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353화 (352/468)

353화. 정령도 반띵이 되나요 (2)

[‘돈벼락의 정령’이 당신에게 분리 독립을 요청합니다.]

[요청을 수락할 시, ‘돈벼락의 정령’이 ‘돈의 정령’과 ‘벼락의 정령’으로 분리될 것입니다.]

[분리된 ‘돈의 정령’은 황족 수저인 새로운 교감 대상에게 건너갈 것이며, ‘벼락의 정령’이 당신의 곁에 남을 것입니다.]

‘어?’

느닷없이 눈앞을 야물딱지게 채우는 메시지. 라키엘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돈의 정령’은 금융 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지닌 재산을 굳건하게 불려주는 힘을 발휘합니다.]

[‘벼락의 정령’은 교감 대상에게 전격의 권능을 대여합니다.]

[‘돈벼락의 정령’의 분리 요청을 수락하시겠습니까?]

[YES / NO]

“…….”

이건 뭐냐…….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라 선뜻 믿기지가 않았다. 눈두덩을 비볐다. 다시 훑어보았다.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진짜네. 대박. 미친.’

이건 미쳤다. 진심이다.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고민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 이쪽과 황태자 모두를 건져줄 구명튜브 같은 요청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지. 이거…… 진짜 지금 딱 필요한 유형의 도움을 주는 거잖아?’

정말로 그랬다.

사실 택시를 타고 오는 내내 고민이었다. 집에 도착하고도 그 고민은 더 깊어졌다. 원룸을 둘러보며 현타(?)에 빠지는 황태자의 모습을 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의 황태자의 거취 때문이었다.

일단 자신의 원래 몸에 들어간 황태자를 깨우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다음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아직도 막막했다. 어느 쪽을 선택하건 자신과 황태자, 한쪽은 거의 반드시 불행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황태자를 마젠타노로 데려가? 아니. 그랬다간 내 자리가 위험해질 수 있어. 반대로 황태자가 위험해질 수도 있고. 그건 모두에게 좋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황태자를 여기 남겨두면?’

그러면 황태자는 거지가 된다.

로또 당첨금 44억?

그게 있어도 결말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걸 지켜내지 못할 테니까.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온갖 사기꾼들이 돈 냄새를 맡고서 몰려들 것이다. 교묘한 화법과 신뢰감 있는 태도로 유혹을 던지겠지. 겉으로는 절대 유혹처럼 보이지 않는 그런 제안들을 말이다.

물론 황태자는 그들의 검은 속내를 가려내지 못하리라. 이쪽 세상의 물정을 아예 모르니까. 심지어 저쪽 세상에서조차 황실이라는 온실에서 자라난 사람이니까.

‘2년? 아니, 1년도 못 버틸 거야.’

44억을 지키지도 못하고. 딱히 이곳에서 먹고 살 기술이나 재능도 없는 듯하고. 그런데 황태자를 여기 남겨두는 건? 그냥 죽도록 방치하는 것과 똑같다는 결론만 나왔다.

“…….”

그렇다고 황태자와 자신이 서로의 몸을 바꿀 수도 없다. 바꾸는 방법도 모른다. 아니, 설령 된다고 해도 그건 해선 안 된다. 저쪽에는 별궁 한의원이 있으니까.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것이 이쪽의 책임이니까.

‘그래서 계속 답이 안 나오는 고민을 붙들고 있었는데…….’

이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라키엘은 메시지를 쳐다보았다.

그곳에 모두를 만족시킬 답이 보였다.

[‘돈의 정령’은 금융 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지닌 재산을 굳건하게 불려주는 힘을 발휘합니다.]

‘저거다.’

저것이면 된다.

돈의 정령이 황태자에게 붙으면 만사 오케이다. 금융 사기를 막아주고, 44억의 당첨금을 굳건하게 지키며 불려주겠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문도 들었다.

‘어이. 돈벼락 씨?’

- 네?

‘갑자기 이런 요청을 받으니까 조금 의아해서 묻는 건데, 혹시 답해줄 수 있어?’

- 무슨 질문인지 들어보고요?

‘왜 이런 요청을 하는 거야?’

- 무슨 뜻이죠?

‘분리 요청. 돈의 정령과 벼락의 정령으로 분리될 수 있다는 거. 이거, 나나 저 황태자한테 엄청난 이득이 안겨질 요청인 건데. 설마 이런 안성맞춤의 호의를 공짜로 베푸는 건가 싶어서.’

- 아하.

돈벼락의 정령이 통통한 돼지족발 손가락을 통 튕겼다.

- 의심을 하는 건가요? 뭔가 꿍꿍이가 있을까 봐?

‘솔직하게 말하자면, 약간은?’

- 하긴. 그럴 법도 하죠. 가끔 이런 인간이 있다니깐. 호의를 순수하게 받질 못하는 타입.

