순도 100%짜리 무해한 아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표정이 평소의 진지한 기색으로 돌아갔다.

“한데 그대가 이렇듯 나를 소환했다는 것은…… 뭔가 내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겠지?”

“예. 맞습니다, 로드시여.”

“그래……. 우선 문제가 생겼음에 심심한 위로를 건네지. 하면 본론부터 말하도록 할까. 내가 그대를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는가?”

“여기, 데미안을 치료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

로드의 한쪽 눈썹이 꿈틀.

그가 코를 킁킁거렸다.

“이자는 그대의 호위가 아닌가. 그런데 이 냄새는…… 설마?”

“감지하셨습니까?”

“혈당이 엄청나군.”

“예. 그래서 애를 먹고 있습니다.”

역시 뱀파이어 로드다. 데미안에게서 나는 약간의 체취만으로도 혈액의 상태를 짐작한 듯했다.

라키엘은 솔직하게 말했다.

“1형 당뇨병입니다. 제가 나름 치료약을 만들어서 투여를 했고 효과를 보았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가 않은 상황입니다.”

“흐음…….”

“그래서 이렇듯 로드의 도움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혈액의 전문가인 뱀파이어 중에서도 최고이시니까요. 카이엔 경의 치료, 혹은 제가 만든 치료약의 획기적인 개선에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실지, 부탁드립니다.”

“흐으음…….”

정중히 부탁했다.

그런데 로드의 반응이 신통치가 않았다.

“이건 아무리 나라도 조금, 어렵겠는데.”

“예?”

“미안하군. 나는 진심으로 그대를 돕고 싶어. 내 은인이니까. 그렇지만 이건…… 으음…… 설명을 하자면 내가 그대의 말처럼 혈액의 전문가이기는 해도, 인간의 혈액에 생겨난 병을 치료하지는 못한다네. 엄밀히 말하자면…… 병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 그게 다야. 치료는 나 같은 뱀파이어의 영역이 아닐세.”

“그런 겁니까…….”

망했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뱀파이어 로드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니. 깊은 실망감이 몰려왔다.

그런데 그때였다.

“하니 말일세. 내가 도움을 못 주는 대신에 이 일에 나보다 훨씬 도움이 될, 나보다 훨씬 전능한 존재를 그대에게 소개해 줄까 하는데.”

“예에?”

전능한 존재?

뱀파이어 로드보다도 훨씬?

“그런 존재가 있습니까?”

“물론.”

“누구……입니까?”

물었다.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로드 힐데르트가 말했다.

“용왕, 베르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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