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화. SARS-CoV-2 (2)
[WARNING!]
[당신의 체내에서 대량으로 증식된 코로나(SARS-CoV-2:GH형) 바이러스가 감지되었습니다.]
[코로나 잠복기 종료.]
[당신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습니다!]
“…….”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공교롭다고 해야 할까.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럴 거 같았다는 말로 피식거림이 적당할까.
딩동!
[오장육부가 바이러스의 창궐에 기겁합니다.]
[심장 : 으아아 허파가 이상해!]
[허파 : ……히히히? 헤헿? 헿?]
[대장 : 허파 형님 용기를 잃지 마시지 말입니다?]
[간장 : 용기는 음식물 등등 담는 타파통 같은 거 말하는 거 아닌가?]
[위장 : 어쩐지 음식물이 잔뜩 들어오더라.]
[콩팥 : 그게 아니라고ㅋㅋㅋㅋㅋ 우리 죽을 거 같다고 아ㅋㅋㅋ 우리 뭐라도 해야 한다고ㅋㅋㅋ]
[비장 : 라키엘은 코로나가 처리했으니 안심하라굿!ㅋ]
[오장육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합니다.]
[오장육부가 당신의 생존을 기원하며 5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8,200]
벌써부터 기겁하는 오장육부. 녀석들의 반응을 보니 실감이 빡 왔다. 한국에 도착했던 첫날이 떠올랐다. 그래. 마스크도 없이 반나절을 돌아다녔지. 소매로 입가를 가리고서 동네 약국이란 약국은 다 찾아다녔고.
‘아마 그때…….’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다. 잠복기와 발병 시기를 고려하면 그때가 제일 유력해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딩동!
[당신의 신체를 잠식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강력한 전파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위의 사람에게 확산되지 않도록 적절한 격리와 거리두기를 시행하기를 권고합니다.]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 외의 종족에게 감염 시, 예상 밖의 이상증상을 불러올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 주세요.]
일단 말없이 주머니에서 마스크부터 꺼내서 썼다. 그런 이쪽의 행동 때문이었을까. 곁의 데미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하?”
“물러서, 데미안.”
“예?”
“나, 걸려서 온 것 같다. 저쪽 세상의 전염병.”
“네? 설마.”
“응, 그 설마가 맞아. 그리고 어쩌면-”
용왕 베르키스도.
라키엘은 데미안과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용왕 베르키스를 돌아보았다. 이미 용왕도 미심쩍은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너님, 방금 뭐라고 했니? 전염병?”
“예. 죄송합니다.”
“괜찮아. 나님은 그런 전염병엔 안 걸리고 안 죽어.”
“하지만 이 전염병이 역대급으로 독한 놈이라서요. 제 생각엔 이미 용왕님께서도 영향을 받게 되신 것 같습니다.”
라키엘은 자신의 추측을 덤덤하게 밝혔다. 용왕의 한쪽 눈썹이 살짝 찡그려졌다.
“나님이? 전염병에?”
“예. 아마도 그래서 마법이…….”
“안 써지는 것 같다고?”
“추측으로는 그렇습니다.”
그것 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 멀쩡하던 용왕이, 그것도 마법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기나긴 용생에서 처음으로 마법 시전에 실패하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했으니까. 그런데 그와 동시에 이쪽에게 코로나 감염 알림이 떴다.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
그보다는…….
“아마도 연관이 있을 듯합니다. 해서 확인을 하고 싶은데요.”
“확인이라. 어떻게?”
“진맥을 좀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쯧. 귀찮게.”
“죄송합니다.”
용왕의 얼굴 가득 성가신 기색이 떠올랐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만약에 정말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용왕에게 모종의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라면, 반드시 대책을 마련해야 할 테니까. 그러자면 진단부터 해보아야 할 테니까.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내심 한숨이 흘러나오려는 걸 참으며 용왕의 손목을 조심스레 짚었다.
‘진맥.’
딩동!
[진맥을 시작합니다.]
[스캔 중.]
[3…… 2…… 1……]
[진맥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래의 <종합검진표>를 확인해주세요.]
[종합검진표]
[검진 대상 : 베르키스]
[종족 : 드래곤]
[성별 : 남자]
[연령 : 2,517세]
[신장 : 183.2cm (+25,172cm)]
[체중 : 71.6kg (+9,036,101kg)]
[혈액형 : Dg+ B]
엄청난 숫자가 주르륵 떠올랐다. 아마 괄호 안의 숫자들은 드래곤 본체의 몸길이와 체중인 거겠지.
그렇다면 종합소견란은 어떨까.
[종합소견 : 모든 항목에서 신에게 근접한 신체입니다. 체내의 모든 순환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외피의 강력함은 코앞에서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도 미미한 찰과상의 피해만 입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최근, 면역계가 타 차원의 낯선 코로나(SARS-CoV-2:GH형) 바이러스의 침투를 허용한 상태입니다. 이 바이러스는 인간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으나, 드래곤의 건강과 생명에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바이러스가 사멸될 때까지 마법 불능 상태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또한, 드래곤의 경우 인간과 달리 코로나 바이러스의 자연치유가 불가능하며, 적절한 치료제의 도움이 없다면 평생 바이러스를 지닌 채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찾았다.
“저기, 용왕님?”
“응. 말해 보렴. 그런데 그 전에 나님 손목 잡은 건 좀 놓아줄 수 있을까? 좀 소름이 돋아서?”
“아, 옙.”
맥을 짚던 손을 황급히 뗐다.
그리고 진맥 결과를 알려주었다.
“죄송합니다. 용왕님께선 제가 걸린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셨습니다.”
“응 그래서?”
“그래서 마법 사용이 불가능해지신 듯합니다.”