‘쯧.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 거야.’

- 대개는 그렇더군요. 어쨌건-

돈벼락의 정령이 통통한 배를 흔들며 웃었다.

- 이건 그냥 주는 호의가 아니라, 구경값이에요.

‘구경값?’

- 네. 처음 교감할 때 말했죠? 거액의 돈을 스스로 포기한 자들이 직후부터 보이는 반응은 정말로 구경할 맛이 난다고 말이죠.

‘……맛있었어?’

- 생각보다는 별로요?

‘별로였는데 구경값을 준다고?’

- 앞으로 더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길 거 같아서 말이죠.

의미심장한 목소리와 함께 돈벼락의 정령이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방구석에 주저앉은 황태자가 보였다.

- 저거. 진짜 제대로 된 황족 수저 냄새랍니다. 그런 인간이 이곳에서 얼마나 럭셔리하게 살아갈지 구경할 재미를 왜 놓치죠? 내가 미쳤어요?

‘그래서 미리 구경값을 지불하겠다는 거야?’

- 당연하죠.

‘잠깐. 그럼, 분리 같은 거 안 하고 그냥 황태자한테 건너가도 되지 않나?’

- 그건 불가능해요.

‘어째서?’

- 이미 당신과 교감을 이루어 버렸으니까.

‘…….’

-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저쪽과 교감을 했어야 했는데.

‘…….’

- 어쨌건, 저는 당신을 완전히 내버릴 수가 없어요. 교감으로 묶여 버렸기 때문에. 그런데 저쪽 황족 수저에 대한 구경은 포기하기 싫어요. 그러니까 양쪽 다 만족을 시켜야죠. 내 속성 중에서 돈 구경을 원하는 쪽과, 당신에게 남아서 교감의 책임을 이어가려는 쪽 모두를.

‘그런 거였나.’

조금 알겠다.

혹시나 다른 꿍꿍이가 있나 해서 물어본 건데, 다행히 시커먼 속셈은 없는 것 같았다.

라키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요청을 수락할게.’

딩동!

[‘돈벼락의 정령’의 분리 요청을 수락하였습니다.]

[정령 분리 매뉴얼이 발동됩니다.]

[매뉴얼의 실행에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정령 분리 단계 1. 넉넉한 크기의 국그릇을 준비해 주세요.]

‘뭐?’

국그릇? 왜?

의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참았다. 일단 시키는 대로 찬장에서 제일 큰 국그릇을 꺼냈다. 그런 이쪽의 행동 때문이었을까.

“전하?”

“……?”

데미안과 황태자가 이쪽을 멀뚱멀뚱 쳐다보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는 롱패딩도 안 벗고 국그릇부터 꺼내는 이쪽이 뭘 하려는 건가 싶겠지.

“쉿. 잠시만들 있어 봐.”

밥상에 국그릇을 놓았다.

그 순간이었다.

……파아앗!

이쪽에게만 보이던, 허공에 떠 있던 돈벼락의 정령이 온몸을 움츠렸다. 도약했다. 공중에서 화려한 6회전을 선보이며 국그릇으로 다이빙을 감행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국그릇에 담겼다.

모두의 눈에 보이는, 금빛 엑기스가 되어서.

찰랑!

“……!”

“어?”

비어 있던 국그릇이 갑자기 금빛 국물(?)로 가득 차올랐다. 국그릇을 주시하던 데미안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황태자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이쪽의 귓가에는 친절한 알림음이 울렸다.

딩동!

[정령 분리 단계 2. 원샷]

“…….”

별로 안 친절한 거 같은데.

라키엘은 마뜩잖은 눈초리로 메시지를 쳐다보았다.

‘원샷? 진짜? 이게…… 맞아?’

분리를 해야 하는데 왜 이쪽이 정령 엑기스를 원샷해야 하는 것인가. 심각하고도 진지한 고찰(?)이 먼저 필요한 것 아닌가. 가슴속 옹달샘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의문을 담고서 라키엘은 물었다.

딩동!

[싫으면 마시든가.]

“…….”

맞긴 맞나 보다.

국그릇을 집었다. 입가로 가져왔다. 그리고 남자답게 원…….

“……그흽?”

첫 모금을 입에 넣자마자 라키엘은 두 눈을 부릅떴다. 맛이 없어서? 아니. 그냥 맛이 없는 정도가 아니었다.

제일 먼저 느껴진 맛은…… 벼락의 맛이었다!

“그! 급! 긔긕! 흡! 흽!”

덜컥! 덜덜! 삐걱! 끽! 덜컥!

첫 모금을 머금은 입가를 시작으로 안면 전체가 감전되었다. 삐걱대는 구체관절 댄스가 전신으로 급속히 번졌다.

괴로웠다. 몸이 제멋대로 뒤틀렸다. 근육과 관절뿐만이 아니었다. 아예 전신의 세포 하나하나가 인수분해됐다가 친절하게 재조립되며 식도와 괄약근이 하이파이브를 하는 기분이었다!

“……걱!”

이건 인간이 마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뱉어야 한다. 라키엘은 필사적인 생존본능을 발휘하며 첫 모금을 단호하게 뿜으려 했다.

그때였다.

딩동!

[정령 분리 단계 3. 뿜기 금지, 마시다가 끊는 거 금지, 무조건 원샷 (실패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음)]

‘……야 이 x끼들아!’

이런 거면 최소한 마시기 전에는 알려주든가! 마음의 준비라도 하게!

라키엘은 첫 모금을 뿜으려던 입가 근육에 재빠른 브레이크를 밟았다.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오려던 금빛 엑기스가 가까스로 입술에 가로막혔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난데없는 이쪽의 지랄발광 댄스 사태에 놀라서 다가오는 데미안. 녀석을 눈빛으로 말렸다. 난 괜찮다고. 해야 하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새기듯 다짐하며 국그릇을 더욱 기울였다.

벌컥!

두 번째 모금이 목구멍을 넘어갔다. 식도가 삭제되는 느낌이었다. 오장육부? 당연히 난리가 났다.

딩동!

[오장육부가 온몸으로 외칩니다.]

[……빠떼리이이이이이-!]

“…….”

미안 친구들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계속해서 마셨다. 온몸이 더욱 저릿저릿해졌다. 버텼다. 그저 견뎌냈다. 이러다가 감전사당하는 게 아닐까 싶을 생각이 들 무렵까지. 그럼에도 끝끝내 마지막 한 방울을 다 삼켜 원샷을 완성할 때까지.

“크어어! 뻑 예!”

해냈다!

해냈어!

원샷 성공의 쾌감과 안도감에 저도 모르게 포효를 내질렀다. 그러나 그건 너무나 섣부른 세리머니였다. 방금 이쪽이 마신 건 돈벼락의 엑기스였는데, 아직 벼락의 맛만 보았으니까.

돈의 맛은 한 박자 늦게 찾아왔다.

“으하하! 하…… 하아…… 흡?”

기뻐하려던 라키엘은 황급히 목을 움켜잡았다. 안 그러면 방금 마신 것을 다 게워낼 것 같았다. 어째서?

‘이건…… 너무…… 달아!’

뒤끝처럼 한 박자 뒤에 찾아온 돈의 맛은 달았다. 달달했다. 태어나서 이토록 단맛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심하게 달았다.

혹시 극단적으로 강력한, 미각의 한계를 넘어가는 초월적 단맛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혹은, 달달한 초콜릿을 뷔페 먹듯이 마구잡이로 흡입해본 적이 있는가.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때로는 극단적인 단맛이 쓴맛보다 훨씬 끔찍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느글거림은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그, 그읍!’

하지만 라키엘은 버텼다. 비결? 딱히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냥 기절하기 직전까지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 같았다.

‘실패하면…… 끝이야.’

메시지가 알려주었다.

원샷에 실패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라고. 그러니 무조건 해내야 한다. 그래야 이쪽과 황태자 모두가 편안해질 수 있다. 할 수 있다. 해낸다. 반드시 한다. 그러니까…….

벌컥!

한 손으로는 입을 부여잡고서, 다른 손으로 냉장고를 열었다. 김치 타파통을 꺼냈다. 뚜껑을 열고 맨손으로 김치 한 줄기를 집어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평화가 찾아왔다.

“하아…….”

김치 만세.

신김치의 알싸하고 감칠맛 나는 향기가 느글거리던 단맛을 순식간에 진압했다. 목구멍으로 치고 올라오던 엑기스? 순식간에 얌전해져서 위장으로 내려갔다.

원샷, 성공이었다.

딩동!

[‘돈벼락의 정령 엑기스’가 교감자인 당신에게 무사히 흡수되었습니다.]

[‘돈벼락의 정령 엑기스’가 당신의 신체를 매개로 하여 둘로 분리됩니다.]

[‘돈의 정령’이 탄생하였습니다.]

[‘돈의 정령’이 당신을 떠나 새로운 교감 대상에게 건너갑니다.]

[‘벼락의 정령’이 탄생하였습니다.]

[‘벼락의 정령’이 당신에게 새로운 능력을 선물합니다.]

[<침술 스킬>에 새로운 옵션 기능이 탑재되었습니다.]

[스킬 전용 옵션 ② : 찌릿찌릿 물리치료 - 환자에게 꽂는 침에 벼락의 힘을 담을 수 있습니다. 벼락의 강도는 1-10 단계로 조절됩니다. (주의 : 10단계는 철천지원수한테만 사용할 것)]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