“응 그래서?”
“일단 다행스럽게도, 그것 외의 증상은 없으실 겁니다. 건강이나 생명에 이상, 위협이 생겨나는 그런 증상들은 말입니다.”
“응 다행이네?”
“예. 그런데…….”
“그런데?”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시게 된 것이 큰일이로군요.”
“큰일?”
“예.”
“이상하네. 너님한테만 큰일 아닌가?”
“예?”
라키엘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용왕이 이쪽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었다.
“그 바이러스, 나님 건강이나 생명에는 영향이 없을 거라며. 그냥 다 나을 때까지 마법만 사용 못 하게 될 거라며.”
“아, 예.”
“그럼 됐네. 나을 때까지 한두 달쯤 잠만 자면 되겠네.”
“그게 불가능한 점이 문제입니다.”
“응?”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빤히 쳐다보는 용왕.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서 말해주었다.
“자연치유가 불가능하실 겁니다. 저도 정확한 이유는 모릅니다. 아마도 인간이 아닌 드래곤이셔서…… 바이러스가 드래곤의 신체에서는 그렇게 작동해서인 듯합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런 진단, 맞아?”
“예.”
“안 믿기는데.”
“그랬다간 큰일이 나실 겁니다.”
“딱히? 치료제 정도야 나님이 몇 년만 연구하면 마법의 도움 없이도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그 사이에 용왕비님은요?”
“……뭐?”
“용왕비님께선 저와 같은 인간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무섭다.
진심으로 무섭다.
용왕 베르키스의 이쪽을 쳐다보는 눈빛이, 지금까지 겪어본 그 어떤 눈빛보다도 살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그것이 책임이고 의무니까.
“용왕님께서는 피해가 없으시겠지만, 용왕비님은 위험하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꼬맹이가 돌아오기 전에 치료를 해야 한다?”
“예. 반드시요.”
“어떻게?”
“그건 저도 아직…….”
“모르겠다고?”
“죄송합니다.”
솔직하게 말했다. 코로나 치료제? 모르겠다. 아니. 지구상에 그걸 아는 인간이 있을까. 유수의 제약회사들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최고의 연구진이 혼신의 힘으로 달라붙어도 아직껏 제대로 개발되지 못한 것이 코로나 치료제였다. 그러니 이쪽이라고 다를 수 있을까.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직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예.”
“그럼 시간을 주면?”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
베르키스는 라키엘을 향한 살벌한 눈길을 거두었다. 솔직히 조금 전엔 충동적으로 이 인간을 죽일 뻔했다. 만약, 라키엘이 코로나를 진단하며 마법 사용 불능으로 인한 인슐린 복사 문제를 먼저 걱정했다면, 반드시 죽여 버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라키엘, 이 인간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이쪽의 아내를 걱정해주었다. 자신도 다른 차원까지 고생해서 다녀오며 가져온 인슐린을 복사받지 못하게 되어서 곤란할 텐데도. 내심 막막한 심정이 가득할 텐데도.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흐음. 그래. 알겠다. 사실은 너님도 눈앞이 캄캄하겠지. 인슐린 복사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돼서.”
“그건…….”
“다 알아. 가져온 인슐린 샘플, 유통기한이 13일쯤 남았다고 했나?”
“예.”
“그 안에 날 치료하고 복사 서비스를 받아야 할 텐데, 그게 제일 막막하겠군.”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챙겨온 트레제오의 경우엔 개봉 후 15~29℃의 온도로 보관할 시엔 6주까지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개봉 전의 13일의 유통기한까지 합치면 앞으로 8주쯤 여유가 남은 상태입니다. 다만…….”
“다만?”
“용왕님이 드래곤이셔서,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걱정이라니, 어떤 측면에서?”
“인간과 체질이 달라서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지, 그걸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용왕비님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치료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말입니다.”
라키엘은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가 옮겨온 바이러스입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제가 끝까지 책임을 지겠습니다.”
진심이었다.
자신이 부주의했다. 한국에 돌아갔을 때, 그때까지도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 차원에서 거의 2년을 보냈으니 한국도 똑같을 거라고 여겼다. 설마하니 자신이 양화대교에서 떨어진 지 3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으로 돌아간 것이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그래서 길가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도 처음엔 겨울이라서, 예전처럼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첫 약국에 방문을 하고서야 아직 한국에서 코로나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당시엔 뒤늦게 아차 싶었던가.
하지만 그건 변명이 될 수 없다. 자신이 부주의했다. 명백한 잘못. 단지 그것뿐이다. 되돌아간 시점이 어쩌고저쩌고를 변명으로 삼는 것은 구차하다. 옳지 못하다. 라키엘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베르키스는 라키엘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 책임이라.”
용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알겠다. 나님도 화를 풀도록 하지. 그나마 감염된 이가 우리 둘밖에 없는 데다, 어차피 우린 지금 공동운명체가 된 것 같으니까.”
“예? 공동운명체요?”
“으음. 한배를 탔다고 해야 할까. 너님은 인슐린 샘플을 복사받아야 하고. 나님은 꼬맹…… 아니,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바이러스 치료를 마쳐두어야 하니까. 그래서야. 이미 이렇게 된 거, 차라리 같이 연구를 해보는 건 어떨까.”
“함께 연구를 말입니까?”
“코로나 치료 연구. 어때?”
“……감사합니다!”
용왕이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협력의 뜻을 전해왔다. 막막한 절망 속에서 뜻밖의 엄청난 지원군을 얻은 느낌이었다. 라키엘은 진심으로 감사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라키엘은 몰랐다. 용왕이 얼마나 돌아이 같은 방식의 연구 스타일을 지녔는지를.